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본기(神市本紀) 19장.

 

삼신을 수호하는 벼슬 삼랑

 

강화도 혈구 삼랑성의 뜻

<밀기(密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옛날에 장사를 지낼 때는 마을을 떠나지 않고 한 곳에 합장하여
지석(고인돌)으로 표시를 하였다.

 

이것이 후에 변하여 단(壇)이 되었는데, 지석단(支石壇)또는 제석단(祭夕壇)이라 불렀다.

 
산꼭대기에 땅을 파서 성단(城壇)을 만든 것을 천단(天壇)이라 하고,
산골짜기에 나무를 세워 토단(土壇)을 쌓은것을 신단(神壇)이라 한다.

 

지금의 승려들은 이를 혼동하여
제석(帝釋)을 단(壇)이라 칭하는데, 옛날 우리의 고유한 법이 아니다.

 
삼신을 수호하여 인명을 다스리는 자를 삼시랑(三侍郞)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을 시종(侍從)하는 벼슬이다.

 
삼랑(三郞)은 본래 배달(倍達)의 신하이며,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을 세습하였다.

 

<고려팔관잡기(高麗八觀雜記)>에도 역시
“삼랑은 배달국의 신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곡식 종자를 심어 가꾸고 재물을 다스리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업(業)이라 하고,

백성을 교화하고 형벌과 복을 주는 일을 맡은 자를 낭(郎)이라 하고,

백성을 모아 삼신께 공덕을 기원하는 일을 주관하는 자를 백(伯)이라 하니,

 

곧 옛날의 광명[발(發)] 신도(神道)이다.
모두 영(靈)을 받아 예언을 하였는데 신이한 이치가 자주 적중하였다.

 
지금 강화도 혈구에 삼랑성(三郞城)이 있는데,
성(城)은 삼랑(三郞)이 머물면서 호위하는 곳이요,
낭(郎)은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다.

 
불상이 처음 들어왔을 때 절을 지어 대웅(大雄)이라 불렀다.
이것은 승려들이 옛 풍속을 따라 그대로 부른 것이요, 본래 승가(僧家)의 말이 아니다.

 

또 “승도(僧徒)와 유생(儒生)이 모두 낭가(郎家)에 예속되었다”
라고 하였으니 이로써도 잘 알 수 있다.

 

신단(神壇):신단은 나무를 세워서 토단을 쌓은 것이라 했는데,
실제로 일본의 2대 신사중 하나인 이즈모(出雲) 신사는 나무를 세워서 단을 만들었다.

 

일본 내 10만 여개 신사의 원조인 이즈모 신사는 본래
한반도에서 전해진 천신[天神(삼신상제님)]을 모시던 사당이었다.
발(發):“밝다”는 뜻으로 음차한 것이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역주본-태백일사19장-신시본기(p400~403)>

 

신시본기(神市本紀) 20장.

고구려 때의 능묘 법제는 천하의 으뜸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하였다.
옛날에는 백성이 계곡에 흩어져 살아 일정한 곳에 장사 지내지 않았다.

 

위로 국왕부터 모두 동굴에 옮겨 천신과 짝하여 제사를 지내다가
후에는 더러 평지에 장사 지내고, 박달나무·버드나무·소나무·잣나무를 빙 둘러
심어 표시를 해 두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신시 시대에는 능묘(陵墓) 제도가 없었다.

 

그 후 중고(中古) 시대에 이르러 국가와 부족이 강성하여
사는 것이 풍족해지자 장사 지내는 것도 사치스럽게 되었다.

 

예로써 제사를 지내고, 묘지도 성대하게 단장하여 둥글거나 혹은 모나게 하고
사치스럽게 장식을 덧붙였다. 높고 크고 넓고 좁은것이 방정하여 일정한 법이 있었고,
내벽과 외분이 모두 잘 정비되고 꾸며졌다.

이후 고구려 시대에 이르러 능묘의 법제가 천하에 으뜸이 되었다.

 

<상생출판 환단고기 역주본-태백일사20장-신시본기(p402~403)>
신시본기(神市本紀) 19장~20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