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物外篇 下之四

 


 

의義를 중히 여기면 안을 중시하고 이利를 중히 여기면 밖을 중시한다.

 

태兌는 `기쁘다`는 뜻이다. 다른 기쁨은 모두 해로움이 있다.

벗과 더불어 학문을 익히는 것보다 더한 기쁨이 없다. 그러므로 그 지극한것을 말하는 것이다.

 

천리天理를 좇아 움직이는 것은 조화造化가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학문이 하늘과 사람에게 이르지 않으면 학문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군자는 역易에서 상象 · 수數 · 사辭 · 의意를 연구하고 생각한다.

 

일반 의사가 고칠 수 있는 병에 능하다고 해서 양의良醫라고 부르지 않으며,

일반 의사가 고칠 수 없는 병에 능해야 천하의 양의良醫이다.

사람이 불가능한 일에 처하게 되면 불가능한 일을 해내게 된다.

 

사람은 스스로 노는 데에 정신이 팔리는 것을 두려워한다.

노는 데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발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왕禹王은 노는 것과 일 없이 쉬는 것을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진 이 이지만 배움에 힘쓰면서

늘 모자라고 깊은 데에 이르지 못하는 것같이 여겼기 때문에 존귀하게 되었다.

 

사람이 참되게 마음을 쓰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다.

다만 많고 적음의 다름이 있고 지식이 깊고 얕음이 있을 뿐이다.

 

이치를 깊이 파고든 뒤에야 성性을 알 수 있고,

성性을 깨우친 다음에야 명命을 알 수 있으며 명命을 안 뒤에야 지극함을 알 수 있다.

 

무릇 잃은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으면, 설령 얻었더라도 또한 기쁘지 아니하다.

만일 얻은 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잃을 경우, 잃으면 난처해지고 반드시 곤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사람은 덕기德器를 가진 뒤에는 기쁨과 노여움이 모두 거짓됨이 없게 되고 재상도 되고 필부도 되며,

학문이 천하보다 높은 데에 이르렀지만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사람은 반드시 안이 무거워야 하는데 안이 무거우면 밖은 가볍다.

만일 안이 가벼우면 반드시 밖은 무겁다. 이익과 명예를 좋아하면 이르지 않는 데가 없게 된다.

 

 

 

 

 

천리天理를 깨달으면 몸만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도 윤택해지며, 마음만 윤택해지는 것이 아니고 성性과 명命도 윤택해진다.

 

세상에 책을 본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잘 보는 사람은 적다.

만일 천리天理와 참된 즐거움을 깨달았다면 어떤 책이라도 보지 못할 것이 없고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깨뜨리지 못할 것이 없으며 어떤 이치라도 정밀하지 않으리오.

 

역曆은 잘못이 있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역曆을 배우는 사람들은 역법曆法만 알 뿐 역리曆理는 알지 못한다.

 

산가지를 펼칠 줄 알았던 사람은 낙하굉落下? 이고

천문天文을 미루어서 셈할 줄 알았던 사람은 감공甘公과 석신石申이었다.

낙하굉은 다만 역법曆法만 알았고 양웅揚雄은 역법曆法도 알고 역리曆理도 알았다.

 

1 년年의 윤閏은 6 음陰 과 6 양陽이다.

3 년에 36 일이 남으므로 3 년마다 한 번의 윤년閏年을 두며,

5 년에 60 일이 남으므로 5 년마다 두 번의 윤년閏年을 둔다.

천시天時 · 지리地理 · 인사人事 이 세 가지를 알면 바뀌지 않게 된다.

 

자성資性을 얻는 것은 하늘이고 학문으로 얻는 것은 사람이다.

자성資性은 안에서 나오고 학문은 밖에서 안으로 들어온다.

스스로의 정성[誠]으로 밝아지는 것은 성性이며, 스스로의 밝음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은 학문이다.

 

안회顔回는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아니하고 똑같은 잘못을 두 번 되풀이하지 아니하였는데,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고 잘못을 되풀이하는 것은 모두 정情이고 성性이 아니다.

성명性命에 이르지 못하면 학문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다.

 

백이伯夷와 유하혜柳下惠는 성인의 한 부분을 얻었는데

백이伯夷는 성인의 청淸을 얻었고 유하혜柳下惠는 성인의 화和를 얻었다.

공구孔丘는 청淸할 때도 있고 화和할 때도 있었으며,

행行할 때도 있고 멈출 때도 있었으므로 성인의 시時를 얻었다.

 

태현太玄은 9 일은 2 괘卦와 같고 나머지 1 괘卦는 4 1/2 일과 같다.

양웅揚雄은 『태현太玄』을 지었는데 하늘땅의 마음을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군사를 부리는 방법은 반드시 백성이 잘살고 곡식창고가 꽉 차며

무기고에 무기로 가득하고 병사가 굳세며 명분이 바른 것을 기다려

하늘의 도움이 있는 시기에 따르고 땅의 이로움을 얻은 뒤에 움직이는 것이다.

 

역易은 형체가 없다. 가로되 이미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은 형체가 있는 것이다.

형체가 있다고만 하는 것은 안 되는바, 고로 전요典要라 하는 것은 불가하다.

이미 법칙이 있으니 불변의 상常인 것이요, 전요典要라 하는 것이 불가함은 변變이 된다.

 

장주莊周의 웅변은 수천 년 동안 한 사람뿐이었다.

예컨대 포정이 소를 잡으면서 말하기를 머뭇거리며 이곳저곳을 찬찬히 살펴본다고 한 것과

공구孔丘가 여량呂粱의 물을 보며 말하기를 촐랑촐랑 흘러가는 저 물은 사사로움이 없다고 한 것은

모두 지극히 이치에 맞는 말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