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 든 주지 박금곡

 

대원사에서 공부하실 때,
정남기(鄭湳綺)의 아들 영태(榮?)가 쌀을 져다 드리고,
주지 박금곡(朴錦谷)이 시봉하니라.

 

금곡은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에 있었는데
산불로 절이 소실되자 함수산(咸水山)과 함께 삼남 지방을 유력하다가

 

서른네 살 되던 정해(丁亥 : 道紀 17, 1887)년에
퇴락한 대원사에 이르러 발심하여 절을 중수(重修)하고,
신축년에 증산을 시봉하니 이 때 나이 마흔여덟이라.
 
금곡이 말하기를 “이 세상에 천신(天神)이 강림하셨다.” 하고
공부하시는 뒤를 일일이 수종 들며 그 절에 있는 여러 중들 가운데 함수산,
자신의 조카 박영춘과 함께 증산을 천신으로 대접하고 공경하니라.

(증산도 道典 2:4)

 

 

주지 박금곡의 소원

하루는 금곡이 아뢰기를
제가 평생 이 절에 주지로 있게 해 주옵소서.” 하고
청하니 증산께서 이를 허락하시니라.

 

금곡이 다시 아뢰기를 “저의 일을 말씀해 주사이다.” 하니

말씀하시기를 “그대는 전생이 월광대사(月光大師)인 바
그 후신(後身)으로 대원사에 오게 되었느니라.

 

그대가 할 일은 이 절을 중수하는 것이니라.” 하시니라.


금곡이 다시 간절히 여쭈기를 “구십 세까지만 살게 해 주옵소서.” 하거늘
이도 허락하시며 “네가 죽을 때에는 본병이 도져서 죽으리라.” 하시니라.

 

금곡이 또 아뢰기를 “대원사에 감나무가 많으나
감이 하나도 열지 않으니 감이 잘 열도록 해 주옵소서.” 하니

 

이는 진묵이 원한을 품은 연고라.
명년부터는 감이 잘 열리리라.” 하시거늘


과연 그 후로 감이 풍성하게 열리니라.

그 후 금곡은 한평생 대원사 주지로 있다가 93세가 되매

다친 허리가 재발하여 죽으니라.

(증산도 道典 2:10)

 


천지대신문을 열고 삼계대권을 주재하심

증산께서 대원사에 가신 지 보름 만인 7월 초하루부터 식음을 전폐하시고,
한번 앉으신 자리를 잠시도 떠나지 않으신 채 이레 동안 수도에만 일심하시니라.

 

대원사 칠성각에서 공부하신 지 스무하루 만인
신축년 7월 7일에 천둥과 지진이 크게 일어나고 상서로운 큰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무상의 대도로 천지대신문(天地大神門)을 여시니
이로부터 삼계대권(三界大權)을 주재(主宰)하시고 우주의 조화권능을 뜻대로 행하시니라.

 


신천지 도통문을 여실 때
도통하시기 전날 깊은 밤에 증산께서 금곡에게 명하여
산 너머 금산사에 가서 미륵전(彌勒殿)을 지키라.” 하시거늘

 

금곡이 대원사를 떠날 때 보니
찬란한 불기둥이 하늘로부터 칠성각 지붕으로 내리뻗쳐 있더라.

 

미륵전을 지키고 있을 때,
갑자기 천지가 진동하여 미륵불과 미륵전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리니

 

금곡이 두려워 정신을 차릴 수 없고 몸조차 가눌 수 없어
미륵전 기둥을 잡고 견디는데 오히려 기분은 황홀하여지더라.

 

날이 밝자 금곡이 대원사로 돌아와
간밤의 일을 아뢴즉 그 때가 바로 증산께서 도를 통하신 시각이더라.

 

나는 옥황상제니라
상제님께서 금곡에게 “미음 한 그릇을 가지고 오라.” 하시니
금곡이 올리매 다 드시고 나서 “금곡아! 이 천지가 뉘 천지인고?” 하시거늘


금곡이 답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니 상제님께서 천둥 같은 음성으로
“내 천지로다! 나는 옥황상제(玉皇上帝)니라.” 하시고 크게 웃으시니라.

 

이 때 금곡이 보니 방안이 대낮처럼 환하고
상제님의 용안(龍顔)이 해와 같이 빛나시는지라 저도 모르게 합장 부복하니라.

(증산도 道典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