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본기(神市本紀) 4장.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

 

<삼성밀기(三聖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환국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강족(强族)]이 있어 이를 근심하던 차에
환웅께서 나라를 다스림에 삼신의 도로써 가르침을 베푸시고
[이삼신설교(以三神設敎)],

 

백성을 모아 맹세하게 하시니,
이때부터 은밀히 그 강족을 제거하려는 뜻을 두셨다.

 

환족과 웅족의 연합


당시 부족 호칭이 통일되지 않고 풍속은 점점 갈라졌다.
원주민은 호족(虎族)이고, 새로 이주해 온 백성은 웅족(熊族)이었다.

 

호족은 성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오직 약탈을 일삼았고,
웅족은 성품이 고집스럽고 우둔하여 서로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두 부족이 비록 한 고을에 살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소원해져서
서로 물건을 빌리거나 빌려주지 않았고 혼인도 하지 않았으며,
매사에 서로 승복하지 않아, 한 길을 같이 간 적이 없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자 웅족여왕[웅녀군(熊女君)]이,
환웅천황께서 신령한 덕이 있으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를 거느리고 찾아와

 

천황을 뵙고 “원컨대 살 터전을 내려 주시어 저희도 한결같이
삼신의 계율을 지키는 신시의 백성이 되게 해 주옵소서”라고 간청하였다.

 

웅천황께서 이를 허락하시고
살곳을 정해 주시어 자식을 낳고 살게 하셨다.

 

그러나 호족은 끝내 성질을 고치지 못하므로 사해(四海) 밖으로 추방하시니,
환족의 흥성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웅족(熊族):김성호는 한반도에 분포한 웅계(熊系) 지명을 60여 개 들었는데,
그와 같이 많은 지명이 보이는 것은 우리 민족이 검(곰)을 토템으로 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김성호,<비류백제와일본의국가기원>).

 
또 일본큐슈(九州)는 본래 곰이 서식하지 않는 아열대 지방인데도
그곳에 웅(熊)자 명칭이 많은것은 이 지역이 배달국 환웅시대의 웅녀족 또는
검족과 관계가 있음을 뚜렷이 방증하는 것이다.

 
큐슈지방에 보이는 ‘구마모토(熊本)·구마시로(熊城)·구마타(熊田)·
구마가와(熊川)’등등은 모두 ‘곰,검’과 비슷한 음인 ‘구마’로 일관되어 있다
(송호수,<한민족의 뿌리사상>,34쪽).

 

 

<환단고기-태백일사-신시본기4장(p356~357)>
신시본기(神市本紀) 4장. 이주족인 웅족의 정착과 환족으로의 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