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식을 올바르게 모시는 법

44444rrrr_00007.jpg
49제는 우리 신교 신앙에서 나온 것
 

일반적으로 천도식은 천거할 천(薦)자, 법도 도(度),
상제님의 ‘도수(度數)’를 얘기할 때 쓰는 도자를 쓴다. 보통 불가에서는 영가 천도식이다.


뭐다 해서 49제, 100일제를 지내는데, 사람이 죽고 일년 뒤에 지내는 소상(小祥),

2년뒤에 지내는 대상(大祥)도 있다.

 
49제’는 사람이 죽은 뒤 49일이 되면,
명부대왕 앞에 가 심판을 받는다고 해서 지내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신교(神敎)의 칠성신앙을 바탕으로 해서 생겨난 것이다.

천도식이라는 것도 신교의 명부신앙을 토대로 해서 생긴 것이다.
원래 정통불교 뿌리 문화에는 이런 게 없다.


천도식의 효과는 즉발적, 절대적
 
천도식은 어떤 종교의식을 떠나,
일단 사람이 병사를 하거나 사고로 참혹하게 죽었거나,
가령 비행기 폭격으로 바다에 떨어져 죽었다. 또는 연탄가스 사고로 죽었다,
밤중에 누구에게 칼 맞고 죽었다.


이런 정상적이지 못한 일체의 사고로 원과 한을 맺고 죽었을 때,
그 슬픈 죽음을 위로해 주고, 새로운 기운으로 천상으로 갈 수 있도록 길을 닦아 열어주는 것이다.
천도식을 해주면, 그 효과가 즉발적이고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천도식은
그 신명의 신상과 앞으로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천도식을 뭐 꼭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


암이나 불치병과 싸우다 어머니 아버지 또는 형제가 고달픈 삶을 마감했다든가,
나에게 그동안 잘해 준 친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천도식을 해 보라.
모든 걸 떠나서 한 마디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신명을 받들어주면 누구나 다 좋아한다고.
그리고 그 은혜를 갚으려고, 나에게 위난이 닥치거나 힘든 일 생길 때 나를 도와준다고.



44444rrrr_00009.jpg


물에 빠져죽은 여아의 영혼을 건져주심
 
천도식을 왜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상제님 공사에서 들여다보자.
도전』9편 81장에 전형적인 천도식의 예가 나와 있다.

물에 빠져 죽은 자의 영혼을 천도해 주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형렬과 호연을 데리고
금산사 용소(龍沼)에 이르시어 호연에게 “내 손 잡아라.” 하고 손을 내미시거늘
호연이 손가락을 잡자마자 상제님께서 용소 안으로 쑥 들어가시니라.
 
호연이 상제님을 놓치면 홀로 떨어져 길을 잃을 듯싶어 꼭 잡고 따라가는데
난데없이 급류가 나타나거늘 상제님께서 손을 둥그렇게 한 번 내저으시니
순간 물속 나라로 들어가지더라.
 
잠시 후 어디선가 “오빠, 오빠~” 하고 애타게 부르는 소리가 들리거늘
형렬이 “대체 어떤 놈의 오빠를 거기서 부르냐?” 하고 소리치니
 
호연이 “오빠가 물에 빠졌는데 행여나 살았는가,
여기 없던 사람이 있으면 대답하라고 그러나 봐요 하니라.


이에 상제님께서 “그렇지 않어.” 하시니 호연이 “그럼 저 사람은 누구예요?” 하거늘
말씀하시기를 “여기에 거꾸로 빠져서 죽은 사람인데 자기 오빠를 슬프게 부르고 있구나.” 하시고


용소 밖으로 나오시어 제물을 차리고
친히 제를 지내 주시며 신도에 칙령을 내려 그 여인의 영혼을 데려가라고 명하시니라.
<도전9:81>
 
상제님께서 친히 불쌍하게 죽은 남자애의 영혼을 건져 제사를 지내주셨다.
천도식을 올려 주신 것이다. 비극적인 죽음을 보면, 우물에 빠져죽거나, 멱감다가 죽거나,
한강에 투신해서 죽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려서 죽는 여러유형이 있다.


그러면 이들을 위해 꼭 천도식을 해줘야 하는가?
지난번 대한항공 피격사건 후, 가족들이 바다에 가서 꽃을 던지고 천도제를 지내는데,
그렇게 하면 정말 천도가 되는가? 그것은 백 퍼센트 되는 것이다.


무당들이 하는 걸 보면, 처녀귀신이니 무슨 귀신이니 해서,
바다에 빠져죽은 신명을 건져내는 의식을 한다. 정말 그렇게 해야 건져진다.
그래야 그 신명이 죽음의 원한을 다 거두고 저승으로 간다.


그래서 상제님이 늘 무당을 무시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무당들이 어디 영대가 확 트여서 제 양심껏 무당 노릇하는 이들이 많이 있는가.

 
천도식은 집에서 올려도 된다
 
천도식을 할 때는, 일반적으로 상을 차려야 한다.
한번은 어떤 도장에 갔는데, 한 상에 다섯 명, 열다섯 명씩, 이렇게 차려놓은 걸 봤다.
일반적으로 한 상에는 두위를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독상을 차리면 항상 두 분을 모셔야 한다.
아니 한 상에다가 3대, 4대 조상까지 차려놓으면 어떻게 하라는 건가? 서서 먹으라는 것인가?

 
신명들이 업고서 먹는가?
겹쳐서 먹는가? 아니면 “나 먼저 먹을 테니 너 조금 있다 와라.” 하는가?
이건 예(禮)가 아니다. 이런 몰상식한 게 어디 있는가? 신명도 일어나고 서고 앉고,
인간이 죽어서 신명이 됐으니 인간과 똑같다.


신명 대접은 사람처럼, 아니 사람보다 더 존귀하고 공경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이 없다. 지금 이 문제는 상식적으로 참 중요하다.
한분에 한 상, 독상을 차릴 때는 두 분을 모시고,또 다른 분을 모시려면 상을 하나 더 차려야 한다.

 
천도식은 도장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할 수 있다.
꼭 도장에서만 할 것을 주장할 게 아니다.
가정이 공간이 여유있고 가족들이 받아들이고 다 참여한다면, 집에서 해도 좋다.

상제님 일꾼들이 가서 좀 도와주고. 항상 도장에서 천도식을 할 수 만은 없다.


천도식 한번 하려면, 보통 난리도 아니다. 도장의 일꾼들이 다 동원되고 도정집행이 마비된다.
신입신도를 데려와 얘기도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꿈도 못꾼다.
이런 문제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슬픈 천도식에는 같이 울게 된다
그리고 천도식할 때는, 내가 천도해 주는 대상을 진실한 마음으로 잘 받들어야 한다.
그냥 형식적으로 천도를 한다, 하면 좋다고 하니까 한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그건 너무 천박하고 소견 좁은 범인의 수준을 못넘는 얘기다.

신도에 대한 관심이 내면에서 일어날 때, 천도식을 올려야 한다,
스스로 생각해 볼 때 ‘내가 과연 천도식을 해야 하는가?
왜 천도식을 모셔야 되는가?’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부모나 형제가 불쌍하게 죽은 경우에는, 천도식 올릴 때 많이 운다.
자기도 모르게 갑자기 울음이 터진다. 거기 와 있는 신명도 정성에 감복해서 울기도 하니까,
그 기운 받아서 같이 터지는 수가 많다. 특히 자살을 해서 비극적으로 죽은 형제 자매를
천도해 줄 때 보면, 굉장히 슬프고 아픈 한을 느낀다.


제물 차릴 땐 정성이 중요
그러면 제사 지낼 때, 제물 차리는 것에 대해 살펴보자.
제사 지낼 때 제물 차리는 것은, 동쪽 서쪽 남쪽, 북쪽에 무슨 과일을 어떻게 놓고,
색을 맞추고 하는 것도 일리는 있지만, “음식은 맛있고 깨끗하면 된다.”는 상제님 말씀이 있다.

예전의 제례진설법은 별로 중요치 않다.
제물이 놓인 위치에 따라 어떤 절대적 의미를 갖는 게 아니다.
그 신명이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 또 맛있는 음식을 먹기 좋게 잘 놓아드리면 된다.

 
동학에서는 조상이 떠먹을 수 있도록 수저를 놓는게 아니고,
내가 먹는 쪽으로 수저를 놓아야 한다고 한다(향아설위). 참 우스운 노릇이다.

신도에 바치는 음식인데, 신명이 그 자리에 앉아 드시는데,
수저를 내 쪽으로 놓는다니 말이 되는가. 신도를 몰라서, 무지막지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자들이 세상 사람들 정신을 더럽히고 있다.


상제님은 제물 준비할 때 아주 엄격하시다.
어린 호연이도 제물 준비한 것을 누구에게 함부로 못 주고, 반드시 상제님게 아뢰게 하신다.
그걸 어기면 신벌 내리시고 불벼락이 난다.


또 제수 준비할 때는, 침 튀지 않도록 입을 봉하게 하시고(지금 말하면 마스크 쓴 것이다),
그리고 먼저 맛을 본다든가 하면 큰일난다.


이 우주의 절대자인 상제님도 큰 공사를 행하실 때 천제 치성을 올리고,
우주 대신명에게도 치성을 올리셨다. 어린 호연이가 봐도
그 정성이 참 가히 감탄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 ‘정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제물 같은 것 살 땐, 야박하게 값을 깎는 게 아니다.
숫자가 좀 적더라도 가급적이면 맛있고 좋은 걸로 산다.


정성이 듬뿍 담긴 치성이나
제사를 올리면, 신명이 맛있게 들고 즐거워한다. 그리고 고맙다고 축복해준다.

 
어린애가 죽으면 할아버지가 보살펴
그런데 어린아이가 죽으면, 대개가 다 할아버지한테 가 있다.
조상신에게. 안내성 성도의 아들 안정남씨의 증언을 들어보면, 자기가 먹고 살 게 없어
강원도에 가서 일할 때, 열다섯살 된 딸이 연탄가스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가 모악산 대원사 위 수왕암에서 집중기도를 하는데,
그 딸이 나타나서 “아버지, 나 할아버지 곁에 있네. 아버지가 하고 있는 것 천상에서 다 보여.
아버지 잘해~”했다는 것이다. 안내성 성도 곁에 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집안에서도 상제님 일하면서 형제 넷이 죽었다.
그 중에서 지금 살아 있으면 마흔넷 정도 된 재영이란 애가 있다.
그 아이가 일곱 살 땐가 죽었다. 그 애를 천도식 해주고 보니, 할아버지 곁에 있다.


내가 가면 고추를 내놓고, 내 오른쪽 다리를 조준을 해 가지고
오줌을 누고는 히히히 해가면서 막 덤벼든다. 장난질 치느라고. 형을 만나 기분 좋다는 것이다.
어린이들, 낙태아들도 다 할아버지 곁에 가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왜 할아버지 곁에 가는가?
그것은 할아버지의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 천륜이기 때문이다.


낙태아 천도식, 어떻게 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천도식이라 하면, 억울하게 한을 품고 죽은 사람만 천도식을 하는가?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낙태도 하지만 태반이 약해서 유산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또 어떻게 되는가?
낙태됐건 유산됐건, 결과적으로 죽은 건 똑같다. 그런데 낙태아들을 보면,
석달 된 애를 긁어낸 것, 한 달된 걸 긁어 낸 것, 일곱 달 된 걸 긁어낸 것 다 다르다.

 
불륜관계,
또는 애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뱃속에 있는 아이를 긁어낸 경우,
그것은 상제님이 말씀하신 뱃속 살인이다. 상제님은 뱃속 살인이
가장 큰 죄악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지금은 그런 죄악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우리 어머니가 아홉달인가, 여덟달인가,
만삭이 다 왜서 낳을 날이 얼마 안남았는데, 당시 살기 어려워서 충격을 받았는지
사산을 한 적이 있다.


태사부님 제2변 도운을 끝내놓고,

서산 곁에 있는 어떤 섬에서 일하신다고 할 때다. 태사부님이 한창 일을 하고 있는데,
하늘에서 강력한 소리가 크게 들리더라는 것이다. 빨리 집으로 가라고,
그런데 늦게 도착을 해서 보니, 이미 사산이 돼 버렸다.


내가 선매숭자 도수로, 물론 그 땐 내가 선매숭자 도수를 완전히 깨치기 전이지만,
처음으로 4형제의 옷을 사서 천도식을 해주었다.
형제들이 오랫동안 아파서 죽고, 못 먹어서 죽고, 옷도 없이 죽었다.


그래서 내가 돈을 만들어서 제일 좋은 속옷 두벌씩, 겉옷도 두 벌씩 샀다.

거기다가 모자, 구두, 양말, 손수건까지 해서, 짝을 완전히 갖춰서 명찰 파고 집주소,
전화번호까지 달았다. 얼마나 완벽한가? 그 정도면 신도세계에서 눈 감고도 찾아온다.

 
그렇게 해서 상을 차리고, 그 뒤에다 대를 치고 옷을 매달아 놨다.
여덟 달 아홉 달 된 애가 진자 오려나? 가장 궁금한 게 그거였다.
그리고 제일 왼쪽에다 우유병 하나를 놔 줬다. 뱃속 아기인데 음식을 먹지 못하잖는가.
그러고서 옷 입고 넥타이까지 매고는, 해질 무렵에 주문을 읽었다. 아직 밖이 훤했다.


그런데 신명이 응하는 것이다.
왼쪽에 위아래 밝은 흰색 계열이 옷을 입은 젊은 여자가 서서 애 젓을 먹이고 있다.
그 여자가 바로 우리 어머니 비서다. 천도식을 하니까, 뱃속에 있던 애도 신도세계에서 있다가,
그걸 알고 즉각 감응해서 오는 것이다. 다른 신명이 도와줘서라도 알고 온다.
이렇게 하는 게 유아천도식, 낙태아라든지 사산된 아이들의 천도식이다.

 
지금 내가 천도를 꼭 하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안한다.
또 “몇 달밖에 안 된 아이를 사산, 낙태한 것도 천도해야 합니까?”
이것도 지금은 내가 대답 안한다. 그건 본인이 가장 잘 안다.


자기가 도덕적으로 해야 된다 하면 하는 것이다.
아니 사람이 태어나려면 한 두 달이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 기운이 교접되어
씨가 배기 전에, 일년 전에 와서도 기다린다.


천지에서 기운이 들어간다고 하면, 큰 영들은 천지를 가르고 내려온다.
사람 몸을 받으려고, 그 전에 와서 배회하면서 준비하는데,
그런게 다 의미가 없어진 것 아닌가?

 
꼭 잘라서 얘기할 수 없지만,
그런 의미에서 낙태아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옷도 준비해야 한다.
이름같은 것도 지어야 하지만, 그것도 지금 내가 의무조항으로 얘기 못한다.

짓고 싶으면 짓는 것이다. 내 동생은 내가 “상덕”이라고 지어줬다.
태사부님이 지어서 내가 명찰에 이름을 박고 “상덕아”하고 불러준다.
이런 문제는 자기 스스로 원칙론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을 품고 폭약으로 화하는 낙태 신명들
 
지금 세계적으로 1년이면 2억 1천만명이 태어난다.
그 중에서 22퍼센트인 4천 6백만명의 여성이 낙태를 한단다.
낙태아수가 1년이면 전세계 5천여만 명, 개발도상국은 3천만 명이다.
해마다 7만 명 이상의 여성이 낙태 수술로 사망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1년에 150만에서 200만 명의 낙태건수가 있고,
하루 평균 4천명이 죽어 간다. 뱃속에 있는 세 명 중 두 명이 죽는다는 것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상제님이 “뱃속살인이 가장 큰 죄다.
이런 말씀과 또 “압사신, 질사신들이 천추의 한을 품고 탄환과 폭약으로 화하여
이 세상을 진멸케 한다.”고 하신 말씀이 있잖은가.


옷을 해 드리면 옷을 입고 간다
 
옷 없이 죽었다든지 사고로 죽은 경우,
천도식할 때 옷을 한 벌 해서 바치면, 신명이 그 옷을 입고 간다.

그런데 옷을 마련할 땐, 평소 살아있을 때 입던 이상의 옷을 해드려야 한다.
옷을 제대로 해드리면, 신명이 그 옷 입고 춤을 추며 좋아한다.


이렇게 하는 건, 이 우주가 열린 이래로 내가 처음 하는 것이다. 그게 선매숭자 도수다.

상제님이 선매숭자 도수를 나에게 붙이셨다.
천지신명이 그걸 받아 입으면, 춤을 추고 한없이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의상 심리학에서,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주고 마음을 기쁘게 해 주는 선물이,
자기 몸에 딱 맞는 편안한 옷이란다.


이것을 잘 생각해 보라.
사실 편하고, 몸에 아주 착 맞고 촉감도 좋은 옷을 입으면 잔병이 다 낫는다.
우리의 삶에는 복식이 그렇게 중요하다. 신명이나 인간이나 마찬가지다.

 
천도식을 준비할 땐 정성스런 마음으로
 

봉제사, 천도식 등 제를 올릴 때는 정성스런 마음으로 하라.
그리고 그 일주일 전부터 집에서 봉청수할 때라든지 경건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하고,
또 여유 있게 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상제님 일해야지, 천도식하고 봉제사 한다고 시간 다 뺏기고,
이런 쪽으로 일꾼들 정신이 쏠리면 안된다. 개벽해서 인간 씨종자 추리고 세상이 넘어가는데,
먼저 사람 살리고 진리 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천도식을 해야겠다 하면, 시간을 좀 여유있게 갖고 정성껏 준비해서, 제대로 해야 한다.
제물 살 때 값을 깍지 말고, 깨끗하고 맛있는 음식을 잘 준비해서,
정성이 담긴 음식을 차려야 신명도 기분 좋게 흠향한다.

특히 살기를 박으면 안 된다.


그게 신도(神道)에 가장 무서운 기운을 던져 주는 것이다.
하기 싫은 마음을 갖는 것, 그리고 부부가 합심 안 하고 싸워가면서 음식 차리는 건 금물이다.
살기 뿜고 투정부리면서 옷을 주면, 옷이 몸을 찌른다.


상제님이 도통하시고, 박금곡 주지에게 고향에 가 옷을 가져오라고 하셨는데,
정씨 부인이 욕을 하고 주니까, 상제님께서 안 입고 버리라고 하시지 않는가.


천도식薦道式은 상제님의 도로 인도하는 것


천도식 할 때는, 나는 천도식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
그리고 돌아가신 부모를 꼭 받든다는 확신과 자손으로서의 사랑을 갖고,
또 천도를 통해서 이 신명이, 나의 가족이 반드시 상제님 도로 인도된다고 하는
굳은 믿음을 갖고 해야 열매를 맺는다.

 
천도식을 하면, 단순히 천륜이나 가족이 편안하게 된다는 정도가 아니다.
궁극으로는 무엇인가? 우리 증산도에서 천도는 “상제님 도를 인식하고,
상제님 도를 받아들이고, 상제님 도의 구도자가 되는 것”이 천도식의 목적이다.

 
불교의 천도식(薦度式)은 일반적인 천도薦度지만,
증산도 천도식(薦道式)의 목적은 궁극적으로 상제님 도(道)에 인도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유가 있으면 꾸준히 천도식을 해줘야 한다.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주기적인 기회를 두고 제사 받들 듯 해야 한다.


나는 형제들 천도식을 1년에 두어 번씩 한다.
여러 번씩 해서 봄옷도 사서 소의하고, 여름옷도 사서 소의하고, 시간을 갖고 그렇게 한다.
사실 그 애들은 옷이 없다. 후천개벽하고 나서 그걸 영화로 만들면, 가관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특수한 경우다. 일반적으로 옷 없이 살다 죽은 신명은 없다.
더욱이 우리는 지금 천지대세를 돌려야 할 사람들이다. 일반적인 수준에서 천도식 올리고,
특별한 경우, 그렇게 옷 없이 신발없이 죽은 신명들만 폐백해주고,
그런 경우가 아니면 후천에 가서 하자.

  
천지공사는 인류의 大 천도식
 
그런데 사실 궁극적으로 상제님 9년 천지공사가 인간 문명 속에서의 대 천도식이다.
상제님은 그 동안 선천 역사에서 만고의 원과 한을 품고 죽은 원신, 역신, 등
모든 인간의 원을 끌러주신다.


역사의 큰 물결속에서 원과 한이 씻기고,
하늘과 땅이 조화옹이신 하나님 상제님의 신권에 의해 신천지로 새롭게 태어난다.
인간과 신명이 상제님의 무극대도로 새 생명의 길로 천도되어, 신천지 선경낙원에서
천년 만년 살아가는 복락을 누린다.


이로써 진정한 우주의 주재자로서
삼계대권의 조화옹으로서 “신축년 이후로는 연사를 내가 맡았다.”는
상제님 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제님의 9년 천지공사는
그 바탕에 천도식의 정신을 깔고 있는 것이다.


제사는 선영과 자손의 만남
 
오늘, 천도식과 봉제사 문제를 생각해 보았다.
특히 우리 증산도 진리의 주제가 원시반본이다. 가을개벽의 다른 말이 원시반본이다.
초목도 가을이 될 때는, 지엽에 있는 모든 물기운이 줄기로 해서 뿌리로 돌아간다.

그렇게 해서 겨울을 지내고 나무는 다시 생장염장으로 사시의 생명변화를 지속한다.


생명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근본으로 돌아감으로써만 이뤄지는 것이다. 원시반본을 통해
생명이 존속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근거로 볼 때, 인간에게 있어서
원시반본은 선령과 나의 만남이고, 그 만남을 지속시켜 주는 의례가 바로 제사다.

 
서양 기독교에서는 제사를 허용 안한다.
그래서 상제님이 성공 못 한다고 하셨다. 사실 본래 말씀은 그보다 더 무섭다.

평소에 태을주 잘 읽고 영대가 밝아지면,
신안이 열려서 신도(神道)와 신명의식, 신의 실체에 대해 알게 된다.
깊은 밤에 제사 올리면서 그걸 본다. 눈 비비면서 신명이 새벽에 오시어 식사하는 걸 본다.


그래서 죽음을 허망하게 인식하지 않는다.
무지한 상태에서는, 불쌍하게 돌아가신 혈족의 제사를 지내면서
인간 죽음이 이렇게 허망한 것이구나. 인간 삶이란 바람과 같고, 공기와 같구나.’하고
마음속으로 통곡한다. 그러나 신도에 대해 깊이 깨지면, 그런 의식을 넘어선다.

 
상제님 말씀처럼, 귀신은 천리의 지극함이다.

우주생명 진화의 극치의 경계에 사는 존재가 신명이다.
그걸 알면 연민과 허망한 심정, 그런 것들이 다 무너져 버린다.
성숙된 의식으로 제사 지내고, 성숙된 인간이 되어 신을 향해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된다.


천도식은 꾸준히 하라
제사는 틈틈이 잘 지내고, 천도식도 즐거운 마음으로 올려라.
천도식을 제대로 하려면, 그게 쉬운 게 아니다. 정성도 정성이지만 재정적인 부담도 크다.
또 천도식은 일회용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신앙을 하면서, 천도식을 한 번으로 끝내면, 도장에 있는 신명들더러 어떻게 하라는 건가?
일회용으로 한 상 차려주고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하는 식 아닌가? 그러면 안된다.

 
낙태를 했으면 책임지고 이름도 지어서 불러주고,
어찌할 수 없이 낙태했으니 마음을 새롭게 해서, 꾸준히 신명을 인도해야 한다.
이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불륜이나, 강간을 당했다든지 하는 형형색색의 사연이 있다.
이런 경우 천도식 문제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이게 이번에 대개벽으로 청소된다.

 
천도식을 하면 신명들이 안정을 누린다.
원억을 맺고 불쌍하게 죽은 신명들이, 원기를 끄르고 평안히 자리할 수 있는 결정적 분기점이 된다.
또 조상의 경우 자손들을 돌봐주고, 자손들과 조상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유대관계가 더 깊이 뿌리내릴 수 있는 계기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모든 건 본인에게 맡겨야 한다.
본인의 생각과 뜻에 달려있는 것이지, 천도식을 누구에게나 꼭 하라고
의무조항으로 넣을 수는 없다.인터넷으로 낙태아 천도식 문제에 대해 질문을 많이 올리는데,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니 고민하지 말고, 내가 말한 그대로 실천해라.


사산을 했든,

자기 건강을 위해 낙태를 했든, 아들이 아니라서 낙태를 했든. 참 그것도 그렇다.

어떻게 아들이 아니라고 죽일 수 있는가! 너무도 큰 죄악이다.
뱃속에 있는 애는 하늘에서 기도도 많이 했을 텐데, 부모의 한 마디로, 딸이라고 죽인다?
그 때문에 여자의 원한이 천지를 멸하고도 남는 것이다.

 
한 영혼이 멸망당해 가는 울부짖음 속에서
원한의 강도를 깊이 느낄수록, 가을개벽의 절대성을 통해버리게 된다.
그 깊고 깊은 원한의 경계에서 그걸 체득할 때, 크게 깨지는 것이다.
<종도사님, 신임포정교육, 도기131년 9월>

용봉.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