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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이전 태양숭배 종교 미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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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Mithra, or Mihr, Mehr, Meher)는페르시아의 신으로서

조로아스터교의 야자타(Yazata) 신과 같은 개념의 신이다.

미드라는 인도-이란 계통의의 베다 경전에서 말하는 미트라(Mitra) 신에서 유래하는 이름이다.

 

미트라(Mitra)는 '묶는다(treaty, bond)'는 의미로 우리말의 옛 신발이 발을 묶는다는 의미에서

'미투리(짚신)'과 그 어떤 연계성이 있을 개연성이 있지 않을까 필자는 추정한다.

미트라는 초기 인도 이란인들의 신으로서

고대 인도의 리그베다(Rigveda)의 텍스트에 자주 등장하는 신의 이름이다.

 

거기에서 유래한 미드라(Mithra)는 페르시아의 태양신으로서 아베스타(Avesta) 경전에서

미트라(Mitra)는 "언약(covenant, contract, oath)"과 같은의미로 교리화되며

조로아스터교의 야자타(yazata) 신의 개념으로 수용되었다.

 

그러한 미트라는 오늘날페르시아어의 메흐르(Mehr)의어원이 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우리말의 '미르'는 이러한 페르시아 문명의 하늘 신 메흐르에서 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필자는 주장한다.

미드라와 달리 미드라스(Mithras)로 복수로 표현하는 것은

그레코 로마 신화의 미드라교(Mithraism)의 신의 이름으로 표현할 때 사용한다.

 

우리말의 '미륵'의 어원이 된 산스크리트어에서 '친구(friend)라는 뜻의 마이트리아(Maitreya)는

미트라(Mitra)가 그 어원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중기에 와서 미드라는 메헤르(Meher)로알려졌고

미드라는 결국 인더스계곡의 시바신과 같은 미트라에서 기원한 것으로볼 수 있다.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를 신봉했던 조로아스터교는 그 이전의 신화에 많은 잔재가 남아 있다.

미드라는 아후라 삼위일체의 한 신위를 차지하며 우주의 질서를 의미하는 '아사(Asha)'의

수호신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더불어 미드라는 진리와 정의 그리고우주의 빛의 근원자로 받들어졌다.

태양신 미드라가 광배를 하고 있다(왼쪽)

탁 에 보스탄(Taq-e Bostan, or Taq-i Bostan),Kermanshah, Iran탁 에 보스탄의 유명한 그로토 조각으로

중앙의 사산왕조(Sassanid Empire)의아르다쉬르 1세(Ardashir I)가오른쪽의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에

의하여 제관되는 장면이다. 여기에서 왼쪽의 미드라는 연꽃을 밟고 선 제사장의 위치에 있다.

위의 조각에서 주목되는 것은 미드라의 손에 들린 발삼(balsam) 침엽수로서

우리의 전통 굿에서 사용하는 소나무가지를 볼 수 있다.

소나무와 태양은 오늘날 화투장 1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고대 태양숭배시대의 잔재이며

굿판의 중요한 신내림의 생명수가 소나무 가지로서 권구줄(금줄)에도 달고 송아지를 낳을 때도 마굿간에 단다.

 

이러한 발삼 가지는 이스라엘에서 '올리브 가지'로 대치되기도 하지만,

미드라교의 태양절날인크리스마스 때

세계적으로 침엽수 가지를 사용하는만큼 소나무와 태양숭배 문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


미드라교가 처음엔 페르시아 제국에서번성하여 아르메니아를 비롯하여 아시아 마이너로 확대되었으며

나중에 알렉산더 대제국에서 광범위하게 유럽으로 확대되어갔다.

 

오늘날 아르메니아 지역에 미드라교의 많은 사원들이 남아 있는 것은 기독교가 늦게 들어온 아르메니아에

미드라교의 일파인 마즈다교파들이 마지막까지 강력하게 잔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 마니(Mani)와 태양의 여신 솔(Sol)A depiction of Máni and Sól (1895) by Lorenz Frølich.

페르시아 문명의 첫왕조인 아케메니드 왕조(Achaemenid dynasty, 648–330 BCE)는

이집트의 태양력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들은 연중 많은 날을 태양신에 제사를 했다.

 

그러한 아케메니드가 조로아스터교로 대치되면서 매월 보름날 미드라(또는Dae-pa-Meher)에게 공양하였다.

미드라신과 혼합된 이미지로 매월 열 엿새째날은 메헤르(Meher)신에게봉헌해왔는데

오늘날 조로아스터교의 의식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이러한 메헤르 신에게 제사하는 달의이슬람 이전시대의 관습은

1925년 이란의 국립력(national calendar of Iran)에 공식적으로 매년 일곱째 달의 이름으로 제사하는 것으로

복원되었다. 어쩌면 우리의 팔월 대보름은 이러한 하늘의 '미르'에 제사하는 페르시아 문명과

그 어떤 역사적 연계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동지날 주간의 축제는 이란에서'샵-에 얄다(Shab-e Yalda)'라고 부르는데

날의 일광신의 탄생을 제사하는 날이다. '얄다'의 뜻은 태양의 탄생 즉 '일출(The birth of sun)'을 의미한다.

고대 인도의 베다 경전에서 미드라(Midra)는 불교에서 산스크리트어 마이트레아(Maitreya)로 나타난다.

팔리(Pali)어로는 메떼야(Metteyya)로서 장차 불교의 미륵의 어원이 된다.


마이트레야는 보살로 지상에 나타나 다고 불교에서는 믿어왔으며 석가모니 부처의 계승자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미륵은 불교의 삼대교파인 테라바다(Theravāda), 마하야나(Mahāyāna), 바브라야나(Vajrayāna)

모든 경전에서 지상에 강림하는 메시아 개념을 가지는 특징을 지닌다.


태양신 여신(Solar Deity also Sun God(dess)에 대한 숭배에서 일식에 대한 믿음이 항상
따라 다닌다. 더불어 태양 배("solar barge" also "solar bark", "solar barque",
"solar boat", "sun boat")의 개념은 태양이 배를 타고 하늘을 건너간다고 믿었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러한 태양배는 쿠프 배(Khufu ship)라고 불렸는데 43.6m 길이의 이
배는 기원전 2500년 경의 것으로 기자의 쿠프 대피라미드 옆에서 발굴되었다.


불교 전통에서 남아 있는대로 그 뒤에 태양은 '해 수레(sun chariot)'으로 받아들였다.
이것은 태양이 수레를 타고 간다는 의미인데 '태양 배'보다 늦게 나온 개념이다. 대략 기원전 2000년 경에

나온 개념이다.


태양의 여신 시대에 달은 남신으로 받들어졌었다. 고대 이집트의 판테온에서 보여주는대로

여신들은 그 머리에 둥근 해를 이고 있다. 그런데 그 이집트의 모든 판테온에서 달신이 남자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인 중국 지린성 지안의 퉁거우 사신총 천장에 그려진 영기 무늬(오른쪽은 개념도).

곳곳에 영기의 싹이 트고 있는 팔메트 사이로 연꽃이 피어나는 모습이다.

우주만물이 영기에서 태어난다는 사상을 형상화했다.

 

사진 및 그림 제공 강우방 교수


코브라, 라이온, 소 등의 고대 이집트의 동물신들의 대부분이

그들의 머리에 태양을이고 있으며 그들은 모두 여신이다.


나중에 18왕조에 와서 태양신은 다른 태양신들의 위에 놓인다.

남성신들이 태양신 자리에 올라갈 때는 '어머니의아들'로 표현되었다.

 

태양의 여신은 매일 그녀의 수레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건너간다는 것으로 묘사된다.

사실상 'Sol'이라는 말은 여신을 의미한다. '솔매', '수레'는 적어도 '솔'이라는 여신에게서 나온 말일 것이다.

 

솔 잉빅투스(Sol Invictus)는 "정복되지 않는 태양(Unconquered Sun)이라는

의미로3세기까지 로마의 태양 신이었다.

 

해순이 돌순이
화투의 1월이 솔과 해를 표현한 것은 사실상 그 '솔'이 '해'를 의미한다.
솔(Sol)은 기독교가 강화되지 나중에북유럽의태양신의 이름으로 남아 있었다.
독일의 고산지대에서는 해를'순나(Sunna)'라고 불렀다.

그뜻은 독일신화에서 인간화된 태양(Sun personified)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독일신화에서 9-10세기에 Merseburg 신화에 나오는내용에서

순나(Sunna)는 신드군트(Sinthgunt)의누이로나온다.

13세기 독일에서 씌어진

'Poetic Edda'와 'Prose Edda)'에서 '솔(Sol)'은 인간화되어 표현된 달의 누이로 나온다.

 

브라이언 브란스톤(Brian Branston)과 같은 신화학자들은

태양의 여신의 개념이 남성 태양신보다 더 많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어 있었음을 지적한다.

태양신이 남성신으로 알려진 것은 고대 그리이스와 나중의 로마 신화의 영향일 뿐이라는 것이다.

 

해와 달을 남성과 여성으로 표현한 것은

유럽 전통에서 나중에 일어난 일이며오르페우스(Orpheus)나 신지학적 철학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독일 신화에서 특히 해는 여성이고 달은 남성이라는 것은 서양의 유럽과 동양의 한족 역사와는

달리 더 오래된 태양숭배 문화를 유지해온 북유럽과

북쪽 아시아 지역의 태양의 여신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북유럽 노르스 전통에서 솔(Sol) 여신은 매일 두 마리의 말이 끄는 수레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갈 때

그 말의 이름이 하나는 아르박(Arvak)이고 또 하나는 알스비드(Alsvid)이다.

 

솔의 다른 이름은 순나(Sunna) 또는 순네(Sunne) 또는 프라우 순네(Frau Sunne)로

영어의 Sun과 Sunday의 어원이 되어 있다.

우리의 전통 여성 이름에서 순나와 순네,순녀는 대단히 태양의 여신 이름 이미지를 준다는데 흥미롭다.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신인 라(Ra)는 매일밤 태양의 배(Solar barge)를 타고
지하세계인 두아트(Duat)를 통과하여 아침에 다시 있던 자리에서 나타난다.

 

초기 이집트 신화에서 태양은 밤 동안사자신인 세크메트(Sekhmet) 여신의 눈에 비치거나

소의 신인 하도르(Hathor) 신의눈알에 비치다가 그 여신의 아들인 황소로 다시 아침에 솟아오른다는 것이다.


The warrior goddess Sekhmet, shown with her sun disk and cobra crown

로마 제국시대 동안 솔리스 인빅티(Dies Natalis Solis Invicti)

신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Unconquered Sun)'의

이름으로 동지로부터 처음 시작되는 날 즉 '새해'로 절기를 지냈다.

그 의미는 '해가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로 

새해'의 의미를 가진 우리의 전통 동지 새해의 뜻과 그대로 일치한다.

독일의 '솔'이나 인도 베다 전통의 수리아(Surya) 또는 그리이스의 헬리오스(Helios때로 티탄)

그리고 아폴로는 모두 태양신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샤마쉬(Shamash)는 청동기 시대의 태양신이었고,

충성의 의미로 주군을 '타의 태양(my sun)'으로 칭하는 것은오늘날 연인간에 칭해지고 있는 것이다.

남미에서 태양숭배는 인티(Inti)에 남아 있다.


고대 이집트의 태양의 여신은 특히 다양한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다.

Wadjet, Sekhmet,Hathor, Nut, Bast, Bat, Menhit이다. 이들 중에 하도르(Hathor)가 가장 오래되었고

그 다음이 이시스(Isis)에서 호러스(Horus)와 라Ra)가 태어난다.

 

아즈텍의 태양신 토나티우(Tonatihu)는 다섯번째 시대의 태양신으로 받아들인다.
중국에서 태양신은 천자사상에 나타난다.

 

후예(后羿)가 화살로 열개의 태양 중에 한 개를 남기고 모두 떨어트리는 신화에서 잘 나타난다.

일식은 천구에 의하여 해가 먹히는 것으로 표현된다.

일식 때에 항아리와 징을 두드리는 전통이 있는데 그것은천구 즉 해를 먹는 개를 쫓아버리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라마야나(Ramayana) 전통에서 라마는 태양신인 수리야 반쉬Surya Vansh)로부터

내려오고제왕들은 태양처럼 밝은 빛으로 묘사되었다.
인도네시아 호주 티모르 섬 등의신화에서 태양은 종족의 시조로 표현된다.

불교 힌두교는 그 소를 구하는 것을 미드라교에서는 죽이는 것으로
www.whitedragon.org.uk/ articles/mithras.htm

이하Payam Nabaraz, Mithras and Mithraism,Lughnasa, 1999

유럽에서 기독교 이전의 마지막 세속의 종교는 미드라교였다.

태양신을 믿는 미드라교는 시리아에서 영국에 이르기까지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번성되었다.

런던의 태양신 사원들은 물론 하드리란 월은 오늘날 웨일스와 욕크에 아직도 남아 있다.

 

미드라교의 공식 경전은 단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만큼 기독교에 의하여 제거되었지만,

나중에 발굴된 지하 사원들에서 벽화와 조각품들 및 기독교인들이 작성한 이른바 반-세속 자료들의

흔적에서만이 미드라교 문화의 일부를 감지할 뿐이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미드라/미트라의 프로토타입은

힌두교 찬송가들과 조로아스터교의 경전들에서 볼 수 있다. 미드라교는 로마제국의 군대 종교였다.

그런 배경에서 기독교가 들어가서 미드라교의 많은 종교적 제의들은 기독교의 것으로 수용되었다.

미드라는 신이면서 사람인 청년으로 묘사된다.

 

미드라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고 세례의식을 가지며, 십자가를 표시한 빵을 나누며,

희생의 피의 의미로 포도주를 일요일 성찬에 사용했으며, 미드라의 성탄일은 12월 25일이에 행해졌다.
미드라 신봉자들은 그들 자신을 '형제'라고 불렀으며 'Pater(faterh)'라고 불리는 사제에 의하여 예배가 인도되었다. '파터'의 상징은 기독교의 신부의 복장에 남아 있는목장(牧杖staff), 구부러진 칼, 반지 그리고 모자를 사용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왜곡하기 위하여 나중에

기독교인들은 '악마들이 이미 먼저 메시아가 올 것을 알고 그것을 모방했다는 식으로 호도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직후인 5세기에 미드라교는 기독교의 이름으로 파괴되었고 그 위에 교회를 지었다.
영국에 남아 있는 미드라교는 로마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진 한참 후까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 예로서 매크로코즘의 노래(Song of Macrocosm)라든지 바드 달리에신(Bard Taliesin)은 6세기의 것으로서

미드라교의 지적 유산을 보여주고 있다.

제임스 프레이져 경은 실제로 바드 탈리에신은 미드라교의 것임을 인정했다.

'매크로코즘의 노래'는 분명 미드라교의 학문을 포함하고 있으며, 탈리에신 또한 마찬가지로

영국에서 마술 지식으로 변형되어 사용되어왔다.

유럽에서 '마술'이란 이와같이 미드라교의 전통을 의미한다.

 

중세 기독교의 마녀사냥이란

사실상 미드라교 문화를 숭배하는 수십만의 미드라교 무녀들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들이다.

태양신과 켈틱 지식 사이의 흥미로운 연계성은 쟌 매튜(John Matthews)에 의하여 제기되었는데

샤마니즘과 영국과 아일랜드의 바르딕 미스터리(Bardic Mysteries)는 미드라교의 탈리에신이었다는 것이다.

 

나무들의 지신인 오감(Ogham) 알파벳은 오그마 케르마이트(Ogma Cermait = Honey-Mouthed) 신,

태양의 얼굴을 한 그레인 애인니치(Grain-aineach), 또는 드렌퍼(Trenfher = Strongman,Champion), 위대한

다그다(Dagda)와 다누(Danu)신의 아들에게 바쳐지는 것이었다는 것이다.

고울 지방에서는 주님은 오그미오스(Ogmios)로 불렸고 또한 빛과 앎의 신으로 신봉되었다.
"리치보로우에서 발견된 문자에 의하면 오그미오스는 주님의 머리에서 나오는

빛의 광채와 미드라교의 태양의 여신(Sol Invictus)의 회초리를 잡은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오그마(Ogma)의 모든 세 타이틀들은 분명 미드라교 의식에 연계되어 있으며

리치보로우의 문자들 또한 같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분명하지 않은 것은 그러한 관련이 인도 유럽인들의 미드라교 또는 로마제국에 소개되어 있던 오리지날 미드라에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지또는

오그마는 미드라교와 일부 일치되는 것을 보여주는 로마제국 시기의 미드라교 성격과 일치되는 것인지의 여부이다.

미드라교는 AD 4세기말에 지하로 들어가는 운동이 일어났다.

치리피(Chryfii)라는계층은'은둔자들(hidden ones)'의 의미를 가졌는데 로마의 미드라 건물에 새겨져 있다.

 

이것은 미드라교의 전통 지식은 완전히 상실된 것을 분명히 한 것이며 이 시기의 그레코 로망 지적 배경을 가진

미드라 지식은 중동으로 다시 역수출되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놀라운 확대는 멀리 코리아에까지 파급되었으며 AD 612년에일본에까지 도달했다.

지방의 전통 관습을 추적하고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여 미드라교의 관습과 지식은 살아남게
되었으며

미드라교는 서양에서 영국의 하드리안 월에서 신봉되었으며 동방으로는 일본에서도 신봉되었다.

 

영원한 태양신은 그 타이틀과 함께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하드리안 월을 따라 남아 있는 지방 여신상들의 발견과 미드라교 사원에 남아 있는

다른 켈틱 종교들의공예품들은 미드라교의 남성 이미지들만 보여주고 그 지방의 지방신들과 관습들에 혼효된

과정을 남겨주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영국에서 기독교가 세속주의를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동시에

남아 있는 각기 다른 세속적 전통 속에서 미드라교의 잔재가 잘 보존되어 있는 벽들에는 미드라교와 함께

있었던 드루이드(Druids) 또는 프로토 드루이드 신들이 태양의 빛을 수용하는 혼합된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미드라교 미스터리는 그것이 페르시아의 어디에서 시작되었으며

기독교가 미드라교를격퇴시키는 과정에서 그리고 이슬람의 부상으로 인하여 오리지날 미드라교는

어떤 모습이었는지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영원한 태양신의 마술적 흐름은 기독교와 이슬람의 횡행에서도 살아남았으며 동방 미드라교는

이슬람의 교리와 그 의식에 혼합되었고 이슬람의 신화적 지파인 수피심(Sufisim)의 일부가 되었다.

페르시아 전통에 의하면 미드라신은 자라투스트라가 고대한 인간 구세주로 수육되었다.

미드라는 '순결한 동정녀' 아나히타(Anhita)로부터 태어났다.

아나히타는 한때 풍요의 여신으로 신봉되었었던 여신이다. 아나히타는 자라투스트라의 씨앗으로부터

구세주를 잉태하였다고 하며 페르시아의 시스탄 지역의 하문 호수(Lake Hamun)의 물에 잠저해 있었다는 것이다.

 

미드라의 승천은 208 BC에 이루어진 것으로 그의 나이 64세때의 일로 전해진다. 미드라의 탄생은 동굴

(또는 그로토)에서 이루어졌는데 탄생할 때는 동지때였으며 그곳은 목자들이 참례하였으며 예물을 바쳤다.


이것은 미드라 탄생에 관한 오래된 신화를 바탕하는데 그의 신비한 새벽의 탄생은 그 자신의 의지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형성한 바위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바위는 바로 동정녀 성모라는 의미가 된다).

그는 그의 손에 단도와 횃불을 들고 있었다.

 

저택의 어떤 동상은조디악의 12지신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바위에서 태어나는 미드라를 보여주는 것도 있는데

그것은 미드라의 탄생이 우주를 지배하는 별신의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때로는 뱀이 미드라의똬리를 트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돌 알이 태어난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미드라의 탄생 후에 아직 세상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 그는 다른 힘에 의하여 도전을 받았다.

태양과 그의 싸움(또는 씨름)의 결과는 우정 형태로 남아졌으며 미드라는태양의왕관과 광채를 부여받는다.


J.G. Frazer의 유명한 황금가지(The Golden Bough)에 의하면 크리스챤들은 4세기에
성탄절을 기독교의 라이벌이자 이교도의 성탄절에서 빌려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쥴리안 월력으로

12월 25일은 동지로 계산이되며 태양의 탄생(nativity of thesun)으로 받아들였던 날이다.

 

왜냐하면 그날이 낮의 길이가 다시 길어지기 시작하며

태양의 힘이 연중 전환점으로부터다시 강해지는 날이기 때문이다. 미드라는 그 신봉자들이 태양과 함께숭앙되었다.기독교 복음서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탄생 날과는 아무런 관게가 없는 날이기에

성탄절날은 초대교회에서는 아무런 의식도 축제도 하지 않았다."

신 캐토릭 백과사전(The New Catholic Encyclopaedia)은 다음과 같이기록했다.
"예수의 탄생은 동지날날로 잡았는데 쥴리안 월력으로 12월 25일, 이집트 월력으로는
1월 6일이다.

 

왜냐하면 이날은 태양이 북쪽 하늘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는 날이며

세속의 미드라 신봉자들이 이날을 그들의'디에스 나탈리스 솔리스 인빅티(Dies Natalis Solis Invicti)'로

받드는 날인데 그 뜻은 '영원한 태양의 탄생(Birthday of theInvincible Sun)'의 의미이다.

 

274년 12월 25일, 로마 황제 아우렐리안은 태양의신을 제국의 원천적인 파트론으로 선포했고

그 신에게 사원을 세워 바침으로써 로마의 특별한 강건을 기원했다"

(The New Catholic Encyclopaedia, Vol. III, p.656, 1967 ed.).

살아남은 미드라교의 어떤 미미지는

말 위에 탄 사람이 활과 화살을 손에잡고 숫사삼을 사냥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숫사삼의 뿔은 초생달 모양이다. 미드라는 사자, 뱀, 개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것은 별자리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아직이에 대한 완벽한 해석을 한 사람은 없다.

미드라는 계절의 변화와 천체의 움직임과 함께 주재한다.

고대 미드라교는 페르수스(Persus) 별자리로 표현되었는데 페르수스는 타우루스 별자리를살해함으로써

그 천체구의 위치를 바꾸고 있다. 춘분에 미드라는 지구를 양자리(Aries)로 옮기고

엄청난 에너지와 힘을 발생시킨다고 믿어졌다.

추분에는 이 위치가 전갈자리를 리브라 자리로 바꾸어서 성적인 에너지의 균형을 맞추었다는 것이다.

황소를 죽인다는 것은 유럽에 있었던 미드라교의중심 아이컨으로 모든 미드라교 사원에 존재했다.

이러한 전통의 모든 미스터리는 페르시아 기원의 전통이며

로마제국의 점성술과 그리이스 신화의 영향이 가미된 결과이다.

 

마소우드 호메이오우리(Masoud Homayouri)는

[페르시아 신지학적 기원(Origin of Persian Gnosis)]에서 자아는 황소 또는 소로 상징화되는데

혼이 생명으로 화하기 위하여서는 황소 또는 소가 희생물로 바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드라교의 아이컨은 미드라가 황소로부터 얼굴을 돌리고한 발은 황소의 등 위에 놓이고

한 손은 황소의 머리를 잡고 다른 손은 황소의 목을찔러 피가 앞으로 쏟아지는장면이다.

 

그의 주위에 개, 까마귀, 전갈, 뱀, 사자, 컵이 있고 밀 한 포기가 황소들의 꼬리 끝에서 자라는 장면이 있다.

미드라의 망토는 별들과전체 모습을 두러싼 조디악의 지신들이 있는밤하늘을 묘사하고 있다.

 

칠 행성의 상징이 보여지고 미드라가 황소를 죽이는 장면의 양쪽에 두 개의 횃불이 있다.

중심에는 페르수스(미드라) 별자리, 타우루스(황소), 카니스 마이너(개), 히드라(뱀), 코르부스(까마귀),

전갈이 배치되어 있다. 밀은 스피카 별이며, 피는 은하수이다.

 

개의 횃불인 카우테스와 카우토파테스는 춘분과 추분을 상징하는데, 카우테스 횃불은 위를 향하여

춘분을 의미하며 카우토파테스 횃불은 아래를 향하여 추분을 상징한다. 

 

이러한 별자리의 의미는 춘추분의 진행을 보여준다.

오늘날 춘분이 해가 물고기자리(Pisces)를 떠날 때 발생한다.

그런 결과 물병자리(Aquarius) 시대가 시작되어 춘분은 그때에물병자리에 가 있을 것이다.

 

그레코 로마시대에 춘분은 양자리(Aires)에 있었고천칭자리(Libra)에 추분이 있었다.

그 이전시대인 4000 BC - 2000 BC에는 푼분은 타우르스자리에 있었고 추분은 전갈자리에 었었다.

이것은 또한 하지가 사자자리에 있었으며 동지는 물병자리에 있었음을 의미한다.

 

황소를 죽이는 전체 모습이 결국은 우리가 타우루스 시대에서 아이레스 시대로 옮겨가는천체를 표현한 것이다.

(서양인들은 이것을 막연히 이러한 신화적인 해석만을 하고 있다) 즉 타우르스 별자리 위에 있는

페르수스 별자리의 의미는 전체 우주를 움직이게 하여 타우루스 시대의 종말을 가져온다는 의미이다.

마술과 과학이 천동설을 믿던 시대의 우주관이 미드라교의 천체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미드라교는 그러한 방법으로 우주의 지배 교리를 확보하고 있다. 황소의 피가 은하수이며,

 

영혼들이 오르내리는 길로 여겼던 것이다. 페르수스 별자리에 의하여 타우르스 별자리를 살해하는 것은

자아를 극복하는 신지학적 개념을 보여주고 있으며 무의식의 통합을 보여주고 있다.

미드라의 주재는 계절과천체를 바꾸는 힘으로 과시한 것이다.

미드라는 태양에 의하여 황소를 죽이도록 요청받았지만, 그는 주저했다.

 

태양의 메신저인 까마귀는 그에게 다시 메시지를 가져왔고 미드라는들로 나가 황소를 잡아서

그의 힘으로황소의뒷다리를 그의 어깨에 올리고 그가 태어난 동굴로 끌고 왔다.

황소 위에 떠있는 초생달은 달과의 관계를 보여준다.

 

미드라가 황소를 죽일 때 그 피는 포도주가 되고지상의 모든 식물이 된다. 꼬리는 빵을 만드는 밀이된다.

호아소의 생식기는 달신에게 바쳐지고 모든 동물들이 소생시키는 의미를 지닌다.

미드라는 황소를 죽이면서 딴 방향을 본다. 페르수스가 같은 방법으로 고르곤을 참수할 때 누구든지

그것을 쳐다보면 돌이 된다고 하여 머리를 돌리는 것에 오버랩된다. 즉 자아(ego = nafs)는 심장이 되고

영혼은 돌이 된다.

Sol and Sol Invictus

지상의 생명들이 가뭄으로 천천히 자라고 있을 때 미드라는 태양으로부터 천지간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청받는다. 그러나 이것은 태양 자체가 존재하는 한에는 가뭄이 계속됨으로 명령과 실행이 모순 상충된다.

그래서 태양과 미드라 사이의 싸움이 벌어져 미드라가 태양(the sun)을 이기고 그가아무도 이길 수 없는

영원한태양(The Invincible Sun)이 된다. 솔(Sol)은솔 인빅투스(Sol Invictus)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미드라가 한 손에 큰 곰자리르 부여잡고 그 자신이 별신으로서 힘을 과시하여

우주의 극을 움직여 춘추분의 과정을 스스로 운행하는 자로 등극한다는것이다.

그러나 솔과 솔 인빅투스는 친구가 되고 손을 잡는다. (여기에서 바티칸의 천정에 그려져 있는

천지창조의 신과 아담의 손가락은 이러한 솔과 솔 인빅투스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The Miracle of the Rock
미드라는 궁수의 신이었고 활을 쏘아 산의 바위를 향해 쏘아서 거기에서 물이나오게 했다.

그래서 가뭄이 끝이 난다는 것이다. 그 바위는 구름을 의미하고 동굴은 우주를 의미한다.


The Sacred meal
죽인 황소의 요리는 미드라의 횃불든 자들에 의하여 가져간다. 카우테스(Cautes)

새벽과 춘분을 의미하고 카우토파테스(Cautopates)는 저녁과 추분을 의미하여 태양과 미드라가 함께 앉아 있는

식탁으로 가져온다. 이러한 것은 미드라 신봉자들에 의하여 종교의식으로 모방되어 있다는 것인데, 파터(Pater)

사제가 미드라를,헬리오드로무스가 태양을 다른 사람들은 그 주위에 앉아서 성찬을 나눈다는 것이다.

Origins of Mithraic Mysteries
앞서 언급한 호마요우리에 의하면 "페르시아 신지학의 가장 오래된 자료가

고대 페르시아 정신 세계인 미드라교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동부 이란에서 수천년전에시작된 것이다."


미드라는 적어도 기원전 1400년만큼 일찍이 신봉되었던 인도 이란 신이다. 

힌두교에서는 미드라는 미트라-바루나(Mitra-Varuna)의 이중이름으로 신봉되었다.

리가 베다에서는찬송이 미드라에게 바쳐지는 것도 있다. 미드라는 하늘의 빛의 주님이이고 진리의 수호자이며,

약속을 받아들이는 신이라는 면에서 기독교의 신의 개념의 프로토타입이 되고 있다.


페르시아에서 미드라는 조로아스터교가

페르시아 다신론의 개혁을 할 때까지인 7세기 중반까지는 페르시아 종족들의 수호신이었다.

 

미드라는 이란의 판테온의 다른 신과 여신들처럼 아후라 마즈다 신에 의하여 그의 지배를 빼앗기고

그의 모든 힘과 권능은아후라 마즈다신 앞으로 귀의되어 버린다.

 

그러나 미드라 숭배의 만연으로 인하여 우리는아베스타(Abeste or Mehr Yasht) 경전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조로스터에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실로 내가 넓은 목장의 주(Lord)인 미드라를 창조했을 때 나는 희생의 가치로서그를 창조했으며

아후라 마즈다 나 자신만큼의 기도자의 가치로서 그를 창조했다."

아베스타 경전에서 미드라 또는 메흐르(Mehr:love, sun)는

미드라를 숭배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승리를 가져다 주는 아리안족의 수호자이다.

 

미드라는수백개의 사슬을 가지고 다니는 전쟁의 신으로 모든 악마들을 두려움으로 도망치게 한다.

야세트(Yashet) 6에서 미드라 태양에게 기도하는 것이 언급되어 있는데 친구의 의미로 되어 있다:

"우정과,달과 태양 사이에 놓인 모든 우정의 최선에 나를 바친다"

미드라는 중국 신화에도 등장하는데 거기에서도 '친구'로서 알려져 있다.

미드라는 중국의 조각들에서 군사적 장수로 표현되고,

이 세상에서 사람의 친구로 받아들여졌고 저승에서는 악마들에 대항하는 수호자로 표현되어 있다.

 

서양의 미드라는 로마제국의 미드라로서 1세기말로부터 4세기까지 번성하였는데

그리이스 -로마 신화의 영향을 수반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일에우시니안(Eleusinian)미스터리와 이시안(Isian) 미스터리와 같은다른 미스터리 전통과 같이 미드라 컬트 의례는밀교 형태를 취하고 있었고

그 가르침만이 기본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미드라사원에 남은 유적들은 로마제국 전역에 걸쳐 그리고 팔페스타인 지역에서 북아프리카,

중앙아이사에서 영국이 북부에까지 나타난다.

붉은 옷을 입은 산타는 미드라교 사제인 파테르(Pater)의 붉은 옷을 모방한 것이다.

이것을 마치 미국의 코카콜라 회사에서 붉은 산타크로스 옷을 입게 했다는 것은

기독교 세력들이 미드라교 배경을 숨기기 위한 의도적인 혼란이다.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카토릭에서 어린이들에게 기적을 행했다는

성 니콜라스에서 와전된 것이라고 알려져 왔다. 성 니콜라스가 처음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 것은 독일에서였고

네델란드인들이 뉴욕에 정착했을 때 그들이 니콜라스 의상을 가져왔다는것이다.

 

1823년 'A Visit from St. Nichloas'라는

한 편의 시에서 그 유래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 또한 미드라교 유래를 부정하려는 방편의 설명일 뿐이

크리스마스의 원조인 미드라 성탄절에서 이미 그러한 관행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드라교에서는 이미 날으는 산타의 썰매로서 'Travels in a flying chariot '가 있었다.

그날은 동지날에 이어져 있었고 선물을 가지고 신도들을 찾았으며, 산타의 구부러진 고깔모는

이미 미드라교의 미드라의 머리에씌워져 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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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교에서 기원한 산타의 프리지안 모자

자료 출처 : http://blog.yahoo.com/_TMN2C4CZ5UA73VMPUPOXRKIZPA/articles/13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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