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2.jpg
불교의 결론, 미륵불 출세

 

불교의 우주관

미륵의 어원을 추적하면 불교의 메테야 부처님과

기독교의 메시아가 동일한 한 분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미륵의 어원인 마이트레야라는 말은 본래 미트라라는 신으로 부터 유래되었는데
미트라는 이란 페르시아 등지에서 섬기던 고대의 태양신입니다.


그런데 대단히 충격적인 사실은 기독교에서

구세주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메시아 라는 말도 바로 미트라에서 유래되었다는것입니다.

미트라_00007.jpg

 

불교는

이 우주와 인생이 존재하는 모습을 대국적인 순환론으로 말하고 있다.


대우주가 생겨나서 머물다가 허물어지고 사라지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반복과,

생명들이 인연으로 서로 얽혀서 존재해 나간다는 연기(緣起)의 진리
그리고 천상과 지상을 오가며 생명이 성숙해간다는 육도윤회(六道輪廻)의 법도가 그러하다.

 

그리하여 존재의 무상함을 어느 민족보다도 깊이 있게 체험하였던
인도인들의 삶의 구조와 의식 속에서는, 이 대우주마저도 잠시 머물다
본체로 환원되는 꿈과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이에 그들은 이 무상한 우주의 영겁의 시간대를 이야기할 때 칼파스라는 겁(劫의 복수형을 즐겨써다.

 

불가에서는
"사방 40리 되는 바위를 백 년마다 한 번씩 엷은 옷으로 스쳐서
마침내 그 바위가 닳아 없어지더라도 겁(劫)은 다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인도인들이 명상을 통해 깨달은 이러한

우주의 시간에 대한 수적 감각으로는, 인생과 우주의 현묘한 신비를 논리적으로 밝힐 수 없다.

 

이는 다만 중생에게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진리의 근본자리를 깨주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서만 그 의미가 있을 뿐이다.

 

물론 불경에 우주의 근본 창조자리를 지적해 준 희귀한 구절은 더러있다.


석가부처가 49년 동안 속세에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전한
불교세계관의 핵심인 화엄사상의 사법계관(四法界觀)이 그것이다.

 

불교의 우주와 인생에 대한 가르침의 정수가 여기에 모두 정리되어 있으므로,
이것만 깊이 있게 체험하여 제대로 깨우친다면 불법에 대해 한소식 들은 사람이 될 것이다.

 

불교에서는 진리를 법(法)이라 한다.
그리하여 법계란 진리의 세계이며, 법계관이라 하면
현실의 우주세계와 그 실상에 대해 논리적으로 따져 들어가는 가장 기본되는 도리(道理)를 말한다.

 

사법계관(四法界觀)은 먼저,

1.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 우주는 어떠한 세계인가를 알아보고
2.다음으로 이 세계를 변화시켜가는 생명의 근본원리를 살펴본다.


이 단계가 끝나면 이번에는,
3.앞에서 살펴본 이 현상세계와 영원한 우주생명의 근본정신과의 상호 관계를 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4.극단의 모순과 부조리가 뒤엉켜 있는 현실세계로 다시 돌아와,

현상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간문제의 뿌리를 보고,
근본적인 세계구원의 길을 구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즉, 불교의 세계관은

1.사법계관(事法界觀), 2.이법계관(理法界觀), 3.이사무애법계관(理事無碍法界觀),

4.사사무애법계관(事事無碍法界觀)으로 되어 있다.
우선 이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기로 한다.


1.사법계관(事法界觀)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세계를 보는 도리이다.


인간이 살아가고 울고 웃는 이 차등의 현상(事) 세계(지상의 상대 세계인 천상 신명계 포함)가
진리의 순수한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이 현상세계가 진리자체이다.

 

우리에게는 인생의 사춘기 시절부터 던져온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죽음은 무엇이며, 삶은 무엇일까?

나와 우주는 어디로부터 어떻게 그리고 왜 생겨난 것일까?


삶의 외로운 길을 걷고 있는 숱한 영혼들에게 허무의 열병을 앓게 하는 이들
사법계로부터 던져지는 의문들이,
사실은 인간의 삶에 얽혀있는 최상의 핵심문제들이다.

 

즉, 삶도 진리요 죽음도 진리이며, 흘러가고 있는 저 무상한
우주의 신과 인생행로가 모두 우주변화의 빛과 그림자라는 말이다.

 

불교의 2대 수행방법인 선(禪)과 밀교(密敎) 수행도 이 단계에서부터
생명의 근본자리로 밟아 들어간다.


一切有爲法이
모든 인연이여,

 

如夢幻泡影이요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아라

 

如露赤如電이니
이슬 같고 번개 같으니

 

應作如是觀이어다.
마땅히 그러한 줄을 관할지어다.

<금강경 應化非眞分 第三十三>


2. 이법계관(理法界觀)
이것은 ‘나와 우주’가 생겨난 생명창조의 근본정신[理]을 보는 것이다.

 

무한한 우주와 유한한 생명인 우리 인간, 풀벌레, 짐승 등
일체의 사사물물(事事物物)은
우주생명이 통일되어 있는 본체세계[空]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일체만물은 평등한 공성(空性)의 진여(眞如)를 갖고 있는 것이다.

공은 꽉 차 있으면서도 완전히 비어 있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지신지묘(至神至妙)한,
우주가 생겨난 중도(中道)의 본체정신을 말한다.

 

 


3.이사무애법계관(理事無碍法界觀)
이것은 앞에서 살펴본 생명 창조의 본체와, 여기서 생겨나서 변화해가는
현실 세계의 상호 관계를 동시에 보는 것이다.

 

무애(無碍)란 글자 그대로 서로 모순과 차등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의 핵심 뜻은,

무수한 사건이 전개되는 천지만물의 현상(事)과 생명의 본체(理,空)와의 관계는,
더 높고 낮은 관계도 아니요 둘도 아니라는 것이다.

 

양자는 현상이 곧 본체요
본체의 창조과정이 드러난 것이 곧 현실 우주라는 상호 평등한 연관관계를 맺고있다.

 

즉, 우리가 눈으로 보는 이 세계는
이를 화생시킨 생명의 본체(우주신의 조화정신)보다 열등한 것이 아니라,

그것과 일체관계를 맺고
우주생명의 창조 순환 원리에 따라 생성 발전해 나가기 때문에,
현실의 만물 자체가 근본 자리의 생성 원리를 그대로 품고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창조와 피조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여기에서 여지없이 붕괴된다.

"아버지(생명의 근본과 그 주재자)와 나는 하나이며,
내 안에 아버지가 계시고 나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는
예수의 가르침은 바로 이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대도진리의 차원에서 냉철히 비판해 본다면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의 광신과 맹신의 열풍을 도처에서 볼 수 있으리라.

 

지상은 죄악이 파도치는 타락한 곳이기에,
잠시 머물다 가는 수준 낮은 인생의 시련장 정도로 알고 있는 수많은 신앙의 군중들,


그리고 유치한 단견과 잡설로 중생을 오도(誤導)하고 타락시키는 숱한 종교 지도자들!

 

이런 종교 지도자들의 크나큰 죄악은 누가 정죄할 것이며,

신앙심 하나로 매달린 순진한 중생들의 영원한 영적 피해는 누가 보상해 줄 것인가?

 

천상에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지상에도 극락과 유황불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러한 수수께끼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사무애법계관의 보다 깊은 뜻을 알아야 한다.

현실의 모든 사건과 만물은 이를 일으키는 생명의 근본과 동일한 일체 관계에 있으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 모순과 투쟁,
부조리로 가득 차있는 것은 단순히 인간만의 죄악으로 환원시킬 것이 아니다.

 

현상세계를 변화시켜가는우주의 생명 창조운동 자체가 미성숙의 변화과정에 있기 때문에,
모든 인간들도 자기 완성을 향한 끊임없는 성장의 시간대에서 허덕이고 있는 것이다.

 

우주생명이 성숙을 향한 미완성의 과정에 놓여 있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이제까지의 모든 종교는 생명의 바닥(본체)자리는 가르쳐 주었지만,

그것이 현실 세계에 드러난 순환,변화하는 천지생명의 변화원리는 구체적으로 밝혀주지 못했다.

 

그리하여 이사무애법계가 암시하는 중요한 뜻은,
인류의 운명과 미래는 우주생명의 창조원리(理: 우주변화의 원리)즉
변화원리를 체계적으로 파악할 때만 이해할 수 있다는것이다.

 


4. 사사무애법계관(事事無碍法界觀) ː

이렇게 해서 우리는 생명의 근본원리와 현상의 세계는 상호 일체이며
또 차별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현실세계의 문제로 되돌아왔다.

 

진리를 깨우치는 것 그리고 생명의 참 구원은 모두 영원한 현실문제이다.

인간이 신(神)을 믿는다든지 도덕률에 입각해 바르게 살아가는 것도,
인간 구원 문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신앙과 수도 생활도 나를 위한 것이지 천상의 신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인간 문제와 현상우주의 일체의 사건은
제멋대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천지생명의 창조와 순환원리에 뿌리를 두고 일어난다.
즉 우주의 큰 주기(순환원리: 원회운세=> 우주사계절)에 따라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현상계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인생사 문제(人事:역사문제,천상 영계의 사건도 포함)는
천지생명의 생성원리보다 오히려 더 복잡하고 차원이 높다.

 

이는 오늘의 세계 역사에 얽혀있는 인류의 구원문제는,
우주의 운행원리나 천상 신도(神道)의 신의 문제를 푸는 것보다
더 어려운 최상의 과제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서구의 종교와 철학, 신학에 오염된 정신으로는
이 말의 뜻이 섬광처럼 마음에 와 닿기가 지극히 어려우리라.

인간의 영원한 수수께끼는 먼저 신도(천지생명의 근원, 그 주재자=上帝=하느님)의
문제가 풀린 다음에야 해결될 수 있다.

 

즉, 사사무애법계가 가르쳐주고 있는 핵심내용의 하나는,

지상의 인간과 천상신도(神道)의 신명들이
천지 속에서 한데 어우러져 일으키는 현상계의 모든 삶의 문제들(역사)이
우주변화원리의 최상의 차원에 있는 구원의 대명제’라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석존이 염원한 최상의 이상적 인간상은
세상의 모든 일을 사사무애(만사여의)하게 끌러낼 수 있는 경계에까지 다다른 인간의 모습이다.

석존의 가르침은 이것을 궁극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사사무애란 조금 어려운 이야기지만
미완성된 인간과 천지(일월의 자연계)까지 대통일의 새 진로로써 성숙시켜
구원할 수 있는 최상의 도통의 경계를 말한다.

 

이것은 천.지.인 삼재의 완전한 도통의 경지,
즉 상통천문. 하찰지리. 중통인의의 경계에서
현상계의 모든 우주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우주통치자의 대권능으로써만이 가능하다.

 

석가모니는,
지상에 인간으로 강세하여 성숙된 인간의 길을 걸으시고 사사무애의 경지에 이르시어
인류구원의 도를 열어주시는 분을 미래의 완성 인간인 미륵존불로 말씀하였다.


자료 출처:

이것이 개벽이다 202p-205 중에서...

용봉.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