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중시하지 않는 민족은 존속할 수 없다.


역사는 국가 존속의 기반이다
개인의 역량이 커지면 사회의 역량이 커지고, 국민의 역량이 커지면 나라의 역량이 커지게 된다.

개인, 단체, 사회 등의 역량은 자신들이 스스로 노력한 것으로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노력에 의한 것과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의 지혜가

쌓인 결과물이 합쳐져서 현재의 역량이 된 것이다.


수학을 잘하는 사람은 과거 피타고라스나 가우스와 같은 수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법칙을 배워

자신의 능력을 키울 수 있었고, 과학을 잘하는 사람은 뉴턴이나 페르미와 같은 물리학자들의 연구 업적이

없었다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수 없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개인은 선조로부터 이어온 유전자와 가풍이 개인의 역량에 영향을 미치고,

단체는 단체의 업적이 쌓여 현재에 이르는 것이며, 학문은 전습(傳習)에 의해 발전해 왔고,

나라는 모든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예술 · 군사 등이 통합된 역사에 의해 존속된다. 또한 현재 개인이나

사회의 역량은 미래의 후손이나 후배들에게 밑거름으로 이어진다.


인류 사회는 그 역량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발전과 쇠퇴, 그리고 흥망의 과정을 밟아 왔다.

그러한 사실을 역사라고 한다. 인류뿐만 아니라 어떠한 사물이나 사실이 존재해 온 연혁도 역사라고 하며,

자연 현상이 시대를 따라 변화해 온 것도 역사다.


역사는 국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조직이나 단체는 선배가 후배에게

지식과 경험과 기술을 전수해 그 조직의 역사를 이루게 된다. 학문의 역사도 역시 중요한 의미가
공자가 유학을 창시했지만, 과거의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지 못했다면 그 업적을 이룩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는 과거에 산재해 있던 유학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고, 그

 자료들 중에서 뺄 것은 빼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는 첨삭의 작업을 거쳐서 체계화하고

집대성함으로써 유학의 창시자가 되었다.


공자는 삼대라 불리는 하(夏), 은(殷), 주(周) 세 나라를 이상적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질서를 따라 당시의 혼란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했다. 그러나 하나라와 은나라의 문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당시에 널리 사용되고 있던 주나라의 예를 바탕으로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이와 같이 역사는 근거가 없으면 믿을 수 없다.

증거가 될 만한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가 사라지게 되면 역사는 단절되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보존과 전수는 한 나라나 민족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로 전통과 역사는

보존되고 계승되어야 한다. 우리가 역사와 전통문화를 소홀히 하고 잊어버리게 된다면

우리 민족과 나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논어》 〈위정 제23장〉에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장이 “열 개의 왕조 뒤의 일을 미리 알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은나라는 하나라의 예를 계승했기

때문에 가감한 내용을 알 수 있고, 주나라는 은나라의 예를 계승했으니 가감한 내용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라와 은나라의 역사에서 가감한 내용들을 연구하면

백 세대 이후의 문화라도 알 수 있다”고 했다. 계승은 사덕(四德)과 오상(五常) 관계를 말한 것이며,

가감했다는 것은 그 세부적인 내용들을 말한 것이다.


사덕과 오상은 유학에 있어서 정신적인 뿌리이자 큰 줄기다.

과거와 현재의 역사를 알면 우리 미래 세대의 역사까지 간파할 수 있다. 이처럼 역사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특히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는 우리 정신의 뿌리와 줄기에 대한 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역사가 갖는 가치는 대단히 중요하다.


첫째, 과거를 분석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둘째, 과거와 현재의 업적으로 일궈 낸 역사는 다음 세대에게 더 발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지만,

과실의 역사는 다음 세대에게 짐이 되어 버린다.

셋째, 선조와 자신과 후손과의 영속성을 갖게 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사도 천도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물들 중 하나로서 자체 생명력이 있다.

그 생명력이 선조와 후손의 생명의 계승이다. 그 생명은 생물학적인 생명도 있지만,

학문적, 문화적 생명 등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수천 년 동안 나라를 잃고 방랑하던 유대 민족과

집시 민족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생물학적인 생명은 두 민족 모두 선조들을 계승했지만,

역사의 생명력을 보전했던 유대 민족은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러나 집시 민족은
역사의 생명력을 상실해 여러 나라에 흩어져
그 나라의 일부분이 되었지만, 문화적 이질감을 이유로 천대를 받고 살고 있다.

그래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이 말을 들으면 신채호 선생이 떠오른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를 저술했다. 《조선상고사》는

단군 시대부터 백제의 멸망과 그 부흥운동까지를 서술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고려 시대 김부식(金富軾)이 저술한 《삼국사기》와

그 뒤의 대부분의 역사책이 한국사의 본격적인 전개 시기를 삼국 시대 이후로 보았기 때문에,

우리민족의 역사적 무대를 한반도와 만주 일부에 국한시켰다.


또한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있을 때 한국사를 왜곡하기 위해

식민주의 사관을 조장함으로써 한국사의 전개 무대를 한반도 내로 축소시켰다.”

우리나라에서 고대사의 정사(正史)라고 말하는 《삼국사기》는 소실된 상고사를 재편찬해

거란과 여진의 침입을 막은 자신감과 민족적 자긍심을 키울 목적으로 편찬되었기 때문에 왜곡된 역사만을

기술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김부식은 유교적 이념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대주의 사상을 갖고 있었으며,

신라 왕조의 후손이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백제 등의 역사와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를 축소시킨 것은 사실이다.

단군의 역사는 단군 신화가 아닌 단군 설화다.


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없는 내용을 상상에 의해 만들어 낸 이야기이고,

설화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사실을 신비스럽게 꾸민 이야기다.


고조선 시대에 유물을 근거로 해서
그 시기에 사용했던 수레바퀴의 크기만 보더라도

우리민족의 역사의 무대는 신채호 선생이 주장했던 강역이 옳다고 판단된다.


역사 편찬에 있어서 정사도 승자의 역사에 치우치고,

저자 자신의 이념에 맞춰 저술하기 때문에 완벽할 수는 없다.

재야의 역사서도 역시 개인적인 주장이 강하게 이입되어서 서술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완벽할 수 없다.

그래서 과거의 정사와 야사를 모두 고려하고 유물과 유적 등을 참고해서 중용에 입각해

정확한 판단으로 잃어버린 역사를 회복해야 한다.


우리와 시간적으로 거리가 먼 고대사는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그 시대의 웅대했던 역사를 알게 되면 우리 청소년들에게 자긍심을 심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부족하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다.


일본은 삼국 시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고,

우리 민족이 항상 주변국에 의지했다고 주입해 우리에게 역사적 패배의식을 갖게 했다.

그것은 과거 자신들의 문화적 열등감을 해소하려는 발로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또한 중국은 동북공정을 진행해 고조선,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자신의 변방 역사에 귀속해

대한민국 통일 이후 역사와 영토 분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고 하고 있다.


이러한 주변국들의 행태는
우리의 과거 영토를 축소시켜 역사의 뿌리를 없애고,

민족문화의 자긍심을 없애버림으로써, 우리 스스로 문화적 약소국이라는 자괴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를 둘러보아도 문제점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한 나라의 수도로서 50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는 서울에는 중심가의 북촌과 서촌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한옥이 사라져 버렸다.


중세의 건물들이 보전되어 있는 유럽을 보면 감탄하면서

우리의 전통 가옥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먼저 생각한다.


식생활이 좋아짐에 따라 체형이 변했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성형수술로 서구 스타일의 얼굴로 바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람들을 서구적 체형, 혹은 이국적 미인이라고 하면서 우월한 유전자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서구는 우월하고 우리나라와 동양은 열등하다는 의식이 은연중에 우리의 생활 속에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러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열등감은 자기 스스로 비하하고, 내부적인 발전의 동력을 약화할 뿐이다.

외국에서 시작하는 것들은 신뢰를 갖게 되고, 우리가 시작하는 것들은 의심을 하게 된다.


이러한 열등감은 자신이 표준이 되지 않고, 남의 표준에 의지해 살아가려는 습성을 만든다.

이것은 본인과 자신이 사는 사회에 대한 가치관을 상실하게 한다. 이것이 바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노렸던 결과다.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항상 강하게 드러내면서,

일제가 원했던 모습을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일제로부터 독립한 이후에 친일 세력을 정리하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렀기 때문에 지역감정에 더해

내부적 갈등으로 작용하고 있다.


독립 당시의 정권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친일 세력과 야합을 했기

때문이지만 민족의 대통합을 위해서 지금이라도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절실하다.


이러한 과거의 역사적 과실을 현재 우리가 바로잡아야 후손에게 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완용이나 독립군에게 직접 위해를 가한 인물들을 확실하게 규명해서 처리해야 한다.


그러나 너무 사소한 것까지 친일로 매도해 버리면,

한 세대의 기간을 넘는 일제 강점기에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친일세력이 아니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보다는 현재 경제적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독립운동가 자손을 빠짐없이 찾아내서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과거 친일 세력의 청산에 대해 국격(國格)에 맞는 역사인식을 갖는 것이며, 시중이며, 중용이다.


서구의 발전된 과학과 문화는 존경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보다 우선되어야 할 것은 단절된 진취적인 민족정신과 독창적인 민족문화를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재정립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 국가와 민족의 생명과 다양한 문화들을 보전하기 위한 적극적인 일이 된다.

또한 재정립된 역사를 바탕으로 도덕, 과학, 예술 등을 발전시켜 국제적인 중심 국가가 되는 역사를 이룩해

그것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만을 위한 국수주의가 아니라
민족을 먼저 보전하고, 이후에 세계를 보전하는 차등된 예의 실천인 것이다.


유학도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ᆞ

과거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지도 계층의 잘못에 의해서 나라가 힘들어지면, 왕조가 바뀌거나

외세의 침략을 받게 된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도 굴하지 않고 나라를 지킨 것은 민초들이었다.


또한 만주 대륙을 중심으로

동아시아 패권을 잡았던 고조선, 고구려, 발해, 해상권을 장악했던

백제 등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그를 믿고 따르던 백성이 있었기 때문에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은 강압에 의하지 않고 솔선수범으로 이끄는 것이다.

전쟁에서 전투를 치를 때 지도자가 앞장서고, 상황이 좋지 않아 퇴각할 때에는 지도자가 최후의 방어선을

지킨다면그 군대의 결집력은 깨뜨릴 수 없다. 중심에 있는 사람은 항상 균형이 유지될 수 있도록

스스로 중심을 잡고 조직의 조화를 이끌어 내야 한다.


천하에 왕 노릇을 하는 것에 세 가지 중요한 것이 있으니, (이것들을 잘 행하면) 그 허물이 적을 것이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비록 잘할지라도 징험할 증거가 없으니, 증거가 없으면 믿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아래에 있는 사람이 비록 잘할지라도 존귀하지 못하기 때문에, 존귀하지 못하면

믿지 않고, 믿지 않기 때문에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자신의 몸을 근본으로 해 백성에게 징험하게 하고,

삼왕에게 상고해도 틀리지 않으며, 천지에 세워도 어그러지지 않으며, 귀신에게 질정해도 의심이 없으며,

백세에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을 받지 않는다.


귀신에게 질정해도 의심이 없다는 것은 하늘을 아는 것이고,

백세에 성인을 기다려도 의혹을 받지 않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군자는 동함에 대대로 천하의 도가 되는 것이며, 행함에 천하의 법이 되는 것이며,

말함에 천하의 준칙이 되는 것이다. 멀리 있으면 우러러보게 되고 가까이에 있으면 싫지 않다.

 

“천하에 왕 노릇을 하는 것에 세 가지 중요한 것”이란

예를 논하는 의례(議禮), 제도(制度) 그리고 고문(考文)이다. 천도에 따른 성(性)이 인간관계에서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은 예에 의거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혜와 자신이 판단하는 의리,

그리고 상대방을 생각하는 마음은 예를 통해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는 예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하고 실천하라고 일렀다.


많은 사람이 공존하고 있는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따라야 할 기준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개인의 주관적인 생각이 서로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예ㅁ 는 질서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질서와 관련된 백성의 행동에 대해 상벌을 행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제도도 필요하다.

이러한 것들은 공통된 문자와 표현으로 백성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통치자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근거와 논리성이 없으면 백성은 따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왕권체제하에서는 절대 권력을 갖고 있는 천자만이 그 권한을 갖고 있었다.

하은주(夏殷周) 삼대 이후도 예에 대해 논의를 하고, 제도도 존재했고, 문자도 있었지만 단지 명분에 불과했다.

또한 춘추 전국 시대의 제후들과 대부들은 그것을 존귀하게 생각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제후들의 하극상이다.

제후들이 이 세 가지를 신뢰하지 않자 백성 또한 따르지 않았다.

백성이 따르지 않으면 질서가 문란해지고 세상이 혼란스럽게 된다.


그래서 당시 제후들이 자신이 비록 잘한다고 주장해도

역사를 비추어 볼 때 과거에 성덕을 베풀었던 왕들과 비교해 보면 지위에 따른 정명(正名)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뢰성이 없었다. 이로 인해 백성이 따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말로만 백성을 위한다고 주장하지 말고 중용에 따라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지도할 만한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도 지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지 못하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역량이 있는 사람이라도

반드시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위치를 확보한 이후에 일을 처리해야 하며,

역량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중심에 서게 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먼저 수신을 통해 사람다운 사람이 된 이후에

삼대의 왕들과 같이 이 세 가지를 존귀하게 생각하고 실천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의례와 제도, 고문은 신뢰를 받게 된다.


이렇게 되면 삼대의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무왕(文武王) 등과 비교해도 그 덕행이 다르지 않다.

이러한 덕행은 한결같은 천지자연의 모습과 다름이 없어서 귀신조차도 그것을 의심하지 않을 정도가 되며,

이러한 군주가 있다면 사람들은 백 세대 뒤에는 이러한 군주보다 나은 성인이 반드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하므로 군자가 어떤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그것이 인간 세상의 도가 되어 법이 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세상에서 반드시 따르고 지켜야 할 준칙이 된다.

그러한 군자는 윗자리에 있을 때 거만하거나 교만하지 않기 때문에 우러러보게 되고,

가까이 있어도 싫어하지 않게 된다는 의미다.


중니(仲尼)는 요임금과 순임금을 조종(祖宗)으로 전술하시고,

문왕과 무왕을 헌장(憲章)하시고, 위로는 천시를 따르시고, 아래로는 수토(水土)를 따르셨다. 비유하자면,

하늘과 땅에 싣지 않음이 없고, 덮어 주지 않음이 없는 것과 같다.


또 비유하자면, 사시(四時)가 교대로 운행함과 같으며,

일월(日月)이 교대로 밝은 것과 같다. 만물이 함께 길러져 서로 해치지 않으며,

도가 함께 행해져 서로 어그러지지 않는다. 소덕(小德)은 냇물의 흐름이고, 대덕(大德)은

돈독하게 화하는 것이니 이것이 천지가 위대하게 되는 것이다.


仲尼 祖述堯舜 憲章文武 上律天時 下襲水土 辟(譬)如天地之無不持載 無不覆幬 辟如四時之錯行 如日月之代明 萬物
중니 조술요순 헌장문무 상율천시 하습수토 비비여천지지무불지재 무불부도 비여사시지착행 여일월지대명 만물


竝育而不相害 道竝行而不相悖 小德 川流 大德 敦化 此天地之所以爲大也
병육이불상해 도병행이불상패 소덕 천류 대덕 돈화 차천지지소이위대야
중용 제30장


유가의 계보는 공자를 통해

요순임금과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 삼대의 시조인 우임금, 탕왕, 문왕, 무왕으로 이어졌다.

이것 역시 역사를 근거로 해 만든 유가의 도통(道統)이다.


요임금, 순임금, 우임금은 자연스럽게 나라를 이끌어서 태평성대를 이룬 임금들이고,

탕왕과 문무왕은 난세를 바로잡고 새로운 나라를 일으킨 왕들이다. 위 임금들의 공통점은 모든 일에

중용을 유지했고, 백행지본인 효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을 이어받은 공자는 위로는 하늘의 사시의 운행을 본받고,

아래로는 땅에 있는 수토의 이치에 따랐다. 이러한 모습은 천지자연의 모습으로 성(性)을 깨달아서

인의예지를 실천한 것이다.


그것은 상생의 인(仁)으로서 충서에 따라 행동하니, 그것이 바로 중용의 모습이다.
“소덕은 냇물의 흐름이고, 대덕은 돈독하게 화하는 것이니 이것이 천지가 위대하게 되는 것이다”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물은 파여 있는 길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끊임없이 흘러간다.

물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흐르지 않고 물길을 따라 움직인다. 물이 자신보다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나

혹은 파인 곳을 넘어가기 위해서는 그곳을 다 채우고 그 이후에 다시 흘러간다. 이것은 수신에 해당되는 것이다.

따라서 소덕이라는 것은 자신의 수양과 실천을 말하는 것이다.


“대덕이 두텁게 한다는 것”은 수신 이후에

자신의 덕으로 타인을 교화해 온 세상으로 그 덕을 전파하는 일이다.


사시의 움직임에 의해 만물을 세상에 살게 하는 천지의 도는 위대한 것이며,

그것을 본받아 소덕과 대덕을 이루어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고자 과거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유학을 창시하고

후세에 남긴 공자 역시 위대한 성인이다. 자연의 위대함과 공자의 위대함의 중심에는 바로 중용이 있었다.


중용에 따른 소덕과 대덕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는 대승적인 일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중용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인성을 키우고, 자신의 분야에서 역량을 키우면,

개인은 행복하게 되고 자신이 속한 사회가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진리는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진리는 인간이 세상에 탄생했던 먼 과거에도 있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에도 있으며, 우리 후손이 살아갈 미래에도 존재할 것이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 위치한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현 시점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우려고 노력하고 역사를 바로 인식하며 중용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우리 사회를 위한 시중이며, 우리의 위치에서 반드시 행해야 하는 중도다.


자료출처 : Daum 백과어학사전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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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이지만 역사를 보는 기본적 안목이
유교적 틀을 벗어나지 않는 안목이지만 나름대로 잘 정리되어 있어 퍼 왔습니다ᆞ

우리민족은 공자의 춘추필법에 의하여 역사가 엉망이 되었습니다ᆞ
유교적 사대주의에 빠져 자국의 역사를 없애버린것입니다ᆞ
설상가상으로 친일매국사학까지 더하여 뿌리를 말살한것입니다ᆞ
역사를 보는 안목이 자신의 수준에 따라 천태만상인지라ᆞ여기에 자신의 이해득실까지 가미되고
첨가되어 더욱 어지럽게 논하게 되는것입니다ᆞ

역철학이란 우리민족의 태호복희씨로 부터 시작되는 역철학이지 결코 중국의 철학이 아니다ᆞ
유교의 역경과 사서오경이라는것도 우리민족의 역철학을 바탕으로 술이부작을 한것이다ᆞ
역사를 보는 안목도 핵심을 보아야 하는것이다 ᆞ

그러므로 정치와 종교와 철학이 한몸되어 삼일심법이 되어 역사를 판단해야 하는것이다 ᆞ
또한 문자적 기록만이 역사가 아니다ᆞ그래서 인생을 알려면 종사문철이라 하여 두루알아야 하는것이며
종합적 아 안목이 필요한것이다ᆞ그렇치 못하면 인생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없다ᆞ
역사도 인생을 위하여 논하는 것이다ᆞ 요순에 얽힌 역사의 진실

1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大孝)라 일러 오나 순은 천하의
대불효니라.

2 그 부친 고수(高?)의 악명이
반만년 동안이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으리오.

3 세상에서 요순지치(堯舜之治)를
일러 왔으나 9년 홍수는 곧 창생의 눈물로 일어났나니

4 요(堯)는 천하를 무력으로 쳐서 얻었고,
형벌(刑罰)은 순(舜)으로부터 나왔느니라.

대동세계를 만들고자 한 단주의 진실 왜곡사

5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堯)의 아들 단주가 불초(不肖)하였다.’는
말이 반만년이나 전해 내려오니 만고의 원한 가운데 단주의 원한이 가장 크니라.

6 정말로 단주가 불초하였다면
조정의 신하들이 단주를 계명(啓明)하다고 천거하였겠느냐.

7 만족(蠻族)과 이족(夷族)의 오랑캐 칭호를 폐하자는
주장이 어찌 말이 많고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는 것이겠느냐?

8 온 천하를 대동세계(大同世界)로
만들자는 주장이 곧 ‘시끄럽고 싸우기 좋아한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9 한 성도가 상제님께 여쭈기를 “우(禹)가 단주의 허물을 들어 말하기를
 ‘밤낮 쉬지 않고 강마다 배를 띄우고, 벗들과 떼를 지어 집 안에서 마시며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였습니다.” 하니

10 말씀하시기를 “단주가 밤낮없이 쉬지 않았다는 것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하며 부지런하였다는 것이요

11 강마다 배를 띄웠다는 것은 대동세계를 만들자는 것이며

12 벗들과 떼지어 집 안에서 마셨다 함은
사람들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였다는 말이요

13 세상을 없애려 하였다 하는 것은
서로 주장하는 도(道)가 같지 아니하였다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4:30)

위의 백과사전의 내용을 보면 그 전개논리도 결국은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는 것이다.

논하는 것의 핵심은
동양철학에 있는것이 있는것이다 ᆞ

유교에서 논하는 사덕이니 오상이라 하는것은 음양 오행의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ᆞ
이 음양 오행의 이치 즉 동양철학은 태호복희씨로 부터 창시되어 이 유교의 사서 삼경중의 역경이 만들어 진것이다ᆞ
그러므로 역사의 시원은 우리민족으로 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있는것이다ᆞ

성인(聖人)의 말을 술(述)하고(전하고) 자기(自己)의 설(說)을 지어내지 않았던것이다.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것을 기술할 따름이지 새로운 것을 지어내는 것은 아니다.

옛 것을 믿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마음 깊이 은(殷)의 현인 팽(彭)을 본받고자 하는 것이다.」
子曰 述而不作(술이부작) 信而好古(신이호고) 竊比於我老彭절비어아노팽)

그러므로 그핵심이
유교의 사서삼경의 역사를 논하면 중국의 사상과 이념이 아니라 ᆞ
동이족의 사상과 이념을 '술이부작' 한 것임을 알아야한다ᆞ

역사를 공부하는 궁극적 핵심은 뿌리를 찾고 알고자 하는 것이다.
국가와 민족과 자신의 정체성인 뿌리를 찾아야 만이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뿌리를 잃은 사물은
절대 존재하지 못하는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다시 말해서 생존하지 못하고 소멸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