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2.jpg

불교는 한마디로 말하면 석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마음 닦는것을 전공분야로 하여 인간들의 교화를 담당하였다.

 

가을문명, 유불선 통일의 관왕 도수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사를 보시며 글을 쓰시니 이러하니라.
佛之形體(불지형체)요 仙之造化(선지조화)요 儒之凡節(유지범절)이니라

불도는 형체를 주장하고 선도는 조화를 주장하고 유도는 범절을 주장하느니라.

 

受天地之虛無(수천지지허무)하여 仙之胞胎(선지포태)하고

受天地之寂滅(수천지지적멸)하여 佛之養生(불지양생)하고

受天地之以詔(수천지지이조 )하여 儒之浴帶(유지욕대)하니

冠旺(관왕)은 兜率(도솔) 虛無寂滅以詔(허무적멸이조)니라

 

천지의 허무(無極)한 기운을 받아 선도가 포태하고

천지의 적멸(太極의 空)한 기운을 받아 불도가 양생 하고

천지의 이조(皇極)하는 기운을 받아 유도가 욕대 하니

 

이제 (인류사가 맞이한) 성숙의 관왕(冠旺) 도수는
도솔천의 천주가 허무(仙) 적멸(佛) 이조(儒)를 모두 통솔하느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술수(術數)는 내가 쓰기 위하여 내놓은 것이니라." 하시니라.

 

--------------------------------------------------------------------------------

관왕. 천지가 만물을 생성 변화해 가는 12포태의 과정 중 성숙의 단계를 말한다.
이제 가을개벽을 맞이하여 선불유가 추구하는 궁극의 이상이 통합된 성숙의 도가 열린다.
전 인류가 상제님의 도로써 성숙한 가을 인간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이다.


      
상제님이 유불선을 정의하실 때
불지형체佛之形體 선지조화仙之造化 유지범절儒之凡節" 이라고 하신다.

 
불은 형체요, 선은 조화요, 유는 범절을 주장한다.


그럼 ‘불지형체’의 ‘형체’라는 건 뭔가?

한마디로 형체, 몸뚱아리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모양 형 자에 몸 체 자다. 불은 형체를 주장하고,

선은 조화를 주장하고, 유교는 범절을 주장한다. 거기에 체가 나온다.

 
그런데 태모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다. "불佛은 선仙의 밑자리니라."고.
불도라는 것은 신선을 주장하는 선의 밑자리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태모님은 ‘선불유’라고 쓰신다.
곧 "선지조화仙之造化하고 불지형체佛之形體 하고 유지범절儒之凡節이라." 고 하신다.

 

불가에서 주장하는 게 무엇인가?
석가모니 팔만대장경의 결론이 두 글자로 ‘형체形體’다. 가만히 앉아서
성정을 타고난 내 몸, 이 형체를 우주와 하나 되게 하는 것이다.

 
그 다음 선은 수행해서 장생불사를 구하는 것인데 그것이 곧 조화다.
다시 말해서, 선은 조화를 주장한다.

 

상제님은 선의 조화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난 임진왜란에 정란靖亂의 책임을 최풍헌이 맡았으면 사흘 일에 지나지 못하고

진묵이 맡았으면 석 달을 넘지 않고 송구봉이 맡았으면 여덟 달만에 끌렀으리라."

 

지난 임진왜란을 최풍헌이 맡았으면 사흘이면 난리를 평정하고,
불가의 진묵의 도술로는 석 달이 걸리고,

 

그 다음 유가의 송구봉의
능력으로는 여덟 달이 걸린다는 말씀이다. 즉, 조화법 쓰는 것은 선가를 따르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이 성구 말씀이 도통문을 여는 말씀이다.

 
수천지지허무하여 선지포태하고” 천지의 허무한 기운을 받아서 선이 포태되고,
수천지지적멸하여 불지양생하고” 천지의 적멸한 기운을 받아서 불佛이 양생을 한다.

 

그 다음에 “수천지지이조”하여, 천지에서 이조以詔하는 기운,
즉 천명을 내리고 길러서, 유지욕대, 인간이 진정 인간 노릇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유가의 전공 분야가 예절을 가르쳐 주는 것 아닌가.

천륜의 관계, 부모와 나, 부자 형제 관계, 부부간의 관계,
이런 인간의 기본 윤리와 행동 강령을 유가에서 가장 잘 정리해서 가르쳐준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이렇게만 보면 죽을 때까지 머리가 안 깨진다.

 
먼저 천지는 그 본성이 허무다.
또 다른 면으로 천지는 그 본성이 적멸이고, 아울러 천지는 본성이 이조다.


만물을 내서 기르는 것. 이것은 인간 중심으로 말하면, 천지가 처음 인간을 내서 문명을 열 때,
즉 인간의 역사가 처음 시작될 때, 허무虛無의 도로써 시작을 하여, 뿌리를 내리고,
적멸寂滅의 도로써 기르고, 이조以詔의 도로써 인간이 되는 기본 마무리를 짓는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마음을 닦든지 육임을 짜든지 상제님 천지 사업을 한다고 하는 주제의 결론이 뭔가?
선천 세상을 마무리 지으면서 후천 세상을 여는 상제님의 육임군, 의통 구호대를 조직하는 거거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공하는가?

아까 태사부님께서, 사심私心을 갖고 하는 사람은 앞으로 다 쭉정이가 돼버린다고 하셨다.
사욕 갖고 일하는 사람은 결론적으로 죽는다. 왜 그런가?

천지는 허무의 도로써 만물을 낳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가 됐든지, 어떤 사물을 짓든지,

천지와 같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한 허무지도 虛無之道로써 임해야 한다.

여기서 허무는 세속 인간들이 ‘인생은 허무하다.’ 할 때의 허무가 아니다.
천지의 순수 생명의 근원, 순수의 조화, 허무의 극인 무극을 말하는 것이다.

 
그 무극의 심법,
무극의 생명 의식을 가지고 사물을 지어야 처음 포태된 생명력이 제대로 발현된다.
천지에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병들지 않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원초적인 천지의 힘,
그 도력으로써 사물이 생성되어 나가는 것이다.

 

또한 생성이 되려면 천지의 적멸寂滅의 도를 받아야 한다.
마치 선천 유불선 문화에서 불도가 적멸의 도로써 인간의 심법을 양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적멸이란 뭔가? 아주 끊어진 경계를 말한다.

잡념, 잡스런 생각이 완전 끊어진 것,  눈 지그시 감으면 천지의 적멸의 심법이 느껴진다.

 
『정역』이나 『우주변화의 원리』 책에는 그 술오공戌五空에 대한 의식이 아주 강력하게 표현돼 있다.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 무극의 생명이 공 자리에서 완전히 통일된다는 것이다.

 
상수철학이 왜 위대한가?
무극, 태극이라는 관념적인 것을 숫자노름으로 합리적으로,
순수 이성으로 체득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게 천지의 순수 수학이다.

 
그 다음 수천지지이조受天地之以詔,
천지에서 기르는 그 마음으로 길러야 욕대浴帶를 할 수가 있다.
인간 정신의 때를 다 벗겨서 진정한 구도자의 옷을 입혀준다는 것이다.

 

그게 입도식 때 그렇게 돼야 한다.
입도하고 나서 몇 달, 몇 년 걸리면 거기서 천지의 정력을 전부 소모한다.
상제님 도운의 역사 시간을 파괴하고, 그러다 안 되면 자빠져서 헛소리한다.

 

지금 이런 성구 한 말씀이 인간 역사의 틀을 바꾸고, 나의 신앙관의 근본을 뒤집고,
닫혀 있는 내 심법을 활짝 열어 준다. 불가의 정태적靜態的인 심법관이 아니라

 

생장염장, 선후천 우주일년 인간농사 짓는 129,600년으로 순간순간 대우주가 생성,
변화하는 질서 속에서 우주의 도의 심법, 우주의 심리 구조를 보는 것이다.

공자, 석가, 예수는 이런 생각을 못했다. 그게 그 사람들 깨달음의 한계이다.

 

관왕冠旺은 도솔 허무적멸이조兜率 虛無寂滅以詔니라.

이제는 관왕 도수이기 때문에, 천지의 허무와 적멸과 이조의 기운,

즉 천지의 생명과 도심道心을 동시에, 종합해서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도솔兜率’에 숨은 깊은 뜻이거든.
이건 불가에서 말한 도솔천의 도솔을 문자적으로 쓰신 것이다.

 

투구 두 자, 거느릴 솔 자. 그게 머리 위에다 쓰는 것 아닌가.
천지의 허무와 적멸과 이조’, 사람으로 말하면 진정한 인간으로 만드는 천지의 큰 도심의 세 마디,
그 틀의 전체 기운을 다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식이 없는 사람은 상제님 도를 받아도 열매를 못 맺는다.
진리의 틀도 모르고 반 쭉정이 신앙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정도로 『도전』을 봐야 『도전』 보는 맛을 안다.
내가 우선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도전』 공부를 위해서는 이런 주요 성구를
주문처럼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에 주문 읽고 나서 “수천지지허무하여 선지포태하고,
수천지지적멸하여 불지양생하고, 수천지지이조하야 유지욕대하니
관왕은 도솔 허무적멸이조니라.” 이렇게 주문 삼아 읽으라.

 

종도사님 도훈 (도기134.4.20)- 

용봉.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