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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닦는다는것은 한마디로 마음을 비우는것이다.

 

다시말해서 마음을 비우는것은 석가불교를 버리는것이요.

마음을 비우는것은 석가를 버리는 것이다.

 

마음을 비우는것은 절을 떠나는것이다.

마음을 비우는것은 묵은관념을 버리고 비우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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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 미륵불>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미륵불의 가르침이다.

 

묵은역사와 묵은관염 묵은불법비워야

새세상을 여는  미륵불의 가르침을 받아 들일 수 가 있는것이다.

 

그러므로 미련을 두지말고 단박에 모두 버려야 한다........

이것이 바로 백척간두 갱진일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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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

이제 온 천하가 대개벽기를 맞이하였느니라.


내가 혼란키 짝이 없는 말대(末代)의 천지를 뜯어고쳐 새 세상을 열고
비겁(否劫)에 빠진 인간과 신명을 널리 건져 각기 안정을 누리게 하리니
이것이 곧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

 

옛일을 이음도 아니요,
세운(世運)에 매여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처음 짓는 일이니라.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도
항상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쓰러져 가는 집에 그대로 살려면 무너질 염려가 있음과 같이

남이 지은 것과 낡은 것을 그대로 쓰려면 불안과 위구(危懼)가 따라드나니

그러므로 새 배포를 꾸미는 것이 옳으니라.

 

새 배포를 꾸미라
하루는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
“망하는 세간살이는 애체없이 버리고 새 배포를 꾸미라.

만일 아깝다고 붙들고 있으면 몸까지 따라서 망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42)

 

 


불교를 공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선 그 교전의 광대함과

그 속에서 전개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방편문의 기로에서

과연 어느쪽을 선택해 전진해야 할지  망연자실하지 않은 자가 아마도 거의 드물 것이다.

 

불자들은 흔히들 팔만대장경이라는 말로

불교의 방대심오함을 은근히 과시하는 말들을 곧잘 하지만

그러나 낱낱이 빠짐없이 모두 다 갖춘 여유로운 언어의 잔치가

어리석은 범부들에게 있어선 오히려 오리무중의 심리적 부담을 안겨주는 것은
정작 아이러니가 아닐는지....

 

그 방대화게 펼쳐지는 교전의 말씀들은

모든 중생들 각자가 처해 있는 차별적 상황들을 남김없이 그물질하여

그들 모두가 삼계생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안락한 열반의 경지로 도달하게 하려는
고구정영한 방편설이긴 하겠으나

 

그 풍요로운 완전함이 오히려 하근기의
중생들에겐 어리석음만을 더하는 병폐가 적지 않음은
오늘날에도 주위에서 흔히 보는일이다.

 

그러나 이처럼 절대평등한 근본이념에서

중생들은 그 둘이 아닌 진실한 일심의 이치를 미혹했기 때문에

부처를 간직한 중생이 되었고

모든 부처님은 보편평등하여  중생과 부처가 두 모습 아닌

일심중도의 근본이념을 깨달았기 때문에 중생의 일심을 떠나지 않은 부처가 되었던 것이다

 

팔만대장경에 수록된 부처님의 장광설과 역대 조사들이 후학에게 행해던
일체의 지시의 기연들이 이러한 근본이념을 밝혀주는 허구적이고

임시적인 방편의 언설에서 벗어나지 않았는데도
대다수의 불자들은 그러한 이치는 까마득히 어두운 생사의 길에서
반복 윤회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차별상이 끊긴 근본이념으로 돌이켜 관조해 본다면
그 자리는 신령하고 밝고 맑고 고요하기만 하여
모든 구별된 모습들이 일심진여의 세계에서 걸림이없이 융합소통하게 된다.

 

걸림없이 하나의 모습으로 용합소통하는 진여일심의 경지엔
망상의 분별로 일으키는 인위적인 작위가 없고
집착심으로 안주할 대상도 없으며  일심 밖에 따로 실재하는 수행과 증득의 모습도 없다.


따라서 그 어떤 번뇌의 티끌에도 오염됨이 없으므로
새삼스레 수행연마할만한 모습도 없는데, 바로 이러한 진여일심이 일체만유의 근본이념이 된다.

 

이처럼 간이명백하기만 하여

도무지 기로라곤 없는 근본이념이긴 하나
중생들이 처한 개별적인 상황을 따라서 그에 걸맞게 제시한 방편의  언어들은

너무나도 방대하게 서술되

 

백 권의 종경록 펴고 마주하는
사람이라면 미상불 장탄식을 하면서 망연자실한 채 물러나지 않음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저간의 이 책에 대한 인식이었다.

 

불교의 근본이념인 일심진여는

마치 밝은 거울처럼 그들 두 모습이 아닌 삼라만상의 실제 모습을 분명하게 비추며

따라서 부처와 중생 열반과 생사라는

상대적인 모습으로 떠오른 실제하지 않는  허구적인 명칭과 모습들은

그 거울에 비친 허상의 그림자일 것이다.

 

만법의 근본이념이자 그 자체이기도 한

진여일심은 고요한 경지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일체 존재하는 사물과 그 이치를

상황에 알맞게  관조하는 지혜의 광채를 항상 발현하면서도 그 자체는 늘 고요하기만 하다.

 

이러한 근본의 일심에서

그 관조하는 작용을 따라서 일어난 실재하는 모습
없는 허구적인 명칭뿐인 부처와 중생이라는 차별적인 언어와 그에 따른 

모습들은  그 근원인 근본이념에 있어서  애시당초 두 모습으로 대립된 차별이 없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두고 법화경에선
<종일 다른 사람의 보배를 헤아린들 끝내 자기 몫은 하나도 없다>고 하였다.

부처님 말씀은 일심이 그 근본이념이 된다.

 

팔만대장경 압축요약한것이 종경록 100권이며 이것을
다시 간략한 내용으로 한권의 책으로 묶은것이 종경록촬요이다.

종경록촬요 이끄는글 중에서.....

 

 

어느날  마음을 관조하며 종경록촬요를 읽는 과정에서 어렵기만 하든
불법이 어느날 문득 마음에 와닿는 깨우침이 있어  이렇게 핵심요점을 올려
마음을 닦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글을 올립니다.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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