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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명의 뿌리 동이문명과 동이사상 신선도
  

1) 도교와의 관계


도교의 시조는 노자가 아니라 황제이다.

노자는 中祖이다. 그래서 도교를 黃老之學이라고 한다.

 

황제는 東夷族이며 동이에서 도를 傳受받았다.

태백일사에는 “紫府선생이 七回祭神의 易을 지어 三皇內文을 天階에 올리니

천왕이 치하하여 三淸宮을 지어 그 곳에 살게 하였더니 공공씨와 황제헌원씨와 창힐씨등이 모두 와서 배웠다.”,

“삼황내문경을 자부선생이 황제헌원에게 주어 마음을 밝히고 義에 돌아가게 한 것이다.

 

선생은 항상 삼청궁에 계시니 그 궁은 청구국의 대풍산의 양지에 있다.”,

“자부선생은 발귀리의 후손이고 발귀리는 신시시대의 선인이었다.”고 하였으며

사기에는 “황제는 백민에서 났고 동이족에 속한 사람이다.”고 하였으며,

 

도사 갈홍은 포박자에서 “옛적에 황제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 萬神을 해소하였다.”고 하였다.7

東方醫學은 도교에서 발전해오다 분리되었는데

동양의학의 기본경서인 黃帝內經 素文에는 “동방지역은 천지가 비롯된 곳이다.”,

“침술도 역시 동방으로부터 전해왔다.”고 하였으며8)

 

산해경에는 “태호복희, 염제신농, 황제헌원 등 8대임금이 숙신나라에서 일어났다.”고 하였다.

역대신선통감에는 동이의 땅에서 동이의 신선인 玄女가 황제헌원에게 신선도서인 陰符經 1권을 주었는데

이 책에는 신기한 신선술과 병법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또 수천 수만년 전부터 있었던 신선인 黃老와 元始天尊이

동해의 신령스런 터를 향해서 약수 3천리를 지나 봉래의 터에 이르렀는데 이 봉래터에는

봉래와 방장과 영주의 3신산이 있는데 여기엔 장생불사의 신약들이 있고 모든 물건들과 새·짐승들이

모두 희고 황금과 백은으로 궁궐을 지어 멀리서 보면 눈같이 희게 보인다고 하였다.

또 사기는 말하기를 제나라의 위임금과 선임금 또 연나라의 소임금 때부터

사람들을 시켜 발해에 들어가 봉래와 방장과 영주를 구하게 하였는데 그 곳에는 모든 신선과 불사약들이 있고

그곳의 물건들과 새·짐승들이 모두 희고 황금과 백은으로 궁전을 지었으며

 

또 진시황이 서복과 한종으로 하여금 수많은 어린 동남동녀를 거느리고 발해에 가서

장생불사약을 구해 오게 하였다고 한다.

 

또 한무제는 여러 도술사를 발해의 3신산에 보내 불사약을 구하고 안기생이라는 신선으로부터

신선술을 배우게하고 또 봉래산의 신선을 데려오게 하였다고 한다.9


2) 유교와의 관계

유교의 시조는 공자로 알려져 있지만 더 위의 시조는 황제이다.

중용의 서문에는 중용한권이 유교의 연원을 밝혔다고 하였다.

 

그런데 중용에서 공자는 祖述堯舜이라하여 요순의 道脈을 계승하였다고 하였다.

맹자는 말하길 순은 저풍에서 태어나서 부하라는 땅에 살다가 명조에서 돌아가시니 곧 동이인이라고 하였다.

사기에는 요임금은 황제의 5세손이며 순은 8세손이라고 하였다.

또 공자는 임종직전 자신이 은나라사람이라고 하였다.10

3황5제의 첫임금은 太昊伏犧이다. 태호복희는 배달국 제 5대 태우의천황의 막내아들이시다.

이 분은 기주(현재 하북성 산서성)의 땅으로 옮겨가 임금이 되었다. 한밝산(백두산)의 신선이란 의미에서

한밝을 따서 크게 밝다는 태호로 이름지었다.

 

주역, 사기, 회남자, 역대신선통감 등 여러 책들에서 태호임금이 震나라에서 나왔다고 하고

또 그 후손들인 임, 숙, 수, 국 전사 등의 인물들이 춘추시대까지도 큰 작용을 하였다고 하였다.

둘째 임금이 염제신농이요, 셋째 임금이 황제헌원이다.

이분들에 대해 한단고기 신시본기에서는 염제신농은 소전의 아들이요, 소전은

한웅천황때의 農官인 고시의 후손이라고 하였으며

 

중국으로 이주해 간 소전의 후손으로부터 헌원이 태어났다고 하였다. 은시조 설의 아버지는 제곡고신이다.

설은 어머니 간적이 玄鳥가 낳아놓고 간 알을 먹고 잉태하여 출산하였다고 한다.

고사기에서 현조는 殷人의 동이의 조선신이라고 하였다. 난생신화는 동이신화의 특징이다.

고서에서는 공자는 은탕왕의 후손이라고 한다.

공자가 태어난 곡부는 연주에 속해 있는데 연주는 동이겨레가 살던 곳이다.

또 추나라와 노나라는 산동성에 있었으며 산동성은 한옛적부터 동이의 땅이다. 11

예기와 강감금단에 의하면 小昊金天은 황제헌원의 맏아들이며 태호의 도법을 배워 작은 밝의 小昊라 하였다.

전욱고양과 제고고신은 황제헌원의 손자이다. 요임금은 제고의 아들이다.

 

순임금은 전욱고양의 7대손이며 우임금은 전욱고양의 손자다. 설은 제고고신의 아들이며 은탕왕은 설의 후손이다.

주문무왕은 제고고신의 후손이다. 공자는 은탕왕의 후손이다. 12

정리해보면 공자는 은탕왕의 후손이며 은탕왕은 설의 후손이며

설은 제곡고신의 아들이고 제곡고신은 소호금천의 손자이며 소호금천은 황제헌원의 맏아들이다.

황제헌원은 동이인이니 고로 공자는 동이인이며 동이의 사상문화를 계승한 것이다

 

 


세계문명의 뿌리 동이문명과 동이사상 신선도.4


3) 불교와의 관계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해서 동방으로 전수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석가 이전의 부처인 가섭이 동방에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

 

불교는 석가 사후 9백년뒤에 고구려를 거쳐 아도에 의해 신라에 전해졌다.

그런데 阿道本碑에는 아도의 어머니 고도령이 아도에게 이르되 이후 3천여월에 계림에 聖이 나시어

 

불교가 대흥할 것이라하며 이미 신라에는 전불시대의 절터가 일곱군데나 있을 것이니

모두 法水長流之地라고 말하면서 그곳을 찾아가 불교를 번창시키라고 하였다한다.

흥륜사, 영흥사, 황룡사, 분황사, 영묘사, 천왕사, 담엄사 등은 전불터에 다시 세운 신라의 절이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고구려에 불교가 유입(서기 372년)되기 369년 전인 漢平 4년(서기 4년)에

금강산에 금상 52불이 있어 절을 세웠다고 하며,

 

석가가 설법한 화엄경에는 “해동 금강산에 보살들이 살고 있으며 예로부터 보살들이 그곳에 있었다.

지금은 법기보살이 권속 1200명을 거느리고 거기서 늘 불법을 설하고 있다”고 하였으며

 

옥룡집과 자장전에는 “신라의 월성 동편 용궁남에는 가섭불이 설법한 연좌석이 있는데

그곳은 즉 전불시대의 절터였으니 지금의 황룡사로서 일곱절터중에 하나이다.”고 하였으며,

 

회암사 상량 모연문에는 석가로부터 108대 조사인 지공선사가 양주 천보산의 회암사 땅을 둘러보고

“이곳은 과거 7불시절의 큰 절터였다.”고 하였다 하며

 

태백유사와 고려 팔관잡기에는 “불교가 처음 들어와서 절을 세워 大雄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승도들에 옛부터 전해오는 우리의 옛습속을 따른 것이지 본래 승가의 말이 아니다.”,

“한웅을 대웅이라 하였으며 蚩尤를 智偉天이라 하였다.”고 하였다.13

요동성 육왕탑에 관한 기록에 蒲圖와 休屠는 祭天金人과 관련이 있으며 한나라에 있었다고 하는데

휴도에 대해서는 “제천금인은 금불상이다.”라고 하였고

 

한무제의 고사에서는 “그 제사에는 소와 양을 쓰지 않고 오직 향만 사르고 예배하였다.”고 하며

魏略의 西夷傳에서는 “애제 원년에 대월씨국으로부터 휴도경을 구전받았는데

이가 곧 지금의 불경이다.”라고 하였으며

 

불학대사전에는 “불교가 후한때 들어온 줄 아는데 전한시대에 불교가 있었다는 것은 모를 일이다.”,

“그 처음에는 휴도라 하고 그 뒤에 부도라 하니 혹칭 불도, 불타란 모두가 같은 말이다.”라고 하였으며

 

晋書 馬韓傳에는 우리민족 고유의 상고 제천의식에서 수두라고 일컫는 말이 곧 서역의 부도와 같다고 하였다.

休屠, 蘇塗, 浮屠, 蒲圖, 佛圖, 佛陀 등의 낱말은 같은 말인 것이다.14

불타는 전신이 황금색이라 하였으며 머리에는 우리민족의 고유풍속인 상투가 있다.

 

釋迦氏譜에는 불성을 瞿曇·甘蔗·釋迦·舍夷·日種(구담·감자·석가·사이·일종)이라 하였고

釋迦譜에는 구담을 일명 사이라 하고 사이는 외국의 귀성이며 감자는 묘족의 후예라 하고

석가는 檀種 刹帝利라 하였다. 사이의 夷는 우리민족인 夷族을 뜻한다.

 

즉 사이는 외부에서 인도로 이주한 東夷나 西夷의 일파로서 알타이족이라 할 수 있다.

석가의 탄생국인 현재의 네팔인종구성은 몽고계 인종과 인도 아리아계 인종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영국의 인도사학자 빈센트 스미스도 석가가 몽고인이라 하였다.

 

단종이란 단군종족을 뜻하는 것이며 찰제리는 신라의 왕명이기도 했다.

일종은 광명을 숭상하는 태양족이란 의미로 역시 우리민족을 가리킨다.

또 석가의 제자 부루나존자가 그린 석가의 초상화를 보면 동양인의 모습에 한복을 입고 있다.

석가는 설산에서 6년 고행 끝에 염부주에서 성도하고 설산 총림방의 진귀조사로부터 종지를 받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이 곳이 히말라야에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백두산은 순우리말로 희마리산인데

이것이 전음이 되어 히말라야가 된 것이다.

 

염부주는 神州 또는 振旦이라 하는데 백두산 천지일대를 신선 성인들이 살아 신주라 하였으며

불사약인 산삼의 원산지여서 震檀·震丹·眞丹이라 불려 우리나라의 별칭이 되었다.

장아함경에는 석가가 6년 고행수도한 설산의 정상에 水之靈府인 아뇩달지가 있고

거기에 용왕이 살며 4방에서 4대하가 발원하며 못의 정남은 절벽이며 북에는 폭포가 있다하며

동에는 옛날의 恒河(모래가 흐르는 강)인 긍가하가 흐르고 설산을 곤륜산이라고도 하고

동해가운데 있어 방장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히말라야에는 산상호수는 없다. 동해의 방장이라면 백두산을 가리키는 것이고

백두산에는 천지가 있으며 천지는 생수가 솟아 이루어진 천연수이므로 수지영부이며 또 천지에서는

압록강·두만강·송화강·소하강의 네강이 발원한다. 또 북쪽에는 비룡폭포가 떨어지며

동쪽에도 광활한 폭포가 있어 일년에 수십만톤의 모래가 흘러내려 항하라 아니할 수 없다.

釋迦方志에는 “염부주를 크게 3분하면 2분은 북쪽인데 흉노가 살며

도에 힘쓰지 않고 1분은 남쪽인데 삼면이 바다에 닿았고 사람은 많으나 마음이 맑고

성인의 교화를 잘 받은 大聖都이다.”고 하였다.

 

염부주는 섬부주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무속에서는 한반도를 남섬부주라 하는데 흉노가 북섬부주에 살고 남섬부주가

3면이 바다인 한반도이니 우리민족의 강역이 곧 섬부주인 것이다.

 

또 작은 의미의 염부주는 바다 가운데 있다고 하였는데 바다는 수미세계

곧 진리의 세계를 뜻하는 것으로 동이강역을 말하고 염부주는 백두산 신시 천지 일대를 말한다.

삼국유사에는 경남 밀양 만어산의 기이한 자취중 하나가

부처가 가사를 빨던 영상 서북쪽 반석이라 하였으며 야건가라국 古仙山 담복화림 毒龍의 옆,

청연화천의 북쪽, 나찰혈 가운데에 있는 아나사산의 남쪽에 이르렀다고 하였는데

야건가라국은 고조선을 뜻하며 고선산은 백두산이고 독룡은 천지의 변화무쌍한 기후를 나타낸 말이다.

또 신라고승 자장이 서쪽으로 유학하여 오대산에 이르렀던 바

문수보살이 현신하여 말하길 너희나라의 황룡사는 석가와 가섭이 강연하던 땅이라 하였으며

 

또 신라 진흥왕이 황룡사를 지으려 할 때 서천축의 아육왕이 석가 3존상을 주조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황철과 황금 및 1불2보살상의 모형까지

우리나라에 보내와 장륙존상을 주조하였다고 하였는데

황룡사의 땅은 석가와 가섭이 강연하던 곳으로 거룩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15

 

 

 자료출처 : http://joongprise.com/bbs/zboard.php?id=hot_issue&no=20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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