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샘플2.gif

 

경만(敬萬) 안내성의 입문

 

안내성(安乃成)은
본래 이름이 내선(乃善)으로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라.

 

내성이 대여섯 살이 되어 부친이 글을 가르치려 하는데
공부는 아니하고 밖으로 다니며 씨름이나 주먹질만 일삼거늘
내성의 조부가 이르기를 “저 아이는 글을 가르칠 아이가 아니니 내버려 두라.” 하니

 

내성의 부친이 감히 거역하지는 못하나
심중이 심히 편치 못하여 어느 날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된지라

 

내성이 여덟 살 되던 해에 조부가 돌아가시매 아홉 살에 부친을 찾아 집을 떠나
황해도(黃海道), 평안도(平安道) 할 것 없이 전국 방방곡곡을 걸어서 돌아다니니라.


천하를 건질 분은 조선에서 나오니

그러다가 금강산(金剛山) 어느 절에 들어가
3년 동안 불목하니 노릇을 하며 중들에게 불경을 얻어듣고 하던 차에

 

하루는 ‘미륵존불이 출세해야 세상이 밝아진다.’는
말을 듣고 귀가 번쩍 뜨여 아버지도 찾고 스승도 찾을 겸 다시 길을 떠나

 

미륵존불을 간절히 염원하며 마음으로 불경을 외우면서
이 소문 저 풍문을 좇아 장돌뱅이로 전국을 안 가본 데 없이 돌아다니더니
나중에는 멀리 청국(淸國) 산천까지 밟으며 십팔기(十八技)를 익히기도 하니라.

 

이렇게 미륵님을 찾아 천지를 헤매 다니는 중에
한번은 북경(北京)에 이진사(李進士)라는 도통군자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천리를 멀다 않고 찾아갔거늘

 

그 사람이 북경에 있지 않고
남경(南京)에 갔다 하므로 남경까지 찾아가니
이번에는 그곳에서 도로 북경으로 돌아갔다 하매
내성이 다시 북경으로 가서 마침내 그 사람을 만나니라.

 

이에 이진사가 말하기를 “천하를 건질 천 선생(天先生)은
조선에서 나오니 공연히 여기서 헤매지 말고 당신 나라로 돌아가라.” 하거늘

 

내성이 순간 ‘천하를 건질 천 선생님이라면 출세하신 미륵님이 틀림없다.’ 확신하고
뜻밖의 반가운 소식에 기뻐하며 서둘러 조선으로 돌아오니라.

(증산도 道典 3:189)

 

진주 촉석루에서 임천가를 들으니

이후로 내성이 불경을 염송(念誦)하며 반드시
천 선생님’을 찾고야 말겠노라는 일념으로 전국을 떠돌며 지내더니
하루는 진주(晉州) 촉석루(矗石樓)에 이르러 설핏 낮잠이 드니라.

 

이 때 홀연 정신이 황홀한 가운데 하늘에서 한 선관의 음성이 들리며
내선(乃善)아, 네가 이곳에 있을 줄 알았노라.

 

노래를 받아라.” 하고 낭랑하고 유려한 음률로
임천가(林泉歌)를 들려주는데 일찍이 들어 보지 못한 아름다운 선율이더라.

 

이윽고 노래가 그치매 다시 선관이
석가모니는 지나간 부처니 염불은 그만하고
이제부터 너는 천 선생을 찾아 모시도록 하라.” 하는
말을 남기고 아득히 하늘로 사라지니라.

 

내성이 문득 깨어 보니 꿈인지라 크게 용기를 얻어
지성이면 감천이다. 내가 틀림없이 천 선생님을 만나겠다.’ 생각하고
내처 길을 떠나 오매불망 아버지와 천 선생님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정미년 여름에 이르러 미륵신앙의 본원지인
금산사 미륵전(彌勒殿)에 들어가 며칠 동안 머물면서

 

꿈에도 그리운 아버지와 현신출세 미륵불이신
천 선생님을 만나게 해 주시기를 미륵불께 지성으로 발원하니라.

(증산도 道典 3:190)

 

 

정읍 새재에서 상제님을 처음 뵌 날

6월 22일에 내성이 금산사에서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천 선생님’이신 상제님을 만나니라.

 

내성이 정해(井海)를 지나 정읍 새재를 넘으려는데
그 날 따라 유난히도 날이 푹푹 쪄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거늘

새재 입구 주막에 들어 목이나 좀 축이고 갈까. 하다가


기왕이면 올라가서 쉬자.’ 하고 옷소매로 땀을 닦고 칡잎을 훨훨 부쳐 가며
허위허위 고갯마루에 올라 나무 그늘을 찾으니 서늘한 돌 위에

패랭이를 쓰신 상제님께서 앉아 계시더라.

 

내성이 그 곁에 앉아 땀을 들이고 있는데
문득 지난 시절이 떠올라 회한이 밀려오거늘


내가 아버지와 천 선생님을 찾아 천지 사방을 헤매 다녔건만 여태 소식 한 장 못 듣고,

그리자니 꿈속의 임이로구나.

이번 길에도 못 찾으면 다시 청국에나 가야겠다.’ 하는 생각을 품으니

 

문득 옆에 계신 상제님께서 담배를 재어 한 모금 빠시고
먼 데를 바라보시며 뜬금없이 “참, 별 미친놈을 다 보겠네.” 하시니라.

 

내성이 본래 진주, 사천(泗川) 바닥에서 ‘안바람’으로 통하는
이름난 장치기꾼인 데다 일찍이 어디 가서도 싸움에 져 본 적이 없거늘

 

듣자 하니 손아래인 듯한 젊은이가 시비를 거는 투라 슬슬 심사가 나는데
방금 미륵전에 다녀오는 길인지라 마음을 다스려 점잖게 말하기를
“누구보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게요?” 하니

 

상제님께서 대뜸 고개를 돌리시며 “야, 이놈아!
여기에 너밖에 더 있냐!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이 미친놈아!” 하고
불벼락을 치시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목이 메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과 뻗치는 서기에 그만 기가 꺾여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으니라.

 

이어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나도 미친놈이다만 네놈도 단단히 미친놈이로구나.
네 이놈! 너 아버지 찾으러 다니지?

네 아버지 삼월 초열흘날 ○○에서 죽었어. 그 날 제사나 잘 지내라, 이놈아!

 

그래, 청나라로 가면 네가 큰일을 한번 하겠다.
아주 청나라로 가거라, 이 미친놈아!” 하고 불같이 호통을 치시니 혼이 쑥 빠질 지경이더라.

(증산도 道典 3:191)

 

저놈, 미친놈! 강도놈! 도둑놈!
이 느닷없는 호통에 내성이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속이 뻥 뚫리는 듯하고,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의 속내를 마치 손금보듯 속속들이 꿰고 있음에 놀랍기도 하여

 

혹시 이분이 천 선생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한 줄기 섬광처럼 스치는지라 다짜고짜 “선생님! 뵙겠습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니

 

상제님께서 “저놈, 저 미친놈!
내가 어째서 네 선생이냐, 이 강도놈아!” 하시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거늘

내성이 지금 당장 붙잡지 않으면 다시는 못 뵐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정읍 쪽으로 내려가시는

 

상제님을 쫓아가매 상제님께서 “이 도둑놈, 청국에나 가라!” 하고
버럭 화를 내시며 길가의 호박돌을 집어 던지시니라.


내성을 혹독하고 박절하게 대하심

내성이 이미 미륵전에서 서원을 세운 바가 있어


죽어도 따르리라.’ 마음먹고 그 큰 돌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머리에 맞으니

순간 눈에서 번쩍 하고 번개가 튀는가 싶은데 상처는커녕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고 몸이 가뿐해지므로 더욱 상제님께 매달리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이놈의 자식, 따라오지 말라는데
뭣 하러 자꾸 성가시게 따라오는지 모르겠다.” 하시며 내처 더 큰 돌을 던지시거늘
내성이 피하지 않고 머리, 어깨, 가슴, 팔다리 할 것 없이 무수히 맞으며 대흥리까지 따라가니

 

경석의 집에 이르시어 손에 잡히는 대로 다 집어 던지시고
심지어 베시던 목침까지 던지며 문전박대를 하시니라.

 

이리하여 내성은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상제님을 만나니 이 때 내성의 나이 41세라.

 

이로부터 내성이 상제님을 추종하거늘
상제님께서는 항상 매정하고 박절하게 대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192)

 

네가 촉석루는 어이 갔던고

상제님께서 좌석에 앉으시면
성도들의 자리가 정해지는데 내성은 항상 구석을 차지하더니

 

하루는 음식을 많이 장만한 자리에 내성도 들어오게 하시고
성도들에게 이르시기를 “앉은 순서대로 시조(時調)를 부르라.” 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시조 한 장씩은 부를 줄 알아야 하느니라.” 하시고
“시조를 못 하면 아무 소리라도 하라.” 하시거늘

김형렬과 차경석 두 사람이 각기 평조(平調) 한 장씩 하고


내성이 자기 차례가 되어 시조를 읊으니 이러하니라.

만학천봉(萬壑千峰) 운심처(雲深處)에
두어 두둑 밭을 갈아

 

삼신산(三神山) 불사약(不死藥)을
여기저기 심었더니

 

문전(門前)에 학(鶴) 타신
선관(仙官)이 오락가락

 

이에 상제님께서 “그와 같은 자진가락으로 한 장 더하라.” 하시매
내성이 촉석루에서 들은 임천가를 하거늘

 

상제님께서 임천가를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네가 진주 촉석루는 어이 갔던고?” 하시니

 

깜짝 놀란 내성이 비로소 상제님이
바로 한평생 찾아 온 천 선생님이요 하느님이심을 깨달으니라.

 

화기(和氣)를 사랑하시는 상제님
이 때 공우가 여러 성도들이 시조를 잘 못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웃으며 차례를 기다리더니 자기 차례가 돌아왔는데

 

상제님께서 곧 중단시키시거늘 허탄해하며 그 연유를 여쭈니
말씀하시기를 “모든 것이 평등한 것이 좋으니 만일 음조에 능한 사람으로
끝을 마치면 좌중에 화기(和氣)가 식을까 하여 그리 한 것이로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195

 

해인.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