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佛紀) 2555년에 숨어있는 비밀

고려 때 무기라는 승려는 "출가자가 석가의 성명과 출생, 입멸의 연월을 모르는 것은

마치 아버지의 성명과 생몰일시를 모르는 불효막대한 것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그러나 지금 불자치고

그 누구도 불기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편집자

 

@불기(佛紀, Buddhist Era)란?

불기는 석가부처가 입적(돌아가심)한 해를 기원(紀元)으로 잡는다.

석가부처는 구시나라의 사라쌍수라는 곳에서 80세에 입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고대 인도에는 객관적 서술로 기록된 역사서가 존재하지 않기에,

불타의 입적연대에 대해 많은 이설(異設)이 있다.

 

불기는 크게 남방불기와 북방불기로 나뉘는데, 이 둘은 약 5백년의 연대차이가 있다.

3 만 명이 넘는 제자를 둔 불타의 생몰연대에 대하여 어떻게 수백 년의 오차가 생길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불기

우리나라는 불교를 최초로 수입한 고구려 시대로부터 1962년까지 약 1300년 동안

석가부처의 탄생을 1027BCE, 입멸을 949BCE로 하는 북방불기를 사용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는 불탄 3038년, 불멸(불기) 2960년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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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아직도 우리나라 일부 사찰에서는 북방불기를 고수하고 있다.

 

고려 때 왕건이 세운 충남 연산의 개태사는 불탄을 기원으로 하는 북방불기(3007년=서기 1980년,

(일주문상량)와 불멸을 기원으로 하는 남방불기(불기 2542년=서기 1998년, 정문상량)을 함께 사용하고 있다.

 

@북방불기가 남방불기로 바뀐 계기

북방불기가 남방불기로 전격적으로 교체된 계기는 1956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우의회(WFB)에서 불교 각국의 통일적 불기사용을 의결한 것에 기인한다.

우리나라는 1962년 캄보디아에서 열린 제 6차 회의에 처음 참가한 후 남방불기를 채택했다.

이 회의에 이청담(1966년 6대 종정에 취임)등 3명이 참가하였다.

 

문제는 또 있다. 현재 세계불교도우의회가 확정한 불기는 서기 2011년이 2554년 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는 2555년을 사용하고 있다. 곧 다른 나라보다 불기를 1년 빠르게 적용하고 있다.

 

@남방불기와 중성점기(衆聖點記)

남방불기는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타이 등이 사용하고 있다.

석가부처의 생존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단서로 권위있는 것은 아쇼카 왕의 즉위연도에 근거한 것이다.

불멸연대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이 아쇼카 왕이 불멸 후 몇 년에 즉위하고 치세했다는 식으로 전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스리랑카의 전승에는 아쇼카왕의 즉위연대를 불타의 입멸 후 218년이라는데 근거하고 있으며,

반면에 카스미르의 전승은 아쇼카 왕의 즉위를 불타의 입적 후 100년(또는 116년, 160년)등으로 전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불멸연대는 589~543BCE설,

그리고 일본학자들과 유럽학자들에 의하여 주장된 488~370BCE설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60년에서 220년까지의 오차가 난다. 세계불교도우의회는 이중 543BCE설을 채택한 것이다.

 

일본 및 유럽학자들의 설을 뒷받침해 주는 기록은 중성점기(衆聖點記)라는 책이다.

이 책은 양(梁) 무제 때인 489CE에 승가발마가 중국에 와서 전한 선견율(善見律)이라는 경전의 다른 이름이다.

 

그 책의 권말에는 무수한 점이 찍혀 있었는데 이는 "부처가 열반하던 해로부터 시작하여

불제자 우바리가 한 점을 찍고, 이후로 스승과 제자가 대대로 전하면서 매년 한 점씩 찍어서

제(齊)나라 영명(永明) 6년 자신이 최후의 일점을 찍기까지 975점이다." 라는 것이다.

 

이를 추산하면 부처의 열반이 주나라 경왕 35년이고 486BCE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경전에 점을 찍는 것은 당시 결제를 마친 다음 행하는 연례행사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한지와 같은 우수한 품질의 종이가 없던 인도에서 거의 1,000여 년 동안 훼손됨이 없이

전승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것을 학설로 주장한 사람은 일본인학자 준지로 다카쿠스박사이다.

그는 중성점기를 번역하여 세상에 처음 내놓았으며,

그 당시 서양에서 유일한 불교사학자 빈센트 스미스가 이를 채용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북방불기와 법림법사

북방불기는 중국, 한국, 일본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서 사용하는 불기이다.

중국에서 석가불의 생존연대에 대한 논의를 정리한 자료로 흔히 인용되는 것은

수나라 때(597) 비장방이 지은 <역대삼보기>이다.

 

<역대삼보기>에는 고구려 평원왕 때 고구려의 승려 의연이 당시

북제의 이름 높은 법상에게 석가불의 생애와 불교사에 대한 질의에 대한 답변내용을 담고 있다.

이 내용은 후일 당나라 때 유명한 법림(法琳, 572~640)법사에 의하여 재확인되면서 북방불기로 굳어지게 된다.

 

@북방불기의 기원이 되는 의연과 법상의 대화

고구려의 대승상 왕고덕은 깊은 믿음을 간직하고 대승불교를 존중하였으며,

불교의 가르침이 나라 구석에까지 미치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시말과 연유, 서쪽에서 동쪽으로 온 연대와 제왕의 대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그 조목들을 적어 의연을 보내 배를 타과 업으로 향해 알지 못하는 것을 알아오게 했다.

그 조목의 대략은 다음과 같다.

 

 "석가불이 열반에 든 이래 지금까지 몇 년인가? 법상이 대답하였다.

"부처는 주 소왕 24년 갑인년에 태어나서, 19세에 출가하고, 30세에 성도하였다.

이때는 목왕 24년 계미년에 해당하는데 목왕이 서방에 화인(化人-부처)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곧 그곳으로 가서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으니, 이것을 징험으로 여긴다.

(그후) 49년 동안 세상에 머물다 멸도했으니 지금 제나라 무평 7년(서기 576년)까지 무릇 1,465년이다.

<역대삼보기 권 12 대정장 49, 104-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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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보조선사비>

우리나라 선종의 3조인 보조선사의 비를 보면 헌앙왕 3년(859년)이 석가입멸 후 1808년이라는

아주 귀중한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삼국유사의 불멸 949CE설과 일치한다.

현재 불기로는 동국선종 제3조의 역사를 수용하지 못한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남방불기의 핵심 쟁점

정통(正統) 조사(祖師)는 석가부처 이후 마하가섭부터 헤아려 28조 보리달마,

그리고 이후 육조 혜능까지 삼십삼명의 조사가 면면히 내려온다. 그런데 중성점기를 사용할 경우 33조사 중

적어도 아래의 9명이 빠지게 된다.

제1조 마하가섭존자, 제2조 아난존자, 제3조 상나화수존자, 제4조 우바국다존자, 제5조 제다가존자,

제6조 미차가존자, 제7조 바수밀존자, 제8조 불타난제존자, 제9조 복타밀다존자

 

첫째문제, 삽삼(33)조사와 연대기적 모순을 피할 수 없다.

1963년 한국불교가 새로운 불기를 채용하자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였다.

즉 중성점기를 바탕으로 한 불기를 사용한다면 석가부처는 10대 법손인 복타밀다존자의 사후 2년 뒤에 입멸하는

셈이 된다. 이 얼마나 넌센스인가? 대승불교의 근거가 되는 선사(禪師), 즉 조사(祖師)맥이 통째로 부정되는 것이다.

 

둘째문제, 다까구스의 설은 일본의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다까구스는 그의 저서 '아시아 민족의 중심사상(인도편)'에서 불멸기원이라는 제목아래 중성점기설을

채택하게 된 동기와 필요성을 자세히 밝혔는데 다음과 같은 엉뚱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일본의 기원(紀元)이 불(佛)보다 좀 오래되었고, 공자보다도 오래되었다.…

일본을 대승상응(大乘相應)의 땅이라 하여 모두 일본을 중심으로 하게 되므로,

일본의 연대를 말함에 있어서도 신무 천황이 석가여래보다 후가 되며 공자보다 후가 된다고 하면,

일본의 지위에도 관계가 되므로 다소의 차이를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 된다.

 

… 어느 기원이라도 다소는 틀린다. 야소교(기독교)의 기원에 있어서도 조금 틀린 것이 있다.

틀린 것이 있더라도 그것을 국가가 정한 것이라고 가르친 이상에는 그대로 행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에 연구를 주장하여 이것을 번복하려는 생각은 학자나 보통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것이니

그것을 우리는 심득(心得)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연대의 연구는 금물(禁物)이라고 생각한다.

전설은 연구의 결과에 너무 멀지 않은 것이 제일 바른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중성점기를 그대로 사용한다.…

일본에서 사용하는 전설은 그것과 틀리므로 그러므로 각 종(宗)이 나의 말하는 것을 채용하지 않는다.…

그 중에도 니찌렌과 신랑의 동료들이 가장 배척하였다."

 

마치 오늘날 교과서 왜곡을 주도하는 일본 우익의 논조를 대하는 것 같다.

신무천황이 석가불이나 공자보다 나중에 태어난다면 과연 일본의 지위가 격하되는 것일까?

그리고 학자를 비롯하여 보통사람은 왜 불기를 연구하면 안 된다는 것일까?

 

셋째문제, 남방불기를 사용할 경우 석가불은 공자보다 14살 연장이 되고,

노자보다 오히려 40살 연하가 되는 모순을 갖고 있다.

 

이럴 경우 공자나 노자는 석가와 동시대의 인물이 되어 서방에 대성인이 있다는 서승경(西昇經)이나

열자전(列子傳)같은 모든 기록들은 하루아침에 위서가 되고 만다.불기_00000.jpg

 

 

 [사진. 강원도 금강산 건봉사에 남아있는 북방불기의 흔적]

 

@말법시대의 실상

그러면 시대 탓일까? 불기(佛紀) 문제를 보면 시대에 대한 현주소가 나온다.

미래에 대한 석가부처의 예언말씀이 기록되어 있는 대표적인 경전은 <월장경>이다.

 

* 내가 사라진 뒤 5백 년까지는 그리고 모든 비구들이 나의 법에 있어서 해탈이 견고하려니와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바른 법에 선정삼매만이 견고하게 머물 것이며,

또 그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법에 있어서 많이 듣게 됨으로서 견고할 것이며,

그 다음 5백 년 동안은 나의 법에 있어서 탑이나 절을 많이 세우므로 견고히 머물 것이고,

 

그 다음 5백년은 나의 법에 있어서 힘 싸움과 말 다툼이 일어나 깨끗한 법은 없어지고

그 견고한 것이 줄 게 되리니 분명히 알아라, 청정한 사나이여,

그 뒤로부터는 비록 수염과 머리를 깎고 몸에 가사를 입더라도 금계를 파괴하고

법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비구라는 이름을 붙일 뿐이리라.

 

석가모니불은 5백년 마디로 불법이 점차 쇠퇴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자신의 사후 1500년이 지나면 법란(法亂)을 겪게 되고 파계 승가가 많이 출현하여

말법(末法)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이로 보면 북방불기이든 남방북방이든 이미 말법시대에 접어든지 오래다.

북방불기로 보면 갑인(甲寅, 1974)년이 불탄 3000년 올해(2011)는 3038년이 된다.

 

따라서 석가 입멸 후 1500년 후부터 시작되는 말법시대도 이제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이 때를 특히 오탁악세(五濁惡世)라 하여 경고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언론과 주변의 입과 귀를 통해서 보고 들어왔던 불법이 무너지고 승려가 타락하는 모습을

3천 년 전의 석가는 이렇게 적나라하게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 …우리 불법이 점차 무너지리라. 그 때엔 살아가기 위하여 중이 되고,

삼승(三乘)을 기원하지 않고 후세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짓말을 하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탐욕에다 명리를 추구하며 권력자에게 아부하고 타인을 질투하며,

학문 수행의 길에서 멀리 물러나고 선행도 하지 않으며, 낮에는 남의 욕을 하고 그것을 즐기며 밤에는 잘도 잔다.

 

@석가모니 부처가 제시한 인류의 희망은 과연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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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법주사의 미륵대불

신라 해공왕 때 진표 대성사가 동(銅)으로 조상(造像)하여 1천여  년 간이나 속리산 법주사를 지켜 오던

미륵불상은, 조선말 격동하는 역사의 세파 속에서 소실(消失)되고,

현재의 청동 미륵불상이 높이 33m의 세계 최대 규모로 1990년에 새로 조상되었다.

 

 

그것은 미래불이요, 구원의 부처요, 희망의 부처인 미륵부처님의 출세 소식이다.

 

말법시대가 극에 달하면, 미륵부처님이 지상에 내려와 온 인류를 구원한다는 것이 불교 구원관이다.

이것이 바로 소승(小乘)이나 대승(大乘), 남전(南傳)이나 북전(北傳) 할 것 없이

모든 종파를 초월해서 전하는 불교 구원관의 최종 결론이다.

 

미륵부처님의 출세시기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57억 6백만년설(『雜心經』), 56억 7천만년설

(『菩薩處胎經賢愚經』), 인수(人壽) 8만 4천세(歲)설(『長阿含經』)’ 등이 있는데,

모두 현실적인 감각의 시간개념과는 전혀 거리가 먼 내용들이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불경에는 숫자의 개념이 너무나도 허황되다.

 

 

@우담바라를 기다리며

<증아함경>과 <화엄경>에서는 석가부처 이후 3천년에 미륵불이 오신다고 하였다.

경전에 나오는 우담바라는 3천년에 한번 피는 꽃으로 사실은

석가 이후 3천년 만에 오시는 미륵불을 비유한 의미로 쓰인다.

 

그렇다면 남방불기의 채택은 혹 말법시대의 부담 때문에 나온 궁여지책은 아닐까?

불기(佛紀) 문제의 밑뿌리에는 미륵부처님이 우뚝 버티고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