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본기(神市本紀) 17장.

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상제님 신앙

 
옛적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한(漢)나라 왕 유철[劉徹(한나라무제)]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겸양하시어(봉선을하기위해) 출발하지 않으시니
이는 삼신의 환심을 끊으시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또 위소(韋昭)의 주(注)에, “삼신은 상제님이시다”라고 하였으니,
삼신설(三神說)이 일찍이 중국에 전파된 것이 분명하다.

 

동방 문명의 신교와 제나라의 팔신제

<진역유기(震域留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제(齊)나라 풍속에 팔신제(八神祭)가 있으니, 팔신은 천주(天主)·지주(地主)·
병주(兵主)·양주(陽主)·음주(陰主)·월주(月主)·일주(日主)·사시주(四時主)이다.

 

하늘은 음(陰)을 좋아하므로 반드시 높은 산 아래와
작은 산 위에서 제사 지내는데, 곧 태백산 기슭에서 천제를 지내던 유법(遺法)이다.

 

땅은 양(陽)을 귀하게 여기므로
반드시 못(澤) 가운데 모난 언덕에서 제사 지내는데,
또한 참성단에서 제천하던 풍속이 전해진 것이다.

 
천주는 삼신께 제사를 지내고, 병주는 치우천황께 제사를 지내니,
삼신은 천지만물의 조상이시고, 치우는 만고의 무신용강(武神勇强)의 비조(鼻祖)이시다.

 
큰 안개를 일으키시고, 물과 불을 마음대로 부리시고
또 만세 도술의 종장이 되어 풍우(風雨)를 부르고, 만신(萬神)을 부르셨다.
이 때문에 상고시대에 항상 천하군무(軍務)의 주장[천하무사지왕(天下武事之王)]이 되셨다.

 
해대(海岱) 지방에 엄(奄)·남(藍)·양(陽)·개(介)·우(嵎)·내(萊)·서(徐)·회(淮)
8족이 살았는데, 팔신설(八神說)이 이 팔족에서 생겨 당시에 성행하였다.

 

한고조 유방이 숭경한 치우천황

유방(劉邦)은 동이 계통은 아니지만 풍패(豐沛)에서 병사를 일으켰다.

풍패에는 치우천황께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기 때문에,
유방은 이 풍속에 따라 치우천황께 제사 지내고 북과 깃발에 희생(犧牲)의 피를 발랐다.

 
드디어 10월에 패상에 이르러
제후와 더불어 함양(제나라의수도)을 평정하고
한왕(漢王)이 되어 10월을 한 해의 첫머리로 삼았다.

 

이것은 비록 진(秦)나라의 역법을 답습한 것이지만,
동황태일(東皇太一)을 숭상하고 경배하며 치우천황께 지극한 공경심으로
제사 지낸것과 연관이 있다.


4년 후에 진나라 땅을 평정하고 축관[祝官(제사를 담당한 관원)]에게
치우사당을 장안(長安)에 짓게 하였으니, 치우천황을 돈독히 공경함이 이와 같았다.

 

혜성의주재자는치우천황

<진서(晋書)-천문지(天文志)>에, “치우기(蚩尤旗)는
혜성[慧星(살별)]과 비슷하나 뒤가 굽어 그 모습이 깃발과 같고,

이 별이 나타나는 지방에서는 전쟁이 일어난다”라고 하였으니,
치우천황이 천상에서 별의 주재자가 된 것이다.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에,
“치씨(蚩氏)는 치우의 후손이다”라고 하였고,
어떤 사람은 “창힐(蒼頡)과 고신(高辛)이 다 치우의 후손으로
대극성(大棘城)에서 태어나 산동, 회수 북쪽에 옮겨 살았다”라고 하였다.

 

이로 미루어 치우천황의 영웅적인 풍채와 굳세고 맹렬한 기상이
아주 멀리까지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燕)나라, 제(齊)나라의 방사들이 신비하고 이상하게 꾸며낸
이야기에 현혹된 이후로 오랜 세월이 흘렀다.

 

제(齊) 위왕(威王)과 연(燕) 소왕(昭王) 때부터 사신을 보내 삼신산을 찾았는데,
진한(秦漢) 때에 송무기(宋無忌), 정백교(正伯僑), 극상(克尙),

 

선문자고(羨門子高)와 최후(最後) 같은 무리는 연나라 사람이고,
문성(文成), 오리(伍利), 공손경(公孫卿), 신공(申公) 같은 무리는 다 제나라 사람이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역주본-태백일사-신시본기17장(p392~397)>
신시본기(神市本紀) 17장. 중국 한족에게 전파된 삼신상제님 신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