巫의 근원   

 

과학이 모든 것을 대신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정신세계는 과학을 초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다.

상고시대 神의 나라에 더 가깝게 살았을 당시는 도통자들이 아주 많았었다.

 

중국인 학자 서량지(徐亮之)씨가 저서한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 있는

중국민족기원어탑리목분지(中國民族起源於塔里木盆地)편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上帝之下都, 太帝之居, 天皇被跡的聖地,

我們業已知道, 所謂 開天闢地, 首出御世的盤古氏, 乃套取苗等族的人類起源設.

 

상제의 도읍지 아래 태제(太帝)가 살고 있었다.

그곳은 천황(天皇)이 자리한 성지(聖地)이다. 아문(我們) 즉 군신(君臣) 또는

천황(天皇)의 무리들은 도(道)를 알기 위함을 생업(生業)으로 생각하였다.

 

소위 하늘이 열리고 땅도 열었으니,

처음으로 으뜸가는 사람이 세상(世上)에 나타났다. 그가 반고씨(盤古氏)이다.

이에 묘(苗)의 무리와 다른 종족까지 크게 뭉쳐 함께 일어난 것이 인류의 기원설(起源說)" 이라고 적고 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상고시대(上古時代)에 도(道)를 통하는 것이

생업(生業)이라고 할 정도로 그때는 밥을 먹고 사는 것 보다 중요한 것이 도(道)를 통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상고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선인(仙人)이 많았으며 선인(仙人)은 천산(天山), 곤륜산(崑崙山), 삼위산(三危山),

돈황(敦煌) 등지에서 수도(修道)하는 것을 주업(主業)으로 생각하며 살았다.

 

그중에는 천문(天文)의 도(道)까지 깨달아

신선(神仙)의 경지에 올랐던 사람도 아주 많았던 것이다.

그것은 앞장에서 서술한 동기부여가 확실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다.

 

무(巫)의 근원(根原)은 선(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선(仙)은 도(道)와 다르다. 쉽게 설명해서 선(仙)은 도(道)의 서너 수 아래에 있다.

도교(道敎)의 창시자 노자(老子)는 도인(道人)으로 보아야하며 선인(仙人)이라고 부르면

노자(老子)의 위상을 깍아내리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삼가해야 한다.

 

선(仙)은 몸과 마음의 수련을 통해서 얻을 수 있지만

도(道)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仙)과 함께 경전(經典)을 공부(工夫)해야 한다.

그것은 道라는 글자에 그렇게 표현 되어있다. 사람이 책을 본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선(禪)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세인트(Saint) 범어는 산스크리트 즉, 성스러운 문자라는 뜻이며 산(San) = 성(聖)이다.

성인(聖人) 할 때 성(聖)도 모두 같은 뜻이다.

 

선(仙)의 뜻이 모두 수행을 통해서 얻어지는 결과와 연결되어 있다.

래서 선(仙)은 산에 사람이 있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된다.

 

고자(古字)에는  선(仚) 이렇게 생긴 글자였으며 신선, 불로불사(不老不死),

산에서 사람이 날아다니는 뜻으로 쓰인 글자이다.

 

현대인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선(仚)은

기(氣)가 충만한 상태에서 불로불사(不老不死)하였으며 이 산에서 저 산으로

날아다니는 뜻으로 옥편에 기록되어 있다.

 

도통(道統)과 선통(禪統)의 다른 점을 설명하면

선통(禪統)은 선(仚)을 익힌 사람이 공부를 하지 않아도 오를 수 있는

정신 세계의 최고 경지를 말하며, 도통(道統)은 먼저 선통(禪統)을 이루고 난 후에 더 정진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반드시 天 . 人 . 地로써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통달한 후에 오를 수 있는 경지이다.

 

 

봉선(封禪)의 유래

 

상고시대(上古時代) 제왕들이 왕위나 제후에 오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통(禪統)을 해야하는 통과의례를 거쳤다. 그것을 봉선(封禪) 이라 한다.

요(堯)는 도통(道統)을 하지 못하고 스스로 천산(天山)에 들어가 수행하여 선통(仙統)을 얻었으며

사사로이 오행(五行)의 도(道)를 만들어 천부(天符)를 배반하였다.

 

당(唐)나라 때 한유(韓愈:768∼824)가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왕(文王), 무왕(武王), 주공(周公), 공자(孔子),

맹자(孟子)까지 도통(道統)한 것으로 기록하였으나 사실은 선통(禪統)을 한 것이다. 

 

요임검(堯壬儉)의 배반으로 I_tungi.gif(tungi)와 서토(西土)의 경계가 생겼으며

당요(唐堯) 이후 더 이상 도통(道統)이 힘들어져 이때부터 봉선(封禪)이라는 전통이 생겼다.

 

봉선(封禪)은 제후들이 선(禪)을 통하여

천자(天子)로 부터 봉작(封爵)을 받는 것을 말한다. 봉작(封爵)은 천자(天子)가 제후들에게

봉선제(封禪祭)를 열고 각 제후들은 태산의 원구단(圓丘壇)에 모여 선(禪)을 행한 뒤 그 평가가  내려지고

선통(禪統)의 깊고 낮음에 따라 천자(天子)가 작위와 땅을 봉(封)해 주는 것을 봉작(封爵)이라고 한다.

 

제왕운기'에 봉선(封禪)에 대해서 기록한 것을 보면

평생을 통해서라도 도(道)를 열지 않으면 안되며 오행(五行)을 암송하고

외우면서 반드시 禪을 통해야 군주가 될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제왕운기 본문6쪽) "

 

그 규칙과 예법은 '예기(禮記)'와 '사기(史記) 봉선서(封禪書)'에 기록되어 있다.

율곤 이중재선생께서 저서 '상고사의 새발견(上古史의 새發見)에 소개한 '책부원구(冊府元龜)3권

제왕부 봉선편 / 천단, 원구단 (天壇, 圓丘壇)' 을 살펴보기로한다. 

(원문생략)

 

"태산 위에 둥근 단(壇)을 마련한다.

그리고 사방에서 들어가고 나가는 출입구를 만들고

도(道)를 닦는 둥근 단(壇)이 있는 장소는 항상 열어 놓았다.

남쪽으로 통해 들어오는 곳은 모두가 모여 도(道)를 연 사람들과 앞으로 열 사람들이 모여

의논하고 회의하는 곳이다.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떤 사람이던지 청원하면 의논할 수 있도록 마련 되어있다.

높은 곳 둥근 단은 넓이가 오장 이며 높이는 구척이다. 그 곳에 쓰인 색은 오색의 흙 이다.

사면에 각각 폐하의 제단 위치가 정해져 있다. 그런데 남쪽에 있는 폐하의 제단이 더 높게 되어있다.

 

상감에게 올리는 공문서를 드릴 때나 선통을 하여 봉작(封爵)을 주기 위해서이다.

군인이나 선통자 그리고 문무백관 모두 단상을 향해 둥글게 앉아 회의를 하거나 봉작(封爵)을 받는다.

선통(禪統)을 하여 봉작(封爵)을 받을 사람은 모두 함께 참여하여 선통(禪統)을 했는지의

여부를 알기위해 선문답식 말을 하게 되어있다.

 

선통의 깊고 낮음에 따라

제후왕이 정해지고 봉작(封爵)의 영예가 결정되며 따라서 땅도 함께 정해진다. "

즉, 낙랑군에 봉해질 사람 태원에 봉해질 사람 낙양, 서안, 왕검성 이런식으로 봉작(封爵)을 받을 때

그 지역의 땅도 함께 받는 것을 뜻 한다.

 

그리하여 각자 호(號)가 정해진 다음 봉선(封禪)이 결정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짧은 시간에도 옳고 가함이 알려지게 된다. 만약 다시 청하는 사람이 있으면

둥근 단상에 안치한다. 모가난 돌 옥새함을 다시 점검하고 다시 오색으로된 흙을 쌓고 다시 봉해버린다.

옥새가 든 공문서는 잘 보관하여 감추어 봉한다. 그 후 천제를 지내는 제단안 선(禪)의 자리에 보관한다" 

(이중재: 上古史의 새發見)

상고시대에는 지구의 기운(氣運)이 지금보다

백배 천배 더 좋았기 때문에 사람이 선(仙)을 수행하기는 참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환인씨(桓因氏) 일곱 분이 모두 천산(天山 = 波奈留)에서 득도(得道)하였으므로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약 3천 년 동안 수 억명은 족히되었을 것이니

환국은 과연 신선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해동역사(海東繹史) 제28권 풍속지(風俗志) 방언(方言)편에

하늘(天)의 한자(漢字) 표기는 파내류(波乃留)라 기록하고 있다.

삼성기(三聖記)의 파내유(波奈留)는 천산(天山)을 이르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학식이 없어도 선통(禪統)은 가능했다.

그러나 도통(道統)은 선통(禪統) 처럼 쉽게이루어 지지 않는 것임을 알았다.

 

도통(道統)은 신계(神界)에서 주관하므로

도통(道統)자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신계(神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만큼 도통(道統)자는 흔하지 않은 것이다. 신선(神仙)은 도통(道統)의 바로 밑 단계이며

仙을 通하여 神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한다.

 

자꾸 통통하는데 통(通, 統, 桶)자는 동이의 뚱을 말하며 쌍둥이,

칠삭둥이, 늦둥이 처럼 지금도 쓰이는 용어이다. 통은 둥글게 만들기 때문에 그 형상에 따라

우주를 뜻하는 것으로 싯담어이다. 그래서 동이(東夷)는 도통한, 지혜가 충만한,

천문을 통달한 우수한 민족을 뜻하는 것이다.        

 

 

요즘은 세상이 황폐해진 까닭으로 지구의 기운이 쇠하여

선인(仙人) 조차도 될 수가 없는 시대이며 가끔 선통자(禪統者)만 드물게 나타난다.

우리는 흔히 그들을 무당이라고 부른다. 이른바 선통(禪統)이 민간 신앙의 주술적인 행위에까지

이어지면서 그 위상이 떨어져 이제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처럼 진실이 왜곡되어 있다.

 

무(巫) 전통이 어긋난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탓도 있지만

먼저 인간이 그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며 유교의 전통을 받드는 사상이 생기면서

그 쇠퇴가 가속화 되었다.

 

무(巫)의 어원은 I_tungi.gif에게서 탄생한 말이다.

무(Mu)는 마(Ma)에서 탄생한 언어이며 생명의 근원, 지혜의 뜻이 있다.

인류의 시조도 마누스(Manus)이며 마누스(Manus)는 산스크리트어로 풀면 '지혜의 화신'이다. 

무르슈'는 물(Water)이며 물도 생명을 상징한다. 반대로 몰(Mol)하면 죽음을 뜻한다.

 

모(母) 또한 산스크리트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무(巫)는 산스크리트어로 메다(Medha)이며 정신력, 지혜를 이르는 말이다.

오늘날 의학을 뜻하는 Medical의 어원이 메다(Medha)이다.(朝鮮 古語 실담어 註釋 辭典 참고)

 

앞장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무(巫)는 하늘(ㅡ)과 땅(ㅡ)을 사람이 연결(ㅣ)하고 사람 속에

또 사람이 있는 형상으로 한몸에 두 사람이 있는 것으로 쓰여진 글자이다.

 

무(巫)가 되는 것은 神으로 부터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거친다는 의미이다.

그 속에 천부삼인(天符三印)이라는 한民族의 DNA가 내포되어 있다.

 

상통천문(上通天文) 중통인의(中通人義) 하찰지리(下察地理)를 얻기위해

뼈를 깍는 고통과 수련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무(巫) 였다. 이처럼 상고시대에는 신내림이란 것이

氣적인 현상을 동반하는 것이었으며 보통 인간은 근접할 수 없는 초능력의 세계를 말한다.   

 

 

백의민족白衣民族의 정의

 

 

율곤 이중재

 

출처 : '한民族 宇宙 哲學 思想' 13쪽, 1993년 8월 15일 판
 

일찍이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이라 일컬어져 왔다.

그럼에도 백의민족의 정의조차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실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백의민족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단순히 흰옷 입기를 좋아하고

평화를 사랑하며 정이 깊고 인자하고 소박하면서 지혜가 있는 민족이란 뜻일까.

상당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민족은 B.C 8937년 광활한 만주와 중국의 상해 북방 및

몽고, 그리고 소련땅인 콤소몰스크 근교까지 넓은 강역을 갖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296만 년 전에는 현재의 해발 370미터 이하의 야산들은 모두 바다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던 것이 천체연륜天體年輪 시기 이후

지구가 축미丑未 방향으로 북극을 약간 빗나간 30도 동쪽 편으로 기울기 시작하면서

수면이 떠올랐던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때 한반도·만주·중국·일본·필리핀·대만,

그리고 아시아 일대의 섬들과 땅이 생긴 것으로 추적할 수 있다.

 

지금 서울 중심지에 있는 남산도 천체연륜 이전에는 물 속에 있었던 것이다.

아시아 쪽이 솟아날 때(지축의 변동으로) 유럽 일부가 물 속에 잠기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

왜냐하면 현재 390미터 이상의 높은 산 바위에는 바다에서 서식하던 어패류가 많이 붙어 있음을

지금도 육안으로 똑똑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유럽 마야 문명도 물 속에 잠김).

 

이와 같이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는

북극이나 남극이 반대 방향으로 역회전한다고 했을 때도 36도 선에서 40도 선 사이에 있기 때문에

가장 안정된 위치를 잡고 있는 것이라고 보겠다. 만약 적도상에서 서해 쪽에서 육지가 솟아올라

와 큰 대륙이 생기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일본은 수몰될 것이다.

 

지금 일본땅은 차츰차츰 물 속으로 내려가고 있는 상태이다.

수년 만에 30센티미터씩 물 속으로 꺼진다는 보도도 나왔다. 만약 일년에 10센티미터씩

물 속으로 꺼진다고 한다면 2260년(일본이 패망하는 해)에는 274미터 이상이 물 속으로 잠긴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한반도는 36도 선상에서 자연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배달민족의 삶의 근거지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천산天山인 백산白山을 떠나

주위의 낮은 분지를 근거지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최초로 한민족은

부락 단위의 집단 주거지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 이유로는

첫째, 환인桓因이라 이름지어진 사람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둘째. 지금도 천산에는 흰색·검은색·자색이 뒤섞인 향나무가 많다는 사실이다.

 

셋째, 사람이 살았던 흔적 같은 것이 있으며 사람이 많이 다닌 흔적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넷째, 환인은 스스로 향나무 숲을 낀 곳에 집을 만들어 살았다는 이름이

지금도 비전秘傳과 구전口傳으로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음력으로 된 달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섯째, 한문을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

 

일곱째, 양력으로 된 달력에는

지금도 일日 · 월月 · 화火 · 수水 · 목木 · 금金 · 토土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덟째, 갑甲·을乙·병丙…… 하는 간지干支를 쓰고 있으며,

아홉째, 사성(四星, 즉 四柱)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열째, 한옥을 조상대대로 사용했으며 따라서 온돌도 한복도

의관도 모두 현재까지 한민족의 맥을 타고 면면히 이어 내려왔다는 사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B.C 8937년이란 연대가 정확하다는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B.C 8937년이란 연대가 정확하다는 것으로 보아서

역사의 연륜이 틀림없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다음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만세달력에는 상원갑자上元甲子 · 중원갑자中元甲子 · 하원갑자下元甲子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갑자기 일주기(즉 회갑이라고 함)는 60년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1984년이 갑자년이라고 한다면

갑자년甲子年 병인월丙寅月 병인일丙寅日 무자시戊子時가 한바퀴 돌아서 오는 시간이

3,600년 만에 오게 돼 있는 것이다. 상원갑자 3,600년, 중원갑자 3,600년.

하원갑자 3,600년을 합하면 1만800년이 된다.

 

따라서 상원갑자 60년, 중원갑자 60년이 지나고

다시 하원갑자가 2년이 지났으므로 1만922년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금년이 1986년이라면 환인桓因 때부터

문자를 창제한 연도는 정확히 B.C 8936년이 된다는 계산이 성립되는 것이다,

한인帝釋桓因은 그 당시 천天 · 인人 · 지地의 본체사상을 설정하고 한민족사상을 주창하였던 것이다.

 

그 근거로는 전술한 바와 같이 오랜 역사를 계속 이어오는

달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한문은 우주본체사상과 천天의 사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오행五行을 들 수 있다.

이 오행 속에 만유의 법칙사상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간지干支가 있다. 간지는 수학적인 개념에서부터 삼라만상의 물형物形을 표기할 수 있으며,

따라서 정신적인 이전의 무와 유를 연결하는 사상적인 깊은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다.

 

반면에 간지 속에는 형이상학·형이중학·형이하학의 오고 가는

윤회의 궤도까지 정확히 기술되어 있다. 인간생활과 윤회에서부터 만물의 성장과정과

백공白空 속으로 가는 것까지도 밝혀져 있다. 위대한 백의민족의 철학사상이 숨쉬며 잠들고 있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간지는 정치·경제·문화의 모든 분야에 걸쳐 우주공간과

인간과 자연의 법칙을 밝히고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우주본체의 사상을 백白이라고 보았다는 사실이다.

희다’는 사상적 근원을 학구적인 이론으로 주장한 뒤 무無 · 무극無極 · 태극太極 · 음양陰陽 ·

오행五行을 논리정연하게 이론화시킨 것은 위대한 한민족의 철학사상이라 아니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