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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일심의 이치를 잃음이 없는 완전한 현실수행


가령 현실의 행사에만 집착하여 근본이치를 미혹한다면
영겁토록 생사의 세계에 빠질 것이며

혹은 진여일심의 근본이치만을 깨닫고 현실의 행사를 잃은다면
완전한 깨달음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근본의 이치와 현실의 행사가 자기의 일심에서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치인 자성과 행사인 차별의 모습이 어찌 일심의 근본이념을 어기랴

가령 거울과 같은

근본이념으로 깨달아 들어가 진여일심의 이치를
단박에 깨닫는다면 오히려 근본이치의 표현 아님이 없는 문장이며
현실 행사 아님이 없음을 나타 낸 문장인데 어찌 이치와 행사에

그 어느 한쪽만을 집착하랴

단지 근본이치를 체득한 이후라도 근본 이치와
현실행사를 완전하게 함께 수행하는 일을 폐지하지 않을 뿐이다.

이는 어떤 학인이 본정화상에게 묻기를
<대사께서도 수행하십니까?>라고 하자

대사는 <나의 수행은 너의 수행과는 구별된다>
너는  현실사상  수행을 먼저 한 뒤에 근본자성을 깨닫게 되지만

나는 우선 근본자성을 깨닫고 난 뒤에 현실사상을 수행한다>라고
했던 경우와도 같다.


이런한 이유 때문에

가령 현실사상을 먼저 수행한 뒤에 깨달으면
이는 인위적으로 하는 집착심의 수행공부이므로
그 수행공부는 생멸하는 망상으로 귀결하겠지만

만일 우선 근본이치를 깨닫고 나서 그 이치를 현실사상으로
수행 전개한다면 이야말로 인위적 집착이 없는
수행공부여서 그 공부는 헛되이 버려지지 않는다.

가령 지혜로운 안목을 갖춘 사람이라면
이러한 이치에서 어찌 주제넘치게 허망한 마음을 내겠느냐

만일 눈 밝은 사람이라면 끝내 허망의 구덩이에 떨어지지 않겠지만

눈먼 선사로 어둡게 증득한 무리들이라면
미친 지혜로 문자나 따르는 고루한 선비가
어떻게 문자의 집착을 떠난 일심의 이치를 분별하랴

옛 사람들은 이 문제를 두고 말하기를
<일생당대에 깨달음의 일을 이룬다>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어찌 헛된 말이었으랴.

<종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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