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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의 야만적인 식민사관에 쇄뇌당한 사학자들과
교육자들이 지금 이 세대들을 철저한 거짓말로 무장시켰습니다.

 

증산 상제님께서는 이들 환인,환웅,단군 3위 성조는 엄연히 실존한 역사의 인물들로서
한민족의 초창기 시대의 통치자인 동시에 민족의 스승들이었으며,
지금도 천상 신명계에 살아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삼위 성조는 남의 민족의 조상을 꿔다 믿는
무서운 환부역조의 죄악을 저지르는 서구 종교에 오염된 자손들의 무지몽매로 인해
몸 붙일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정사(正史)의 자세한 기록에 의하면 (환단고기,단군세기)
단군이란 지금의 대통령과 같이 단군 조선시대의 통치자를 지칭하는 관명이었습니다.
그러면 단군은 몇분일까요?

이러한 물음을 던지는 것 자체가 우리의 철저한 무지를 드러내는 일입니다.


4,300여 년 전의 초대 단군 성조로 부터 마지막 47대 고열가 단군까지 고조선은 총 2,096년의
역년 동안 실존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은 유.엠 푸진 같은 소련의 저명한 역사학자도 만주를 무대로 하고
있었던 단군 조선시대의 왕궁과 유적을 발견,
조사하고 기록한 고조선이라는 책자를 통하여 자세히 밝혔습니다.

 

증산도 진리 23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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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구소련학자 「유 엠 푸진」의 연구결과를 보아도

고조선은 고도의 독자적인 선진문화를 창조, 발전시킨 문명국가였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유 엠 푸진의 저서는 이미 국내에 번역되어 있다. ]

 

미궁투성이의 古朝鮮을 새로운 시각으로 체계화한 학술서적으로 『古朝鮮』이 소련에서 출간되어

한국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있다.


소련과학원 시베리아분원 역사언어 철학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문제의 『古朝鮮(13 × 20.5cm 330면)은 한국, 중국, 일본, 소련의 고조선 연구와

최근의 고고학 발굴을 총정리한 것으로 북한학자들의 도식화된 유물사관도 비판해 눈길을 끈다.

 

그런가 하면 소련 학계는,

세계에서 가장 활발히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발간한 유 엠 푸진이 쓴 '고조선' 이란 책을 보면

"조선족은 4천년 전부터 청동기를 사용했다. 

단군왕검이 있던 유적지도 발굴했고 단군 조선 시대 중앙 행정기관의  유적지도 발굴했다" 고 했습니다.

 

이렇듯 국내의 여러 문헌뿐만 아니라

국외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발굴해서 우리의 역사 상한을,  그

리고 단군 조선의 건국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 주는데도, 

정작 당사자들은 이것을 부정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황당한 처사란 말인가?


 ○ 소련측에서 발표된 단군조선사
   · 고조선(古朝鮮) : 유 엠 푸진 지음, 소련과학원 시베리아 분원 역사언어   철학연구소 간행
여기에서 "일본사관(日本史觀)이 중국계기자(箕子)가

고대 한국을 지배했다고 날조했으며

고조선의 수도인 왕검성의 왕궁과 중앙행정기관의 유적이 발굴되었다"라고 하였음.

○ 국내 기록에서의 단군조선
   · 삼국유사(三國遺事)
   · 제왕운기(帝王韻紀)
   · 삼성기(三聖紀 : 安含老 지음)
   · 삼성기(三聖紀 : 元종仲 지음)
   · 단군세기(檀君世紀 : 이암  지음)
   · 조대기(朝代記)
   · 단기고사(檀奇古史)
   · 태백진훈(太白眞訓)
   · 삼한관경본기(三韓觀境本紀)
   ·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응제시주(應製詩註)
   · 조선사략(朝鮮史略)
   ·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 동국통감(東國通鑑)
   ·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 단전요의(檀典要義)
   · 단전(檀典)
   · 천을선학경(天乙仙學經)
   · 대동사강(大東史綱)
   · 역대제철성신록(歷代諸哲誠信錄)
   · 단군교포명서(檀君絞布明書)
   · 삼일신고(三一神誥)
   · 단군교부흥경략(檀君敎復興經略)
   · 정신철학통편(精神哲學通編)
   · 신단실기(神壇實記)
   · 규원사화(揆園史話)
   · 신단민사(神壇民史)
   · 한단휘기(桓檀彙記)
   · 단군고(檀君考)
   · 삼법회통(三法會通)
   ·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
   · 대종교중광 60년사(大倧敎重光 六十年史)
   · 조선사연구(朝鮮史硏究上下)
   · 조선전(朝鮮傳)
   · 동사(東事)
   · 해동이적(海東異蹟)
   · 도덕연원(道德淵源)
   · 조선사화(朝鮮史話)
   · 조선상고사(朝鮮上古史)
   · 조선종교사(朝鮮宗敎史)
   · 조선유기(朝鮮留記)
   · 단경(檀經)
   · 동국사략(東國史略)
   · 북부여기(北夫餘記)
   · 가섭원부여기(迦葉原夫餘記)

  이상에서 열거한 대략의 문헌 이외에도 책명과 내용의 단편만이 전하고 있는 것으로서는
   · 단군본기(檀君本紀)
   · 단군기(檀君紀)
   · 부여사(夫餘史)
   · 고기(古記)
   · 삼성밀기(三聖密記)
   · 신시역대기(神市歷代記)
   · 배달유기(倍達留記)
   · 삼황내문(三皇內門)
   · 백호통소의(白虎通疏義)
   · 주리삼국사기(朱離三國史記)
   · 조리통전약지(朝離通典藥志)
   · 요사예지(遼史禮志)
   · 표훈천사(表訓天詞)
   · 대변경(大辯經)
   ·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
   · 오제설(五帝說)
   · 진역유기(震域留記)
   · 삼한비기(三韓秘記)
   · 해동고기(海東古記)
   · 진천문지(晋天文志)
   · 선사(仙史)등을 들 수가 있다.  

 

책명이나 내용의 극소한 단편정도 만이라도 현전하는 것이 이런 정도인데

그렇지 못한 완전 실전된 문헌이야 그 얼마인지 가상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민족뿌리의 역사적 사실을 밝힐 수 있었던 증거문헌의 인멸은 민족의 맥락상에

그 중대한 타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히도 근자에 새로이 은장되었던 고전들이 밝혀지고

또 고고학의 눈부신 발굴은 이른바 삼황오제(三皇五帝)의 유적이

고조선의 강역구내인 요령성(遼寧省)지역에서 나왔다는 것 등

 

사필귀정의 사실(史實)이 정립단계에 왔다고 보아진다.  
족보 없는 가문처럼 '뿌리 없는 국사' 이것은 어른다울 수 없는 후손에 대한 창피다.

 

 송호수(철학박사·개천학회장)
 (자유발언 1989년9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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