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 한민족의 신교(神敎)

삼신상제님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니라.
 

甑山道 道典  1편 1장  


유불선 삼교의 연원, 신교
 
본래 유(儒)·불(佛)·선(仙)·기독교(西仙)는
모두 신교에 연원을 두고 각기 지역과 문명에 따라 그 갈래가 나뉘었더니 
 
이제 성숙과 통일의 가을시대를 맞아 상제님께서 간방 땅 조선에 강세하시매 
이로써 일찍이 이들 성자들이 전한 천주 강세의 복음이 이루어지니라.
 

甑山道 道典  1편 6장  


강(姜)씨는 인류의 시원 성(姓) 
증산 상제님께서 동방 땅의 진주 강문(晉州姜門)을 택해
오심은 인류 구원의 깊은 뜻을 나타내심이라.
 
강씨는 인류의 시원 성(姓)이니 상고시대 동방 배달의 신농씨(神農氏)로부터 시작하니라.
 
신농의 아버지 소전씨(少典氏)가 군병 감독의 명을 받고
강수(姜水)에 살았으니 신농이 그곳에서 태어나 성장하여 성을 강(姜)씨로 하니라.
 
신농의 후손 강태공(姜太公)은 동방 신교의 일맥(一脈)을 한족(漢族)에 전수하고,
병법(兵法)과 정치(政治)로써 천하 만세에 은혜를 베푸니라.
 
진주 강씨의 도시조(都始祖)는 고구려의 병마도원수(兵馬都元帥) 이식(以式)으로
용맹이 출중하고 지략이 뛰어난 희세의 명장이라. 
 
수(隋)나라 문제(文帝)의 30만 대군을 격파하고,
그 아들 양제(煬帝)의 침입에 맞서 을지문덕을 휘하로 하여 수의 백만 대군을 물리쳐 나라를 구하였나니
 
문중 대대로 기골이 장대하고 기상이 의로워 많은 무관(武官)을 내었으며 
조상 제사 전에는 이레 동안 술 담배를 금하고
목욕재계하여 지극한 정성으로 선령(先靈)을 모시는 소문난 효자 집안이라.
 
부친께서 그 백부(伯父) 두중(斗重)에게 출계(出系)하심으로써
상제님은 13대조 좌랑공 부(溥)의 종손이 되시니라.
 

甑山道 道典  1편 12장  


상제님의 천명을 받은 최수운 대신사 

신교(神敎)는 본래 뭇 종교의 뿌리로 동방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 속에
그 도맥(道脈)이 면면히 이어져 왔나니
 
일찍이 최치원(崔致遠)이 말하기를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 실로 삼교를 포함하여(包含三敎) 접하는 모든 생명을 감화시키는 것(接化群生)이라.” 하니라.
 
그러나 조선을 비롯한 동양 각국이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폭압에 침몰당해 갈 무렵,
신교 또한 권위를 잃고 그 명맥이 희미해지거늘 
 
하늘에서 동방의 이 땅에 이름 없는 한 구도자를 불러 세워
신교의 도맥을 계승하게 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으로 새 세상이 열릴 것을 선언토록 하셨나니
그가 곧 동학(東學)의 교조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 대신사(大神師)니라.
 
수운은 몰락한 양반의 서자로 태어나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고
세상을 두루 체험하며 한울님의 뜻을 깨닫고자 공부에 전념하더니
 
이 때 도학자 연담(蓮潭) 이운규(李雲奎)가 수운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선도(仙道)를 계승할 자라.” 하니라.
 
을묘(乙卯 : 道紀前 16, 1855)년에 하루는 금강산 유점사의 한 중이
수운이 머물고 있는 울산(蔚山) 유곡(裕谷)에 찾아와 책 한 권을 전하매 3일 만에
그 뜻을 해득하니, 신교와 기도의 요체를 적은 책이더라.
 
이로부터 뜻을 더욱 굳건히 하여 양산 천성산(千聖山)에서 49일을 기약하고
천주강령(天主降靈)의 기도를 드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매 참담한 심경으로 지내다가
 
기미(己未 : 道紀前 12, 1859)년 10월에 다시 발심하여 용담정(龍潭亭)으로 들어가며
‘천주를 친견하기 전에는 세상에 나서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기도에 정진하니라.
 

상제님의 성령 친견과 도통 

이듬해 그의 나이 37세 되는 경신(庚申 : 道紀前 11, 1860)년에 ‘도기장존사불입(道氣長存邪不入)
세간중인부동귀(世間衆人不同歸)’라는 입춘시를 써 붙이고
매일 세 번씩 청수를 올리며 기도에 더욱 정진하더니
 
드디어 4월 초닷샛날, 전율오한의 묘경 속에서 홀연 공중으로부터
들려오는 ‘선어(仙語)’에 천지가 진동하는 듯하거늘 정신이 아득하여 쉬이 수습하지 못하니라.
 
천주님의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고 겁내지 말라.
세상 사람들이 나를 상제(上帝)라 이르거늘 너는 상제를 알지 못하느냐!” 하시고
 
“너에게 무궁무궁한 도법을 주노니 닦고 다듬어 수련하여 글을 지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법을 정하여 덕을 펴면 너로 하여금 장생케 하여 천하에 빛나게 하리라.” 하시니라.
 
이로써 수운이 인류의 새 세계를 알리라는 상제님의 천명과 신교를 받고 도통을 하였나니,
이것이 곧 우주사의 새 장을 열어 놓은 천주님과의 천상문답 사건이라.
 
이 때 상제님으로부터 “주문(呪文)을 받으라.” 하는 말씀을 듣고
본주문 열석 자와 강령주문 여덟 자를 지으니 그 내용은 이러하니라.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

至氣今至 願爲大降
지기금지 원위대강
 
수운이 천명과 신교를 받들어 동학을 창도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경상도 일대에 동학이 널리 퍼지거늘
 
그 급속한 전파에 불안을 느낀 조정에서는
동학을 사도난정(邪道亂正)으로 규정하여 수운을 체포하니라.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처형당할 때,
수운이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후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더라.
 

천주님의 동방 땅 강세 선포 
수운이 아버지께 가는 생명의 길을 동방의 땅에 닦아
놓고 ‘인간으로 강세하시는 천주님’을 모시는 시천주(侍天主) 시대를 선언하였나니
 
이는 온 인류에게 후천 개벽세계를 여시는 아버지의 대도,
곧 무극대도(無極大道)가 조선 땅에서 나올 것을 선포함이니라.
 
그가 비록 상제님의 천명은 다 이루지 못하였으나
5년 동안 천주님의 동방 땅 조선 강세와 후천개벽으로 열리는
새 생명세계를 천하에 알렸나니 그 장엄한 인류구원의 외침은 바로 이러하니라.
 
“한울님이 내 몸 내서 아국운수 보전하네.”
 
“호천금궐 상제님을 네가 어찌 알까 보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너는 또한 연천(年淺)해서 억조창생 많은 사람
태평곡 격양가(擊壤歌)를 불구에 볼 것이니
이 세상 무극대도 전지무궁 아닐런가.”
 
“어화 세상 사람들아
무극지운(無極之運) 닥친 줄을 너희 어찌 알까 보냐.”
 
“열석 자 지극하면 만권시서 무엇하며…”.
 
“무극대도 닦아 내니 오만년지 운수로다.”
 
“십이제국 괴질운수 다시 개벽 아닐런가.” 
 

甑山道 道典  1편 8장  


하늘의 모든 신성과 부처와 보살이 하소연하므로 

그러나 이 문명은 다만 물질과 사리(事理)에만 정통하였을 뿐이요,
도리어 인류의 교만과 잔포(殘暴)를 길러 내어
천지를 흔들며 자연을 정복하려는 기세로 모든 죄악을 꺼림 없이 범행하니
신도(神道)의 권위가 떨어지고 삼계(三界)가 혼란하여 천도와 인사가 도수를 어기는지라 
 
이마두가 원시의 모든 신성(神聖)과 불타와 보살들과 더불어
인류와 신명계의 큰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하므로
 
내가 서양 대법국 천개탑에 내려와 이마두를 데리고 삼계를 둘러보며
천하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그쳐
 
중 진표(眞表)가 석가모니의 당래불(當來佛) 찬탄설게(讚歎說偈)에 의거하여
당래의 소식을 깨닫고 지심기원(至心祈願)하여 오던 모악산 금산사 미륵금상에 임하여 30년을 지내면서
 
최수운(崔水雲)에게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내려 대도를 세우게 하였더니
수운이 능히 유교의 테 밖에 벗어나 진법을 들춰내어
신도(神道)와 인문(人文)의 푯대를 지으며 대도의 참빛을 열지 못하므로
 
드디어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에
천명과 신교를 거두고 신미(辛未 : 道紀 1, 1871)년에 스스로 이 세상에 내려왔나니
 
동경대전(東經大全)과 수운가사(水雲歌詞)에서 말하는 ‘상제’는 곧 나를 이름이니라.
 

甑山道 道典  2편 30장  

 


도운(道運)을 추수하는 매듭 일꾼 

이어 말씀하시기를 “삼국시절이 돌아갈 곳을 안 사람은
사마소 한 사람뿐이었느니라.” 하시거늘 
 
한 성도가 “앞으로 천하사의 장래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 있사옵니까?” 하고 여쭈니 
“너희들이 성도(成道)하기 전에 한 사람이 먼저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받들어 천지에 보은할 것이니라.” 하시니라.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현하대세가 가구(?九)판 노름과 같으니
같은 끗수에 말수가 먹느니라.” 하시고
 
“그 때는 무위이화로 내 일이 이루어지리니 갑오갑자(甲午甲子)꼬리니라.
갑자꼬리로 종장(終章)을 짓느니라.” 하시니라.
 

甑山道 道典   5편 357장  

 



불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