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증산도 안운산 종도사님 연합 인터뷰

(서울=연합뉴스) 서한기기자=

 

"종교문화는 인간생활에 부담을 주어서는  안됩니다.

증산도는 상생이념을 바탕으로 한 생활문화의 틀입니다. 단순한 기복신앙이  아닙니다.

가만히 앉아서 잘 되자는 그런 진리가 아닙니다."
   

민족종교 증산도의 최고 지도자 안운산(82) 종도사가 오랜만에 바깥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13일 증산도 본부가 있는 대전 증산도 교육문화회관에서다.

   

안 종도사는 증산도의 핵심정신은

인간세상이 요구하는 새문화, 새세상을  여는 사상운동에 있다고 말했다.

   

봄에 씨앗을 뿌려 여름에 가꾸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듯이

일상생활에서 해원(解寃:원한을 풀어 근본을 바로잡는 것)과

보은(報恩: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것),

상생(相生:서로 잘 되게 하는 것),

원시반본(原始返本:인간과 사회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의 실천이념을 통해

부지런히 인간농사를 지어 후천개벽(後天開闢)의  세상을 맞는 게 궁극적 목표라는 것이다.

   

안 종도사는 이를 위해 증산도 사상을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필생의 과업으로 증산도 창시자인 강증산의 말씀을

외국어 경전으로 정리하는 작업에 몰두, 반세기만에 결실을 보았다.

   

1945년 해방되면서 구상했던 증산도 경전인

도전(道典)을 영어, 중국어,  일어,러시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7개 외국어로 번역해

강증산 탄신  133주년을 맞아 최근 발간하게 된 것.

   

"8.15광복이후 도전을 외국어로 번역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일본어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한테 맡겼다가 사기를 당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10여년전 궁여지책끝에 증산도사상연구소를 만들었어요. 40∼50명의  연구원들을 모집해서

번역작업에 힘썼지요. 민족종교에서 경전을 외국어로 옮긴 것은 아마 전무후무한 일일 것입니다.

도전은 이제 세계인류의 경전이 될 것입니다."
   

안 종도사는 이번에 번역돼 나온

외국어 도전을 전세계 곳곳에 배포,  증산도의 세계화에 힘쓸 계획이다.

   

안 종도사는 종교지도자로서 현실의 문제에 개입하는데 대해 극도로 꺼리면서도

상극으로 치닫는 지금의 정치문화에 대해 증산도의 핵심교리인 상생  정치를  실현,

상생의 세상을 이루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안 종도사는 현재 신도 70만명에 이를 정도로

성장세를 거듭하고 있는 증산도를 개척한 증산도의 산증인이다.

   

그가 증산도를 천명으로 생각하고 증산도 부흥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된  것은

증산도 신도인 조부와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다.

   

1922년 충남 서산군 대산면 운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12살때 집에서 수련하던 중 영성이 열리는 체험을 하고 난 뒤

국내는 물론 만주와 중국 등지를  오가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겪는 숱한 고행끝에

24살 되던 해 해방을 맞아 고향에 내려와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벌였다.

   

이런 노력끝에 수십만의 신도를 규합하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한국전쟁발발과 함께 20년간 휴게기에 들어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어려움속에  은둔생활을 하다

 

53살이 되던 1974년에 셋째아들과 함께 증산도 관련 서적을 발간하면서 

증산도의 대중화에 뛰어들어 지금의 증산도를 일구었다.

   

증산도는 증산 강일순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이 실패로 끝난 뒤

구세제민에  뜻을 두고 전국을 주유하다 1901년 김제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院寺)에서

깨달음을 얻은 뒤 후천개벽(後天開闢)과

후천선경(後天仙境)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창시한  민족종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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