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님을 세상에 전한 진표眞表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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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표대성사(732~?)는 누구인가?
진표대성사는 통일신라시대의 성덕왕*때 완주군(完山州:전주) 벽골군(碧骨郡)

두내산현(豆乃山縣:지금의 만경) 대정리(大井里)에서 사냥꾼인 정(井)씨 성(姓)의 아버지 진내말(眞乃末)과

어머니 길보랑(吉寶郞)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에 얼굴이 부처와 닮아서 동네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3살 때에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불경을 읽을 정도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마을에서 대대로 사냥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진표는 날쌔고 민첩하였으며, 특히 활을 잘 쏘았다고 합니다.

소년, 구도의 길을 떠나다
진표가 11세 되던 해에 동네 아이들과 같이 산으로 사냥을 나갔습니다.

가던 중 개울가에서 잠시 쉬면서 개구리를 열 마리 가량 잡아 버드나무 가지에 꿰어 개울 물속에 담가 두었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개구리는 까맣게 잊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어 이듬해 봄, 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물 속에서 개구리 소리를 듣고

그 물속을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지난해 잡아두었던 개구리들이 버드나무 가지에 꿰인 채 죽지 않고 울고 있었습니다.

이에 진표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그 날부터 생사의 문제를 비롯한 인생의 본질적인 고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버지에게 출가할 뜻을 밝혀 허락을 얻어내고는 12세 때에 드디어 험난한 구도의 길을 떠났습니다.

숭제법사를 만나다
금산사로 들어간 진표는 숭제법사 강하로 가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어느 날 숭제법사는 진표에게 사미계법(沙彌戒法)을 주고 ‘공양차제법(供養次第法)’

1권과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을 전해주면서 “너는 이 계법을 가지고

미륵, 지장 앞에서 간절히 진리(法)를 구하고

참회하여 친히 계법(戒法)을 받아 세상에 널리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아울러 숭제법사로부터 부지런히 수행하여 1년이면 계(戒)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해들은 진표는

미륵님으로부터 직접 법을 구하여 대도를 펴겠다는 큰 이상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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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진표대성사는 전국의 명산대찰을 돌아다니면서 부지런히 수행하고 공부에 전념하였습니다.

어느덧 그의 나이 27세 되던 신라 경덕왕 19년(서기 760년), 쌀 두 가마를 쪄서 말린 식량을 가지고

부안 변산에 있는 선계산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에 들어갔습니다.

쌀 다섯 홉을 하루의 양식으로 삼고 한 홉(1홉=약180CC)의 쌀을 덜어내어 쥐를 기르며 미륵불상 앞에서

미륵불의 계법을 구하기 위해 역사상 보기 드문 초인의 정열을 발휘하며 지극정성으로 도를 구하기 위해 정진합니다.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법을 구하다
온갖 정성을 다해 계법을 구한 지 3년이 되어도 어떠한 깨달음도 얻지 못하자 좌절과 울분을 참지 못해

죽을 결심을 하고 바위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몸이 땅에 떨어지려는 순간,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진표대성사를

손으로 받들어 바위 위에 살며시 내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이에 용기를 크게 얻은 진표대성사는 더욱 분발하여 생사를 걸고 3·7일(21일)을 기약하며 수행에 정진하였습니다.

이 때 진표대성사가 행한 수행법은 세상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망신참법(亡身懺法)입니다.

망신참법이란 자기 온몸을 돌로 찧으며 참회하고 수도하는 혈심수행법이었습니다. 망신참법보다 더 진실되게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바쳐 참회하는 법은 달리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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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만에 팔과 두 무릎이 뚫어져 피가 흐르고 힘줄이 드러나 떨어져 나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수행에 돌입한 지라 살점이 떨어지고 뼈가 부러지는 피범벅의 고통 속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더욱더 수행에 정진하였습니다.


7일째 되던 날 밤, 진표대성사의 지극한 정성이 마침내 하늘을 감동시켰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진표대성사 앞에 불현 듯 지장보살(地藏菩薩)의 모습이 보인 것입니다.

지장보살은 금장(비단으로 된 휘장이나 장막)을 흔들며 와서 진표대성사를 간호하였습니다.

그러자 떨어졌던 손과 발이 회복되었습니다.

 

지장보살은 진표대성사의 손을 따스하게 어루만지며 “참으로 지극한 정성이로다.

그대의 정성에 감동하여 이것을 내리노라” 하면서 가사(승려가 입는 옷)와 바리때(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그릇)를

내려주었습니다. 진표대성사는 그 신령스런 감응에 용기백배하여 더욱 수도에 정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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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망신참법으로 수행을 시작한 지 21일이 되는 날,

문득 천안(天眼,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신통한 마음의 눈)이 열려 멀리 시방세계에서

도솔천의 하느님 미륵존불께서 지장보살과 수많은 도솔천중(兜率天衆)을 거느리고 오시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미륵존불께서 진표대성사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참 잘하는구나, 대장부여! 이처럼 계를 구하다니 신명을 아끼지 않고 간절히 구해 참회하는구나!”


지장보살은 계본을 주고 미륵존불은 두 개의 목간자(木簡子, 글을 적은 대 조각)를 주었는데 하나에는

제 9간자(簡子), 다른 하나에는 제8간자(簡子)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미륵존불은 진표대성사에게 말했습니다.

“제 8간자는 새로 얻은 묘계(妙戒)를 이름이요, 제 9간자는 구족계(具足戒)를 더 얻은 것을 이름이라.

이 두 간자는 내 손가락뼈이며, 그 나머지는 모두 침향과 전단향 나무로 만든 것으로 모든 번뇌를 이르는 것이다.

 

너는 이것으로써 법을 세상에 전하여 남을 구제하는 뗏목으로 삼으라. 이 뒤에 너는 이 몸(육신)을 버리고

대국왕(大國王)의 몸을 받아 훗날 도솔천에 태어나게 될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시고 천상으로 돌아가셨으니

이때가 바로 진표대성사가 30세 되던 신라 경덕왕 21년(서기 762년) 4월 27일이었습니다.

네가 본 그대로 불상을 세워라
도솔천의 미륵불을 친견한 진표대성사는 자신의 도의 경지에서 미래에 닥쳐올 대 환란과

석가불이 예언한 미륵불의 지상강세 모습을 다시 한 번 환하게 내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에 진표대성사는 미래의 대 환란기에 미륵불께서 우리 한반도에 오셔서 우리 민족을 구해주실 것과

그 때 자신도 다시 태어나 사람 살리는 큰 일꾼으로 써 주실 것을 지극한 정성으로 기원하였습니다.

“네가 본 나의 모습대로 불상을 세워, 나의 강세를 준비하고 미륵불의 진리를 세상에 널리 펴라.”
진표대성사의 간절한 기도에 미륵불께서 감응하시어 진표대성사에게 당시 모악산 금산사 내에 있는

 “사답(寺沓) 칠두락(마지기)” 정도 넓이의 연못인 용추못을 메우고

 미륵존불 모양의 불상을 세우라고 계시를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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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불을 세우기까지 기묘한 사건들
-메워지지 않는 연못
미륵불로부터 계시를 받은 진표대성사는 금산사 옆에 있는 연못을 메우고 미륵전을 건립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762년 건립시작)에는 연못을 흙으로 메웠습니다. 하지만 이튿날 보면 다 파헤쳐져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몇 번을 반복해도 그 연못은 메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진표대성사는 지장보살로부터 숯으로 연못을 메워야만 된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진표대성사는 연못을 메우기 위한 방편으로 도력을 써서 인근에 눈병을 퍼뜨렸습니다.

 

그리고 ‘눈병을 앓는 사람은 누구든지 숯을 연못에 던지고 그 물을 바르면 즉시 효험이 있다’고 소문을 퍼트렸습니다. 그러자 안질에 걸린 수많은 사람들이 숯을 한 아름씩 들고 와서 연못에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흙을 아무리 넣어도 메워지지 않던 연못이 메워지게 되었습니다.

-옮겨지는 석련대
그런데 신비스러운 것은 연못의 중앙 부분은 아무리 하여도 메워지지 않고 샘(우물)처럼 남아 있었습니다.

진표대성사는 미륵 불상을 받쳐 세우기 위해 샘 위에 연꽃모양을 조각한

큰 바위(석조 연화대, 일명 석련대)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불상이 채 세워지기도 전에

석련대는 밤새 20미터나 떨어진 곳(현재 석련대가 있는 위치)으로 옮겨져 버렸습니다.
석련대는 불상을 봉안하는 대석으로 높이가 1.67m, 둘레가 10m 이상이 되는 대형 돌수미좌입니다.

밑 없는 철 시루 위에 뜬 미륵불
이 수수께끼가 풀리지 않아 고심하던 중에 진표대성사에게

다시 ‘밑 없는 시루를 걸고 그 위에 미륵불을 모시라’는 계시가 내려졌습니다.

 

이에 다시 진표대성사는 연못 중앙에 밑이 없는 대형 무쇠시루를 걸고

그 위에 우물 정(井)자 형태의 나무 받침목을 얹은 다음 철로 된 미륵 불상을 세웠습니다.

그리하여 처음 공사를 시작한 지 4년이 지난 서기 766년에 드디어 완공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금산사 미륵전에 가보면 1200여년의 세월을 견뎌내고

오늘까지 전해져오는 석련대와 철수미좌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표대성사가 무쇠 솥을 걸고 그 위에 33척(1척은 약 30cm 정도, 33척은 약 10m)의 금미륵 불상을 세우니,

높이가 10미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입불상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 금산미륵불은 규모 뿐만 아니라 미륵 불상을 안치하고 있는 철수미좌(철시루) 위에 올라서 있는

유일무이한 불상으로도 유명합니다. 그것은 불상의 좌대로 특이하게도 철을 사용했으며

그 크기가 지름이 2.5~3m, 두께가 10cm, 높이가 약 1m의 원통형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금산사 미륵 불상 밑에는 밑이 없는 거대한 시루가 봉안되어 있는데,

지금 이 미륵존불상은 이를 모시고 있는 3층 미륵전과 함께 국보625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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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 입구, 법주사내 미륵불
진표대성사는 금산사 미륵불상 외에도 금강산의 발연사와 속리산의 법주사에 모두 3개의 미륵도량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점찰법회를 통해 전생과 이생에서 지은 악업을 닦고 10가지 선업을 쌓음으로써

앞으로 미륵불이 이 땅에 오셔서 펼쳐지는 용화세계에 많은 중생들이 들어설 수 있도록

평생을 미륵불의 계법과 복음을 대중화하고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바쳤습니다.


진표대성사는 말년에 아버지를 모시고 금강산 발연사에서 함께 도를 닦았으며,

절의 동쪽 큰 바위 위에 앉아 입적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시체를 옮기지 않은 채 공양하다가

해골이 흩어 떨어지자 흙을 덮어 무덤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맺는 말
열심히, 최선을 다한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얼마나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뭔가를 이룬 사람을 보면 부러움의 시선과 함께 질투의 시선도 같이 동반을 하지요.

우리는 진정 뭔가를 이루기 위해 진표대성사처럼 목숨을 걸고 시도해 본 적이 있을까요?

망신참법만큼의 정성으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 결실을 이루지 않을까요?


------------------------각주--------------------------
금산사
통일신라 시기 진표대성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진표대성사는 금산사의 숭제법사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진표대성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삼국유사》이외에도 많은 기록이 말해주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금산사 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는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미륵불과 미륵신앙
미륵불은 석가불이 펼친 진리로는 더 이상 세상을 제도할 수 없는 말법 시대가 도래했을 때

도탄에 빠진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건져 이 지상에 용화낙원(龍華樂園)을 건설한다는 희망의 부처요 구원의 부처다.
용화낙원을 희구하는 미륵 신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천상 도솔천에 계신 미륵불이 언젠가

인간 세상에 하생(下生)할 때 미륵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를 기원하는 신앙이다.

이를 미륵 하생 신앙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석가불 사후 곧바로 시작된 미륵신앙의 본류(本流)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른 미륵신앙이 생겨난다. 미륵부처님이 오실 때가 아직 멀었으므로

우선 이승의 삶을 마친 직후에 곧바로 미륵불이 계신 천상 도솔천에 태어났다가 후일 미륵불이 하생할 때

같이 내려오겠다는 신앙이다. 이를 미륵 상생(上生) 신앙이라고 한다.


미륵불 신앙이야말로 불교의 결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부처요

이 지상이 바로 불국토 자체인 세계,

그것이 불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세계일진대 미륵불은 바로 그러한 세계를 만드는 부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