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정신과 도(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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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라는 것은 우주운행의 법칙적인 길[道]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그 법칙이란 것은 천지일월의 운행법칙이며 木火金水와 律呂의 법칙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와 같은 법칙이 운행하는 길에서 일어나는

오묘불측(奧妙不測)한 변화는 만물의 생장성수의 과정과 인사(人事)의 길흉화복의 과정에서 출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학문을 도학(道學)이라고 하며,그 변화 자체를 道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道는 지고지명(至高至明)한 정신이 아니면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경지이므로 이것을 가리켜서 종교,즉 최고정점의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와 종교는

동일원리의 체용(體用)적 표현인 것뿐인즉

모든 종교정신(宗敎精神)은 천변만화하는 道의 정신이며,


도의 정신은 율려작용의 항존성(恒存性)의 완성이며

항존성의 완성은 '明’ ,즉 日月 이 합명(合明)하는 변화의 귀결점이며

출발점인 바의 戌五點이며 空點이며 乾點인 것이다

(제8장 본체론 참조).

 

그런즉 道의 목적,즉 종교의 목적은

우주와 인간의 변화를 연구함으로써 대자연의 신비의 문을 개방하여 보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범위를 좀더 축소시킨다면,


즉 인간정신 문제까지로 압축하면 그것은 바로 생사와 선악문제로 귀결될 것이고

이것을 다시 궁극일점(窮極 一點)까지 통일시킨다면 신명(神明)의 귀결점,

즉 일월합명(日月合明)의 明點까지 이르는 것이니,이것이 바로 정신의 통일점인 것이다.

그러므로 본론은 종교정신을 일별함으로써 대자연의 통일목적을 찾아보려는 것이다.

 

첫째로,불교의 목적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空의 항존처(恒存處)를 찾고 空에서 항존할 수 있는 지고지명(至高至明)한 인간을 창조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空’ 의 모습은 어떠한 것일까?

그것은 지신지무(至神至無)한 존재이므로 있는 듯 없는 듯한 적멸(寂滅)의 진경(眞境)인 것이다.

그런즉 이 경지는 유일한 神이 명화(明化)하고 있는 충화(充和)의 경지이므로

세속적 색채가 감히 병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세속에 사로잡혔던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정욕으로 인한 형신(形神)의 노(勞)를 안정시키기만 한다면 法身으로 化하게 되므로

진리의 본원인 ‘空’ 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空’은 이러한 진경(眞境)이므로 거기에서

발하는 ‘사리(舍利)’ 의 광채는 우주와 같이 흐르고 있으므로 만물은 이 길 [道]에서 도망할 수 없는 것이다.

 

  (註) 사리(舍利)란 것은 불(佛)의 정신을 상징하기 위하여 佛의 신체(身體)의 일부를

         탑중(塔中)에 보존하는 것인즉 그것은,즉 佛의 정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경지에 달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는 것이다.

佛이라는 개념은 이문(貳門)과 동장(動場)의 세속적 문화나 방종적 혼란을 막는다는 뜻이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貳門이라는 말은 金火가 交易을 시작하는 문 즉 二火의 문을 말하는 것이요, 


動!場이란 것은 金火交易을 위하여 약동하는 장소를 지칭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세속적 문화와 방종적 혼란의 거점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다음 '佛’ 이라고 하는 것은 佛字의 막는다는 뜻을 取한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舍利’ 의 광채가 만고금(萬古今)을 통하여

사(邪)를 추방하고 자비지심으로써 중생을 제도(濟渡)하여 정토진경(淨土眞境)인 空에서

공존공영하려는 것이 불교의 목적인 것이다.


그런즉 여기에서 다시 불교의 목적을 종합하여 보면

세속적인 육체생활을 초월하고 대각(大覺)에 이름으로써 空으로 돌아가서 明을 찾으려는 것이다.

불교는 이와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속세를 도피하고 空에 한거(閑居) 하면서 숭덕(嵩德)하려는 것이다.

 

둘째,仙敎는 無를 목적으로 하는 것인 바

 ‘無’ 라는 것은 영원불멸(永遠不滅)하는 진기(眞氣)를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眞氣는 변화작용을 계속하는 본원이므로

만물의 생명정신의 발현 능부(能否)는 여기에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즉 진기를 보호할 필요가 절실하므로 ‘포신묵좌 (抱神默坐)’ 함으로써 도망할 수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진기는 神으로 하여금 방종할 행동을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기는 木火金水와 같은 편기(偏氣)가 아니므로

神을 보호했다가 다시 새로운 性을 生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여서 神이 성화(性化)하게 되면

성은 만물로 발전하였다가 또다시 무화(無化)하게 됨으로써 유무합도(有無合道) 작용을 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생명과 정신의 기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象은 易의 천산둔괘(天山遯卦)의 象과 같으므로 이것을 仙道라고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인물(人物)의 생장(生長)이란 바로 인물의 老死란 말과 상통되는 것인 바 그것은,

즉 形의 死는 神의 生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인물의 死는 새로운 神을 창조하려는 우주의 표현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창생으로 하여금 삼청별계(三淸別界)로 들어가게 하는 과정인 것이다.

선교는 이것을 가리켜서 ‘無’ 라고도 하며,또는 ‘中’ 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선교는 ‘中’ 을 지킴으로써 ‘一’ 을 포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이것을 ‘수중포일(守重抱一)’ 이라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이 고찰해 보면 이것은 불교가 말하는 바의 空에

도달하려는 ‘中’ 점, 즉 ‘無’ 의 작용을 중시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만일 이와 같은 無의 中點이 없다고 하면

空도 이루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즉 불교와 선교의 차이점은 다만 하나는 창조의 완결점을 중시하고

하나는 창조의 시발점올 중시한 것뿐인즉 도통(道統)의 연원은 모두 ‘一’ 의 理에 있는 것이다.

 

셋째로,儒敎의 목적은 仁을 행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는 精을 위주로 하는 것이니 精이란 것은 神을 一의 位에 통일시키려는 것인 바

그것은 유위(維位)에 얽어매어 줌으로써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유정유일(’惟精惟一)’ 이라고 하는데

仁은 이러한 조건에서 이루어지므로 유교는 그 목적을 仁에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우주의 仁은 이렇게 이루어졌으므로 인도(人道)에 있어서는 또한 자기의 이해(利害)를 돌보지 않고

사람을 위하는 것을 ‘仁 ‘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런즉 이것은 바로 우주가 사물을 生하기 위하여

즉 仁하기 위하여 자기 이해를 초월한 공도(公道)만을 행하는 법칙을 그냥 본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유교를 정의하기를,

 

精義入神 利用安身 故 惟精惟一 允執厥中

정의입신 이용안신 고 유정유일 윤집궐중

 

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풀어서 말하면

土金水之氣로 神을 坎 속에 축장(縮藏)하게 함으로써 안신(安身)의 바탕이 이루어지게 되므로,

거기에서 精과 一이 합일되었다가 다시 축장(縮藏)한 것을 뚫고 中에서 움트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유교라고 한 것이니(儒자는 수(需)자와 통한다)

바로 수천수괘(水天需卦)의 象을 취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윤집궐중(允執厥中)하는 장소

즉 만물이 생의(生意)를 나타내는 방위의 象이 需의 象과 같은 것을 취상의 대상으로 한 것이다.

 

이제 여기에서 유교를 한마디로 요약해 보면 그 목적이 ‘윤집궐중(允執厥中)’ 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궐중(厥中)하게 되면 거기에서 仁(生意) 이 발하므로 유교의 목적은 仁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河心夫의 「正易註解」참조).

 

이상에서 삼교정신을 掠용한 바 그것을 재고하여 보면

불교는 정신의 완전 통일점인 空에 기본을 두었고,선교는 통일의 출발점인 無에 기본을 두었고,

유교는 통일에서 다시 생의(生意)를 발하는 곳에 기본을 두었다고 하는 점만이 다를 뿐이다.


그런즉 이것은 동일한 원리와 동일한 법칙이 운행하는 본중말운동의 한 점씩을 각각 대표한 것 뿐이요,

결코 변화원리 자체가 상수(相殊)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종합하여

동양철학의 원리라고 하는 것이니 그 원리는 모두 ‘집중 관일(執中實一)’ 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족적(足跡)이 상이(相累)하고

문호(門戶)가 각수(各殊)하였던 것은 동양에 있어서도 전국(戰國) 이후에

도통지전(道統之傳)이 암흑기에서 헤맸기 때문에 마치 서로 이단(異端)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道라는 것은 변화의 길이고 변화의 길(法則)은 하나뿐인즉

그 길에 서로 상이(相異)한 원리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즉 종교가 불원한 장래에 통일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인지(人智)가 이 정도까지 보편화될 때면 인간이 철학의 최고 목표인 '明’ 을 가지는 것도

용이할 것이며 또한 신비의 문호도 개방될 것이다.


우주변화원리에서 발췌


불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