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자들이 달력 개혁에 집착한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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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력은 서양력으로 기원전 3114년 8월에 시작해 2012년 12월21일 동지에서 5125년의 시간이 끝난다. <한겨레> 자료사진

[NIE 홈스쿨] 달력과 권력의 역사

새해를 맞이하며 준비하는 것 중에 하나가 달력입니다.

새 달력을 받아든 이들은 새해에는 ‘빨간 날’이 며칠이나 되는지, 자기의 생일은 무슨 요일인지 찾아보곤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언제부터 쓰이기 시작했을까요. 무심코 넘기는 달력이지만

그 역사를 살펴보면 달력에도 권력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나일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해 홍수가 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홍수가 난 다음 다시 홍수가 나기까지는 평균 365일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365일이라는 시간을 똑같이 나누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양 손가락 모두를 사용해 셈할 수 있는 10일을 하나의 주기로 삼았던

고대 이집트인들은 365일에서 5일을 뺀 360일을 기준으로 12달을 나누었습니다.

 

나머지 5일은 1년의 마지막으로 미뤄두고,

5일만으로 된 열세번째 달을 만들어 ‘에파고메네’라 불렀습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축제와 제사의 기간으로 보내는 한편 곧 다가올 나일강의 범람에 대비해 제방을 쌓고 수로를 닦기도 했습니다.

 

당시 고대 이집트인들은 실제로 1년이 365일에 더해 1/4일 더 길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1년 단위로 보면 1/4일이라는 시간은 짧지만 100년이 지나면 25일, 400년이 지나면 100일이 차이가 납니다.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점점 나일강의 범람 시기와 어긋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일강 가에서 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혼란에 빠졌지만, 당시의 제관들은 홍수 예보 시스템을 알고 있었습니다.

나일강이 범람할 무렵인 7월 중순이 되면 새벽하늘에 시리우스 별이 유난히 밝게 빛난다는

천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당시의 제관들은 농민들에 대한 지배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발생하는 나일강 범람
미리 알려준 고대 이집트 달력
로마 집정관에 빨리 취임하려고
11월을 1월로 바꿔버린 카이사르
16세기에 만들어진 그레고리력
개신교 국가들은 거부하기도

 

시리우스 별 덕분에 나일강의 범람은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고대 이집트의 달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절의 변화와 동떨어져 갔습니다.

기원전 246년 이집트 왕위에 오른 마케도니아 혈통의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이집트 달력 개혁에 나섰습니다.

그는 기원전 238년에 윤년제도를 만들어 4년마다 하루씩 날짜를 추가해

이집트 달력의 오차를 바로잡으라는 ‘카노푸 포고’를 내립니다.

 

5일로 이루어진 열세번째 달 ‘에파고메네’를 4년마다 한번씩 6일로 셈하는 방식입니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윤년제도의 시작인 셈입니다. 이제 농민들은 제관의 홍수 예보 없이도 스스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달력 개혁은 얼마 못 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 이전부터 달력을 관장했던 제관들이 마케도니아라는

외래 혈통을 이어받은 파라오의 명령을 무시했던 때문입니다.

 

그로부터 약 200년 뒤인 기원전 48년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를 쫓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상륙해 이집트의 윤년제도를 접하게 됩니다.

원정에서 돌아온 카이사르는 로마의 달력 개혁에 착수합니다.

 

당시의 로마 달력은 대제관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좌지우지되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세금을 더 받기 위해 해를 늘리는가 하면, 새로운 임기가 더 일찍 시작되도록 날수를 줄이기도 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로 바빌로니아에서는

세금을 더 많이 거두기 위해 태양력보다 태음력을 선호하기도 했습니다.

달의 공전 주기인 29일을 따르는 태음력은 한해의 길이가 354일로, 1년이 365일인 태양력보다 11일이 짧습니다.

태음력으로 한 해를 세면 약 2.75년 뒤에는 한 달이 더 생겨 그만큼 더 많은 세금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카이사르는 옛 달력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칙령을 내리고,

기원전 45년 11월1일을 율리우스 달력의 기원으로 삼았습니다. 들쑥날쑥했던 1년의 길이를

365.25로 정하고, 4년마다 366일이 되는 윤년제도를 도입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영어식 달 이름도 카이사르 달력 개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대 로마의 달력에서 1월을 뜻하는 ‘마르티우스’(martius)는 현재의 3월(March)로, 2월인 ‘아프릴리우스’(aprilius)는 지금의 4월(April), 3월을 뜻하는 ‘마이우스’(maius)는 5월(May)의 어원입니다.

 

그런데 고대 로마에서 1월을 뜻했던 ‘마르티우스’가 지금은 왜 3월의 달 이름으로 옮겨왔을까요.

달력 개혁에 나섰던 카이사르가 새해의 시작을 당시의 1월이었던 ‘마르티우스’에서 11월인

‘야누아리우스’(januarius)로 옮긴 때문입니다.

 

새해가 되면 집정관에 취임하는 카이사르가 ‘마르티우스’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11월인 ‘야누아리우스’를 새해의 시작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의 1월은 당시의 11월이었던 ‘야누아리우스’가 어원인 ‘재뉴어리’(January)가 된 것입니다.

 

카이사르가 만든 율리우스 달력에도 허점은 있었습니다.

율리우스 달력은 1년을 365.25일로 정해 4년마다 하루를 더하는 방식을 따랐지만,

실제 지구가 태양을 도는 데는 365.2422 정도가 걸립니다. 매해 11분 14초라는 차이는 16세기에 이르자

무려 10일이라는 오차가 생겼습니다. 1572년 교황에 즉위한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이러한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한 달력 개혁에 나섭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력’의 탄생입니다.

그는 1582년 10월4일의 다음날을 10월15일로 정하는 방식으로 10일의 오차를 없앴습니다.

4년 주기의 윤년은 그대로 두었지만 1700년, 1800년과 같이 100으로 나누어지는 해에는 윤년을 두지 않되,

400으로 나누어지는 1600년과 2000년은 다시 윤년을 두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그레고리력 도입 초기, 가톨릭 국가들은 교황의 명에 따라 새로운 달력을 따랐지만

개신교 국가들은 율리우스 달력을 고집하며 저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달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한제국 시절인 1895년 9월9일 고종의 명에 따라

그해 음력 11월17일을 양력 1월1일로 삼으며 그레고리력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교과서 펼쳐보기 | 세종의 칠정산

천문현상은 하늘의 뜻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파악하는 데 조금도 소홀함이 없어야 했다.

더욱이 하늘의 명령, 곧 천명을 받은 자가 통치자가 되고, 그것으로부터 땅의 질서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재상이 천문학을 연구하는 서운관(관상감)의 최고 책임자가 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공들여 천문 과학을 연구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조선은 우리 나름의 역법을 만들어 냈다.

<칠정산>은 간의·혼천의·앙부일구(仰釜日晷·해시계)·자격루(自擊漏·물시계) 등 열다섯 가지 천문 관측 기기를

이용하여 한성을 기준으로 한 날짜와 시간을 계산해 낸 덕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칠정산>에서 한 달의 길이를 29.530593일로 잡았는데,

이는 오늘날의 29.530888일과 거의 같다. <칠정산>이 만들어진 1442년에 자기 땅을 기준으로

한 천문 관측 및 시간 측정 방법을 가진 민족은 세계에서 중국과 이슬람 지역, 조선뿐이었다.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휴머니스트, 188쪽)

 

 

책으로 확장하기 | 프랑스 혁명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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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 프랑스 혁명을 이끈 혁명가들은 달력과 시간 배분의 개혁도 더불어 진행하였다.

달과 해, 날짜, 그리고 시간과 분의 분배도 개혁 대상에 오르게 된 것이다. 1793년 10월5일 국민회의가 소집되어

완전히 새로운 시간계산법을 통과시켰다.

 

1년의 시작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은 날, 즉 추분(9월22일)에서 시작하며,

1년은 30일씩 균등분배해 12달로 나눈다. 각 달의 이름은 1월은 포도 수확의 달(방데미에르),

2월은 안개의 달(브뤼메르), 3월은 서리의 달(프리메르), 겨울이 시작되는 4월은 눈의 달(니보즈) 등으로 정했다.

 

10진법으로 나누어 남은 5일은 프랑스 혁명 세력의 이름을 따라 ‘상퀼로티드’라고 통칭했다.

혁명 달력에서 가장 혁명적인 내용은 7일로 된 일주일의 폐지였다. 7일 주기로 맞춰진 교회의 의례를

따르지 않으면서 교회의 지배를 벗어나겠다는 혁명 정신을 반영한 것이었다.

 

거세게 반발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었다.

그동안 6일 일하고 하루 쉬던 것이 9일 일하고 하루 쉬게 되면서 1년에 휴일이 52일에서

36일로 1/3 이상 줄어든 때문이었다.(<달력과 권력>, 부키, 123~133쪽 가운데)

 

 

논제로 정리하기 | 시간의 의미와 기능

2003학년도 연세대 정시 논술에서는 ‘여러 측면의 시간 인식을 적용하여,

개인적·사회적 관점에서 시간의 의미와 기능을 논술하시오’라는 논제가 출제되었습니다.

 

여러 측면의 시간 인식이란 단순히 몇 시, 몇 분과 같은 물리적인 측면뿐 아니라 시간을 개념화하는

철학적 사고, 인간의 생활을 통제하기 위한 시간의 활용 등과 같은 차원을 고려하라는 것입니다.

 

달력은 해와 달, 지구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달력의 역사는 곧 권력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시간과 달력은 정치·사회적 산물이라는 측면에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김영우 기자 kyw@hanedu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