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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가의 비전

 

혜명경 역자서문

『혜명경』은 서기 1794년(淸乾隆 59)에 류화양 선사께서 남기신 것으로
선가(禪家)의 비전에 속하며 오랫동안 스승과 제자의 맥을 통하여서만 비밀리에 전하여 오던 것이다.
 

혜명경을 쓴 류화양 선사는 중국의 강서성(江西城) 태생으로
쌍련사(雙蓮寺)의 스님으로 있으면서 백방으로 참다운 법을 찾아 나서던 중,
전진교(全眞敎) 용문파(龍門派)의 충허선사(沖虛禪師)와 이어 호운노사를 만나 크나큰 비결을 전수받게 되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류선사께서 직접 쓰신 서문과
그의 제자 묘오(妙梧)이 서문에 나타나 있으므로 실어 놓았으니 참고하기 바란다.

 

이 책이 처음 인쇄된 것은 청나라 권륜황제 시대였다.
그 후 1920년 북경에서 약 1천부가 인쇄되어 인연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급이 되었다가,
다시 1929년 재차 출판이 되면서 한국에도 몇 권 유입되게 되어
이를 통하여 제3국으로도 흘러 나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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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혜명경은 수행자가 완전한 도를 증득하기 위해서는 성품(性品)뿐만 아니라
혜명까지도 함께 닦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말하자면 참선이나 子두선 등의

정신 수양에만 치우치지 말고 육체의 생명력도 함께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흔히 성명쌍수(性命雙修), 이사겸전(理事兼全)또는 정혜쌍수(定慧雙修)라고 하는데
모두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 심신병진을 가리킨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을 실제로 하는 데에는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꼭 밝히고 싶다.
바로 이 점이 역자가 「혜명경」을 소개하기 주저했던 이유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청으로 소개하는 바, 본인의 경험을 간략하게 소개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우선 『혜명경』의 실수(實修)에는 이 내용에 정통한 스승의 도움이 절대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자가 이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니나 이 수련에 정통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은
요즘의 시대에 있어서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역자의 구도심(求道心)은
스승의 필요성을 넘어서 급기야는 역자 스스로 닦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뜻대로 잘 되는 듯했다.

1년, 2년 지나면서 몸 속에서 유통(流通)되는 기(氣)의 서클( circle )을 느낄 수 있었고,
두정부(頭頂部) 부위가 뚫린듯 기(氣)가 쏟아져 들어옴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수행의 결과 기가 상승하여 도무지 내려갈 줄 몰랐다.

그 화기(火氣)로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하였고 이마의 허물이 벗겨지기 시작했으며,
빠져나가지 못한 화기가 잇몸으로 모여 상악골(上顎骨) 부분으로 터져나와
결국은 치아를 몇 대나 갈아야 하는 수술을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실질적인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이미 손상받은 뇌의 고통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극심하였다.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안양(安養)에서

많은 구도자들을 제접하고 계신 모 큰 스님을 뵙게 되었고 비로소 나의 실수를 깨닫게 되었다.

일체를 놓음' 으로써 기(氣)가 저절로 돌며, 소위 말하는 임독맥과 소주천(小周天),

대주천(大周天)의 뚫림도 역시 그렇게 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역자는 인위적으로, 억지로 그것을 감행하였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역자는 뒤늦게나마 '놓는 공부'를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한 도반 으로부터 참장법이라는 방법을 소개받고 마침내 기도 내릴 수 있었다. 


간략하나마 본인의 작은 경험을, 그러나 참으로 고통스러웠던 경험을
소개하는 바, '나'를 놓을지언정 '나'를 쌓는 우가 독자 제위들께는 없기를 바란다.


무룻 자신의 무명(無明)을 깨고 대도(大道)의 광명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
모든 문제와 원인을 바깥 탓으로만 돌리는 속인들의 눈에는 극히 이기적인 행동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벽장을 치면 대들보가 울리듯이 일신(-身)의 광명이 천지를 밝힌다는 것쯤 모르는 구도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에 국내에서도 대도를 이룬 아름다운 임들이 많이 나와 밝고도
큰 무위이화(無爲而化)의 덕을 온누리에 펴 도덕기강과 윤리질서가 스스로 바른

그런 멋진 세상을 창조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1992년 정월
無寸





혜 명 경(제자 묘오 서문)

 

부처님의 참된 도는 끊어진지가 오래다.
세존께서 가르침을 펴시되 마음과 몸을 아울러 닦아 마음이 열리면
점차 몸까지 완전하게 만들어 지기에 신령스러운 비밀을 부쳐 불과(佛果)를 증득하게 하였으니,

서역 (西域)으로는 28대 조사님들과 중국으로는 6대 혜능대사에 이르기까지
지혜의 등불을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받았는데 이는 모두가 다 성품과 혜명을 함께 닦는 것이었다.

그러나 육조(六祖) 이후로는 성품닦는 법만 전하고 혜명닦는 법은 감춰서,
마음을 깨달은 자가 있으면 그때서야 사사로이 비밀스럽게 도를 전수해서 홀로 닦게 한 후
조사의 지위에 오르게 하였다.


그래서 대중적인 가르침 외에 달리 또 도를 전해 온 것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요즈음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혜명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마음 닦는 것만을 억지로 강조하나,
실은 마음씨 자체가 참되지 못해서 번뇌가 깃든 식성(識性)의 장애를 받는지라
잘못 가르치고 또 잘못 받아들여서 어떤 이는 신령스럽게 깨치기만 하면 참 성품을 본 것으로 알며,


어떤 이는 단지 올바른 생각만을 참된 성품으로 인식해서 진실을 외면하고 망녕됨을 따르며,
잘못 알고 그룻되게 歌으니 여래처럼 몸과 마음이 원만한 금강 같은 체(體)를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윤회에 허덕이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다행히도 화양선사(華陽禪師)라는 분이 있어 소식을 밝게 통하시어
조사의 전하시는 바 참된 뜻을 이어 받고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에 일치되는지라,


혜명의 대도(大道)를 들추어 내시고 여래께서 새벽별을 보고 깨친 참된 성품을
그대로 설하여 미혹되고 망령된 중생을 구하고자 지혜의 문을 열어 놓았으니
보는 자로 하여금 금생(今生)에 바로 부처가 되어 다음 생에 다시 닦는 수고를 면하게 하셨다.


어떤 것이 도를 동시에 닦는데 요긴하고 어떤 것이 간단하고
쉬운지 어리석은 사람은 그 이치를 전혀 알지 못한다.
실로 성인의 가르침을 통해 지혜가 열려 몸과 마음의 근본을 깨닫고 보면 너와 내가 없는 것이다.

불도에 인연이 깊어 승려가 되어

참된 도사를 만나 도를 통하고 나면 도사라고 하는 바로 그 분이 부처님이며,


도교에 인연이 있어 도인의 신분으로

승려를 만나 대도를 이루고 보면 그 승려가 바로 신선인 것이다.


불교와 도교는 원래 근본이 하나로써 넓게 보면 똑같고 좁게 보면 전혀 다른지라
선교(仙敎)의 책에 청정자연각왕여래보살(淸淨自然覺王如來菩薩)은
곧 옥황상제(玉皇上帝)의 자칭이요,

 

대선(大仙), 칠선 (七仙), 여래선(如來仙), 금선(金仙)이 다 부처님을 가리킨 바라
한가닥 넓은 길이 탁 트여 있는데 이 길 저 길을 따로 나눌 필요가 있겠는가?
내 일찌기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산천을 헤매며 총림(叢林)의 선지식
(善知識)을 찾아 본 것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으나,


그 하는 공부들을 보면 하나 같이 공안(公案)을 들고 참구하거나 타칠,
또는 참선 등이 고작이었다.


수십 년간 공연히 허송 세월을 보낸 결과가 되었지만
실제로 불도의 진수를 통한 스승이 없어 음식을 끊고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몹시 안타까워했었다.
그러던 중 신해년에 다행히도 득도하신 화양선사를 만났으나
선사께서 나의 구도심이 간절함을 아시고 그 비밀한 것을 열어 보이려고 하시다가 끝내 감추어 버리시니,

내 얼핏 생각에 이 도의 존귀함은 모든 부처님이 드러내기를 꺼리시는 바요,
스승님의 몰인정한 탓은 아니라고 여겨
성심으로 향을 피우고 선사께 더할 나위 없이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였다.

그때에야 비로소 한 마디를 던지시니 그 말 뜻에 문득 전체의 뜻을 깨달았다.


알고보면 원래 부처나 조사가 되는 길은 가까운 동정(動靜)의 순역(順逆)사이에 있는 것이다.
이 어찌 어렵다고 하겠는가?


화양선사께서 30여년간 구도할 때의 자신의 고생한 과거를 생각해서
자비를 베풀어 이 책을 지으신 바,
옛 부처님이 드러내지 않았던 바를 모두 드러냈으며
역대 조사들이 감춘 것을 모두 밝혀 내어 바르게 도통하는 법을 조금도

숨김없이 알기 쉽게 누설하신 것이다.

 

원컨대 모든 사람들이 제각기 바르게 깨쳐서 모두 부처가 되어 두 번 다시 고통스러운
윤회에 휘말리지 않도록 바른 길을 환히 일러 주셨으니 어찌 그 공이 적다 하리오.

권륜 신해년 중양월 영대암 승려 묘오 서 혜명경 서문

 

혜 명 경

화양은 본래 시골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불교를 좋아하던 사람이었도다.
한때 절에 들어간 인연으로 다소 깨달은 바가 있어
평소 세속을 초월하여 해탈하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 승려에게 귀뜸해 듣기를 오조대사(五祖大師)께서
육조에게 삼경에 도를 비밀리에 전했다 하니 이 말을 듣고는 꿈에서 깨어난 듯 흐뭇했다.
그 일이 있은 후 수도하는 자는 반드시 스승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바른 스승을 만나기 위해 방랑의 길에 올랐다.
 

 

당시 중국의 넓은 땅을 다 헤매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하고 뒤에 쌍련사(雙蓮寺)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 더욱 열심히 스승될 분을 찾아 보았다.


유(儒), 불(佛), 선(仙), 삼교(三敎)의 높은 스승들을 만나보지 않은 자가 없을 정도로
샅샅이 찾아 헤매었으나 결국 제대로 도를 깨달은 사람이 없음을 알고 자신도 모르게 탄식하며,


사람이 몸 받기가 어려운데 허망하게 세월만 보낼 수는 없다고 느껴 마침내 결심을 하고
날마다 예불을 드리며 종을 치는 시간에는 온 몸을 조아리고 땅에 엎드려
맹세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원하였다. 

 

하늘에 힘써 구하면 반드시 얻는지라
반 년 가까이 되어 다행히 충허(沖虛)라고 하는 득도자를 만났다.

이 분께서 내게 직접 비밀한 뜻을 전해 주시매 그 뜻이 틀림없이 환하게 통한 분이라는 걸 알았다.

알고 보니 혜명의 도는 자기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는 영겁의 신비롭고 영롱한 물건이었다.


충허선사의 도를 이어 받고 광로(匡盧)에서
또 다시 득도한 호운노사(壺雲老師)를 만나 몇 마디 안들어 대도에 완연히 통한 분임을 알았다. 

 

내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지극한 마음으로 애원을 하였더니
호운 스승께서 크나큰 자비를 베풀어 비밀을 열어 대도의 깊고 낮은 곳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이시며
조금도 숨김이 없이 일러주셨다.

 

내 그곳을 떠날 때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불교의 쌍수(雙修)는 이미 끊어지고 말았으니
네가 끊어진 법맥을 이어서 인연있는 자를 건져주도록 하라." 하시니,


내가 방법대로 양자강 편으로 서너 명의 도반을 데리고 가서 부지런히 닦고 간절히 궁구하였다.
그때의 도반 이름은 벽섬(碧贍), 요연(了然), 경옥(瓊玉)이었다.

 

참으로 고생을 하여 수련을 한 끝에 모두가 사리를 이루고 보니 스승께서 전하심이 조금도 틀림이 없는지라,
이에 책을 지어 그 이름을 혜명경(慧命經)이라 하고 그림을 그려넣어 해설을 가하였으니,


옛 부처의 비밀을 열어 보이고 조사의 으뜸가는 기밀을 누설하여
뒤에 배우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사다리와 뗏목의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내가 보니 요즈음 수행자들은 모두 한결같이 어록을 숭상하나
어록 중에는 진실한 것과 거짓된 것들이 있어 공부가 얕은 사람들은 혜명의 도를 알지 못하고
몇 마디 그릇된 말에 빠져 결국 구두선에 휘말려 끝내 어리석음을 면치 못하나니
어록을 돌려가며 전해 받은 해독이 적지 않은 것이다.


이제 모든 경들을 두루 열람해 보건대
도통한 스승들의 가르침에 견주어 봐도 『능엄경이』나 「화염경 『육조단경(六祖壇經)』」 같은 것은
조금도 거짓됨이 없는 진실한 말씀들이다.
그러나 선사어록(禪師語錄)이니 화상어록(和尙語錄)이니 하는 것들은 실로 망녕된 소리가 많다.


무룻 수련하는 길에 있어서 누구나 참된 말이 아니면 도를 증득할 수 없으며
진실한 말이 아니면 허망됨을 물리칠 수 없다. 
허망한 것이 진실한 것을 이기게 되면 자연히 수도에 마장이 따르게 마련이고, 

비록 머리가 영특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과거 천수백년 동안 오직 한 가닥 깊숙하게 감추어져 내려온 혜명의 도에는
아득하여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것이다.

내 이제 알기 쉬운 말로써 부처님의 보배를 가져다 숨김없이 드러내어
세간의 수도자들을 도우려 함에,

뒷날 배우는 학도는 이 혜명경을 보고 직접 말씀을 듣는 것이라 여기고
오직 힘써 정진 할 것이요 따로 이 산 저 산 도움을 구하지 아니 아여도 불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친히 서로 입으로 전한 것처럼 하되
반드시 뜻을 엄격하게 세워서 부지런히 노력한다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이 부처님 지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오래지 않아 바로 증명하리니,
이는 내가 자신을 괴롭혀 가면서 스승을 찾아 도를 깨칠 때의 본래 품었던 간절한 소원이었도다.

권륜 갑인년 여름 유화양은 완성 귀결암에서 서문을 쓰노라.

 

혜 명 경

누진금강의 몸을 이루고자 하거든 혜 (慧)와 명(命)의 근훤을 덥히는데 힝쓰라.
정(定)한 곳을 비추고 환희의 땅을 떠나지 아니하면, 거기에 바로 진정한 자아(自我)가
감추어져 있으리라. 만약 그대가 쓸데없이 기를 유출시키지 않는 금강과 같은 몸을
완성하고자 한다면 의식과 생명의 근원을 덥히는데 힘써야 한다.

 

항상 가까이 있는 넘치는 즐거움으로 대지(大地)를 비추라.
거기에 그대의 진정한 자아가 숨어 있을 것이다.
도의 정교하고 미묘함에 있어서는 성품(性品)과 혜명(慧命) 이 으로 야릇한 것이 없으며,
성품(性)과 혜명(命)을 닦는 방법은 하나로 돌아가는 것 이외에는 없다.

옛 성인과 현인들은 성품과 혜명을 하나로 융합시키는 것을 교묘하게 만물에 비유하여,
밝게 드러내거나 곧게 말씀하시기를 꺼려하였다.
그래서 세상에는 양자(兩者)를 동시에 닦는 자(雙修者)가 없는 것이다.

 

내가 여기서 그림을 그려 이 비법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망령되이 함부로 누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능엄경에 있는 누진통(漏盡通)에 대한 가르침과 화엄경의 깊은 뜻 밑 기타
모든 경전에 흩어져 있는 가르침을 한데 묶어서 바르게 표시하려는 것 뿐이다.

 

이 그림을 보면 혜명이 규(단전)를 떠나지 못함을 알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같은 뜻을 가진 수행자들에게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
비밀스런 천기를 밝혀 외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참된 여래의 종지 眞種子도 단전에서 나오는 것이며,
누진통도 단전으로 말미암아 이루는 것이요, 사리도 단전으로 연마되는 것이요,
대도(大道)라 할지라도 이곳 단전을 통해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 단전이라는 구멍은 보이지 않는 굴(洞穴) 같으며 형체나 그림자조차도 없다.

호흡에 의해 기운이 일어나면 구멍을 이루고 기운이 꺼지면 아득해져 표시도 없다.


참된 나를 감추고 있는 곳이요,
영원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곳으로
바다 밑 용궁(海漑龍宮)이라고도 하고 눈 쌓인 산(雪山界地)이라고도 하며,

서쪽(西方)이라 고도 하고, 으뜸가는 관문(元關)이라고도 하며,
극락세계라고도 하고, 다함이 없는 고을(無極之鄕]이라고도 하니,
이름은 비록 많으나 모두 단전 구멍 하나를 가리킨 말이다.

 

수행자가 만약 이 규(竅)를 모른다면 수없는 윤회를 되풀이해도 혜명을 찾아보지 못할 것이다. 
위대한 규로다. 부모가 이 몸을 낳기 전 수태할 때에 이 규부터 생(生)하나니,
성품과 혜명이 이곳에 붙는 것이다. 이곳에 붙은 성품과 혜명은 서로 융합하여 하나가 되고
그 틈이 없이 밝은 모양은 화로 속의 불씨와 같다.

이 한 덩어리가 온갖 자연의 이치를 다 구비하고 있어
선천(先天)의 다함이 없는 소식을[無窮之消,刻 지니고 있다 하며,
부모가 나를 낳기 이전의 소식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운이 족하고 태(陪)가 원만해진 즉 움직이게 되어,
배포가 찢어지면서 고산정상(高山頂上)에서 발을 헛디뎌 비명을 지르면서 떨어지듯
몸과 마음의 근본자리인 성품과 혜명이 둘로 갈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로부터 성품은 혜명을 볼 수 없게 되고 혜명은 성품을 볼 수 없게 되어 서서히 성장하게 되고
장성하자마자 늙어가게 되나니 슬픈건, 내가 가진 본래의 대도(大道)는 전혀 구경도 못하고 마는도다.


이에 여래께서 큰 자비를 베푸사 비밀한 법을 누설하여 중생들을 가르치니,
내가 태어난 포태로 돌아가 생명을 다시 만들라[再入胞胎 重我之性命)고 하신 것이다.
방법인즉 나의 정신과 숨기운(神氣)을 이규에 넣어 하나로 뭉쳐 부처의 참된 씨앗을 만드는 것이니
부모가 자식을 잉태시킬 때의 원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무룻 규에는 세 가지 불기운이 있나니 안에는 가장 더뚠 불기운(君火)이 있고
입구에는 그보다 약한불기운 (相火)이 있으며 온몸에는 가장 약한 불기운(民火)이 있는 것이다.
규 속에서 임금의 불(君火)이 일어나면 거기에 신하의 불(相火)이 따르고,
신하의 불엔 백성의 불(民火)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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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의 불(三火)이 이러한순서로 나타나면 사람이 되는 것이요,
거꾸로 되돌려지면 도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고로 누진통을 얻는 이 규로부터 범부나 성인이 모두 태어나는 것이요,
그 작용이 꺼지면 범부도 성인도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깊은 원리를 모르고 엉뚱한 방법으로 도를 닦는다고 하니 아무런 유익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쳔만 가지의 수도법이라 할지라도
단전 속에 혜명과 불성이 들어있다는 것을 모르고 밖으로만 찾아 헤매면
큰 도도 성취하지 못하면서 세월만 낭비하게 되는 것이다.

 

건륭 갑인1794년 여름
호구현의 유화양이 기결암에서 머리말을 쓰노라.

선가의 비전-혜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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