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李陌)이 편찬한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에는

천부경 원문을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은 간략한 설명을 해 놓았다.

 

"천부경(天符經)은 천제(天帝) 환국(桓國)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글귀(書)이었는데, 환웅(桓雄) 대성존(大聖尊)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신 후,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녹도문(鹿圖文)으로 기록할 것을 명하였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역시 옛 비석(古碑)에서

신지(神誌) 전문(篆文)으로 새겨진 이것을 보고 다시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다." (1)

 

천부경이 처음에는 녹도문으로 쓰여졌으며, 그 후에는 비석에 신지 전문으로 기록되었다가,

신라시대(新羅時代)의 최고운(崔孤雲)에 이르러 그 당시 책(冊)의 일종인

첩(帖)으로 만들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최초의 문자가 녹도문이었으며,

그 다음이 신지 전문이고, 그 다음에야 종이첩이나 비단첩에 쓰여졌던

한자(漢字)가 사용되었으리라는 점이다.

 

그러니 현재 알려져있는 천부경 원문(原文)은 상고시대(上古時代)의 고문(古文)에

능통하였던 최고운이 옛 비석에 새겨진 전문(篆文)을 보고 나름대로 해석한 번역본(飜譯本)인 셈이다.

 

이렇게 최고운에 의하여 작성되었다는 천부경은

가로 세로 9자씩 나열되어 모두하여 81자에 불과한 아주 짤막한 내용이지만,

거꾸로 이에 대한 해석은 수백수천 가지에 달할 정도로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필자가 이미 밝혀놓은 견해로는 이 세계의 진리(眞理)를 알기쉽게 풀어놓은 글이지만,

결과적으로 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암기하고 덧셈과 그 이치(理致)를 가르키기 위한 일종의

수학책(數學冊)이라고 할 수 있다.(2)

 

그러니 녹도문이나 전문으로 기록되었다는

최초의 천부경은 1부터 10까지의 수(數)의 나열(羅列)이었거나

그 덧셈의 과정이 그려져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고있는 녹도문과 전문이 어떠한 형태이었는지 알려진 바가 없지만,

최소한 숫자의 나열이라는 점에서 그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녹도문(鹿圖文)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2000년 넘게 사용된 한자(漢字)의 역사에서

도(圖)와 서(書)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구분되어 적용되어 왔다.

 

도(圖)는 그 기원이 겹두리꼴(二重同心圓) 무늬와

하나의 두리꼴(圓) 무늬가 이어진 형상(形象)에서 비롯된 것이며,

 

서(書)는 고대의 산법(算法)으로 5를 표시할 때,

4개의 줄을 나란하게 긋고 그 중앙에 하나의 긴 줄을 교차하여

하나의 묶음인 5를 표현한 ' ' 모양에서 비롯되었다.

 

즉, 도(圖)는 동그랗게 그려진 모양에서 비롯하여 그림과 도안 등의 의미이며,

서(書)는 그어놓은 줄에서 비롯하여 획(劃)이나 필치(筆致)로 그려진 글귀(文)와 비슷한 의미이다.

 

그런데 천부경은 신지 혁덕이 고안하여 녹도문자로 기록하였다고 하지만,

자부선생(紫府先生)이 헌원(軒轅)에게 주었다는 삼황내문경(三皇內文經)은

신시(神市)의 녹서(鹿書)로 기록하였으며,

 

원동중(元董仲)이 지은 삼성기(三聖記)의 주석(註釋)에서도

고대 문자를 열거하면서 신시(神市)에 녹서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3)

 

이런 점에서 녹도(鹿圖)와 녹서(鹿書)는 비록 같은 것이라 하더라도

눈에 뜨일 정도로 구분이 가능하였으리라 여겨진다.

 

고대 중국에서 복희(伏羲) 시대에 팔괘(八卦)와 문자 기원을 말해주는

하도낙서(河圖洛書)는 황하(黃河)에서 용마(龍馬)가 나오면서 등에 나타난 그림(圖)과

하(夏)의 우왕(禹王)이 홍수를 다스렸을 때에 섬서성(陜西省) 낙수(洛水)에서 나타난

거북이(神龜) 등에 쓰여져있었다는 글씨(書)를 말하는데,

 

그만큼 그림(圖)과 글씨(書)는 처음부터 완전히 구분되는 모양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와 아주 흡사한 사례가 이암(李암)이 지은 단군세기(檀君世紀)에도 실려있다.

 

"천하(天河)에서 거북이(神龜)가 그림(圖)을 지고 나왔는데,

그 그림이 마치 윷판(柶板)과 비슷하였다." (檀君世紀/ 10世檀君 魯乙/ 丙午16년)

"용마(龍馬)가 천하(天河)에서 나왔는데, 등에는 별무늬(星文)가 있었다."

(檀君世紀/ 36世檀君 買勒/ 辛亥35년) (4)

 

중국에서 말하는 하도낙서는 용마의 등에서 보이는 그림과 거북이 등에 나타난 글을 말하는데,

단군세기에서는 용마의 등에 나타난 별무늬와 거북이 등에 나타난 윷무늬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비록 서로의 근거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같은 상황을 말하고 있어,

이 둘을 비교하여 그림(圖)은 윷판과 비슷한 모양이며, 글씨(書)는 별무늬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할 수 있다.

 

윷놀이는 한민족(韓民族)에게 수천년을 넘게 전해지는 가장 친숙한 놀이로서,

윷판(柶板)과 4개의 막대기인 윷, 그리고 8개의 말(馬)이 윷놀이 도구의 전부이다.

 

그런데 이 윷판이라는 것은 4등분되어 있는 원이나 정사각형에서

각각의 선분(線分)에 동그란 원점(圓點) 29개가 늘어서있는 모양을 말한다.

 

즉 윷무늬는 원점과 원점이 서로 선으로 이어져 하나의 도형을 이룬 것이며,

별무늬는 다섯 개의 선(線)이 교차하면서 별 모양을 이룬 것을 말하는데, 앞의 것은 동그란 원점(圓點)과

그 사이의 선(線)의 조합(組合)이며, 뒤의 것은 직선(直線)의 교차(交叉)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천부경을 처음으로 기록하였다는 녹도문(鹿圖文)은

윷무늬와 비슷한 모양으로 볼 수 있으며, 그 다음의 문자로 여겨지는 녹서(鹿書)는

원점보다 선이 늘어나면서 만들어진 점선(點線)이나 괘선(卦線, 三爻)의 형태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기록이 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記)에서는 신지 혁덕이 암사슴(牝鹿)이 뛰어다닌

발자취를 보고 녹도문을 발명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발자국은 다섯 개의 원점이 꽃봉오리처럼 둥그렇게 모여있는 모양이며,

그러한 발자국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지표면을 살짝 스치면서 그어진 가느다란 선으로 연결되어

원점과 선이 이어진 형태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더구나 지금처럼 점(點)으로 이루어진 하도(河圖) 이전의 고하도(古河圖)에서는 점이 아니라

이화문(梨花紋, 또는 菊花紋)으로 이루져 있었다.

 

현재 국립민속박물관(國立民俗博物館)에 소장되어 있는 옛 윷판을 보게 되면,

각각의 원점은 이화문이나 여러 문양이 그려져 있고, 그 원점에 놓여지는 말도 이화문으로 되어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윷판에 늘어선 각각의 원점은 원래 여러개의 원이 모여있는 이화문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태백일사(太白逸史) 마한세가(馬韓世家)에서는

윷놀이에 신지 혁덕이 기록한 천부경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으며,

더군다나 이 모양으로 환역(桓易)을 강연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니 천부경을 처음으로 기록한 녹도문은 바로 윷판과 매우 비슷한 모양이었으며,

또한 윷판에 나열된 원점은 여러 개의 원이 모여있는 이화문과 매우 비슷한 모양을 하였으리라 여겨진다.

 

녹도문이 윷판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한다면 최고운이 보고 베꼈다는

비석에 새겨진 전문(篆文)은 녹도문에서 발전된 형태로서,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까지 알려진 고대의 문자 가운데 원(ㅇ)과 직선(ㅡ)으로 조합된 문자는

한반도에서 실제로 사용되는 한글의 기본인 조선시대의 훈민정음(訓民正音)과 그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상고시대의 가림토정음(加臨土正音)이 있으며,

 

일본과 인도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자들이 발견된다.

일본에서는 한글을 신대문자(神代文字)라 하여 제의용(祭儀用)으로만 사용되었는데,

대마도(對馬島)의 복부(卜部) 아히루(阿比留) 가문(家門)에서 전해지는 아히루(阿比留, アヒル) 문자는

거의 한글이라고 할 수 있으며,

 

구주(九州)의 구가미(九鬼) 가문(家門)에서 전해지는 까스가(春日, カスガ) 문자는

선보다는 원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5) 그리고 인도 남부 구자라트 주(州)에 사용되는

드라비다어(Dravidians)가 한글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보여준다.

 

그런데 한반도 남부지방에서는 이렇게 원과 선으로 이루어진

알구멍(性穴)과 바위그림(岩刻畵)들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일본의 구주(九州)에서도 두세군데 발견되었다.


알구멍(性穴)과 바위그림(岩刻畵)

 

한반도 전역과 요동반도에 산재하는 수많은 고인돌에는

간혹 그 덮개돌이나 앞마구리돌, 또는 낮게 박혀있는 문지방돌에서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알구멍(性穴)들이 새겨져 있다.

 

대여섯기 이상 고인돌이 모여 있는 고인돌떼에서는

그 가운데 1 ~ 2기의 덮개돌에서만 이같은 알구멍들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 발견된다.

이런 점에서 알구멍은 일반적이지 않고 특정 무덤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로서 알구멍은 영속적(永續的)인 역량(力量)을 갖고있는 무덤 주인공에게

그 후세(後世)들이 도움과 구원을 얻으려는 기원(祈願)의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인돌의 앞에서 기원하면서 덮개돌을 쪼아대면서 하나 둘씩 만들어졌던

알구멍들이 한반도 중남부지방, 즉 옥천(沃川), 칠곡(漆谷), 경주(慶州) 등지에서는 여러 개가 새겨지면서

그 사이를 선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남해안 가까이의 함안(咸安)에 이르러서는

알구멍 주변에 마치 수면(水面)의 파문(波文)처럼 고리꼴 무늬가 여러겹 덧붙여지게 되어,

알구멍의 원과 그 둘레의 선이 복합된 바위그림(岩刻畵)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고령(高靈)을 비롯한 경상도 전역과 전라도 일부지방에서는

알구멍이 점차 줄어들고 그 대신 검무늬(劍紋)나 검자루무늬(劍把紋)가 도드라지게 표현되며,(6)

 

서울 북한산(北韓山)과 안동(安東) 등의 고지대(高地帶) 바위에서는

윷무늬(柶板紋)와 말굽무늬(馬蹄紋)가 발견된다. (7)

 

이 가운데 가장 다양한 무늬가 어우러져 있는 암각화 유적은

경주(慶州) 석장동(錫丈洞)에 위치한 금장대(金丈臺) 암각화이다.

여기에서는 알구멍(性穴)이 포함되어있는 검무늬(劍紋)와 검자루무늬(劍把紋)를 중심으로

사람 발자국무늬(足印紋)와 함께 사슴 발자국이라 할 수 있는 이화문(梨花紋)도 보인다.

 

 

그러나 이화문으로 이어진 윷판 암각이거나,

또는 이화문으로 이어진 고하도(古河圖)와 비슷한 암각화,

또는 이러한 암각화와 암각문자를 이어주는 어떠한 증거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하게 경주의 이화문 암각화를 녹도문(鹿圖文)의 일종으로 여기기에는 무리가 많다.

 

이런 점에서 태백일사(太白逸史) 신시본기(神市本紀)에서

말한 녹도문의 기원인 "암사슴(牝鹿)의 발자국(足印)"이라는 구절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암사슴은 빈록(牝鹿)으로 표현되었는데,

사실 암사슴이라는 표현은 원래 우록(鹿/匕+鹿)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더구나 우(鹿/匕)는 암컷 사슴(鹿)을 말하고

빈(牝)은 암컷 소(牛)를 말하는 상형(象形)이기 때문에, 굳이 암소에 사용되는

암컷 빈(牝)을 사용한 것을 보면, 빈록(牝鹿)은 암사슴이라는 짐승을 표현한 단어가 아니라

사슴(鹿)을 신(神)으로 여기는 여인네들을 비유하여 말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즉 신지 혁덕은 여인네들이 만든 어떤 흔적들을 보고 기록할 수 있는 문자를 창안(創案)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그 흔적(痕迹)은 바로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는 알구멍(性穴)이 아닐까 여겨진다.


윷판(柶板)과 고하도(古河圖)

 

결국 이화문(梨花紋)으로 나열된 윷판은 간단한 윷판에 부가된 화려한 장식이었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 근본은 역시 간단한 알구멍들이 선으로 이어지거나, 둥그렇게 늘어서 4등분되는

고리꼴(環形)을 이룬 모습이다.

 

이러한 알구멍의 연결이 점차 각각의 알구멍에 의미가 부여되면서

복잡한 이화문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특히 고하도(古河圖)의 경우를 보면, 이화문이 5겹으로 늘어서있는 다섯겹두리꼴(五重同心圓)인데,

중앙에 5개의 이화문이 십자형으로 놓여있고, 그 둘레에 10개의 이화문이 선으로 연결되어 원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그 바깥에 북쪽(아랫쪽)에 1개, 남쪽(윗쪽)에 2개, 동쪽(왼쪽)에 3개, 서쪽(오른쪽)에 4개가

선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다시 그 바깥에는 북남동서 방향으로

각각 5개씩 더해진 6, 7, 8, 9개의 이화문들이 늘어서 외곽은 원각방형(圓角方形,

또는 抹角方形)을 이루고 있다. 이렇게 1부터 10까지의 수가 모여져 만들어진 하나의

겹두리꼴(同心圓) 도형이 원래의 하도(古河圖)이었던 것이다.

 

천부경(天符經)은 사실 1부터 10까지의 수가 모여

세상의 진리(眞理)를 숫자로 반영시킨 도형적(圖形的) 문장(文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옛 하도(古河圖) 또한 이와 똑같이 1부터 10까지의 수가 모여

세상의 온갖 변화(變化, 易)를 간략하게 표현한 그림이다.

 

이러한 세상의 진리(眞理)를 반영한 숫자를 재미있게 놀이로 승화(昇華)시킨 것이 바로 윷놀이이며,

이러한 윷놀이를 통하여 만물의 조화(調和)를 이루어가는 지혜(智慧)를 터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최고운이 보고 베꼈다는 옛 비석(古碑)의 신지(神誌) 전문(篆文)은

분명 윷판이나 옛 하도(古河圖)와 비슷한 모양이었으며, 그 전대(前代)의 녹도문(鹿圖文)도

이 범주(範疇)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2000년 10월 8일 邊光賢 씀.
(이 내용은 월간 '뉴휴먼 단(丹)'의 2000년 11월호에 기고되었습니다.)


(1) 임승국 번역·주해, 한단고기, 정신세계사, 1987, 232쪽

자료출처 : http://blog.daum.net/sansin120/2317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