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대통령 가옥 중앙액자(증산상제하감지위)

 

일왕 명치(明治), 왜 상제님의 양장(良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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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치(明治)



상제님께서 하루는 “조선 국운을

일본에게 맡기려면 명치(明治)를 불러와야 하리니

이제 명치의 혼을 부르리라.” 하시고 명치를 불러 물으시기를 “네가 조선 일을 보겠느냐?” 하시니

 

명치가 아뢰기를 “아무 보답도 없이 인명만 상할 터인데

어찌 남의 일에 쉬이 나서겠나이까?” 하며 완곡하게 사양하고 물러가니라.


이튿날 상제님께서 명치를 다시 불러서 혼을 내신 뒤에 물으시매

역시 사양하므로 돌려보내시더니 사흘째 밤에는 크게 화를 내시며 “이놈! 이놈!” 하고

밤새도록 불호령을 내리시니라.

 

이에 명치가 마지못해 굴복하여 “조선 일을 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거늘

상제님께서 명치와 더불어 여러공사를 보시고 돌려보내시니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명치 그놈, 참 잘난 놈이다. 명치만큼 똑똑한 놈이 없다.

똑똑하고 무서운 놈이니 장차 서양 세력을 물리치리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항우(項羽)는 한고조(漢高祖)의 양장(良將)이요,

명치는 나의 양장이니라.” 하시니라.

(道典 5:51)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일본의 명치유신에서 유래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정권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게  상제님에 의하여 선택되어 천지공사로 결정되었다.

그래서 우리민족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선택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이라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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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신도(神道)에서는 명치가 주관하여 박정희에 응기하므로 해서

일본의 명치유신의 정신을 본 받아  박정희는 조국의 근대화에 활용하고 박차를 가 하였든 것이다.

 

유신정권은 1972년 10월 17일에 선포된 유신체제하에서 1972년 12월 17일 국민투표로 확정된

유신헌법에 의해 선출된 정권입니다. 유신헌법은 문제가 많은 헌법이었지만 가장 큰 문제점은 대통령을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단체에서 대통령을 뽑도록 한 것입니다.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의 영구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이라

대통령의 재임횟수를 3회로 제한한 1963년 12월 17일~1972년 10월 17일의 제3공화국과

구분하여 유신정권을 제4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유신헌법에는 대통령의 권한이 대폭강화되어 그 후에 수시로 긴급조치같은

대통령의 명령이 남발되는 부작용을 초래하였으며, 또한 법률유보조항이 많아서 국민의 기본권을 쉽게

제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국회의 회기를 단축하고 권한을 약화시켰으며

법관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등  3권분립의 원칙을 무너트렸습니다.

 

따라서 유신정권은 독재정권이 맞습니다.

 

그러나 유신정권은 제 3공화국에서 실시된

경제개발 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국방안보를 튼튼하게 지켜야한다는 절박감에서

선택한 결정이라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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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으로는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1차(1962~1967) 2차(1967~1972)이 성공적으로 완수된 시점이었고

3차(1972~1977)이 시작되려한 시점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물러나고

다른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면 이러한 경제개발정책을 시행하는데 차질을 빚었을겁니다.

 

또한 이러한 경제개발정책에선 속도를 내기위해 군대의 작전처럼 손발을 맞추어서 착착진행해야하는데

민주적인 절차를 밟게되면 성장 속도가 느려져 경제개발정책이 와해될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는 남북한이 극렬하게 대치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미국과 소련과의 냉전이 극에 달해있던 시기였습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따라 정치를 하게 되면 국방안보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고

제 2차 한국전쟁이 발발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 시대의 사회지도층들은 모두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였고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발발하지 않도록 하기위해 무슨짓이든 할 사람들이었습니다.

 

더욱이 60년~70년대는 북한보다 남한의 군사전력이 뒤떨어지던 시대라

미국의 힘없이는 북한과 맞서싸울수 없던 시기였습니다. 유신정권은 독재정권이었지만

국방안보를 튼튼히 함으로써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는걸 성공적으로 방어한 정권이기도 합니다.

 

결론적으로 박정희대통령은

대한민국의 50년뒤를 내다보고 스스로 욕먹을 짓을 자처한걸로 보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박정희대통령이 후대에게 물려준 자산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고속도로, 제철소, 발전소, 조선소, 아파트, 댐 등 지금도 여기저기에 박정희대통령이 남겨준

자산들을 후대가 이용하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60,70년대의 관료들이나 군인들, 기업가들을 비롯한

사회지도층들은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서 맨손으로 경제개발을 이룩한 사람들입니다.

 

독재를 저지른 것을 두둔하는게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독재를 하려고 하진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참고자료출처 : http://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601&docId=63008322&qb=67CV7KCV7Z2sIOycoOyLoOygleq2jA==&enc=utf8&sect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RDU3t35Y7vZssbQ/cmCsssssssd-116136&sid=UlX3B3JvLDEAAGf-DY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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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양심적 일기

 

제자가 스승을 우습게 여기는
교권(敎權)없는 학교에서 진정한 교육은 이루어질 수 없다.  
1966년 1월 18일 연두교서 교육선언문 내용 中


민족적 민주주의의 제1차 목표는 자립에 있다.
자립이야말로 민족 주체성이 세워질 기반이며, 민주주의가 기착 영생을 할 안주지인 것이다.

 

민족 자립없이 거기에 자주나 무슨 주의가 있을 수 없으며,
자립에 기반을 두지않는 민족 주체성이나 민주주의는 한낱 가식에 불과하다

1967년 4월 19일 '자립에의 의지' 방송 연설에서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오늘날 우리 야당과 같이 '반대를 위한 반대'의 고질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야당으로부터 오히려 독재자라고 불리는 대통령이
진짜 국민 여러분을 위한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박정희, 1969년 10월 10일 연설 中

 

1978년 5월 16일 (화) 맑음

5.16혁명 제17주년이다.
오전 10시 반 민족상 수상자 12명에 대한 수상식이 있었다.
오후 6시 반부터는 5.16민족상 이사 42명과 같이 만찬을 들면서 지나간 17년간의 회고담을 나누었다.
돌이켜 보면 지나 17년간 우리 사회는 너무나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숙명처럼 생각하며
체념 속에 살아 온 가난한 이 나라를 어떻게 하면 이 굴레를 벗어버리고
우리도 남들처럼 잘 살아 볼 수는 없는 것인지,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었는데

이제 잘 살 수 있는 터전이 마련되었고 얼마 안 가서
남부럽지 않은 잘사는 나라가 될 자신이 생겼다.
 
그 동안 많은 비판의 소리도 들었고 비난의 소리도 수없이 들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들은 정부의 시책에 협조해 주었고 지지해 주었다.

특히 제 2 의 5.16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10월 유신은
능력의 극대화와 국력의 조직화를 가장 효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제도였다고 확신한다.
 
10월 유신 이후 지난 6년 동안 우리 국력의 신장은 참으로 괄목할 만하다.
이대로 추진된다면 1980년대 중반에 우리는 대국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아직도 이 체재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반대하는 인사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가탄불기(可歎不起) 다만 결과를 가지고
후세에 평가를 기다리는 도리밖에 없을 것이다.

중단하는 자는 승리하지 못한다

 

1975년 4월 30일
자기 나라를 자기들의 힘으로 지키겠다는 결의와
힘이 없는 나라는 생존하지 못한다는 엄연하고도 냉혹한 현실과 진리를 우리는 보왔다.

 

남이 도와주려니 하고,
그것만을 믿고 나라 지키겠다는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가,
망국의 비애를 겪는 역사의 교훈을 우리 눈으로 보았다.
 
조국과 민족과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여하한 목숨도 불사하겠다는 결의와 힘을 배양하지 않으면,
망국하고 난 연후에 아무리 후회해 보았자 후회막급일 것이다.

 

충무공의 말씀대로, 필사즉생(必死卽生) 필생즉사(必生卽死)다.
이 강산은 조상들이 과거 수천 년 동안 영고성쇠(榮枯盛衰)를 다 겪으면서
지켜오며 이룩한 조상의 나라이다. 조국이다.

 

우리가 살다가 이 땅에 묻혀야 하고,
길이길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서 지켜가도록 해야 할 소중한 땅이다.

 

하늘은 한 민족이 자기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고 개척하겠다는 결의와 노력을 경주할 때는
반드시 거기에 응분한 보상을 준다는 것으로 우리는 믿어야 한다.


1977넌 3월 7일 (월)

아내가 타계하기 꼭 3개월 전의 이야기다.
아내는 남달리 자연을 좋아하고 아꼈다.

 

이 다음에 이 자리 그만두거든
시골에 가서 조그만 집 하나 짓고 살아요,

그리곤 그 뒷산에는 바위가 있고, 바위 밑에는 맑은 물이 나오는 그런 곳에서 살아요.'
아내가 자주 하던 말이다. 아내는 그것이 소원이었다.


그 조그마한 소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그이는 갔다.

지금도 지방에 다니다가 나무 있고 바위 있는 아담한 산이 있으면
나는 유심히 그 산을 보게 된다. 그이가 저런 곳에서 살기를 원했는데 하고.  
그러나 이제는 누구와 같이 그런 곳에 가서 조용히 살까.


아내는 또 우리 나라 재래식 한옥을 좋아하였다.

지방에 차로 같이 다니다가 재래식 기와집 반듯한 집을 보면 '저 집 참 좋지요!
저런 집 하나 짓고 살았으면 좋 겠어요.'하고 처녀시절 옥천 친정집에 살던 때 이야기도 자주 하였다.

 

대청마루에 돗자리 깔고 앉아서 달빛을 바라보면 시골의 풍경을 늘 그리워하였다.
그런 생활을 노후의 유일 한 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이는 먼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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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은 ‘명치가 나의 양장’이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능력과 자질을 천지공사에 쓰셨다.

비록 상제님께서 그를 천지공사에 내어 쓰셨지만,

일제에게 수난을 당했던 우리 민족의 현실역사에서 보자면 메이지에 대한 시선이 결코 고울 수 없다.

 

명치유신의 해설

참고자료 http://magic.ne.kr/zbxe/ss2/16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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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정희대통령 모습과

살아생전에 기거하셨던 신당동 사저인 내부의 일부 모습이다.

자세히 벽에 걸린 액자를 보면

「증산상제하감지위」라고 쓰여진 액자가 걸려있다.
박대통령 부친인 박성빈께서도  상제님을 신앙해 오시던 것으로 밝혀졌다.

 

박정희소장이 5.16거사를 도모하면서

실업가인 남상옥(南相沃)씨에게 조카사위인 김종필중령을 통해

혁명자금을 부탁하는 서신(書信)에서  上帝(하느님)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있어 이채롭다.

 

그 전문全文의 일부

 

<上帝께서 헐벗고 가난한 이 나라 백성을 저버리지 않는 한

또한  우리들 자신이 자립갱생 하겠다는 개척의 정신이 소멸되지 않는 한

낙심과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이런 시기일수록

大義를 위하여 大勇 분발해야할 시기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어려서 잠시

동네 교회를 다닌적은 있으나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박정희 소장이 5.16 거사를 도모하면서

실업가인 남상옥(南相沃)씨에게 조카 사위인?  김종필중령을 통해 혁명자금을 부탁하는

書信에서 上帝(하느님)에 대해 언급한부분이 있어 이채롭다.


그 全文을 적어본다.
<국내정국은 日益複雜(일익복잡)과 多難(다난)을 조성하고 있고 사회풍조는
혼란과 허탈일로를 줄달음하고 있을 뿐 조국과 민족의 前途(전도)에 암담한
憂愁(우수)가 뇌리를 去來(거래)할 뿐입니다.


然이나 上帝께서 헐벗고 가난한 이 나라 백성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는 한
또한 우리들 자신이 자립갱생 하겠다는 개척의 정신이 소멸되지 않는 한 낙심과 실망할 필요는

없을 것이며 이런 시기일수록 大義를 위하여 大勇을분발해야 할 시기라고 확신하는 바입니다.


금일 이 서신을 지참하는 김종필 군은 弟와 모든것을 상의할 수 있는 知己知友(지기지우)이며
또한 弟의 姪壻(질서, 조카사위)입니다.


目下 弟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위하여 金君편에 자금을 좀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情長紙短(정장지단)하와 이만하고 拜眉之機(배미지기)로 미루고 더욱 保重(보중)하시고
건투하시기 祈望(기망)하오며 ?筆(각필) 하나이다.
<朴正熙  拜上>

 

박정희 대통령의 일기 

 

1977년 4월 29일 (금) 맑음

 

10시에 예산군 덕산 윤봉길 의사 45주기 의거일 제례에 참석.
윤 의사의 유족 장남 종씨를 만나서 유족들의 안부와 생계 형편을 물어 보았다.
윤 의사의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 보다.

 

약관(弱冠) 20여 세에 망국의 한을 품고 중국대륙에 건너가서
조국광복과 민족정기를 위하여 폭탄을 품고 사지에 뛰어 들어간 의기.
그때가 1932년, 의사의 춘추 이제 겨우 25세.

 

안중근 의사와 더불어 나라가 망하고 민족의 정기가 사라져가고 있을 때에
겨레의 가슴속에 다시금 횃불을 켜준 의열의 쾌거를 강행하였으니 참으로 장하도다.


충의(忠義)는 천추(千秋)에 빛날 것이며
민족의 얼이 맥맥이 살아 길이 이 조국 이 겨레를 수호하리라.
재천(在天)의 영(靈)이 굽어살피시와 이 조국 이 겨레를 길이 빛나게 하여 주소서.

 

 

1978년 일기

1978년 1월 18일 (수) 눈

1978년도 연두기자 회견을 10시 정각 중앙청 회의실에서 가졌다.
목감기가 아직 완전 회복되지 않아서 음성이 약간 탁하고 맑지 못하였으나 강행을 하다.


2시간 50분이 걸렸다.

희망과 자신과 의욕에 가득 찬 새해다.
조국근대화와 민족중흥의 그날이 눈앞에 다가선 것 같다.
국제정치의 격랑속에서 호시탐탐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이 긴박한 한반도 정세.

나날이 각박해 가는 세계경제의 추세.


외교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는 속담처럼
제각기 자국의 국가이익을 위해서는 의리도 신의고 없는 냉혹한 작금의 국제정세.

오직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힘뿐이다.


힘, 힘이 없고 힘을 기르는 데 힘쓰지 않는 민족은 살아남을 땅이 없다.
이것은 진리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 있다.

 

먼 곳에서 구하려 하지 말자.
오천년 동안 이 땅을 지키며 살아온 겨레.
홍익인간(弘益人間)이란

민족의 이상을 간직하고 착하고 어질게 살려고 자자손손 가꾸어 왔는데,
한 번도 남을 해치거나 악하게 하지도 않았는데,


항시 외적의 침입을 받고 어깨 펴고 살지도 못했거늘

가난과 침체와 무기력과 쇠잔의 역사를 걸어왔건만.

이제 우리에게도 어두운, 지루한 밤은 가고 밝은 새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밝아온 새 아침에 지금 살고 있다.
이 밝은 새날은 우리가 역사상 처음으로 대웅비를 기약 받은 새 역사의 출발점이다.
금년은 그 중의 한 해다.

 

물질문명의 풍요와 발맞추어서 정신문화에도 꽃을 피우기 위하여,
전통문화도 꽃을 피우기 위하여 전통문화 속에 조상들의 얼과 슬기가 맥박치는

문화적인 자주성도 정립해 나가야 하겠다.

 

풍요하면서도 균형을 유지하고 모든 혜택이 균점이 되게끔 정책방향을 지향해 나가야 하겠고
도의(道義)와 인정이 충만한 사회를 건설해 나가야 하겠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사회다.


1975년 6월 25일 (수) 흐름

 

1950년 6월 25일(일) 새벽4시. 1백 55마일 38선 전선에서
북한 공산군이 일제히 포문을 열고 기습공격을 개시, 민족사상 가장 처절한 혈투가 전개되었다.
불의의 기습공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남침징후를 약 6개월 전에 예측했었다.
육군본부 정보국에서는 적의 남침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을 군 수뇌부에 누차 보고하였다.
그러나 이 판단서를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군수뇌, 정부당국, 미국고문단 모두가 설마하고 크게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다.

1949년 말 정보국 작전판단서는 전쟁이 발발 후 포로와 적 문서에 의하여
또는 귀순자들의 제보에 의하여 너무나 정확하게도 적중하였다.


알고도 기습을 당했으니 천추의 한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무능과 무위와 무관심이 가져온 국가재산과 인명, 문화재의 피해가 그 얼마나 컸던가

후회가 앞설 수는 없지만 너무나 통탄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4백년 전 임진왜란 때 우리조상들이 범한 과오를 우리시대에 또 되풀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오늘의 정세는 흡사 6.25 전후와 비슷하다.


우리 세대에 또 다시 이러한 과오를 범한다면
후손들에게 영원히 죄를 짓고 조상들에게도 면목이 없다.

전국민이 시국의 중대성을 깊이 인식하고 총력안보 태세를 철통같이 다져서
추호의 허(虛)도 없이 조국을 수호하는 데 심혈을 경주해야 할 때다.

 

참고자료출처 : http://blog.naver.com/ilsim64/10151717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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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사동정이 각기 때가 있나니

어떤 사람이 무고히 남의 오해를 받아서 구설이 일어남을 분히 여기거늘
상제님께서 이르시기를 “바람도 불다가 그치나니 남의 시비를 잘 이기라.

 

만사동정(萬事動靜)이 각기 때가 있나니
걷힐 때에는 흔적도 없이 걷히느니라.” 하시니라.

 

어느 날 안내성이 일본 사람과 싸워서
몸에 상해를 입고 와 뵈니 말씀하시기를 이로부터 너는 내 문하에서 물러가라.
내가 이제 너의 죽고 사는 일에는 간여치 않겠노라.” 하시니라.

 

내성이 이유를 모른 채 엎드려 대죄하니 말씀하시기를
시속에 길성소조(吉星所照)를 말하나 길성이 비치는 곳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을 잘 대접하는 곳에 길성이 비치나니
네가 지금 일본 사람과 싸우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취함이라.
내가 어찌 너를 가까이하리오.”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258)


서양으로 넘어가는 동양을 붙들어 주심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동학(東學) 신도들이 안심가(安心歌)를

잘못 해석하여 난을 지었느니라.

 

일본 사람이 3백 년 동안 돈 모으는 공부와 총 쏘는 공부와
모든 부강지술(富强之術)을 배워 왔나니 너희들은 무엇을 배웠느냐.

 

일심(一心)으로 석 달을 못 배웠고
삼 년을 못 배웠나니 무엇으로 그들을 대항하리오.

그들 하나를 죽이면 너희들은 백이나 죽으리니 그런 생각은 하지 말라.

 

이제 최수운(崔水雲)을 일본 명부, 전명숙(全明淑)을 조선 명부,
김일부(金一夫)를 청국 명부, 이마두(利瑪竇)를 서양 명부로 정하여
각기 일을 맡겨 일령지하(一令之下)에 하룻저녁으로 대세를 돌려 잡으리라.

 

이제 동양의 형세가 누란(累卵)과 같이 위급하므로
내가 붙들지 않으면 영원히 서양으로 넘어가게 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4)

 

제국주의 일본의 역할

하루는 한 성도가 여쭈기를
올 농사에 어떤 종자를 심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녹(祿)줄을 띠고 왔나니 일본 종자를 심으라.” 하시고
생계(生計)의 모든 일에 그들을 본받으라. 녹줄이 따라오느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한 성도가 일본 사람을 ‘왜놈’이라 부르니

상제님께서 들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일해 주러 온 사람들을 그렇게 험하게 말하면 어떻게 일을 제대로 하리오.

 

일 보는 사람이니 왜놈이라 부르지 말고 ‘일본 사람’이라 부르라.
일인(日人)은 일꾼이라. 나의 일을 하나니 큰 머슴이 될 것이니라.

 

그러나 일꾼이 주인의 집을 빼앗으려 하므로
마침내는 크게 패망할 것이니 일본 사람은 나한테 품삯도 못 받는 일꾼이니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은 깔담살이 머슴이요, 미국은 중머슴이요, 중국은 상머슴이니라.
깔담살이가 들어가면 중머슴이 나와서 일하고,
중머슴이 들어가면 상머슴이 나오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22)


조선을 잠시 일본에 넘겨주어야

상제님께서 인경 위를 향하여 여러 말씀을 하시는데
성도들이 들으니 그 말씀의 뜻을 알 수 없고 조선말이 아닌 것 같더라.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조선을 잠시 다른 나라에 넘겨주고 천운(天運)을 기다리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조선을 서양으로 넘기면 인종이 다르므로 차별과 학대가 심하여 살아날 수 없을 것이요

청국으로 넘기면 그 민중이 우둔하여 뒷감당을 못할 것이요


일본은 임진란 후로 도술신명(道術神明)들 사이에 척이 맺혀 있으니
들에게 넘겨주어야 척이 풀릴지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일본을 도와
잠시 천하통일(天下統一)의 기운과 일월대명(日月大明)의 기운을 붙여 주어
천하에 역사를 하게 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 한 가지 못 줄 것이 있으니 곧 어질 인(仁) 자라.
만일 어질 인 자까지 붙여 주면 천하는 다 저희들의 소유가 되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어질 인 자는 너희들에게 붙여 주리니
다른 것은 다 빼앗겨도 어질 인 자는 뺏기지 말라.
너희들은 편한 사람이요 저희들은 곧 너희들의 일꾼이니라.

 

모든 일을 분명하게 잘하여 주고 갈 때는
품삯도 못 받고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말대접이나 후하게 하라.” 하시니라.

 

이어서 양지에
天下是非神淳昌運回
천하시비신순창운회 라 쓰시며 말씀하시기를 “이 공사의 결정으로 인하여
천하의 모든 약소민족도 조선과 같이 제 나라 일은 제가 주장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177)

 

일본은 품삯도 못 받고 가는 일꾼이니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일본 사람이 천지의 일꾼이 되어 조선에 와서 남의 집을 사는데
부지런히 일을 하고는 필경 품삯도 받지 못하고 빈주먹으로 돌아가리라.

 

조선이 이제 캄캄하고 우닥닥우닥닥하면 정신을 못 차릴 것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3:40)

 

관운장에게 세계 대전쟁의 천명을 내리심

4월에 신원일을 데리고 태인 관왕묘 제원(關王廟 祭員) 신경원(辛京元)의 집에 머무르실 때

하루는 원일, 경원과 함께 관왕묘에 가시어

관운장(關雲長)에게 천명을 내리시며 공사를 행하시니라.

 

이 때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동양에서 서양 세력을 몰아내고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한 약소국을 건지려면 서양 열강 사이에 싸움을 일으켜야 하리라.

 

관운장이 조선에 와서 극진한 공대를 받았으니
그 보답으로 당연히 공사에 진력 협조함이 옳으리라.” 하시고
양지에 글을 써서 불사르시며 관운장을 초혼하시니 경원은 처음 보는 일이므로 이상히 생각하니라.

 

이 때 자못 엄숙한 가운데 상제님께서
세계대세의 위급함을 설하시고 서양에 가서 대전쟁을 일으키라는 천명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감히 거역할 수는 없으나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아 머뭇거리는지라

 

상제님께서 노기를 띠시며 “때가 때이니만큼 네가 나서야 하나니 속히 나의 명을 받들라.
네가 언제까지 옥경삼문(玉京三門)의 수문장 노릇이나 하려느냐!” 하고 엄중히 꾸짖으시니라.

 

관운장이 그래도 대답을 아니하매

상제님께서 관운장의 수염을 휙 잡아당기시고 옷을 찢어 버리시니
이 때 조상(彫像)에서 삼각수(三角鬚) 한 갈래가 바닥에 떨어지니라.

 

이렇게 하룻밤을 지새시며 ‘이놈, 저놈’ 하고 불호령을 내리시거늘
관운장이 마침내 굴복하고 상제님의 명을 받들어 서양으로 가니라.

 

이후에 김경학(金京學), 최창조(崔昌祚), 최내경(崔乃敬), 최덕겸(崔德兼) 등
태인 사람들이 상제님의 면모를 숭배하여 상제님을 따르니라.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그 뒤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김성연(金成淵)과 함께 말을 타고 관왕묘에 이르시어
말씀하시기를 내가 관운장을 서양으로 보냈는데 여기서 무슨 제사를 지내느냐.” 하시고

성냥을 그어 관왕묘에 불을 지르려 하시다가 성연의 간곡한 만류로 그만두시니라.
(증산도 道典 5:166)

 

나의 일은 비록
부모 형제 처자라도 모르는 일이니
나는 서양 대법국 천개탑 천하대순이라.

 

동학 주문에 ‘시천주조화정(侍天主造化定)’이라
하였으니 나의 일을 이름이라.

 

내가 천지를 개벽하고
조화정부를 열어 인간과 하늘의 혼란을 바로잡으려고
삼계를 둘러 살피다가

 

너의 동토에 그친 것은
잔피(孱疲)에 빠진 민중을 먼저 건져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어 주려 함이라.

(증산도 道典 3:184)

 

여기에서 상제님 말씀을 통해서 철저히 깨우쳐야 하는것은

우리민족이 스스로 철저히 반성하고 참회해야 하는것은 

우리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잃으버린 것 때문에

항상 망해 왔다는것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것이다.

 

우리민족은 상제문화를 잃어버리고
임금과 백성들은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가운데에서  제되로  배우지 못했고

또한 제되로 가르치지 못해 무식하였고
얼이 빠져 스스로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없애버리고

불태워 버렸으며 외래종교에 빠져 백성들에게 진정한 역사를 통해서 

민족혼을 불어넣어 가르치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민족은 민족의 혼을 상실하여
스스로 자멸하는 경지에 이르러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렀고 또한 동족상잔의 6.25까지 치러게 되었는것이다.

 

상제님이 우리민족을 일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든 것은
우리민족이 유교에 의하여 이조 오백년을 통해서 정신이 썩어 무능하고 무식하여

나라전체를 뒤집어 놓지 아니하는 이상 가능성이 없는 민족이 되어 있었다.

상놈이라는 제도속에 백성들을 가르치지 아니하고 탐관오리가 되어 착취만 하는 과정에서

무능한 백성으로 만들어 놓아 그 결과 나라와 민족이 망해 버렸다.

 

그리하여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잃어버린 백성들은 무식하고 얼이 빠져 

세계정세를 몰라 우물안에 개구리가 되어 나라마저도 지킬 수없는 참혹한 지경에 놓이고 말았던 것이였다.

지금도 역시 외래종교와  민주주의라는 미명아래 얼이 빠져 정신이 타락하고 도의가 땅에 떨어져

또 한번 망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것이다.

진실로 나라가 또 한번 죽느냐, 사느냐 하는 엄청난 기로에 서 있다는것을 명심해야 한다.

 

불사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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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나들이

유교가 성립된 배경에서 우리는 신교의 핵심인 삼신상제 문화의
면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본래 공자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나는 전해전 것을 기술하였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述而不作)했다.

 

인문의 큰 틀은 하늘의 질서에 근본을 둔 것으로
공자는 가까운 시대의 문화를 통해 아주 오랜 옛 문화를 상고 할 수있으며
그 큰 줄거리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는 그 출발점을 당시까지 사료가 남아 있던 요순시대로 잡고
요순문화의 실체를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요임금과 순임금은 동방의 배달족 출신으로
신교문화를 계승한 주인공들이다.

 

때문에 그 문화의 골간에는 상제의식이 무르녹아 있었다.
훗날 공자는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 건너 구이(九夷)에 살련다고 하며
동방의 군자문화 상제문화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공자가 그 시대까지의 민요와 역사 기록을 모아 엮은 유교의 주요 경전인
시경이나 서경등에서는 두렵고도 공경스러운 상제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서경은 '항상 덕을 잘 닦아 상제님의 천명을 보존해야한다고' 가르쳤다.

 

본래 원시유교에서 섬긴 '하늘' 은 인간과 만물에게 직접 천명을 내리는
인격적인 하늘(상제천)로서 만물을 주재하는 '주재천' '인격천' 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상제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천명을 내리며
인간과 신들의 상벌을 주관하시면서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시는 인격신 하나님 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교의 영향으로 그 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보편 사상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이후 논어에서 하늘을 인격적 상제천보다는 자연천과 도덕천
그리고 운명천의 개념으로 더 많이 언급하고 사후(死後)와 귀신의 문제는 언급을 꺼렸다.

 

또한 한 무제 때에 이르러 유학자 동중서가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나오는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삼신(出於三神)'이라는
신교의 가르침을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천(出於天)'이라고 바꾸어 버림으로써
유교의 천이 본래의 인격적인 상제천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더욱 멀어졌다.

 

그리하여 인격주신인 상제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삼신상제님에 대한 신앙은 사라져갔다.

 

제2의 공자로 불리는 주자는 당시 성행하는 도교와 불교에 대항하여
윈시유학의 부족한 이론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유교의 주요 경전들을 정리
주석을 달고 우주의 시원이자 주재는 곧 태극이라는 등의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세웠다.

 

그는 우주 이법의 주재자로서 상제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학자가 다 말할수 있는 경계가 아니며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 하며
상세한 언급을 회피했다.

 

주자의 이러한 태도는 유교의 천을 상제천(인격천)에서 의리천(義理天)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성리학은 사변적 이론에만 치우져
유교의 인간적이고 정감적인 상제의식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의 학자들에게 상제신앙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천거했던 서애 유성룡은 이순신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주었다.

 

깊은 밤 어둠 속에 상제님께서 내게 임하시네
방안 깊숙이 홀로 있는 곳에도 신명이 살피고 계신다....
삼가하고 두려워하여 상제님의 법칙대로 따를지어다.

 

또 박세당은 도덕적 의지가 있는 인격적인 하늘을 참되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예송전쟁을 이끌었던 윤휴는 경전 속에서 고대의 상제신앙을 찾아내어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수양 방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윤휴의 사상은 훗날 다산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다산은 젊어서 한때 서적을 읽고 천주교에 심취하여 전도까지 한 일이 있었으나.
조상을 우상이라 여기고 신주를 불태우는 형태에 분노하여 신앙을 버렸다.

 

그 후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 개념을 비판하면서 상제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말하였다.

다산 철학의 출발점이자 근간은 한마디로 동방의 인격 주신의 상제천
즉 상제님의 천명을 세우는 일이었다.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天地神人 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宰制安養 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것은 아니다.
일음일양으로 운동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조화의 근본(상제님)이 있다.

 

껍질뿐인 태극과 리로써 천지만물의 주재근본을 삼는다면
천지간의 일들이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하늘을 감정도 형체도없는 '도' '태극' '리' 등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러한 태도는 날마다 온 인류의 곁에 계시며 굽어보시는 상제님에 대해
삼가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견해는 조선후기 주자학 일변도의 학풍 속에서 이단시되었으며
이후 상제문화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어둠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유교의 상제(하나님) 기록1 [심경,시경]
유교의 상제(하나님) 기록1 [심경,시경]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떠올리면,
기독교의 하나님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동양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분명한 하나님이 존재하니,
이는 바로 상제요,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둘이 아니다.
이번에는 유교의 하나님을 3부에 걸쳐서 알아보고자 한다.

 『心經府註』

詩曰. 上帝臨女하시니 無貳爾心이라 하고 又曰 無貳無虞하라 上帝臨女라 하니라.
『시경』에 이르길, "상제께서 너를 굽어보시니 네 마음을 두 가지로 하지 말라.“하였고,
또 이르길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상제께서 너를 굽어보신다.“하였다.

程子曰, 毋不敬이면 可以對越上帝니라


정자가 말씀하였다. “공경스럽지 아니함이 없으면 상제님을 마주할 수 있느니라.”

저 숲속을 보건대 굵은 나무섶과 잔 나무섶이 있도다.


백성들이 이제 막 위태롭거늘 하늘을 보건대 막막하여 밝지 못하도다.
하늘이 이미 정해짐이 있으면 사람을 이기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위대하신 상제께서 누구를 미워하시리오
(小雅, 正月)

 

주자주: 저 숲속을 보면 굵고 잔 나무섶을 분명히 볼 수 있거늘 백성들이 지금 막 위태로워
괴로움을 하늘에 호소하되, 하늘을 보니 도리어 막막하여 선악을 구별하는데 뜻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다만 하늘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를 만나서일 뿐이다.
하늘이 이미 정해지면 하늘에게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

 

하늘이 어찌 미워하여 화를 내리시는 것이겠는가.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고 음탕한 자에게 화를 내림이 또한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申包胥가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정해지면 또한 사람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나온 말인 듯 하다.

 

상제께서 그대에게 임하셨으니 그대의 마음에 의심을 두지 말지어다 (大雅, 大明)

위대하신 상제께서 아래 세상 굽어봄이 밝으사 사방을 관찰하시어 백성의 안정된 삶을 구하시니
하나라, 은나라 이 두 나라가 그 정사가 도리에 맞지 않기에 저 사방 나라에서 이에 찾고 이에 헤아리시니 상제께서 이루고자 하시면 그 국경의 규모를 증대시키시는지라. (大雅, 皇矣)


상제께서 문왕에게 이르시되 나는 明德을 드러내는 소리와 색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며
잘난 체하고 변혁함을 훌륭하게 여기지 않고 사사로운 지식을 쓰지 아니하여
상제의 법에 순응하는 자를 사랑한다 하시다.

상제께서 문왕에게 이르시되 너의 원수 나라에게 물으며
너의 형제국과 함께 하여 너의 무기와 너의 성을 공격하는 병기들로 숭나라의 성을 치라 하시다.

(大雅, 皇矣)


내 제기에 제물을 담으니 나무그릇에도 담고 질그릇에도 담도다.
그 향내음이 비로소 하늘로 올라가니 상제께서 편안히 흠향하시도다. (大雅, 生民)


개벽실제상황 256p~2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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