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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유사(龍潭遺事)》에 의

나는 도시 믿지 말고 하느님만 믿었어라.

네 몸에 모셨으니 사근취원(捨近取遠)하단 말가”라고 하였다.


용담유사 흥비가


그말저말

다하자니 말도많고 글도많아
약간약간 기록하니 여차여차 우여차라.

 
이 글보고

저 글보고 무궁한 그 이치를
불연기연 살펴내어 부야흥야 비해보면

글도 역시 무궁하고 말도 역시 무궁이라.

무궁한 이울속에 무궁한 내아닌가. 
<용담유사>흥비가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것은 많은 사람들이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학의 참된 정신은 천주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셔서 내어 놓으신

무극대도 증산도에 있는 것이지 인내천사상으로 변질된 천도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동학은 최수운대신사께서 돌아가신 연후에

사실 그 사명이 끝난것이다. 그리하여 천도교는 인내천사상으로 변질이 되어 버린것이다.


갑자(甲子 : 道紀前 7, 1864)년 2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처형당할 때, 수운이 청수를 모시고

상제님께 기도를 올린 후 목이 베이니 그의 나이 41세더라.


수운선생이 대구감영에서 참형을 당하는데

청수 한 동이를 놓고 상제님께 기도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후 8년뒤에 상제님이 직접 인간으로 오신다는 말을 하셨습니다.


1864년 음력 3월 10일, 최수운 대신사가 이 세상을 떠나며

전한 것으로 알려지는 다음 메시지를 통해 상제님의 강세 소식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최수운은 자기에게 도통을 내려주신 상제님께서

조선 땅의 어느 지역에 강세하실 것인에 대해 그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쳐 준 적이 있다.


지난 해에 영우(靈友: 신령한 벗)를 서북에서 찾았더니 지금은 그 사람이 없더라.

일후에 반드시 나를 비할만한 분이 있을 것이라. 그분은 호서땅 완주 북쪽에 있으리니

그 가르침이 좋을 것이니 안심하고 그 분을 따르라.


이 말씀을 보면 물론 ‘영우靈友’ 란 표현이 언뜻 상제님으로 생각하기에는

좀 시원찮게 느껴지나, ‘호남땅 완주 북쪽에 오시는 그 분의 가르침을 따르라’ 고 한 것을 보면

영우’ 를 전라도 고부 땅에 오신 상제님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자신보다 뛰어난 분이 오시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따르라 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1864년 3월 10일, 최수운이 대구감영에서

붓 속에 감춰 최시형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진 다음 메시지를 통해

상제님의 강세 소식을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전 40년은 내려니와 후 40년은 뉘런가.
천하의 무극대도 더디도다 더디도다, 8년이 더디도다.

 

이 말씀은 수운 선생이 40년 생애을 살다

상제님의 천명으로 하늘로 올라간 해로부터 8년 후 '만고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란

선언 그대로 바로 그 상제님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무극대도를 열고

약 40세 때에 천상으로 돌아가실 것까지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디다 더디다 8년이 더디다" 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사후에 진짜 8년뒤인 1871년 신미년에 상제님이 증산이라는 존호를

가지고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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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이 이땅에 오시는것은

우리민족의 신교와 역사와 도통사를 통해서 예비를 하고
역의 이치를 바탕으로 철저히 예비를 하고 오시는 것이다.


우리민족의 성인들이 경전을 통해서

공을 들여 예비를 해놓고 밝혀 놓는것이다.
또한 유불선 기독교의 핵심도 경전을 통해서 미리 오시는 길을 예비해 놓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동서고금의 성인과 철인과 예언자와 예언서를 통해서 미리 길을 밝혀 놓는것이다.

상제님이 이땅에 오시어 증언자를 내세워 증거하게 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것이다.


하느님이 이땅에 오실적에
아무런 이치도 없이 예비도 없이 무작정 그냥 오시는것이 아니다.
기존의 모든 사이비종교교주들은 이것을 모르고 날조하여 기만하고 사기치며
혹세무민하고 곡학아세 하는것이다.


설총결에도 밝히고 있듯이 하느님이 이땅에 오실적에는

한양운수가 다하는 이조말엽에 오신다고 했으며

금강산 기운을 타고 전라도로 오시며

성씨는 여성의 성씨로 강씨로 오시며

미래의 수도인 서울이 되는 태전 즉 대전에서 무극대도가 나온다고 밝힌것입니다.

그러므로 무극대도를 이끌어 가시는분도 성씨가 여성 성씨로써 이루고 완성한다고 밝힌것입니다.


우리나라에 여성 성씨로서는 <강姜씨>와 <안安씨> 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동학의 역사관과 상원갑 호시절


동학의 역사관 중 가장 결정적인 역사예언은

역시 이씨 왕조 몰락의 필연성을 하원갑下元甲, 상원갑上元
甲의 역경易經 이론으로 예단한 부분이다.


‘하원갑’ 의 말세
<용담유사> 중에서 가장 참설인 예언가사의 성격을 띤 것이 <몽중노소문답가>이다.


최제우는 자신이

살아온 40평생의 시간적 성격을 항상 ‘하원갑’ 의 말세라고 지적했다.

1860년 경신년만 해도 그의 <근학가>에서 ‘하원갑 경신년에 전해오는 세상 말이’ 라고 하며 

요망한 서양적이 중국을 침범해서’ 라고 한 데서 서양세력의 중국 침입을 말세의 징조로 참讖하고 있고,


三角山 漢陽都邑 四百年 지낸 後에 下元甲 이 世上에...

<몽중노소문답가>라고 1860년대 이씨왕조의 시운을 하원갑으로 판정하고 있다.


이 36갑설三六甲說은 360년마다 일운이 되돌아오곤 한다는 역경적 계산법으로 한 

왕조의 수명을 점치는 거이다. 10간干12지支의 갑자는 60년이 일주가 됨으로 60주갑을 일원으로 삼고

그것을 다시 상중하 3원元 의 반복으로 이해하는 기년법이 3원갑설이다. 


여기서 하원갑은 한 왕조이 운이 끝나는 시기에 해당하고
다시 새 왕조가 교체되면서 상원갑이 시작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이조 건국 이래 400년이 지난 한양도읍은 쇠운이 지극한 것이 된다.


상원갑 호시절에
그러면 새로 시작되는 상원갑에 관해서 그는 ‘상원갑 호시절’ 의 태평성세로 대망했고
하원갑 지내거든 상원갑 호시절에 만고 없는 무극대도 이 세상에 날 것이니

<몽중노소문답가>라고 동학의 이상향으로서의 지상천국의 도래를 예언하고 있다. 


이 ‘상원갑 호시절’ 의  무극대도로서의 참동학의 출현이 바로 개벽이 된다.

따라서 동학의 역사관에서는 태초의 제1차 개벽과 19세기에 대망된 제2차 개벽의 두 단계가 설정되고

동학 대각大覺 이전은 아직 대천자代天子로서의 성현과 중개가 인정되는 선천의 시대요,


그 후가 바로 모든 사람이

시천주로 성현군자가 되어 대천자를 따로 필요로 하지 않는 후천의 새 시대가 전개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의 후천개벽의 지상천국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인지 분명치 않다.  다만 그는 상고적인 비유를 써서
‘요순성세’ 라 하기도 하고 ‘왈요순지세曰堯舜之世 민개위요순民皆爲堯舜 사세지운斯世之運 여세동귀與
世同歸“<논학문> 라고 한 데서 백성이 모두 요순 같은 성현이 된 군자공동체를 뜻했음이 분명하다.
<신일철, <동학사상의 이해>, 65-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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