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物外篇 下之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은 대개 사물의 이치를 밝힌 것이다.

 

지금 어떤 사람이 두 개의 대臺에 올라간다고 하자.

만일 두 개의 대臺가 높이가 똑같으면 높음을 알지 못한다.

한 개의 대臺가 높고 다른 한 개의 대臺가 낮은 뒤에야 높고 낮음을 알 수 있다.

 

학문이 즐거움에 이르지 아니하면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한 나라와 한 가정과 한 몸은 모두 같다 .

한 몸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한 가정을 감당할 수 있고

한 가정을 감당할 수 있으면 한 나라를 처리할 수 있으며

한 나라를 처리할 수 있으면 온 세상을 감당할 수 있다.

 

마음은 몸의 근본이고 가정의 나라의 근본이며 나라는 천하의 근본이다.

마음은 몸을 부릴 수 있는데 만일 마음이 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몸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정신은 감추고 쓰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만일 밖으로 내보이면 손상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예컨대 날카로운 칼로 물건을 벨때 만일 칼의 날카로움만 믿고 물건을 베려고 한다면

칼과 물건이 모두 망가지는 것과 같다.

 

말이 거짓 없는 참된 정성에서 나오면 마음은 수고롭지 않고 편안하며 남이 오래도록 믿는다.

거짓된 술수로 한때 남을 속일 수 있을지라도 오래지 않아 반드시 망하게 된다.

 

사람은 덕德이 있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바 소인 가운데도 재주가 있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재주는 믿을 수 없고 덕德은 얻기가 어렵다.

 

하늘 · 땅 · 해 · 달은 그지없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멀리 있는 것은 감당할 수 있지만 가까이 있는 것은 보지 못한다.

 

군자는 시골에 살면 시골의 일을 하고 조정에 있으면 조정의 일을 한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서든 스스로 만족하지 않음이 없다.

 

슬기로운 꾀는 더러 한 왕조에서 시행될 수 있으나 대개 때와 끝남이 있다.

오직 지극한 정성만이 하늘땅과 더불어 끝없이 오래간다.

하늘땅이 없어지면 지극한 정성도 사라지게 된다.

만일 하늘땅이 없어지지 않으면 지극한 정성도 사라지지 않는다.

 

집안에서 수레를 만들더라도 온 세상에 널리 쓰이게 되는데 수레바퀴가 서로 꼭 들어맞기 때문이다.

만일 의리義理에 따르고 인정人情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해와 달이 비추는 모든 곳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용中庸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땅 속에서 솟아나는 것이 아니고,

사물의 이치를 헤아리고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알며 그 마땅한 바를 행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온 세상의 슬기를 거두어 모아 지智로 삼고

온 세상의 착함을 거두어 모아 선善으로 여기면 넓고, 자기 것만을 쓰면 작다.

 

한漢나라의 선비들은 경經에 반反하고 도道에 부합하는 것을 권權이라고 하였는데 일단을 얻은 것이다.

권權은 무게를 고르게 하는 것이다.

 

성인이 권權을 사용할 때 그 무게를 헤아려 쓰기 때문에 그 마땅함에 들어맞는다.

그러므로 집중執中하였더라도 권權이 없으면 오히려 한쪽으로 치우치게 된다.

 

왕통王通이 말하기를 『춘추春秋』는 왕도王道의 권權이라고 하였는데

왕통王通이 아니면 여기에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권權은 한 몸에 있으면 한 몸의 권權이 되고 한 고을에 있으면

한 고을의 권權이 되며 천하에 이르러서는 천하의 권權이 된다. 쓰임이 비록 다르더라도 권權은 하나이다.

 

무릇 활에는 본디 세고 약함이 있다.

그러나 하나의 활을 두 사람이 잡아당기더라도 활이 세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므로 힘있는 사람은 자신의 힘이 남기에 활이 약하다고 여기고 힘없는 사람은

자기의 힘이 모자라기에 활이 세다고 생각하는데 어찌 생각이 심하지 않은가?

 

활에 세고 약함이 있지 아니하고 두 사람의 힘에 세고 약함의 다름이 있을 뿐이다.

지금 한 대접의 음식이 앞에 놓여 있다고 하자.

 

두 사람이 너무 굶주리고 있다가 보았다면,

만일 서로 양보를 한다면 똑같이 음식을 먹을 수 있지만 서로 빼앗기 위해 다툰다면

싸움이 벌어질 뿐만 아니라 그 음식을 먹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 둘은 모두 사람의 정情이다.

이것을 아는 자는 적고 이것을 알면 온 세상의 일은 모두 이와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역易은 성인이 군자를 많게 하고 소인을 적게 하는 수단이다.

많게 함에 있어서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에 도와야 하고 적게 함에 있어서

아직 그렇게 되지 않았을 때에 막아야 한다. 한 번 적게 하고 한 번 많게 하며,

 

한 번 막고 한 번 돕는 것은 크고 넓어서 흔적이 없다.

천하의 지신至神이 아니면 그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는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