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도 100년 도사道史 증산도 연혁

jsdintro_about02_stt02_01.gif

삼천성도(三遷成道)란,
자연의 변화가 생(生)탄생 -장(長)발전 -성(成)완성의 세 마디 원리로 전개되듯,


증산도 도운(道運:도의 역사의 운로)의 전개 역시
시간과 장소를 세 번 옮기면서

각각 신앙의 부흥기를 맞이하고,

마지막 세 번째에 가서 비로소 상제님 진리의 참 면목(眞法)이 온 천하에 드러나도록

상제님께서 프로그램을 짜신 것을 말한다.

 

 

jsdintro_about02_stt02_02.gif

증산도 제1 부흥시대는 증산 상제님으로부터
직접 종통(宗統)과 도통(道通)을 전수받으신 태모 고수부님이
첫 교단을 개창하신 신해(1911)년 이후 차경석 성도의 보천교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당시는 나라를 빼앗긴 암울한 일제의 식민통치 시대로,
희망을 갈구하던 민중의 마음 속에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후천개벽의 메시지가 파고들었고,
무엇보다도 태을주의 수많은 기적이 강하게 터지면서


700만에 이르는 구도자들이 벌떼같이 모여드는 대부흥시대를 열었다.
이를 증산도 제1변 도운 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세계 종교 사상 유래가 없을 정도로 크게 부흥했던 제1변 도운은
1935년 태모님의 선화(仙化), 1936년 차경석 교주의 사망,
그리고 세운이 중일전쟁과 2차 세계대전의 시운을 맞이하며 침제된다.

또한 일제치하 말기로 접어들며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극도의 종교탄압이 시작된 것도
제1변 도운 침체의 중요한 요인이다.

이후 도운은 1945년 해방이 될 때까지 10년간(1936~1945)의 휴게기를 갖고 되고
이 때 증산 상제님을 직접 모셨던 성도들과 제1변 도운 때에 신앙했던 신앙인들이
대부분 늙거나 타계함으로써 도운의 맥은 사실상 단절되게 된다.

jsdintro_about02_ti02.gif

jsdintro_about02_stt02_03.gif

증산도 제2부흥시대는

증산 상제님께서 숙구지(宿狗地) 도수로 종통을 전하신
안운산(安雲山) 종도사님께서 1945년 해방과 함께 신앙의 불모지를
새로 개척하시면서 시작되었다.

 

종도사님께서는 태모 고부수님이 세 번째 도장 살림을 주재하셨던 김제 용화동에 본부를 두고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심혈이 경주하는 포교 활동을 하셨는데

그 결과 불과 수년만에 다시 수십 만이 태을주를 읽으며

상제님을 신앙하는 대 부흥시대가 열렸다. 이를 증산도 제2변 도운시대라고 한다.

 

그러나 제2변 도운은 내적으로는 단체의 실질적인 주인인 종도사님을 몰아내려는
불순한 무리들의 배반과 모함이 극에 달하고, 외적으로는 민족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남북 상씨름(6.25전쟁)이 불 붙으며 전환점을 맞이한다.

 

종도사님은 1951년 동지절에 대휴게기를 설정하고,
신도들에게 교세를 현상유지로써 대기할 것을 공표하시고 1954년 후반기로부터 깊이 은둔하셨다.
이로써 도운의 맥은 또 한번 단절되게 되었다.

jsdintro_about02_ti03.gif

jsdintro_about02_stt02_04.gif
후천개벽을 집행하는 마지막 제3 부흥시대의 개척은 한민족이 근대화와 경제 부흥을 위해
힘차게 움직이던 70년대 중반인 1974년, 1975년부터 시작되었다.

 

증산 상제님께서 용봉(龍鳳)도수와 선매숭자(仙媒崇子)도수로
진법 도운의 개척 사명을 맡기신 안경전(安耕田) 종정님께서 태전에 본부 도장을 중심으로,
제2변 도운을 개창하셨던 안운산 종도사님을 모시고 다시 한번 신앙의 불모지를
새롭게 개척하시면서 시작되었다.

 

제3변 도운은 과거의 1변, 2변 도운과는 달리 진법(眞法) 도운의 개창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안경전 종정님께서는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의 말씀과 성적(聖蹟)을 총집대성하여
『도전(道典)』을 성편하시고, 또한 <증산도의 진리>, <이것이 개벽이다>, <개벽 실제상황>
등을 저술하시어 증산 상제님의 진리세계를 체계화하고 대중화시키셨다.

 

아울러 증산도 대학교를 설립하시어,

후천개벽을 집행하고 5만년 후천 결실문명을 창도할 수많은 일꾼들을 인재로 양육하고 계신다.

현재 태전(太田, 대전의 본래지명)의 증산도 교육문화회관을 본부도장으로 하여

전국과 해외 주요 국가에 증산도 도장이 있으며, 지금 이시간에도 새로운 도장 개창이 진행되고 있다.

jsdintro_about02_ti01.jpg

 

100' 증산도 도운 역사

증산도의 역사는 크게 두 개의 관점으로 있습니다.

 

하나는 도조 강증산 상제님 탄강으로 부터의 역사입니다.

상제님께서는 1871년 신미년에 탄강 하셨습니다. 탄강하신 해를 기점으로,

도기道紀라는 년호를 사용하는데, 올해는 도기 141년이 됩니다. 따라서 증산도는 141년의 역사입니다.

 

천하를 통일하는 도(道)

하루는 성도들이 태모님께 여쭈기를
교 이름(敎名)을 무엇으로 정하시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천하를 통일하는 도(道)인데 아직은 때가 이르니
선도(仙道)’라고 하라. 후일에 다시 진법(眞法)이 나오면 알게 되리라.” 하시니라.

 

이 때 태모님께서 신경원(辛京元)과 김병욱(金秉旭)으로 하여금
태인 장에서 흑우(黑牛) 한 마리를 사 오게 하시어 그 소를 기르시며
도정(道政)을 집행하시고

백남신(白南信)에게 이르시기를 “상제님께서 맡겨 두신 돈 10만 냥을 들여와서
도장 운영비로 쓰게 하라.” 하시되 남신이 듣지 않으니라.

(증산도 道典 11:29)

 

 

甑山道 道史 1변도운==> 2변도운 ==>3변道運史 

%BF%C1%C8%B2%BB%F3%C1%A6%B4%CF%B6%F3_csfocus.jpg?type=w740

 

또 하나는 증산 상제님께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마치시고

어천하신 1909년 이후 실질적인 포교운동, 도의 개척이 시작된 증산도의 도운 道運史입니다.

  

증산 상제님께서 우주의 가을철 새 천지질서를 짜신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돌아가신 해,

즉 어천하신 해가 1909년입니다. 그런데 상제님의 진리가 현실 역사위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해,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증산 상제님을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님으로 신앙하고 도운개척이 시작된 해는

1911년 신해년입니다. 그러므로 올해 2011년 신묘년이 도운개척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1911 시작되었던 증산도 초기 개창역사

증산 상제님께서 탄강하신 목적이 천지공사를 행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상제님은 천지공사를 1901년부터 1909년까지 9 동안 행하셨습니다. 이를 9 천지공사라고 합니다.

 

상제님께서 1909 6 24 천지공사를 마치시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어천하시자,

당시 상제님을 모시고 천지공사에 수종들던 수십명의 성도들은 크게 방황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상제님의 어천을 마음속에서 준비하지 못하였던 까닭입니다.

 

그런데 그 방황에 종지를 찍은 것이 2년 후인 1911

신해년입니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느냐면

상제님으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신 태모 고수부님께서

상제님의 성령감화를 받아 대도통을 하시게 됩니다.

 

그날이 1911 음력 9 20일입니다.

태모님은 당시 방황하던 성도들을 모두 불러

모으시고, 신도로써 포정소 문을 여시고,

증산도 도운개창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상제님 어천 이후 어찌할 바를 몰라 방황하던 성도들이 다시 발심하게 되었고,

각지 사방으로 돌아다니며 상제님 대도를 전하는데 힘쓰게 되었습니다.

이로부터 신도들이 구름일 듯이 모여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3년 만에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 경상남도와 서남해의 모든 섬에

태을주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지게 되었습니다.

 

 

700만명이 신앙한 증산도 초기 도운 '보천교'

당시는 반만년을 훨씬 넘는 유구한 역사 민족인 우리 한민족이 나라를 빼앗긴 정말로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당시 후천 5만년 새로운 세상이 온다는 증산 상제님의 신천지 개벽 사상은 민중들의 마음속에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또한 무엇보다도 태을주 주문의 기적이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의하면

증산도의 전신인 '보천교' 간부 신도만 55만명이 넘었고, 7백만이 넘는 대한사람들이

증산 상제님을 신앙하며 태을주를 읽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가 2천만이 채 안되는 때였습니다.

그렇다면 인구 3명 가운데 1명은 상제님을 신앙하였다는 것이지요.

참고로 당시 서교(기독교,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30만명 정도였다고 합니다.

 

 

일제의 민족종교 탄압으로 무너진 증산도 초기 개창사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본 제국주의 시절 한민족의 대부분이 증산 상제님을 신앙했다는

이 사실을 제대로, 올바르게 밝혀내는 것이 앞으로 한국 역사학계의 중요한 테마의 하나입니다.

 

지금도 조금씩 밝혀지고 있는 내용인데요,

당시 중국 지에 있던 임시정부에 독립운동자금을 보천교에서 대부분 대주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당시 발각되면 모두 잡혀가

참혹한 고문 끝에 죽임을 당하였기에, 대부분의 당사자들이

침묵속에 별세한데에 이유가 있습니다.

 

일제시대 태모 고수부님과 차경석 성도를

중심하여 일어난 증산도 첫 번째 부흥시대는

1936년 차경석성도가 별세하면서 사그러 들었습니다.

 

당시 시대환경을 이해하는 것도

증산도 1도운 침체의 원인을 아는 중요한 수입니다.

 

일제는 철저히 우리 한민족의 핏줄과 역사, 고유문화를 말살하려 했습니다.

성씨를 강제로 개명하게 했으며, 한민족의 9천년 역사를 왜곡하였고, 민족정기를 끊기 위하여

 

전국의 주요한 산에 쇠말뚝을 박았습니다. 전국 각지의 신령한 지명을 뜯어고친 것도 이때 였습니다.

이러한 시대배경이니 민족종교인 증산도가 박해를 받은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후로 1945 해방이 되기까지 10년간 암흑기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증산도 두번째 도운 '증산교' 일제가 물러가면서 새로운 도약

 

일제시대였던 첫번째 증산도 부흥시대는 그 주역들이

증산 상제님 직접 모시고 천지공사에 수종 들었던 태모 고수부님 성도님 들이었습니다.

해방을 맞이하고 일제는 물러갔지만 이들 신앙인들은 대부분 별세한 이후였고,

누구도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선포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나 시대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여 역사를 개창하는 법입니다.

그 누구도 증산 상제님의 참 진리를 세상에 소개하지 못하고 있을 때 혜성같이 등장하신 분이 지금 증산도

최고 지도자이신 안운산 종도사님 이십니다. 해방을 맞이하던 1945년 종도사님께서는 24세이셨습니다.

 

안운산 종도사님은 보천교를 신앙하신 부친과 조부님의 영향 속에서

유소년기를 보내시며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다 해방을 맞이하면서 세운이 새로운 국면 속에 들어가자

본격적으로 증산 상제님의 이념을 선포하며 전국 각지를 돌며 활발하게 상제님 도를 전하셨습니다.

이로부터 다시 상제님 신앙인들이 구름일 듯 일어났습니다.

 

이를 증산도 제2부흥시대라고 하는데,

당시 교명은 증산교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전까지 수십만이 신앙하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이때 종도사님께서는 당시 도생들에게 「우주 1년」도표를 그려서 가르침을 내려주셨습니다.

 

6.25전쟁으로 다시 무너진 증산도 두번째 도운

해방의 기쁨도 잠시뿐 불과  5 후에 한민족은 동족상잔의 참혹한 전쟁을 맞이합니다.

현대사에 너무도 민족의 시련이었습니다. 3년의 전쟁 끝에 국토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며,

3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었고, 1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이 생겼습니다.

 

나라도 두 토막이 되어 남쪽과 북쪽에 이념을 달리하는 국가로 나뉘었습니다.

이렇게 세운이 급하면서 더 이상 종교부흥이 지속되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증산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운공사에 의해서 이루어진 부분도 있습니다.

상제님께서 "내 일은 삼성도(三變成道)니라." 증산도 도전 5:365 말씀대로

세번의 도운 개척 역사로 상제님 대도가 완성되게 됩니다.

 

 

다시 시작 세번째 도운 '증산도'

3번째 부흥의 시작은 1974년, 75년부터입니다.

당시 60갑자로 갑인, 을묘년인데, 증산 상제님께서는 100년 천지공사를 행하시면서

이 운수는 천지에 가득 원원한 천지대운이므로 갑을로서 머리를 것이요,"

(증산도 도전 9 109) 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안운산 종도사님께서는

갑을로 기두하라"는 상제님의 천지도수에 맞추어

태전에서 다시 증산도 부흥의 개척을 시작하셨습니다.

이때 종도사님과 함께 3 도운 첫날부터 실질적인 도운 개척에 앞장 서신 분이 안경전종정님이십니다.

 

드디어 열린 증산상제님 진법도운시대

3부흥기의 명제는 크게 묶어서 증산도 진법 도운시대를 여는 것과 이를 세계화하는 것,

그리고 많은 천지일꾼들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일제시대와 해방이후 많은 선배 구도자들이 증산 상제님을 신앙하고 태을주를 읽었지만,

강증산 상제님이 누구시고, 왜 141년 전에 이 땅에 인간으로 오셔서 무슨 일을 하고 가셨는가 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후천 5만년 지상선경의 인존시대가 어떻게 열리는가 하는 등등

구체적인 진리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였다고 봐야 합니다.

 

증산도 진리의 면모를 드러내신 분이 안경전 종정님이십니다.

종정님은 안운산 종도사님의 우주1년 가르침을 바탕으로 증산 상제님의 진리를 8관법으로 구성하여

체계화하셨고, 이를 세상에 선포하셨습니다.

 

종정님이 저술하신 『증산도의 진리』 , 『이것이 개벽이다』는

땅에서 진리를 찾고 갈구하던 수많은 구도자들에게 생명수가 되었으며 그들을 깨어나게 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증산도 100년 역사의 결정체는

증산 상제님과 태모 고수부님의 말씀과 성적을 집대성한 대도경전 『도전道典』 의 발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특히 2003 완간본 『도전』이 성편되어 나옴으로써

선배구도자들이 그토록 알고 싶어했던 상제님 진리의 많은 내용들이 속속 드러났습니다.

 

 

증산도방송국 '상생방송' 개국과 전세계 주요언어 6개국어 도전 발간

2007년에는 상제님과 태모님께서 열어놓으신 우주의 가을철 천지의 진리를 세상에 전하는

STB상생방송국이 개국되었습니다. 현재 상생방송은 서울을 비롯 전국 대부분의 도시에 24시간 송출되고

있으며, 많은 분들이 방송을 듣고 상제님의 대도진리를 만나는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올해 하반기에 증산도 영어 도전을 비롯한

6개 외국어 - 독어, 불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본어 - 도전이 출간되어 나올 예정입니다.

작년 7월부터 안경전 종정님의 주재 아래 영어도전 세미나가 100일 이상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지속되었습니다.

 

자리에서 100 땅에 오신 증산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세계를

서구인들이 원 말씀에 가장 가깝게 이해할 있도록 심혈의 노력이 경주되었습니다.

100 증산 상제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時節花明三月雨요 風流酒洗百年塵이라

시절화명삼월우   풍류주세백년진

 

철 꽃은 내 도덕의 삼월 비에 밝게 피고

온 세상의 백년 티끌 내 무극대도의 풍류주로 씻어 내니

우리의 득의지추(得意之秋) 아닐런가.

이어 말씀하시기를 “좋구나, 좋구나! 이 북소리가 멀리 서양까지 울려 들리리라.

이 북소리에 천하가 한번 우꾼하리라."

[증산도 도전 5:155 ]

 

이 말씀 속에는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중에 증산도 6 외국어 도전이 번역되어

상제님의 참리가 세계에 울려 퍼져나가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제 증산도는 한민족의 영역을 뛰어넘어 전 세계인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어찌 6 국어 뿐이겠습니까.

안경전 종정님의 주재 아래 전세계 모든 언어로 도전과 주요 진리 도서가 번역되어,

지구촌 모든 민족이 이 땅에 강세하신 참 하나님이신 강증산 상제님의 진리의 참 맛을 보게 것입니다.

 

내 일을 할 사람은 다시 나온다

하루는 구릿골 약방에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나하고 일할 사람이 없느니라.

내 일을 할 사람은 뒤에 다시 나오느니라.
이제 나와 같은 사람이 나온다. 뛰어나는 사람이 있다.

 

알려고 힘쓰지 말고 시대가 돌아가며
가르치는 시기를 봐라. 이제 곧 돌아오느니라.

썩은 고목에서 새순이 돋아나서 내 일을 이루느니라.” 하시니라.
또 하루는 형렬을 부르시더니 “늦게 오는 자를 상등 손님으로 삼으리라.” 하시니라.

 

도운 개척기 대사부(大師父)의 고난 도수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초막(草幕)에서 성인이 나오느니라.

삼천(三遷: 옮길 천)이라야 내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6:64)

 

삼변이라야 성국이니라

태모님께서 오성산으로 이사하신 뒤
하루는 공사를 행하며 말씀하시기를 “삼변(三變)이라야 성국(成局)이니라.” 하시고

오성(五聖)의 기령(氣靈)을 배합케 한다.”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오성산은 북방(北方) 일육수(一六水)라야 채울 수 있으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11:369)

 

천하통일의 사마소 도수

상제님께서 구릿골 약방에 계실 때
하루는 여러 성도들을 벌여 앉히시고 큰 소리로 글을 읽히시니 이러하니라.

 

三國時節이 誰知止於司馬昭리오
삼국시절 수지지어사마소

삼국시절이 사마소에서 대세가 그칠 줄을그 누가 알았으리오.

 

또 말씀하시기를 “술수(術數)가 삼국시절에 나와서
해원하지 못하고 이제야 비로소 해원하게 되었느니라.” 하시고

내 일은 삼변성도(三變成道)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356)

 

인류의 생사를 쥐고 다니는 너희 일꾼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천하사는 생사양도(生死兩道)에서 그치나니
우리의 부단한 노력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 하는 일이니라. 

 

나의 일은 남 죽을 때에 살자는 일이요,
남 사는 때에는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누리자는 일이로다. 

 

일꾼 된 자 끝판을 잘 꼬느라 

일꾼 된 자 씨름판을 본받을지니
씨름판에 뜻하는 자는 판밖에서 보양물(補陽物)을 많이 먹고
기운을 잘 길러 끝판을 꼬누고 있느니라. 

 

시속에서 씨름판에 소를 상금으로 거나니
나를 잘 믿어 일을 잘하는 자에게 익산(益山) 삼기산(三箕山) 와우(臥牛)를 주리라. 

(증산도 道典 8:117)
 

불사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