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600만명이 신앙한 민족의 대도, 증산도

 

 

대한제국 애국가

 


 


상제문화가 생동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
 
지난 2월 5일, KBS-TV ‘스펀지’프로그램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였던 대한제국애국가가 소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가 하와이에서 발견된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면서,
성악가가 직접 노래부르는 장면을 방영해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스펀지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우리나라 최초의 애국가’란
1902년에 고종황제의 명에 의해 독일인 에케르트가 작곡한 대한제국애국가의 하와이판이라 할 수 있다
(경향신문 2004년 8월14일자 참조).

조선왕립군악대 지휘자였던 독일인 에케르트가 기독교의 찬송가풍으로 작곡한
대한제국애국가는, 독일에서 한국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 등 5개국어로 출간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국가로 인정을 받았다.

이와 관련하여 본지 월간개벽 2001년 8월호에서 이미 다룬 적이 있는데,
〈KBS수요기획-부르지 못한 노래, 대한제국애국가〉라는
프로그램을 통해본 당시의 악보 원본에는 가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에 하와이에서 발견된 악보에는 한글가사가 함께 프린트되어 있다.
이 악보는 1925년 호놀룰루에 있는 한미클럽에서 재발행한 것으로,
한국이 일본제국주의 손에 넘어간 1910년대에도
하와이 이민사회에서 대한제국애국가가 계속 불려졌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상제는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가사를 보면, “상뎨(上帝)는 우리나라를 도으소셔.
영원 무궁토록 나라 태평고”라고 하여
1904년 황성신문에 실린 애국가 가사인 “상제(上帝)난 우리 황제(皇帝)를 도으소서.
성수무강(聖壽無疆)샤”라고 한 부분과는 다소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일제의 침략야욕이 본격화된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백성들 사이에서 불려지던
애국가 가사가 조금씩 변이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10년 일본제국주의 총독부가 국가에 대한 가창 금지조치를 취하면서
대한제국애국가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현행 애국가에는 이 가사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라는 구절로 이어지고 있어,
그 정신이 그대로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을사조약 이후 발행된 여러 한글 창가집을 보면,
애국가나 국가라는 이름의 한글 가사가 수없이 등장하는데,
이로 보아 백성들 사이에서는 변용된 가사의 애국가가 지속적으로 불려지면서

그 명맥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가 1907년 윤치호가 초안한 가사를 영국의 민요 ‘올드 랭 사인’곡에 붙여 부르다가,
1935년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가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년)과 함께 현행 애국가로 제정되었다.

하느님의 본래 호칭은 ‘상제(上帝)’
 
1897년부터 1910년까지 불과 십년 남짓 단명했던 대한제국.
당시 민족혼의 상징이었던 애국가에 등장하는 상제(上帝)님은 누구일까?
상제란 하늘에 계신 가장 높으신 분, 곧 하나님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그러니까 불과 백년 전만 하더라도,
대한의 아들딸 사이에서는 상제(上帝)라는 단어가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최초의 애국가인 대한제국애국가는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신교(神敎)의 전통속에서
상제님을 받들며 신앙해온 민족임을 알려주는 귀중한 문서자료이다.
이같은 사실은 전세계에서
제사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 우리나라라는 사실만 보더라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상제님’이라는 단어를 생소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아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과 뿌리문화의 핵심에 ‘상제님’이 계셨는데, 이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해방 이후 서양문물의 갑작스런 대량유입으로
말미암아 ‘상제님’이 지금은 ‘하느님’혹은 ‘하나님’이라는 단어로 불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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