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전서》(四庫全書)는 1773년 사고전서四庫全書에서 고조선의 증거를 찾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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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 대접을 가장 잘하는 조선 민족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계 대운이 조선으로 몰아 들어오니 만의 하나라도 때를 놓치지 말라.

 

이 세상에 조선과 같이 신명(神明) 대접을 잘하는 곳이 없으므로
신명들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하여 각기 소원을 따라 꺼릴 것 없이 받들어 대접하리니
도인(道人)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천하사(天下事)만 생각하게 되리라.” 하시니라.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신명들이 조선 땅에
삼대 들어서듯 가득 차 있어 사람이 지나가면 신명들이 길을 비켜 주느니라.
그러니 침을 뱉어도 고개를 숙이고 발부리에 뱉어라.” 하시니라.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

하루는 한 성도가 청(淸)나라를 중국(中國)이라 부르거늘 상제님께서 크게 꾸짖으시고 말씀하시기를
청나라는 청나라요 중국이 아니니라. 내 세상에는 내가 있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요

금강산이 천하만국의 공청(公廳)이 되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36)


세계일가 통일정권 대공사

무신년 10월에 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머무르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하시고
친히 곡조를 붙여 시천주주를 읽어 주시며 성도들로 하여금 밤마다 읽게 하시니라.

 

선천세계의 제왕기운을 거두심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며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 하고 외치시니 이 때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로써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매  하늘을 보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처럼 허공에 벌여져 있다가 곧 사라지니라.


중국을 여러 나라로 나누심
한 성도가 여쭈기를 “황극신이 이 동토(東土)에 넘어오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는 조선이 된다 하였사온데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하니
내가 거처하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나니 청나라는 장차 여러 나라로 나뉠 것이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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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전서》(四庫全書)는 1773년 (건륭 38년)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명으로
1781년 (건륭 46년)에 편찬 및 완성된 중국 최대의 총서이다. 전 3,503부 79,337권에 달한다.


전체 구성이 당나라 때 집현서원(集賢書院)에서 황실의 장서를 4서고로 나눈 것에 유래한다.

 

명(明)이 멸망하고 학식과 문화수준이 낮은 청(淸)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청조는 중화(中華) 문명을 배워서 통치를 잘하고 인재를 키우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거대한 편찬사업을 진행했다.


이에 따라 청조 건륭제(乾隆帝)의 칙령에 의해

편찬된 사고전서는 '중국 5,000년 사상 최대의 총서'로 알려졌다.

 

 

사고전서의 편찬사업에는 관련 학자 360명을 비롯하여

중국 내 광대한 지역으로부터 각 전문분야 수천명의 박학한 학자들과 1만 5,000여 명의

필사자(筆寫者)가 동원되었고,

1781년 완성될 때까지 근 1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칙찬본(勅撰本)·내부본(內府本)·각성채진본(各省採進本)·개인진헌본(個人進獻本)·

영락대전본(永樂大典本) 등 중국 각처에 수장되어 있던 모든 희귀본들이 빠짐 없이 수집되어

사고전서관(四庫全書館)으로 이송되었고,

여기서 문자의 교감(校勘)과 고증(考證)·해제(解題)·분류·편집 작업을 거쳐

사고전서는 총 1,864권으로 원본 그대로 저록(著錄)되었다.

 

 

〈중국의학대계〉는 베이징[北京]의 자금성(紫禁城) 남동쪽에 세워진

천자(天子)의 장서각(藏書閣)인 문연각(文淵閣)에 보관되어 있던 것으로,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部)로 분류되어 있는 사고전서 중 자부 의가류(醫家類)에 해당된다.

 구성은 원본 97종 1,864권 1,311책을 수록한 역대 중국의 진귀본 의서를 집대성하여 이루어졌다.


중국 최고(最古)의 의서인 〈황제내경소문 皇帝內經素問〉·〈영추경 靈樞經〉·

〈난경본의 難經本義〉를 비롯하여,

〈비급천금방 備急千金方〉·〈외대비요 外臺秘要〉·〈부인대전양방 婦人大全良方〉·

〈보제방 普濟方〉·〈설씨의안 薛氏醫案〉등

중국의 중세 의학을 대표하는 책들이 수록되어 있으며,

 

〈본초강목 本草綱目〉·〈유경 類經〉·〈경악전서 景岳全書〉 등

우리나라에 많이 알려진 명·청대의 책들이 모두 망라되어 편찬되어 있다.

 

그밖에도 〈난대궤범 蘭臺軌範〉·〈신농본초경백종록 神農本草經百種錄〉·〈상한류방 傷寒類方〉·

〈의학원류론 醫學源流論〉 등의 책들이 〈중국의학대계〉의 마지막 책(冊)에 수록되어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영인본을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한의학도(韓醫學徒)들이나 학자들이 많이 참조하는 중요한 한의학 서적 중의 하나이다.


4고서에 의해 분류정리되어 있어, 사고(四庫) 전서라고 한다.
사부의 책의 표지는 각각 경부(녹색), 사부(적색), 자부(청색), 집부(회색)로 색깔로 구분되어 있다.


광범위한 자료를 망라하고 있으며, 자료의 보존에 막대한 공헌을 했다.

아편전쟁, 애로호 사건, 태평천국의 난 등으로 소실되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것은 북경도서관 (문진각), 대만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원 (문연각), 간쑤성 도서관 (문소각), 저장 성 도서관 (문란원)의 4부가 전한다.

 

사고전서(四庫全書)에 수록한 책은 경부 66종, 사부 41종,
자부 103종, 집부175종 4946권으로 서적의 복원, 발굴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조의 통치에 있어서 불리한 내용이 기술된 책은 싣지 않았거나 금서를 한 부분도 엿보인다.


병부(兵部)의 보고에 의하면 건륭 39년부터
건륭 47년 사이에 24번의 분서(焚書)로 538종 1만3862권의 책이 소실되었다고 전한다.


사고전서(四庫全書)의 편찬으로 많은 수의 서적에 대한 금서, 분서 등의 서적파괴가 발생했다.
사고전서의 편찬과정에서 2400여 종의 책과 목판이 불살라졌고, 400종 이상의 책이 공식적 명령에 의해 수정됐다.

 

청대 건륭(乾隆) 38년(1773) 편수에 착수하여 건륭 47년(1782)에 완성했다.
모두 3,503종 7만 9,337권(文津閣에 보관된 수량)을 수록했다. 경(經)·사(史)·자(子)·집(集)의 4부 44류로 나누었다.


경부는 역(易)·서(書)·시(詩)·예(禮)·춘추(春秋)·효경(孝經)·5경총의(五經總義)·
사서(四書)·악(樂)·소학(小學)의 10류로 나누었다. 사부는 정사(正史)·편년(編年)·기사본말(紀事本末)·별사(別史)·
잡사(雜史)·조령주의(詔令奏議)·전기(傳記)·사초(史鈔)·재기(載記)·시령(時令)·지리(地理)·직관(職官)·정서(政書)·

목록(目錄)·사평(史評)의 15류로 나누었다. 자부는 유가(儒家)·병가(兵家)

·법가(法家)·농가(農家)·의가(醫家)·천문산법(天文算法)·
술수(術數)·예술(藝術)·보록(譜錄)·잡가(雜家)·유서(類書)·소설가(小說家)·

석가(釋家)·도가(道家)의 14류로 나누었다.
집부는 초사(楚辭)·별집(別集)·총류(總類)·시문평(詩文評)·사곡(詞曲)의 5류로 나누었다.

 
전체를 모두 7질로 만들어서 내정사각(內廷四閣)이라 불리는 베이징 궁[北京宮] 내의 문연각(文淵閣),
원명원(圓明園)의 문원각(文源閣), 펑톈[奉天 : 지금의 랴오닝 성(遼寧省)] 선양 시(瀋陽市)

구궁(故宮)의 문소각(文溯閣),

러허[熱河 : 지금의 허베이 성(河北省) 청더 시(承德市)]의 문진각(文津閣)과 강절삼각(江浙三閣)이라 불리는
전장[鎭江] 진산 사[金山寺]의 문종각(文宗閣), 양저우[揚州] 다관 당[大觀堂]의 문회각(文匯閣), 항저우[杭州]
성인 사[聖因寺] 행궁(行宮)의 문란각(文瀾閣)에 각기 나누어 보관했다.


책을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초고를 만들 때까지 16년이 걸렸고
편수·기록에 참가한 문신·학자·기록관은 4,000여 명에 달했다. 문회각과 문종각은 1853년

전화(戰火)로 없어졌고,

문원각은 1860년 영국-프랑스 연합군이 베이징을 침입했을 때 불타 없어졌다.


문란각본은 현재 항저우 저장 성[浙江省] 도서관에,
문연각본은 타이완에, 문소각본은 란저우[蘭州] 간쑤 성[甘肅省] 도서관에 보관중이다.
문진각본은 베이징 도서관에 보관중인데 7질의 책 가운데 가장 완전한 것이다.

 

자료출처 : 브리태니크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b20j0045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