桓檀古記
檀君世紀
檀君世紀序


구국救國의 길, 국통國統을 바로 세움


오호통의       부여    무부여지도연후      한인    입부여야
嗚呼痛矣라. 夫餘에 無夫餘之道然後에 漢人이 入夫餘也며


아, 슬프구나!

부여에 부여의 도道가 없어진 후에 한漢나라 사람이 부여에 쳐들어왔고,


고려     무고려지도연후      몽고    입고려야
高麗에 無高麗之道然後에 蒙古가 入高麗也어니와


고려에 고려의 도가 없어진 후에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왔다.


약기시지제선         이부여
若其時之制先하야 而夫餘에


만약 그 당시에 미리 제정되어, 부여에


유부여지도즉한인      귀기한야
有夫餘之道則漢人은 歸其漢也며


부여의 도가 있었다면 한나라 사람은 한나라로 쫓겨 가고,


고려     유고려지도즉몽고      귀기몽고야
高麗에 有高麗之道則蒙古는 歸其蒙古也니라.


고려에 고려의 도가 있었다면 몽골인은 몽골로 쫓겨 갔을 것이다.


오호통의       향년   잠청배지사론      음여백귀야행
嗚呼痛矣라. 向年에 潛淸輩之邪論이 陰與百鬼夜行하야


아, 통탄스럽도다!

과거에 오잠吳潛과 류청신柳淸臣 같은 간신배가 떠들어 댄

사악한 말이 은밀히 백귀百鬼와 더불어 야행하여


이남생발기지역심         상응이합세
以男生發岐之逆心으로 相應而合勢하니


고구려의 역신인 남생男生과 발기發펠의 역심逆心과 상응하여 합세하였는데,


위국자억하자안어도기양상          형혼전멸지시호
爲國者抑何自安於道器兩喪하며 形魂全滅之時乎아.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도와 그릇이 함께 없어지고

형체와 혼이 다 사라지는 때에 어찌하여 자신만 편안코자 한단 말인가!


금    외인간섭지정      거익자심
今에 外人干涉之政이 去益滋甚하야


금일에 외인(몽골인)이 정사를 간섭함이 갈수록 심하여


양위중조     임거농천       여아대신자
讓位重祚를 任渠弄擅호대 如我大臣者가


왕위에서 물러나고 다시 오름을 저희들 멋대로 조종하되, 우리 대신들이


도속수이무책      하야    국무사이형실혼지고야
徒束手而無策은 何也오 國無史而形失魂之故也니라.


한갓 속수무책인 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라에 역사가 없고, 형체가 혼을 잃어버렸기 때문[國無史而形失魂之故]이로다.


일대신지능     고무가구지위언
一大臣之能이 姑無可救之爲言이나


대신大臣 한 사람의 능력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내거국지인      개구국자기
而乃擧國之人이 皆救國自期오


온 나라 사람이 나라 구하기를 스스로 기약하고


이구기소이위유익어구국연후         방가득이언구국야
而求其所以爲有益於救國然後에 方可得以言救國也니라


나라를 구하는 데 무엇이 유익한 것인지

찾아낸 연후에 비로소 구국救國을 말할 수 있으리라.


연즉구국      하재재    향소위국유사이형유혼야
然則救國이 何在哉아 向所謂國有史而形有魂也니라.


그렇다면 나라를 구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앞에서 말한 바, ‘나라에 역사가 있고, 형체에 혼魂이 있어야 한다.

國有史而形有魂’는 것이다.


신시개천
神市開天이


신시에 나라를 연[神市開天] 이후로
자유기통       국인통이립         민인통이흥
自有其統하야 國因統而立하고 民因統而興하나니.


국통國統이 있어,

나라는 이 국통으로 인하여 세워지고, 백성은 이 국통으로 인해 흥하였나니,


사학     기부중여     서차      낙위단군세기서
史學이 豈不重歟아 書此하야 樂爲檀君世紀序하노라.


역사를 배움이 어찌 소중하지 않으리오?

이 글을 써서 기쁜 마음으로 『단군세기』의 서문으로 삼는다.


상지십이년계묘시월삼일
上之十二年癸卯十月三日에
공민왕 12년(환기 8560, 신시개천 5260, 단기 3696, 서기 1363) 계묘 10월 3일에,
홍행촌수     서우강도지해운당
紅杏村?는 書于江都之海雲堂하노라.


홍행촌수紅杏村北가 강화도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쓰노라.


출처: 환단고기 완역본, 안경전 종도사님, 상생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