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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여의 건국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를 개창한 분이 바로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이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BCE 239년 웅심산(지금의 길림성 서란)에서 기두하였다.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던 오가五加 부족장들의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군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BCE 232).

 

북부여’는 ‘북쪽에 있는 부여’라는 뜻이다. 

고조선의 제3왕조 시대인 대부여의 북녘 땅을 중심으로 나라를 열었기 때문에,

대’자를 ‘북’자로 바꾸어 북부여라 한 것이다. 그것은 망해 가던 대부여의 정통을 계승하겠다는 

해모수단군의 의지의 표명이었다.

 

북부여를 계승한 고구려

북부여는 비록 고조선을 계승하였지만, 고조선의 전 영역을 흡수하지는 못하였다. 

그리하여 열국列國의 분열시대가 시작되어 고조선의 옛 영토에는

북부여, 동부여, 서부여, 낙랑국, 남삼한, 옥저, 동예 등의 여러 나라가 형성되었다. 

 

열국시대는 그 후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를 거쳐 삼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로 변화하였다.

그렇다면 북부여의 국통은 어디로 계승되었는가?  고주몽이 세운 고구려로 계승되었다. 

 

북부여의 고무서단군은 자신을

천제의 아들(天帝子)”이라고 밝히는 주몽을 범상치 않은 인물로 여겨

둘째 딸인 소서노를 주어 사위로 삼았다. 아들이 없던 단군은 재위 2년 만에 붕어하면서

그에게 대통을 물려주었다(BCE 58). 고주몽이 북부여의 7세 단군이 된 것이다.

 

 

고구려를 이은 대진국과 그 이후

백제는 나중에 신라에 병합되었고(CE 660),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게 망한 후(CE 668) 유장遺將 대중상과 그 아들 대조영이 세운 대진국으로 이어졌다.

 

고구려가 망할 때 고구려의 유장 대중상이 동쪽으로 동모산에 이르러 성을 쌓고

새 나라를 열어 ‘고구려를 회복하여 부흥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후고구려라 하였다. 

 

대진국(발해)은 고구려의 후신인 것이다. 

대중상이 죽고, 그 아들 대조영이 당나라군을 격파하고 6천 리의 강역을 개척하여

고구려의 옛 영토를 상당히 회복하고 국호를 대진大震이라 하였다. 

 

진震은 동방을 뜻하므로 대진국은 ‘강대한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다. 

그러므로 대진국은 신라와 달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고 황제의 칭호를 사용하여

고구려의 계승자로서 당당한 면모를 드러내었다. 

 

대진국은 마침내 주변의 당, 왜, 신라 등이

조공을 바치며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부를 정도로 동북아의 강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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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출처: 환단고기 해제 (상생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