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제님을 잘 모신 김수로왕과 허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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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가야국의 시조다.

그에 관한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에 상세하게 나온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과 선조들의 혼을 기리는 ‘고유제와 혼불채화’도 주요 볼거리다.

 

김수로왕의 탄강지인 구지봉에서

조상들에게 축제의 시작을 고하고, 시민들의 평안을 기원하는 고유제를 지낸다.

 

구지봉에서 태양열을 이용하여 채화하며,

선조들의 혼이 담긴 혼불을 채화한 뒤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 하는 혼불맞이 대동제가 한마당 열린다.

 

상제님을 잘 모신 김수로왕과 허황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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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로왕 황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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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황릉 

 

삼신상제님은 자신을 지극히 따르는 사람에게

꿈이나 알음귀를 통해 국가의 대소사나 인생의 대소사를 밝게 가르쳐주시는 분이다.

한민족의 9천년 역사가 삼신상제님과 함께 해 온 역사이다. 

 

우리나라 성씨 중에 최고 대종大宗인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왕비 허황옥의 결혼에 얽힌 신비로운 내용이 있다.

 

AD48년 7월 구간九干 등의

신하들이 수로왕에게 배필을 구할 것을 건의하자

 

수로왕은 “내가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명령일진대,

나에게 짝을 지어 왕후王后를 삼게 하는 것도 역시 하늘의 명령이 있을 것이니 경들은 염려말라.” 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아유타국에서 공주가 제 발로 오게 되는데

수로왕을 만난 공주의 일성一聲의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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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로왕 제를 지낼 때 제사상에는 생고기를 올리는게 특징이다.

 

 

妾是阿踰?國公主也 姓許名黃玉 年二八矣 在本國時 今年五月中 父王與皇后顧妾而語曰 爺孃一昨夢中

同見皇天上帝 謂曰 駕洛國元君首露者 天所降而?御大寶 乃神乃聖 惟其人乎 且以新?家邦 未定匹偶

卿等湞遣公主而配之 言訖升天 形開之後 上帝之言 其猶在耳 ?於此而忽辭親向彼乎.

 

 

저는 아유타국阿踰?國의 공주인데,

성은 허許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16세입니다.

 

본국에 있을 때 금년 5월에 부왕과 모후께서

저에게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어젯밤 꿈에 함께 하늘의 상제上帝를 뵈었는데,

 

상제께서는 ‘가락국의 왕 수로를

하늘이 내려보내셔 왕위에 오르게 하였으니 신령스럽고 성스러운 사람이다.

 

또 나라를 새로 다스리는 데 있어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경들은 공주를 보내서 그 배필을 삼게 하라.’ 하시고, 말을 마치자 하늘로 올라가셨다.

 

꿈을 깬 뒤에도

상제의 말이 아직도 귓가에 그대로 남아 있으니,

너는 이 자리에서 곧 부모를 작별하고 그곳으로 떠나라.” 하셨습니다.

(<삼국유사>‘가락국기’)

 

 <월간개벽, 2014년 4월호, 1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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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수로왕후릉에 있는 5층 피사탑 계혈석으로 인도에서 들어온 것이라는 증명이다.

 

위의 내용을 읽으며 느낄 수 있는 것은

첫째, 가락국의 초기 역사에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제 신앙의 현장이다.

 

둘째는, 허황옥의 나라가 어디인지 설왕설래가 많은데

아유타국은 상제 신앙의 전통을 가진 나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봉수역사의 시원이 되는 진해 망산도를 훤하게 내려다보는 곳이기도 하다.

망산도는 가락국, 김해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이야기가 무수히 떠도는 전설의 섬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나라가없던 시절,

가락지역에서는 주민들이 각 촌락별로 나누어 생활하고 있었는데,

봄 어느 날 하늘의 명을 받은 아홉 추장과 부족원 수백 명이 구지봉에 올라가 제사를 지내며

춤추고 노래를 불렀다.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하늘로부터 붉은 보자기에 싸인 금빛그릇이 내려왔다.

그 속에는 6개의 알이 들어 있었는데 12일이 지난 뒤 알에서 차례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그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를 수로라고 했다. 사람들은 수로를 가락국의 왕으로 모셨고,

다른 아이들은 각각 5가야의 왕이 됐다. 수로는 즉위 후 관직을 정비하고 도읍을 정해 국가의 기반을 확립했다.

 

가락국의 역사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신비의 섬, 진해시 용원동 망산도는 지금 간척공사로 인해 옛 모습을 잃어버렸지만,

옛날에는 제법 큰 섬이었다. 현재는 거북등을 닮은 바위와 글씨가 새겨진 비석만이 애처롭게 남아있다.

이곳이 바로 김수로왕이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던 역사의 현장이다.

허황옥은 2천여년 전, 인도에서 태어나 열여섯 나이에 가락국의 왕과 혼인을 위해

20여명의 일행을 태운 붉은 돛에 붉은 깃발을 펄럭이는 배를 타고 머나먼 항해 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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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망산도에는 김수로왕의 신하 유천간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신하들은 어렴풋하게 보이는 남서쪽 해상을 조망하다가 펄럭이는 깃발을 발견하고는

횃불을 올려 왕비의 배를 맞았다. 먼 길을 오는 왕비일행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불을 밝혔던 것이

우리나라 봉수의 시원이 됐다.

 

공주를 맞은 수로왕은 망산도와 왕궁의 중간 지점인 명월산 산자락에 장막을 치고 첫날밤을 치렀다.

이후 허왕후는 157세의 나이로 승하할 때까지 열 명의 왕자와 두 명의 공주를 낳았다.

옛부터 신성시했던 망산도, 이 섬에는 여자의 출입을 금했으며,

김수로왕에서 태어난 많은 왕자의 영검이 이곳에서 증험돼 자식 없는 사람이

일정기간 치성을 드리면 자식을 얻는다는 소문이 지금까지 나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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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봉수대로 알려진 성화예산봉수는

현재 봉화산 정상 암반위에 1991년 부산시에서 석축의 연조하나만 달랑 복원했을 뿐 옛것은 흔적이 없다.

봉수대아래 평탄지에는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데, 이곳에 패각과 깨진 토기조각이 널브러져 있어

봉수군들의 숙소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화예산봉수대는 제2노선 간봉의 연변봉수로,

남쪽 가덕도 천성보봉수에서 횃불을 받아 북쪽 김해 분산성봉수로 전달했다.

동쪽 다대포의 응봉봉수와 천마산 석성봉수와도 봉화를 주고받았으며,

봉화산 아래 위치한 금단곶보에 주둔한 군사들이 봉수대를 관장했다.

 

참고자료 : http://www.dailian.co.kr/news/view/440377 

용봉%20태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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