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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종 든 주지 박금곡

 

대원사에서 공부하실 때,

정남기(鄭湳綺)의 아들 영태(榮?)가 쌀을 져다 드리고, 주지 박금곡(朴錦谷)이 시봉하니라.


금곡은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에 있었는데
산불로 절이 소실되자 함수산(咸水山)과 함께 삼남 지방을 유력하다가


서른네 살 되던 정해(丁亥 : 道紀 17, 1887)년에 퇴락한 대원사에 이르러
발심하여 절을 중수(重修)하고, 신축년에 증산을 시봉하니 이 때 나이 마흔여덟이라.


금곡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천신(天神)이 강림하셨다.” 하고
공부하시는 뒤를 일일이 수종 들며 그 절에 있는 여러 중들 가운데 함수산,
자신의 조카 박영춘과 함께 증산을 천신으로 대접하고 공경하니라.
(증산도 道典 2:4)

 


공부하실 때의 이적

사람들의 근접을 일절 금하고 공부하시던 어느 날 밤,
비바람이 대작하고 불칼이 내리치는 가운데 크게 호령하시는 소리가 들리거늘


금곡이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고 증산께 아뢰기를
칠성각에 봉안(奉安)된 진묵대사(震?大師)의 영정(影幀)이 마당에 떨어져 있고


칠성각의 방향이 옆으로 틀어져 있습니다.” 하니
증산께서 “그러냐.” 하고 답하시는 순간 당우(堂宇)의 방향이 원래대로 돌아오니라.
(증산도 道典 2:5)

 

 

수도하실 때

증산께서 공부하시는 중에 담(痰)을 많이 토하시는데,
하루는 두루마기와 바지저고리에 담이 가득 묻었는지라


그 옷을 벗으시고 알몸으로 앉아 공부하시다가 금곡에게 “옷을 빨아 오라.” 하시거늘

금곡이 그 옷을 본즉 손을 대지 못할 정도이므로


막대기로 끌어내어 냇물에 담가 놓고

돌아와 무심하게 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무니라. 한밤중에 곤히 잠을 자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져 돌이 구르며 물 내려가는 소리가 요란하므로 금곡이 놀라 일어나

황급히 나가 보니 그 옷이 깨끗하게 빨린 채 넓은 바위 위에 놓여 있거늘 금곡이 크게 감탄하니라.

 

이 때 증산께서 토하시는 담을 감당할 수 없어
방짱을 떼어 내고 그 자리에 담을 토하며 공부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6)

 


산천을 뛰어넘으며 공부하심

 

증산께서 수도에 일심하실 때,
때로는 한밤중에 뜰로 나오시어 천둥 같은 음성으로 소리를 지르시고


다섯 길이 넘는 감나무를 훌쩍 뛰어넘기도 하시며

또 절벽을 올라 산골짜기를 뛰어넘어 다니시고 수왕암(水王庵)에 가시어 목욕을 하기도 하시니라.

 

하루는 금곡이 칠성각 안을 슬며시 들여다보니 방안에 연기가 자욱한데
증산께서 종이에다 무슨 글을 써서 계속 불사르고 계시더라.
(증산도 道典 2:7)


 

주지 박금곡의 소원

 

하루는 금곡이 아뢰기를
제가 평생 이 절에 주지로 있게 해 주옵소서.” 하고 청하니 증산께서 이를 허락하시니라.


금곡이 다시 아뢰기를 “저의 일을 말씀해 주사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後身)으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금곡이 다시 간절히 여쭈기를
구십 세까지만 살게 해 주옵소서.” 하거늘
이도 허락하시며 “네가 죽을 때에는 본병이 도져서 죽으리라.” 하시니라.


금곡이 또 아뢰기를
대원사에 감나무가 많으나 감이 하나도 열지 않으니
감이 잘 열도록 해 주옵소서.” 하니


이는 진묵이 원한을 품은 연고라.
명년부터는 감이 잘 열리리라.” 하시거늘 과연 그 후로 감이 풍성하게 열리니라.
그 후 금곡은 한평생 대원사 주지로 있다가 93세가 되매 다친 허리가 재발하여 죽으니라.
(증산도 道典 2:10)

 

 

태양처럼 빛나는 상제님의 법신

 

하루는 밤에 모악산 비장골의 냇가 바위에
앉아 쉬시니 16세 된 금산사 중 오금해(吳錦海)가 시중을 드니라.


상제님께서 금해에게 물 한 그릇 떠 오라.”
하시므로 금해가 명을 받고 물을 뜨러 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바위 위에 앉아 계신 상제님께서
태양과 같이 찬연한 불덩이로 빛나시거늘


그 광명이 얼마나 밝은지 기어가는 개미까지도 보일 정도더라.
금해가 하도 눈이 부시어 감히 바로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니라.

(증산도 道典 2:14)

 


천지대신문을 열고 삼계대권을 주재하심

증산께서 대원사에 가신 지 보름 만인 7월 초하루부터 식음을 전폐하시고,
한번 앉으신 자리를 잠시도 떠나지 않으신 채 이레 동안 수도에만 일심하시니라.


대원사 칠성각에서 공부하신 지

스무하루 만인 신축년 7월 7일에 천둥과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상서로운 큰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


이로부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고 우주의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시니라.


 

신천지 도통문을 여실 때

도통하시기 전날 깊은 밤에 증산께서
금곡에게 명하여 “산 너머 금산사에 가서 미륵전(彌勒殿)을 지키라.” 하시거늘
금곡이 대원사를 떠날 때 보니 찬란한 불기둥이 하늘로부터 칠성각 지붕으로 내리뻗쳐 있더라.


미륵전을 지키고 있을 때,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여 미륵불과 미륵전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니
금곡이 두려워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몸조차 가눌 수 없어 미륵전 기둥을 잡고 견디는데
오히려 기분은 황홀하여지더라.
 

날이 밝자 금곡이 대원사로 돌아와
간밤의 일을 아뢴즉 그 때가 바로 증산께서 도를 통하신 시각이더라.


나는 옥황상제니라

상제님께서 금곡에게 “미음 한 그릇을 가지고 오라.” 하시니
금곡이 올리매 다 드시고 나서 “금곡아! 이 천지가 뉘 천지인고?” 하시거늘


금곡이 답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니 상제님께서 천둥 같은 음성으로 “내 천지로다!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고 크게 웃으시니라.


이 때 금곡이 보니 방안이 대낮처럼 환하고
상제님의 용안(龍顔)이 해와 같이 빛나시는지라 저도 모르게 합장 부복하니라.

(증산도 道典 2:11)

 

 

석가는 삼천 년 도수

 

하루는 상제님께서 금곡과 함께 계실 때
문득 큰 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이놈아, 너는 누구를 믿을 것이냐?

 

석가는 삼천 년 도수밖에 안 되느니라.
너는 오만년 운수를 안 받을 테냐?” 하시고  앞으로는 미륵존불의 세상이니라.

내가 곧 미륵이니 나중에 우리가 다시 만나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에 금곡이 아뢰기를
저는 석가 부처를 믿지 않고 증산 당신님만 믿겠습니다.” 하니
상제님께서 크게 웃으시며 “믿어 보소.” 하시니라.

 

상제님께서는 금곡에게
석가가 삼천 년 도수인데 삼천 년이 곧 물러간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47)

 


대원사 칠성각에서 보신 49일 대공사

기유년 봄에 상제님께서 내성과 형렬 등
여러 성도들을 데리고 대원사에 들어가시어 대공사를 행하시거늘


이 때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 명을 내리시니
내성과 성도들이 아랫마을 등지로 출입하며 심부름을 하니라.


하루는 금곡과 성도들을 불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제 칠성각에 들어가리니 밖에서 종이를 발라 방문을 밀봉하고
내가 부를 때까지 칠성각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 하시고


칠성각 안으로 들어가시어 남쪽에 청수 한 그릇을 모신 후 방문을 잠그시니
금곡과 성도들이 명을 좇아 출입문을 완전히 봉하니라.


이에 성도들이 말하는 것도 삼가는데
금곡 또한 일체 불공을 올리지 않으며 내성이 칠성각 주위를 돌면서 보초를 서니라.


그 후 수십 일이 지나도록 간간이 기침 소리만 내실 뿐
물 한 모금 잡숫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하시거늘 금곡과 성도들이 심히 걱정하더니


49일째 되는 날 상제님께서 방을 나오시어
기지개를 크게 켜시며 “다 끝났다. 가자.” 하시는데 용안에서 환하게 빛이 나는지라

 

금곡이 순간 탄복하여 말하기를
이 어른이 하느님이네! 어떻게 사람으로서
49일 동안 물 한 모금 안 마시고 도를 구하겠는가!” 하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내성에게
오른쪽 버선 한 짝을 건네시거늘 내성이 보니 담(痰)이 가득 담겨 있더라.


너의 신세를 많이 지고 가는구나
이어 상제님께서 금곡에게 물으시기를 “며칠이나 되었는고?” 하시니


금곡이 “49일 되었습니다.” 하고 아뢰거늘 “그러하냐.” 하시고
곧바로 대원사를 떠나시며 “금곡아, 내가 너의 신세를 많이 지고 가는구나.” 하시매


금곡이 몸둘 바를 몰라하며
선생님 말씀이 석가의 도수는 삼천 년밖에 안 된다 하셨사온데
제가 선생님을 믿지 누구를 믿겠습니까?” 하니


크게 웃으며 말씀하시기를
이 다음에 자네하고 나하고 다시 만나세.” 하시니라.


이후로 금곡은 상제님이 마지막으로 다녀가신
그 방을 금쪽같이 아끼며 “미륵님이 여기 계시는데 석가모니가 무슨 필요 있는가.” 하고
죽는 날까지 일체 불공을 올리지 않으니라.


훗날 내성의 큰아들 문환(文煥)이 칠성각에 들어가 보니
상제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만 마치 불을 땐 것처럼 따뜻하였다 하니라.

(증산도 道典 5: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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