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극대도-도전.jpg.gif

개벽은 동양 문화의 근본

 
앞으로 이 세계가 크게 뒤집어지는 개벽을 합니다.
개벽이 동양 문화의 근본이요 결론이죠.


개벽을 알지 못하고 동양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면 개벽이란 무엇일까요? 오늘 이것을 기본으로 해서 증산 상제님 진리 몇 가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에 앞서 춘천 신도들이 네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첫째는 개벽이란 무엇인가?
두 번째는 증산 상제님은 누구신가? 곧 상제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서 듣고 싶다는 거죠.

세 번째는 앞으로 오는 개벽 상황에 대해, 특히 남북 대결 구조가 마무리되는 상씨름의 상황과
그와 연결된 개벽의 실제 상황에 대해,  또한 개벽을 어떻게 극복하는가에 대해 듣고 싶다고 했습니다.


끝으로 네 번째, 인간의 삶의 목적에 대한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이 네 가지만 제대로 정리해도 상제님 말씀을 그런 대로 들었다,
증산도가 무엇인지 개괄 정도는 들어봤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증산도 개벽관의 의미
“개벽開闢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물을 때 또다시 이런 의문이 들 수 있죠.


“인간이란 무엇인가? 또 인간이 개척해서 만들어 놓은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의 구성 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바탕이 뭘까요?


그것은 뭐니뭐니 해도 자연自然입니다.

인간의 자연 체험, 그것이 결국 깨달음의 열매인 우주론으로 나타나죠.
동서양의 공통된 우주론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순환한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 문화를 보면, 이 우주는 큰 봄과 큰 여름 그리고 큰 가을과 큰 겨울,
큰 사계절로 둥글어 간다
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동의 사막 문화에서

싹튼 기독교 문화가 서양으로 들어가면서부터 순환론의 맥이 끊어집니다.

 
그리하여 “태초에 한 번 창조된 인간이 타락해서 죄악이 들어오고,
이것이 지속되다가 크게 한 번 심판을 받은 뒤에 구원받은 자들은 영원히 산다.”
이렇게 일직선적인 사고 구조를 갖게 되죠.
하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우주는 지속적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자, 그럼 개벽이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개벽’이란 말의 어원은 ‘천개지벽天開地闢’, ‘개천벽지開天闢地’입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리고 땅이 열린 것, 즉 이 우주의 탄생 사건을 개벽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개벽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증산도에서 말하는 개벽은, 태초에 우주가 창조된 게 아니라 개벽이 됐다는 것뿐 아니라
이 우주는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가 하는 걸 포괄합니다.

‘우주는 어떻게 생성, 변화하고 있는가?
그 속에서 인간은 어떻게 태어나 진화해 왔는가?
또 생물의 출현과 성장 과정 속에서 인간이 열어 놓은 문명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어디에 와 있는가? 그것은 앞으로 개벽을 통해 어떤 모양새를 갖게 되는가?’

인간의 탄생과 삶의 전 과정, 인류 역사와 문명의 진화 과정,
그리고 지금 맞이하고 있는 대변혁의 실체, 앞으로 오는 새로운 문명 세계 등을 총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것이 증산도의 개벽관입니다.

 
개벽을 선포한 최수운과 김일부

개벽은 상제님이 오신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처음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그 길을 열어놓은 분이 두 분 있죠.

동학의 최수운崔水雲 대성사大聖師와,
주역 세상이 끝나고 앞으로 정역正易 세상이 온다는 것을 알린 김일부金 一夫 대성사大聖師입니다.

최수운 대성사는 1860년 4월 5일날 만고에 없는 대도통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스스로 정력통으로 정신을 닦아서 도통을 성취한 게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상제님으로부터 도통을 받은 것
이죠.


수운이 처음 도통을 받을 때,

상제님이 성령으로 임어하시어 수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왈曰 물구물공勿懼勿恐하라.

세인世人이 위아상제謂我上帝어늘 여부지상제야汝不知上帝耶아.”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나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상제거늘 수운아,
너는 어찌 상제를 모르느냐.”

일찍이 우리 민족이 상제문화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그는 상제님이 누구신지 상제님의 실상을 몰랐습니다.
상제님이 천지 기운을 열고 도통을 주시고 천명을 내려 주시는데도, 미처 못 알아 본 것입니다.


어쨌든 최수운 대성사는 상제님한테 직접 천명과 신교를 받고
이 민족과 역사에 개벽이 올 것을 선언합니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곧 앞으로 괴질병이 들어와 개벽이 된다는 거죠.
그리고 “만고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를 불구에 볼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개벽은 그냥 극복이 되는 게 아니라,
상제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무극대운을 열어 주심으로써 극복된다는 것입니다.
상제님의 도법, 그것을 무극대도無極大道라고 합니다.

상제님 도법은 단순한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동서고금의 인류 문화를 수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문명세계로 끌어올리는 것
입니다.
문명을 비약적으로 진보시키고 성숙케 하는 새 진리입니다.
수운은 그런 ‘상제님의 도법이 무극대도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개벽이 어떻게 오는가 하는 개벽의 기본 틀을 이치적으로 선언한 분이 있습니다.
충청도 연산의 일부 김항 대성사죠. 그분은 “앞으로 천지의 시간 질서가 바뀐다.
그 때는 정역正易이다.”라고 했습니다.

바를 정 자, 바뀔 역 자,

천지와 일월과 만물이 조화를 찾는다는 겁니다.
일 년이 360일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그 정역의 큰 변화는 단지 자연 질서가 바뀌는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상제님이 그것을 그렇게 되도록 만드신다.


그 상제님이 성령을 드러내고 인간 세상에 오신다.’고 하여 “상제조림上帝照臨이라.”
곧 “상제님이 오시는구나.” 하고 노래했습니다.

 

 

불교 문화의 결론, 개벽
그런데 지난 선천 문화를 보면, 동양의 불교의 결론도 개벽이요
서양의 기독교의 결론도 개벽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중요한 사실입니다.
동양의 불교 문화의 결론이 왜 개벽일까요?

석가모니에 의하면 “앞으로 3천 년쯤 지나면
말법 세상이 되는데 나의 가르침으로는 창생들을 교화할 수 없다.
그 때 이 우주의 별자리가 바뀌는 큰 변화가 온다. 즉, 우주의 질서가 바뀐다.

그 때는 저 도솔천의 천주님으로 계신 미륵님이 오신다.
그 미륵님의 새 진리에 의해 완전히 다른 새 세상이 온다.
어느 정도로 다른 세상이냐? 지구촌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의 마음이 다 열린다.
만백성이 다 도통해서 부처님이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참, 이건 꿈도 못 꾸는 얘기 아닙니까? 받아들이기도 어렵고 말입니다.
『미륵경』을 보면 석가모니가 하늘을 가리키면서
“그 때가 되면, 저 도솔천 천주님이 내려오신다.”고 한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라훌라와 수석 제자 가섭, 군도발탄, 빈두타에게 “너희들은
내 법을 받아 열반에 들지 말고, 앞으로 오시는 도솔천 천주님의 도법을 받아 열반에 들라.”고 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얘기 아닙니까.

아, 석가모니가 자기 아들에게 자기 교법을 믿지 말라는 겁니다.
이 우주가 뒤집어지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게 석가모니의 고백입니다.
 
헌데 선천 불자들의 입장에서는
미륵님의 세상이 온다는 게 머리 속에 그려지지도 않고 그런 생각이 정리되지도 않습니다.
불교 3천 년 역사상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깊이 생각해 본 자가 거의 없습니다.
그리하여 궁리해 낸 것이 미륵의 실상을 조작하는 것이죠.

어떻게 왜곡을 했는지 아십니까?
“미륵은 3천 년 전, 석가모니가 인도에 있을 때의 제자였다.
그런데 요절해서 천상에 올라가 도솔천에서 도를 닦는 보살이다.
앞으로 말법이 되면 인간으로 태어나 집을 떠나 곧장 도통해서 부처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미륵이 석가모니의 제자였다는 겁니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뭐라고 했습니까?
“나는 본래 도솔천 천주님인 미륵불 밑에서 호명보살護明菩薩로 있었다.
그리고 미륵의 명을 받아 이 세상에 왔다.”
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것이 석가모니의 본래 가르침입니다.

지금은 일부 불교 학자들이 “미륵이 석가모니의 인간 제자였다는 건 조작된 것이다.
역사가 잘못되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습니다.
아, 56억7천만 년 후에나 미륵이 온다고 하니, 그런 망발이 어디 있습니까.
 


기독교 문화의 결론, 개벽
그러면 기독교의 결론은 왜 개벽일까요?
본래 예수의 가르침이 무엇입니까? 아버지의 날이 온다는 것이죠. 아버지의 날이 온다!


예수는 “하나님이 실재한다.
그 분이 아버지다! 아버지가 천상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자기를 내려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관 해석이 제대로 안 돼 있습니다.
체體와 용用으로 해석을 못하고, 예수가 하나님의 영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론이 예수가 하나님이 돼 버립니다.

하지만 예수가 피 흘리면서 절규한 게 무엇입니까?
예수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하고 부르짖으며 그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을 열어 준 것 아닙니까.
그러면 기독교에서는 개벽이 어떻게 온다고 했습니까?
성서에 보면 그것을 말한 사람이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기독교 박해 역사상 가장 참혹한 형벌을 받은 사도 요한입니다.
그는 끓는 기름가마에 들어가는 형벌을 받지만 안 죽죠.
그는 밧모라 섬에 귀양 가서 거기서 백 살이 넘도록 기도만 합니다.


얼마나 기도를 열심히 했는지,
그들이 말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앞으로 오는 우주개벽을 직접 보여 주십니다.
그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기해서 기록해 놓은 게 바로 「계시록」입니다. 거기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나는 새 하늘 새 땅을 보았습니다.
예전의 하늘과 땅은 모두 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았습니다.(중략)
그 때 옥좌에 앉으신 분이 ‘보아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셨습니다.”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여기에 나오는 백보좌 하나님이 누굽니까?
그분은 바로 예수가 말한 아버지요, 우주원리로 말하면 앞으로 들어오는 서신西神입니다.
 
서신이 들어온다!
이것이 가을개벽의 문제에서 결론적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입니다.
상제님은 또 “앞으로 서신이 들어올 때, 그 전조로 시두時痘가 크게 터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터지는 곳이 이 한국 땅이라고 하셨죠.

성서에서 개벽을 말한 또 한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그도 아버지의 날이 온다고 했습니다.
새 하늘 새 땅이 열리는 때가 온다는 것이죠.
천지의 질서가 바뀜으로써 인류가 총체적으로 구원되는, 인류 문명의 새 날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결론도 천지 질서가 바뀌는 개벽입니다.
 
유교의 결론은 간도수艮度數가 열린다는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동북 간방艮方에서 개벽을 실현하는 새 진리가 나온다, 동북 간방에서 매듭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도교에서는 예로부터 상제님을 말하고 있죠.
그러니 동서문화의 결론이 개벽 아닙니까.
 

개벽의 결론은 상제님이 오신다는 것
 
그러면 개벽의 결론이 무엇일까요?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다는 겁니다.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오시어 인류의 새 세상을 여신다는 겁니다.


어떻게 여시는 걸까요? 새 진리로써 여십니다!
새 세상을 여는 상제님의 새 진리! 이것이 증산도입니다.
따라서 증산도를 통해서만 인류 미래의 비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증산도를 통해서만 앞으로 오는 새 세상의 한소식을 깨칠 수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내가 전하는 도는 금불문고불문今不聞古不聞이다.”라고 하시지 않습니까?
이 말씀은 ‘이제도 너희들이 들은 바가 없고 예전에도 들은 바가 없는 도’라는 말씀이죠.
인간 역사상 동서고금에 들은 바가 없는 새 진리!
이것이 증산도입니다.

그러니 증산도는 그 언어부터가 새롭습니다.
진리를 접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처음 듣는다.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상제님의 도를 접하려면 반드시 책을 봐야 합니다.

증산도에 관련된 것은 종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수집을 해서 끼워 놓고,
‘후천개벽, 원시반본, 해원, 상생 등 증산도에서는 왜 이런 용어를 쓰는가?


개벽이란 무엇인가?
후천선경 세계란 무엇인가?’ 그 뜻부터 알아야 합니다.


책을 보지 않고 증산도의 개벽 문화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냥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반드시 책을 봐야 합니다.
시간과 정력을 투자해야 한단 말입니다.

<증산도 종도사도훈>

용봉수정4.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