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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龍潭遺事)》에 의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느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단 말가”라고 하였다.


용담유사 흥비가


그말저말

다하자니 말도많고 글도많아
약간약간 기록하니 여차여차 우여차라.

 
이 글보고

저 글보고 무궁한 그 이치를
불연기연 살펴내어 부야흥야 비해보면

글도 역시 무궁하고 말도 역시 무궁이라.

 
무궁한 이울속에 무궁한 내아닌가.

<용담유사>흥비가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학의 참된 정신은 천주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내어 놓으신

무극대도 증산도에 있는 것이지 인내천사상으로 변질된 천도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학은 최수운대신사께서 돌아가신 연후에

사실 그 사명이 끝난것이다.


그리하여 천도교는 인내천사상으로 변질이 되어 버린것이다.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처형당할 때, 수운이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후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더라.


수운선생이 대구감영에서 참형을 당하는데

청수 한 동이를 놓고 상제님께 기도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후 8년뒤에 상제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신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더디다 더디다 8년이 더디다" 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후에 진짜 8년뒤인 1871년 신미년에 상제님이 증산이라는 존호를

가지고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동학의 역사관과 상원갑 호시절


동학의 역사관 중 가장 결정적인 역사예언은

역시 이씨 왕조 몰락의 필연성을 하원갑下元甲, 상원갑上元
甲의 역경易經 이론으로 예단한 부분이다.


‘하원갑’ 의 말세
<용담유사> 중에서 가장 참설인 예언가사의 성격을 띤 것이 <몽중노소문답가>이다.


최제우는 자신이

살아온 40평생의 시간적 성격을 항상 ‘하원갑’ 의 말세라고 지적했다.

1860년 경신년만 해도 그의 <근학가>에서 ‘하원갑 경신년에 전해오는 세상 말이’ 라고 하며 

요망한 서양적이 중국을 침범해서’ 라고 한 데서 서양세력의 중국 침입을 말세의 징조로 참讖하고 있고,


三角山 漢陽都邑 四百年 지낸 後에 下元甲 이 世上에...

<몽중노소문답가>라고 1860년대 이씨왕조의 시운을 하원갑으로 판정하고 있다.


이 36갑설三六甲說은 360년마다 일운이 되돌아오곤 한다는 역경적 계산법으로 한 

왕조의 수명을 점치는 거이다. 10간干12지支의 갑자는 60년이 일주가 됨으로 60주갑을 일원으로 삼고

그것을 다시 상중하 3원元 의 반복으로 이해하는 기년법이 3원갑설이다. 


여기서 하원갑은 한 왕조이 운이 끝나는 시기에 해당하고
다시 새 왕조가 교체되면서 상원갑이 시작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조 건국 이래 400년이 지난 한양도읍은 쇠운이 지극한 것이 된다.


상원갑 호시절에
그러면 새로 시작되는 상원갑에 관해서 그는 ‘상원갑 호시절’ 의 태평성세로 대망했고
하원갑 지내거든 상원갑 호시절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몽중노소문답가>라고 동학의 이상향으로서의 지상천국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이 ‘상원갑 호시절’ 의  무극대도로서의 참동학의 출현이 바로 개벽이 된다.

따라서 동학의 역사관에서는 태초의 제1차 개벽과 19세기에 대망된 제2차 개벽의 두 단계가 설정되고

동학 대각大覺 이전은 아직 대천자代天子로서의 성현과 중개가 인정되는 선천의 시대요,


그 후가 바로 모든 사람이

시천주로 성현군자가 되어 대천자를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 후천의 새 시대가 전개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후천개벽의 지상천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그는 상고적인 비유를 써서
‘요순성세’ 라 하기도 하고 ‘왈요순지세曰堯舜之世 민개위요순民皆爲堯舜 사세지운斯世之運 여세동귀與
世同歸“<논학문> 라고 한 데서 백성이 모두 요순 같은 성현이 된 군자공동체를 뜻했음이 분명하다.
<신일철, <동학사상의 이해>,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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