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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단히 공부하라

 

생각에서 생각이 나오느니라.
무엇을 하나 배워도 끝이 나도록 배워라.

 

세상에 생이지지(生而知之)란 없느니라.
천지에서 바람과 비를 짓는 데도 무한한 공력을 들이느니라.
너희들 공부는 성경신(誠敬信) 석 자 공부니라.


말을 앞세우지 말라

말을 듣고도 실행치 않으면 바위에
물주기와 같고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줄을 쳐야 빨래를 너는 것 아니냐?
조그만 거미도 줄을 치면 새도 잡아먹고 뭣도 잡아먹는데,
그 작은 거미만도 못한 놈도 많으니라.

 

말부터 앞서면 일이 안 되나니
일을 도모할 때에는 뒷감당을 해 놓고 말해야 하느니라.
(증산도 道典 8:7)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다

예로부터 생이지지(生而知之)를 말하나 이는 그릇된 말이라.
천지의 조화로도 풍우(風雨)를 지으려면 무한한 공부를 들이나니,
공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정북창(鄭北窓) 같은
재주로도 ‘입산 3일에 시지천하사(始知天下事)’라 하였느니라.

(증산도 道典 2:34)


역사는 피의 목욕탕이라고 말한다.
위의 상제님 성구말씀과 같이 인류 최초에는 배우지않고 아는법이란 없다.


인류 최초의 가르침이란 하늘로부터

상제님이 천부경을 통하여 가르침을 베풀어 주셨다.


여기에서 인간이 지혜를 얻어 오늘날까지 삶을 영위하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최초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군사부문화가 형성되어 보은의 관계가 형성되는것이다.


선천과 후천에 각기 개벽이 있느니라


선천에도 개벽이 있고 후천에도 개벽이 있나니
옛적 일(上古之事)을 더듬어 보면 다가올 일(來到之事)을 알고
다가올 일을 알면 나의 일을 아느니라.


우주의 순환 이치를 알아야 이 길을 찾을 수 있느니라.
일왈(一曰) 통(通)이요, 이왈(二曰) 개안(開眼)이요, 삼왈(三曰) 포교(布敎)니라.
(증산도 道典 11:122) 

 

인류의 생사를 쥐고 다니는 너희 일꾼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천하사는 생사양도(生死兩道)에서
그치나니 우리의 부단한 노력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 하는 일이니라. 

 

나의 일은 남 죽을 때에 살자는 일이요,
남 사는 때에는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누리자는 일이로다.
(증산도 道典 8:117)  


역사를 왜 알아야 하나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근본을 찾아 현실에 적용하여 잘 활용해야 되는것이다..

역사를 공부한다는것은 뿌리를 찾아서 뿌리로 돌아가

우주와 나의 정체성을 밝혀  인간으로서 나의 완성을 이루고 나아가 자연섭리에 맞추어

법도에 맞게 살아가는것이 대도의 길인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공부한다는것은
역사를 배워 단순이 민족과 백성이 흐뭇하게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과거와 현실을 통찰하여 잘 활용해서 미래를 헤아리고

삶에 대처하기 위해서 배우는것이다.


하여 역사를 통해서 통찰력을 얻지못하면
배울 필요가 없으며 또한 죽은 지식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를 통해서 과거와 현실을 통찰하여 자기 정체성을 안다는것은
자연섭리를 깨달아 삶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고 영위하기 위해서 배우는것이며,
미래를 대비하는것이 역사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역사를 어떻게
삶에 적용하여 활용할 것인가를 깊게 헤아리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인류는 최초에 하늘로 부터
가르침을 받아 깨우침을 얻어 인류문화와 문명이 형성되어 왔습니다.


여기에서 군사부문화가 시작되어 나오는것인데
군사부란 임금과 스승과 부모를 잘 받들어 모시는것으로 부터 시작을 하는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생명을 주고 가르침을 베풀어 잘 이끌어주는
은혜에 보답하고 보은하는것을 근본으로 하는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는 하늘로부터 생과 가르침과 다스림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보은을 해야하는것이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근본을 잃어버리므로 해서 나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인생을 마구잡이로 살아가는것이다.


여기에서 죽느냐 사느냐하는 중차대한 생사양도의 길이 생기는것이다.
은혜를 잊어버리고 망각을 하게되면 배은망덕의 불의에 걸려 제거의 대상이 되는것이다.
진리가 자연섭리가 그렇게 되어져있다.


그래서 보은 즉 은혜에 보답하는 은혜의 수수법칙이 성립되는것이다.
그래서 보은이 성립되고 같이 더불어 사는 상생의 이치가 적용되어 살려서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문화와 문명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


이 우주는 홀로 독불장군으로 유아독존식으로 살아가는것이 아니다.
그런 자만과 교만을 의식속에서 지워야 할것이며 또한 버려야 할것이다.


인류 최초의 인간은 가르침을 받아 깨우쳐 생을 지혜롭게 살아가게 되었는것이다.
천지로부터 우주통치자이시며 원주인이신 상제님으로 부터 생을 부여받았기에 부모가 되는것이요.
가르침을 받아 우리의 스승이 되는것이요, 다스림을 받아 조직의 위계질서가 유지되므로 군주가 되는것이요.

이 하나를 근본으로 세가지 법칙이 적용되어 여기에서 군사부문화가 나오게 되는 소자출인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를 통해서 진정한 근본을 안다는것은 은혜를 망각하고
저버리지않는 인륜적 기본 예이며 그 참된 도리를 따르는것이므로 도를 닦는것이다.


그래서 역사를 안다는것은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에 귀결되는것인데
그것이 바로 증산도에서 말하는 원시반본의 사상이며 이치이다.


이것은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법률과 사상과 이념이 아니고 자연섭리가 그러하다는것이다.
그러므로 근본이며 생명의 뿌리인 그 하나를 잘알아 배워 자만심과 아만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받아 들이는

충효의 정신을 이어받아 보은을 해야 하는것이 인간의 도리이자 자연섭리이다.


천부경에서 말하는 하나 즉 일一이라는것은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이냐,
즉 무엇이 참된 이치이며 참된 그 하나의 주인이 누구인가이다.


하나는 일이라는것은 참된 주인을 가려내는것인데 참됨은 하나이지
둘이 아닌것이다. 그래서 국통이 있고 도통맥이 있고 정통성이 존재하는것이다.
그것의 하나는 진실로 하나이지 둘이 될 수가 없는것이다.


진리를 알아 성공하는것은 참된 하나를 잡는데 있다.
그 참된 하나를 잡아야 죽느냐 사느냐하는 절박한 세상에 살수있는 인연을 얻게되고

기회를 잡게되는것이다. 하나를 일(一)을 잘 알고 깨우쳐야 진리를 제대로 알아보는 안목이 생기는것이다.


그것을 선택하여 하나를 취하느냐 마느냐 하는것은

순전히 자기자신이 순수한 마음으로 진리를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며

또한 역사를 참되게 배워 이것을 현실에 제대로 적용하고 활용하여 미래를 꿰뚫어보는  

미를 취하는 지혜에 달려있는것이다.

 

이러한 인연은 누가 얻게 되는가 하는것은

신도神道(사후세계)에서 조상들이 후손에게 알음귀를 열어주는 가르침을 베푸는 은혜에 있는것이다.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우주의 원주인인 하나를 배우는 것이요 조상을 알아보아야 한다는것이 핵심이다.


이 세상은 공존하기 위해서 서로서로가 은혜를 베푸는것이다.
여기에서 조직이라는 가족단위가 형성되고 위계질서가 형성되고

형성되면 군사부라는 통치 방법을 통해  보은의 관계 즉 은혜의 수수법칙이 형성되고 

더불어 공존하는 이치와  질서가 생성되는것이다. 질서가 파괴되면 모든것은 파멸이 뒤 따르게된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하는것은

그 은혜에 위배되고 배은망덕하여 은혜를 저버리게되면  하늘에서

제거 대상이 될 뿐이므로  역사를 안다는것은 죽느냐 사느냐하는 문제로 귀결되는이다.


그러므로 이치를 배운다는것은

거짓에 속임을 당하지않고 진실을 헤아려 믿음을 가지고 삶에 적용하기 위함인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의 원주인은 하나 뿐이지 둘이 될 수 없다.
여기에서 둘이 있으므로 정신이 분열되어 참이냐 거짓이냐에 따라 현실에는 투쟁과 대립이 일어나는것이다.


하여 불의를 밝혀 참된 하나를 진정으로  얻는자는 그 수가 길이 창성할것이요.
거짓된 것을 잡는다는것은 길이 멸망 할 뿐이다는것이 역사의 섭리이며 가르침이다.


삶이란것은 근본도 없이 무턱되고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인생과 세상을 마구잡이로 살아가는것이 아니다.


또한 역사라는것은 단순히 역사를 암기하여 

자기 정체성을 찾아 기쁨에 사로잡혀 환희에 젖어 개인적 만족과

자부심으로 끝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역사는 근본을 후손에게 전해주어 정통성을 바로잡자는것이요 역사는 근본을 바로잡아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여 인간완성을 이루고 나아가서 현실을 행복한 삶의 터전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군사부란 은혜를 베풀어 올바르게 전해주고 참된 가르침을 베푸는것이다.


나의 부모, 나의스승, 나의 군주가 가르침을 전하여
근본을 잃지않고 보은하는 관계가 지속될 수 있도록하여 주는것인데
여기에서 역사가 생기고 조상과 후손의 관계가 형성된다.


그러므로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가르침을 베풀어 죽음을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하고 그런 세상을 구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지는 것이며,
더불어 사는 상생의 세상을 만들고자함에 있다.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인류의 정신문화 즉 역사적으로는 인류 최초에는 군사부문화로 시작이 되었고
여기에서 그 하나의 근본적 가르침을 내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천부경의 일시무시일이다.

역사를 배움에 있으서의  핵심은 인류 정신문화의 깨우치는데 있으며

그 정수는  신교의 신선문화와 신선사상에 있다. 


그러므로 인류는
군사부의 가르침을 받아 영생불사의 신선의 도를 닦아 인간완성을 이루고

행복한 생과 삶을 영위하는 은혜를 받아왔다.

 

그런데 역사를 잃어버리고 역사를 잘못배워 근본도 모르는 호로자식이되어

인간의 정체성을 찾아 성통공완하는 가르침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뿌리를 되찾아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우주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인간완성을 이루기 위함이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과거를 통해 현실을 통찰하여 미래를 알고 대비하는것이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잊어버린 천지부모를 찾는 길이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군사부문화를 깨우치기 위함이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남죽을 때 살자는 일이요. 남살고 넘산 세상에 복락을 누리자는 일이다.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하나(근본, 뿌리, 생명의 부모, 조상)를 알기위함이요.

그 하나를 안다는것은 바로 우주의 원주인 一神卽 三神인 상제님을 바로 아는것이 핵심이다.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은혜를 알아 보은을 해야한다는것을 깨우치는 것이요.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만인을 살려서 공존해야하는 상생의 도리를 깨우치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홍익인간의 정신이다.


모든것은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과 인간이 더불어 함께 동시에 변해야하며
그런 기회를 타고 진정하게 새롭게 태어나서 새생명을 얻게 되는것이다.


이것이 대학大學에서 말하는 '대학지도'의 재명명덕하고 재신민이란 뜻이다.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고 새로운백성으로 태어나는 길이다.
따라서 바로 '홍익인간'을 역사속에 구현하는 길이 살려내는것이며 또한 상생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역사를 배운다는것은 자신의 근본을 되찾아

천지의 홍은에 보답하고 생명의 조상, 군사부적 은혜를 저버려 배은망덕하는

불의를 행하지 말아야하며, 이것을 어길 경우에는 곧 죽음이다 하는것을 깨우쳐야 하는것이다.

 

그리하여 전인류가 역사적으로 '배은망덕만사신'줄에 걸려 참혹히 망하고 죽는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준엄한 경고이며 가르침이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2장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꽃이 좋고 열매가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그치지 아니하므로, 내가 이루어져 바다에 가느니.

 

 

 

천지에서 사람 쓰는 이 때에 

하루는 형렬에게 일러 말씀하시니 이러하니라. 

 

形於天地하여 生人하나니
형어천지생인

 

萬物之中에 唯人이 最貴也니라
만물지중     유인    최귀야

 

하늘과 땅을 형상하여 사람이 생겨났나니
만물 가운데 오직 사람이 가장 존귀하니라. 

 

天地生人하여 用人하나니
천지생인        용인

 

不參於天地用人之時면 何可曰人生乎아
불참어천지용인지시     하가왈인생호

 

천지가 사람을 낳아 사람을 쓰나니
천지에서 사람을 쓰는 이 때에 참예하지 못하면
어찌 그것을 인생이라 할 수 있겠느냐! 

 

하루는 말씀하시기를 “선천 인간 중에
천지의 홍은(鴻恩)을 갚은 사람이 없느니라.” 하시니라.
(증산도 道典 2:23)
 


 

 

인류의 생사를 쥐고 다니는 너희 일꾼

너희들은 손에 살릴 생(生) 자를 쥐고 다니니 득의지추(得意之秋)가 아니냐.
삼천(三遷)이라야 일이 이루어지느니라.

 

천하사는 생사양도(生死兩道)에서 그치나니

우리의 부단한 노력은 하루에 밥 세 때 벌이 하는 일이니라.

 

나의 일은 남 죽을 때에 살자는 일이요,
남 사는 때에는 영화(榮華)와 복록(福祿)을 누리자는 일이로다.
(증산도 道典 8:117)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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