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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조선 말에 이땅에 다녀가신 상제님이 친필로 쓰신글로

종통전수와 관련되는 것이며 천자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신 글이다.

 

신천지 진법 도운의 종통맥 

 

상제님께서 선천 억음존양의
건곤을 바로잡아 음양동덕(陰陽同德)의 후천세계를 개벽하시니라. 
이에 수부(首婦)님께 도통(道統)을 전하시어 무극대도를 뿌리내리시고
 
그 열매를 수화(水火:坎離)의 조화 기운을 열어 주는
태극과 황극의 일월용봉 도수(日月龍鳳度數)에 붙이시어
신천지(新天地) 도정(道政)의 진법 도운을 여시니라. 
 
상제님의 도권(道權) 계승의 뿌리는 수부 도수(首婦度數)에 있나니 
수부는 선천 세상에 맺히고 쌓인 여자의 원(寃)과 한(恨)을 풀어
정음정양의 새 천지를 여시기 위해 세우신
뭇 여성의 머리요 인간과 신명의 어머니시니라. 

대두목(大頭目)은 상제님의 대행자요, 대개벽기 광구창생의 추수자이시니 
상제님의 계승자인 고수부님께서 개척하신 무극대도 창업의 추수운을 열어 선천 인류문화를 결실하고
후천 선경세계를 건설하시는 대사부(大師父)이시니라. 
 

甑山道 道典  6편 2장  


용봉 도수 

계묘(癸卯 : 道紀 33, 1903)년 4월에 상제님께서
모악산 안양동(安養洞) 청련암(靑蓮庵)에 머무르시며 공사를 보시니
이 때 박금곡이 수종 드니라. 
 
상제님께서 11일 해 돋기 전에 공사를 마치시고
아침해가 솟아오를 때에 용봉(龍鳳)두 글자를 상하(上下)로 대응시켜 크게 쓰신 뒤에

 
그 왼편에 작은 글씨로 ‘독존석가불(獨尊釋迦佛)’이라 써서 금곡에게 주시니
금곡이 상제님의 친필을 공손히 받아 먼저 깨끗한 종이로 싸고
다시 비단으로 고이 감아 보물처럼 보관해 두니라.
 

甑山道 道典  6편 8장  


개벽 상황에 광제 나갈 때 
하루는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일후에 광제(廣濟)하러 나갈 때에는 용봉기(龍鳳旗)와 장군기(將軍旗)를 원평에 꽂아라. 
 
원평이 이제 장상기지(將相基址)니라.”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그 때에는 광제표(廣濟票)와 천표(天票)를 들고 나가야 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공우가 여쭙기를 “광제표를 들고 나가는 것은 무슨 연유입니까?” 하니
말씀하시기를 “신명을 위로하기 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 뒤에 상제님께서 공우를 불러 말씀하시기를

“병겁으로 다 죽어 나갈 그 때

광고판을 길거리에 붙여 광제 나가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라.” 하시니라. 

이어 말씀하시기를

“앞으로 때가 되면 나의 대행자가 나와서 광제를 나가느니라.” 하시니라.
 

甑山道 道典  6편 1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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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부일체의 후천 문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천의 도정(道政)이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에서 그쳤느니라.

 

옛적에는 신성(神聖)이 하늘의 뜻을 이어 바탕을 세움(繼天立極)에

성웅이 겸비하여 정치와 교화를 통제관장(統制管掌)하였으나

중고(中古) 이래로 성(聖)과 웅(雄)이 바탕을 달리하여


정치와 교화가 갈렸으므로 마침내
여러 가지로 분파되어 진법(眞法)을 보지 못하였나니

이제 원시반본이 되어 군사위(君師位)가 한 갈래로 되리라.

앞세상은 만수일본(萬殊一本)의 시대니라.” 하시니라.

 

배사율의 통치 원리  

 

또 말씀하시기를 “선천에는 도수가 그르게 되어서
제자로서 스승을 해하는 자가 있었으나

이 뒤로는 그런 불의를 감행하는 자는 배사율(背師律)을 받으리라.” 하시니라.

 

사강육륜의 도륜을 내심

하루는 상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가에서 군사부일체를 주장하나

삼강오륜(三綱五倫) 어디에도 스승과 제자의 도리는 없지 않으냐.

 

이에 삼강오륜을 보전(補塡)하니 앞으로는
사강육륜(四綱六倫)의 도륜(道倫)이 나오리라.”
하시며 일러 주시니 이와 같으니라.

 

夫爲婦綱 父爲子綱 師爲弟綱 君爲臣綱

부위부강 부위자강 사위제강 군위신강

 

夫婦有別 父子有親 師弟有禮 君臣有義 長幼有序 朋友有信

부부유별 부자유친 사제유례 군신유의 장유유서 붕우유신

(道典 2편 27장)  

 

27:1 문왕과 무왕. 문왕은 은나라 주왕(紂王)에 의해
아버지와 자식을 잃고 갖은 고난을 당하였으나
이를 극복하고 주(周)의 천하통일 기반을 다졌다.


그의 아들 무왕에 이르러 대업을 이루었다.

27:7 배사율. 스승을 배신하면 처벌하는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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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룡포는 황제의 상징이다.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무궁화문양이 금장으로 되어있다.


봉황 역시 황제를 뜻하며,
모두가 황금색으로 장식했다

황제의 상징으로 황금색어의를 입어왔다.
어의는 황금색곤룡포로 황제를 상징하는 것이다.

 

옛 고조선의 임금님들은
모두가 이 황금색어의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예로부터 조선의 국통을 상징하는 용과봉은 황제를 나타내며 천자를 가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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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과 봉은 동양철학적으로 음과 양을 상징하는데 

용은 물(水:月))이며 봉(火:日)은 불로써 불사조 즉 피닉스를 상징한다.

즉 일월을 나타내며 또한 천자(황제)를 상징한다.

 
용과 봉은 천자와 국통을 상징하며
앞으로 인류를 이끌어가는 종통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의 용포는 황색의 옷에 용을 새긴 황룡포를 입는데 황룡포라 그러죠.
진정한 천자의 국통과 종통을 의미합니다.

 

또한 용은 태극(水:月)을 상징하며 봉은 황극(火:日)을 상징하는데
모두 고조선때 부터 삼신사상으로 국가를 경영하며 정통의 국통과 종통상징하며

또한 여기에는 삼신상제님로부터 종통을 인정받은것을 상징하며 표식은 일월(용봉)이다.
천자국의 천자를 상징한다.

 

보통 곤복이라고 하며,
의(衣)·상(裳)·중단(中單)·폐슬(蔽膝)·혁대(革帶)·대대(大帶)·

패옥(佩玉)·수(綏)·말(襪)·석(舃)으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에 규(圭)를 든다. 곤복의 특징은 장문(章紋)에 있으며,

장문에는 일(日)·월(月)·성신(星辰)·산(山)·용(龍)·화충(華蟲)·
종이(宗彛)·조(藻)·화(火)·분미(粉米)·보(黼)·불(黻)의 12장문이 있다.

 

① 의:청색과 흑색에 약간 적색이 섞인 현색 증(繒)으로 만들었으며,
양 어깨에는 용을, 등에는 산을, 양소매에는 화·화충·종이를 그렸다.

 

② 상:무릎 앞에서 뒤까지 가리는 의이다.
3염(染)이라 하여 나온 훈색 증으로 만들었으며, 전3폭 후4폭의 7폭으로 되어 있다.

폭마다 삭폭(削幅)이라 하여 양쪽 가장자리를 1촌씩 꿰매었고,
허리 사이에는 주름을 많이 잡았다.

 

옆 준(純:緣)인 벽과 아래 준인 석의 넓이는 각각 1촌 반으로 겉과 안을 합쳐서 3촌으로 하고,
조·분미·보·불의 4장문을 수놓았다.

의와 상을 합치면 9장문이 되므로 왕의 곤복을 9장복이라고 한다.

 

③ 중단:백색 증으로 만들었으며, 청령(靑領)에는 불문(黻紋) 11개를 그렸고,
도련과 수구에 청선(靑)을 둘렀다.

 

④ 폐슬:무릎 앞을 가리는 장방형의 의이다.
훈색 증으로 만들었으며, 위에는 비(紕), 아래에는 준(純)이라는 연식(緣飾)이 있었고,
양 갓 안쪽에 순(紃)이라 하여 5색의 띠를 둘렀으며, 위에서 5촌 밑으로 조·분미·보·불을 수놓았다.

 

⑤ 혁대:제복도설에는 나와 있지 않으나
혁대에는 폐슬·옥패·수를 걸게 되어 있어 곤룡포의 옥대로 대용했다고 볼 수 있다.

 

⑥ 대대:백색과 비색의 증으로 만들었으며,
대단(帶端)은 늘어뜨려 신(紳)으로 삼았다.

 

⑦ 패옥:좌우 1개씩 차게 되어 있었으며, 옥패 위에 금구(金鉤)가 있고,
다음에 형(衡), 가운데에 거와 우(瑀), 밑에 쌍황(雙璜)이 있으며,
쌍황 사이에 충아(衝牙)가 있고
또 충아와 쌍황 사이에 쌍적(雙滴)이 있었는데 모두 민옥(珉玉)을 사용했다.

그리고 5줄의 계조(繫組)에는 약옥주(藥玉珠)를 꿰었고
옥패 받침으로 6채로 짠 소수(小綬)가 딸려 있었다.

 

⑧ 수:수는 홍화금(紅花錦)으로 만들었으며 대수 밑에는 사망(絲網)이 달려 있다.
또한 3개의 소수가 대수 위에 드리워져 있고 2개의 금환(金環)을 간시(間施)했다.

 

⑨ 말:겉은 비색 단으로 하고 안은 비초(緋綃)로 했다.

 

⑩ 석:말과 마찬가지로 겉은 비색 단으로 했으나 안은 백증(白繒)으로 했으며,
말·석에 모두 기대(綦帶)가 있었다.

 

⑪ 규:길이 9촌, 넓이 3촌의 청옥규로서,
〈국조속오례의보 國朝續五禮儀補〉
〈서례 序例〉의 옥규도설에 의하면 나중에는 백옥규도 사용했다고 한다.

 

⑫ 방심곡령:백색 나(羅)로 만들었으며,
양 옆에는 영(纓)이 있어 좌영은 녹색, 우영은 홍색으로 했다.

한편 1897년 고종이 황제로 즉위하면서
제정한 12류면·12장복에 대해서는 〈대한예전 大韓禮典〉에 잘 나타나 있으며,
9류면·9장복과의 차이를 밝혀내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황룡포

청나라 황제 용포, 9마리 용으로 구성
붉은 박쥐(紅蝠), 황제 의복의 또다른 상징 청나라 황제의 옷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최근 대 중국 단파방송인 SOH희망지성(www.soundofhope.org)이
대기원신문을 인용.보도한바에 따르면,  청나라 황제의 몸에 닿기 전에,
황제의 옷은 2년 반 동안
궁정 재단사의 수작업을 거쳐야 했으며, 궁에는 오로지 황제 옷만 만드는
특별 재단사의 집이 있었다는 것.

 

또 무늬와 재단이 그곳에서 개발됐고, 황제와 고위 관리들의 승인을 거쳐야 했는데,
그런 다음 무늬는 비단 제조자들에게 넘겨졌다. 직물이 준비되면,
다른 기술자의 손에 의해 재단되고 제3자에게 넘겨져
바느질 된 다음 수가 놓여졌다.

 

수에는 최상의 실만이 사용됐고, 심지어 진짜 금으로 제작된 실도 사용됐다.
바느질에는 500명의 기술자들이 고용됐고,
금수를 놓기 위해서는 별도로 40명이 추가로 고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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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 나라 건륭황제 85세때의 모습)

 

황제의 가운은 아름다운 장식과 행운을 비는 숨겨진 상징들로 꾸며졌으며
각 의상에는 용의 형상이 주로 그려졌다. 용은 동양철학에서 중요한 요소로 황제의 권력을 상징한다.

 

용포는 9마리 용이 그려져 있는데, 각각 어깨, 등, 가슴 위,
아래에 각각 하나씩, 그리고 나머지 4마리의 용은 옷 하부에 장식된다.

 

용과는 별도로
해, 달, 별을 포함한 11개의 다른 상징들이 포함되기도 한다.

황제 의복의 다른 상징으로는 큰 복(洪福)’과 같은 발음인 ‘붉은 박쥐(紅蝠)’가 있다.

 

황제의 속옷은 세계의 바다와 산을 상징한다.
고조선의 전통에 따르면 황제는 전 세계를 다스리는‘천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청나라 황제는 동이족 출신이며 또한 우리민족이다.
위와 같이 진정한 황제는 노란색의 곤룡포를 입었다.

 

곤룡포(衮龍袍)는
옛 조선의 임금이나 왕세자가

평상시 입었던 평상복으로서 두루마기와 비슷하게 생긴 옷이다.


당시  중국은 황룡포로 불렸으며,

그러나 우리 조선은 천자자리를 빼앗겨 제후국으로 전락하여 조선은 곤룡포로 불렸다.

 

쉽게 말해서 주객이 전도되어 종주국인 조선이 천자국인데
이러한 황룡포도 중국에게 넘어가고

 

반민족주의와  사대주의에 빠져 넋도 혼도 없이 중국을 높이 받들며
정작 조선은 제후국으로 자처하며 비굴하게 살다 망해버리고

오늘날까지도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재질은 겨울에는 붉은색 비단으로, 여름에는 얇은 비단인 사(紗)로 만들었다.
붉은색은 강한 생명력을 뜻하는 의미였다.

곤룡포를 입을 때는 익선관을 쓰고 허리에 옥대를 매었으며, 목화(木靴)를 신었다.
곤룡포는 착용자의 신분에 따라 그 색깔과 허리띠의 재료, 흉배(胸背)의 종류에 차등이 있었다.

 

그 색에 있어 왕은 다홍색을,
왕세자와 왕세손은 아청(鴉靑, 검은빛을 띤 푸른빛)색을 사용하였다.

 

허리띠도 옥대와 수정대의 구분이 있었고,
흉배는 용무늬를 사용하였는데 왕은 발가락이 5개인 원형의 오조룡보(五爪龍補)를,
왕세자는 발가락이 4개인 원형의 사조룡보(四爪龍補)를,
그리고 왕세손은 발가락이 3개인 사각형의 삼조룡보(三爪龍補)를 사용하였다.

 

황룡포는 조선시대 말기 황제가 착용하던 상복(常服)으로
여름에는 운문사 겨울에는 운문단에 홍색 안을 넣어 만든 황색의 포이다.

 

양쪽 무의 여분을 뒤쪽으로 접어 윗부분을 길에 꿰어서 고정시키고 아래는 튼 대로 둔다.
둥근깃은 오른쪽 어깨에서 끼우고 긴 고름은 안감의 고름과 같이 2장으로 고를 내어 맨다.

금실로 수놓은 오조룡보를 앞가슴, 등, 양어깨에 달아 황제의 표지를 했다.

 

황룡포를 착용할 때는
익선관, 옥대, 녹피화를 착용하는데 익선관은 세종 때부터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황색은 예부터 생출의 덕을 의미하고 방위, 계절의 중앙이 된다고 하여 가장 귀히 여긴 색이다.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갖추어 왕이 황룡포를 입지 못하고

홍룡포를 입었는데 광무 원년(1897)에 고종이 칭호를 황제로 바꾸면서
<대명회전>을 근거로 새롭게 제정한 복제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황룡포를 입게 되었다.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황제의 곤룡포인 황색 곤룡포가 2벌이 소장되어 있는데,
1벌은 소매가 넓은 두리소매의 활수포이고, 1벌은 소매가 좁은 착수포이다.

 

황곤룡포 2점 중에서 활수포로 만들어진 것은 겉감이 황색 운보문사로 단령이며,
단령의 목둘레선 아래까지는 표와 이가 단령과 직령으로 각각 바느질되었고
그 아래에서부터는 표와 이가 솔기선이 꿰매어져 있다.

 

이 곤룡포에 부착되어 있는 보는 일월오조원룡보로서,
가슴 앞에 있는 보에는 용이 해를 상징하는 빨간색의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고,
등 뒤에 있는 보에는 용이 달을 상징하는 흰색 여의주를 입에 물고 몸을 둥글게 틀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오른쪽 어깨에도 일문오조원룡보가 붙어 있고,
왼쪽 어깨에는 월문오조원룡보가 붙어 있다.
이와 같이 일월문을 오조원룡보에 넣은 것은 황제의 상징이다.

 

이 일월오조원룡보는 지름이 19cm로 바탕은 곤룡포와 같은 황색 운보문사이며
그 위에 금사로 발톱 다섯개 달린 둥글게 틀고 있는 용을 징금수법으로 수놓았고
일문은 홍직사로 수 놓았으며 월문은 백직사로 수놓았다.
그 외각선은 금사 2줄로 돌려 징금수로 처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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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조 이성계 초상화

 

 우리나라는 중국에 대해 사대의 예를 갖추어 왕이 황룡포를 입지 못하고

 황제가 아닌 제후에 해당하는 푸른색 곤룡포이다.

 역사의 혼을 잃어버리고 정신구조가 썩어버리니 옷도 이런옷을 입어 마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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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가 통일정권 대공사  

 

무신년 10월에 고부 와룡리 문공신의 집에
머무르시며 대공사를 행하실 때
 
성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제 천하의 난국을 당하여
장차 만세(萬世)의 대도정사(大道政事)를 세우려면
황극신(皇極神)을 옮겨 와야 하리니  
황극신은 청국 광서제(光緖帝)에게 응기되어 있느니라.” 하시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황극신이 이 땅으로 옮겨 오게 된 인연은
송우암이 만동묘(萬東廟)를 세움으로부터 비롯되었느니라.” 하시고 
친히 곡조를 붙여 시천주주를 읽어 주시며 성도들로 하여금 밤마다 읽게 하시니라.
 
선천세계의 제왕기운을 거두심  

며칠이 지난 뒤에 말씀하시기를 “이 소리가 운상하는 소리와 같도다.” 하시며
운상하는 소리를 어로(御路)라 하나니 어로는 곧 임금의 길이라.
이제 황극신의 길을 틔웠노라.” 하시고
 
문득 “상씨름이 넘어간다!” 하고 외치시니
이 때 청국 광서제가 죽으니라.

 
이로써 세계일가(世界一家) 통일정권(統一政權) 공사를 행하시니 
성도들을 앞에 엎드리게 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이제 만국 제왕의 기운을 걷어 버리노라.” 하시고
성도들에게 “하늘을 보라.” 하시매
 
하늘을 보니 문득 구름과 같은 이상한 기운이
제왕의 장엄한 거동처럼 허공에 벌여져 있다가 곧 사라지니라. 
 

중국을 여러 나라로 나누심 

한 성도가 여쭈기를 “황극신이 이 동토(東土)에 넘어오면
천하의 대중화(大中華)는 조선이 된다 하였사온데 그렇게 되면 청나라는 어떻게 됩니까?” 하니 
 
내가 거처하는 곳이 천하의 대중화가 되나니
청나라는 장차 여러 나라로 나뉠 것이니라.” 하시니라.  
(甑山道 道典  5편 325장)

 

위의 성구말씀과 같이 이미 우리나라에 황극신이 넘어와 있다.

다시 말해서 종주국으로서 천자국으로서 우리의 옛 위상을 다시 되찾게 되는것이다.

 

이와같이 천자국의 천자 황룡포는 원래 종주국인 천자의 황제를 나타내는데

또다른 의미로는 황극제(황제 : 왕중의 왕)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민족의 상고사를 논함에 있어
고조선 역사를 결코 간과할 수 없게 하는 고조선 문화의
독특한 특징이 있다.

 

바로 인류의 시원문화이자
한민족 고유사상인 신교(神敎)의 삼신사상이
국가의 경영 제도로 뿌리를내렸다는 점이다.

 

즉 고조선은 초대 단군왕건 때부터
신교를 바탕으로 나라를 다스리심으로써
(정교政敎일치), 신교문화가 완전한 성숙 단계로 들어서서 
모든 백성들에게 생활화, 체질화되었다.

 

따라서 신교가 생활문화로 정착되었던
고조선시대의 이모저모를  알아보는 것은
인류의 새 문화를 열기 위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이라 하겠다.

 

뿐만 아니라 고조선사를 되찾아 바로 세우는 일은
대한민국의 국통(國統)맥을 정립하는 가장 중요한 기초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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