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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재동자의 구도행


불법의 무대에 등장하는 많은 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선재동자를 드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재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
힘차고 당당하게 남쪽으로 여행하면서 53명의 선지식들에게 법(法)을 물어 나간다.
그러나 이 동자는 경전 상의 인물일 뿐 실존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우리 마음속에 고동치고 있는
진리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므로 오히려 나 자신일 수 있는 것이다.

선재의 산스크리트 명은 수다나(Sudana)이다.
이 말은 풍족한 베품을 뜻하는 중성 명사로 선시(善施) 또는 선여(善與)로 한역되기도 한다.
이 동자가 입태할 때와 출생할 때 갖가지 진귀한 보배가 저절로 솟아나 선재(善財)라 이름했는데,
복성(福城) 장자(長者)가 그의 아버지란다.
 
선재 동자는 진리를 찾아 남쪽으로 여행하였으므로 남순동자(南巡童子)라고도 부른다.

선재동자의 구도 여정은 깨달음의 차원이 인고의 척박한 땅덩어리에서
실제로 피와 땀이 뒤엉킨 중생의 살 냄새에 부대끼면서 열린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화엄경』 「입법계품(立法界品)」에서 펼쳐지는 그 장대한 순례의 중요 인물과 지점을 따라가 보자.

부처님께서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Sravasti)에 머무르고 있을 대
사자분신삼매(獅子奮迅三昧)에 들어 우주적인 광대한 몸과 국토를 보여주었다.
그의 한 몸은 일체의 세계에 편재하여 그 한 터럭 구멍에는 일체제불과 국토가 나타나고,
한 티끌에 일체의 법계(法界)가 전개되고 있었다.
 
그대 많은 보살들이 몸을 나투어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고, 문수·보현 두 보살도
이러한 삼매를 찬양하였다.

문수는 그 자리에서 타인을 이익케 하겠다는 원을 세워 남쪽으로 향했다.
선재동자는 복성에서 그 문수보살을 만나 말씀을 듣고 보리심을 발하자 문수보살은 그를 남쪽으로
구도의 여행을 떠나 보냈다. 이렇게 해서 선재는 53선지식을 차례로 만나면서 법을 물어 나간다.

맨 처음 선재동자는 공덕운(功德雲) 비구(比丘)와 만나서
오로지 염불하는 한 가지만의 가르침을 받고 다시 진리를 찾아서 남방으로 떠난다.
 
그는 해문국(海門國)에 이르러 12년 동안 대해를 응시한 결과 그 바다의 광할한 넓이며
헤아리기 힘든 깊이 등 바다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항을 깨친 해운(海雲) 비구로부터 널리 보는
안목인 보안법문(普眼法問)의 가르침을 받는다.

선재는 또 다시 방편명(方便命) 바라문(혹은 勝熱 바라문이라 한다)을 만나,
칼산에 올라가 불구덩이 속으로 띄어들라는 얼토당토 않는 명령을 받고 그 속으로 떨어지는 순간
선주삼매(善住三昧)를 얻는다. 바로 불구덩이 속으로 떨어진다 할지라도
편하게 안주하는 경지를 말한다.
 
자재주(自在主) 동자로부터는 한량없는 광대한 모래 더미와 그 안에 있는
모래 알갱이마저 헤아릴 수 있는 계산법과 더불어 모든 불·보살이며
중생들의 이름을 샅샅이 아는 수에 대한 도리를 터득한다.

무염족(無厭足, 滿足王)왕으로부터
선재는 죄 지은 무수한 중생들을 벌주는 광경을 목도하고 안타까워하지만,
곧 그 왕으로부터 자신의 이러한 행위는 그들을 벌로써 교화하여 결국은 보리심을 얻게 하는
방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게 된다.
 
대광왕(大光王)은 대자비로 정치를 베푸는 불교의 치국 이념을 선재에게 알려준다.
보안묘향(普眼妙香) 장자는 그에게 모든 사업을 오직 향을 사름으로서
만족케 한다는 도리를 깨우쳐 준다.

선재는 다시 바시라 뱃사공(婆施羅 船師)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사람들을 배에 태우고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태워 주면서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가르침을
선재에게 베푼다.
 
심지어 선재는 바수밀다 여인(妓女)으로부터는 애욕에 얽매여 있는 중생들에게
그 욕망의 불덩어리를 녹이는 보살의 집착없는 삼매를 배운다.
바로 그 끊기 어려운 욕정을 다스리는 방법을 말이다.

이렇게 그는 여러 선지식을 만나면서 가르침을 받고 계속 남행하여
보타락가산에서 관세음보살을 뵙고 그 중생 구제의 대비심을 가슴깊이 새겨넣는다.
 
마야부인도 방문하였으며
결국에는 선지식의 대표격인 미륵보살과 감격적으로 상봉하게 된다.

미륵보살은 선재가 진리를 찾아서 수만리 길을 걸어온 그 동안의 장거를 찬탄하며,
이제는 흔들림없는 깨침의 세계로 들어서려는 선재에게 보리심의 공덕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보리심은 능히 모든 부처님의 법을 낳기 때문에 바로 모든 부처님의 종자다.
보리심은 능히 모든 중생의 밝고 깨끗한 법을 잘 자라게 하기 때문에 바로 좋은 밭이다.

보리심은 능히 모든 세간을 지탱하기 때문에 바로 대지다.
보리심은 번뇌라는 모든 때를 깨끗이 씻어내므로 맑은 물이다.

보리심은 모든 세간에 있는 장애를 없애기 때문에 태풍이다.
보리심은 능히 잘못된 모든 견해와 애욕을 태우기 때문에 바로 타오르는 불이다.

이 보리심으로 인해 모든 보살들의 행은 완전해지며 이 보리심으로부터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여래가 출현한다.'


미륵은 이와같이 선재에게 보리심에 대해서 설한 후 다시 문수보살을 찾아 뵙기를 권한다.

'선남자여, 문수사리가 그대의 선지식이다.
그대가 이렇게 선지식을 만나 보살행을 듣고 해탈문에 들어서며 큰 서원을 이룬 것은
모두 문수 사리의 위덕과 신통력 때문이다. 문수 사리는 모든 곳에서 구경(究竟)을 얻게 한다.'

선재가 이 말을 듣고 일심으로 문수보살을 부르자 문수는 멀리서
오른손을 쳐 110유순의 거리를 단숨에 지나 보문성(普門城)에 이르러 선재의 이마를 쓰다듬는다.
'착하고 착하다'라고 말하면서. 문수는 선재에게 한량없는 큰 지혜의 광명을 구족케 하고
보현도량에 들게한다.

선재는 보현의 금강 도량에 들어서서 10가지 깨뜨러지지 않는 지혜의 법문을 듣는다.
보현 보살은 부처님과 동일한 광대한 몸을 나툼녀서 선재에게 자신의 청정한 법신(法身)을 보라고 한다.
선재는 그 낱낱의 털 구멍 속에 수없는 부처님 세계가 펼쳐지는 보현 보살의 법신을 친견하고
드디어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法界)로 진입한다.


선지식, 문수와 보현, 그리고 선재

선재동가자 구도의 편력을 펼치면서 만나본 선지식은 총 55명이지만,
그 중에서 문수보살은 두 번 중복되고 덕생(德生)동자와 유덕(有德) 동자를 하나로 취급하면
결국 53 선지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 여러 부류의 선지식을 헤아려 보면 이렇다.

보살 5명, 비구 5명, 비구니 1명, 동자 3, 동자의 스승 1명, 해사(海師) 1명, 장자 10명, 의사 1명,
바라문 2명, 외도 1명, 왕 2명, 도장지신(道場之神) 1명, 천(天) 2명, 야천(野天)8명,
선인(仙人) 1명, 비구니 1명, 여인 10명(동녀 2명)

그렇다면 선지식(善知識)이란 누구를 말함인가?
한자의 뜻대로 좋은 스승, 훌륭한 스승을 일컫는가?
 
그 산스크리트 명은 칼야나 미트라(kalyana mitra)로 칼야나란 착하고 아름다우며
훌륭할뿐더러 고귀하고 올바르다는 뜻의 형용사이고
미트라는 친구라는 의미로 선우(善友), 진우(眞友), 붕우(朋友)로 의역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착한 벗, 좋은 벗이요 훌륭한 벗이다.

진리의 길로 다정다감하게 이끄는 사람이라면 모두 착한 벗이다.
그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연로한 노인이건 세 살바기 어린애이건 누구건 진리를 깨우쳐 준다면
그는 선지식이다.
 
53선지식에는 그 모든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아도 좋다.
거기에는 훌륭한 스승이나 지도자도 당연히 포함된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선지식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선지식은 사람들을 인도하여
일체지(一切知)로 가게 하는 문이며 수레이며 배이며 횃불이며 길이며 다리다.'

『화엄경탐현기』에서는 선재동자가 여러 선지식을 만나게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①선지식은 궤범이 되고, ②수승한 행의 인연이 되며, ③ 소견의 오만함을 파하고
④ 미세한 마장을 여의고 ⑤ 행을 이루며 ⑥ 위(位)를 나타내고 ⑦ 깊고 광대함을 나타내며,
⑧ 연기를 보여준다'

선재는 위에서 말한 여러 조건을 갖춘
선우(善友)들을 만나 본 결과 드디어 진리의 세계요 깨달음의 세계인 법계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 「입법계품」에 등장하는 선지식에 대한 일본의 정토 학자 가네코 다이에이의 말을 간추려 보겠다.


문수는 초발심을 대표하는 보살로서 믿음(信)을 보여주며,
공덕운 비구 이하 나머지 선지식은 해(解) 행(行) 회향(回向) 증(證)의 보살도를 나타낸다.
처음으로써 마지막을 관통하면 이들 선지식은 문수의 화신이다.
 
이것이 미륵이 선재에게 문수의 행원(위덕과 신통력)이
(선지식을 만나 보살행을 듣고 해탈문에 들게 하는 등) 일체의 공덕을 출현시키는 까닭이라고 설하는 이유다.
그러나 마지막으로써 처음을 관통하면 이들 모두는 보현의 화신임에 틀림없다.

문수가 선재를 만나 모습을 감춘 것은 사실 문수 그 자체가 선재가 되었기 때문이요,
그러면서 선재에게 도를 말하는 선지식들은 보현의 행원(行願)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이들 모든 중간의 선지식은 시설(施設)된 것이다.
 
그 시설의 법은 미륵에 이르러 참다운 제일보를 내딛게 된다.
그때 문수가 진신(眞身)을 보여준다.

여기서 사실 제일보의 문수는 문수사리 동자다.
그는 오직 끝없는 미래만 지닐 뿐, 과거를 지니지 않는 동자다.
선재는 이 동혼을 깨닫고 나서 보현의 원해(願海)에 들어간다. 보현은 도의 종극이다.
 
따라서 절대 현실의 도는 오직 처음과 끝에 있을 뿐이다. 중간 과정은 시설이다.
오직 제일보에 섰을 때만이 종극에 철저하며 종극에 있는 자만이 항상 제일보를 내딛게 된다.

이상이 가네코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선재를 매개로 해서 문수와 보현이 상즉(相卽)하고 지혜와 자비,
자리와 이타가 상즉한다. 대승 보살의 정신이 여기서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는 셈이다.


53선지수(善智樹)와 용화향도
우리 나라의 자장 스님은 이러한 선재 동자의 구도의 길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았던 모양인지 자기 집에 53선지수를 심었다. 그뿐이랴.
 
신라 시대 화랑집단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 부르기도 했는데,
이들이 바로 귀감으로 삼은 인물이 선재동자다.

용화란 장차 미륵불이 용화수 에서 몸을 나투어 중생을 구제한다는 그 용화수에서 온것이요.
향도란 집단을 의미한다.
 
바로 미륵이 다스리는 그 이상 세계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청소년들이 무릴르 이루어 도를 닦고 무슬을 연마하는 집단이 용화향도인 것이다.

김유신은 경주 단석산에서
마침내 도를 이루어 칼로 바위를 자르고 그 안에 미륵삼존불을 모셨다.
 
앞서 보았듯이 선재동자는 선지식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미륵보살을 만나 보리에 대한 확실한 가르침을 받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김유신을 비롯한
그 낭도 집단이 선재가 갔던 구도의 길을 가려했다는 선명한 흔적을 찾아 낼 수 있다.

그러나 선재 동자의 진정한 이미지는
진리를 찾아서 하염없이 발길을 재촉하는 너무나도 순수한 보리를 향한
마음의 인격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순수한 마음의 표현은 어린이의 해맑은 표정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오대산 상원사 문수전의 그 문수보살상이나 선재동자상에서 그윽하면서도
힘있게 드러나 있지만,
 
그보다도 진리를 찾아가는 진취적인 기상과 맑디맑은 동흔은
고려 불화의 수월관음도에서 선재동자가 도를 구하는 얼굴이며 몸짓,
그리고 비장한 눈빛에 잘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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