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진실로 진정한 대한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찬자 운초 계연수는 실존인물이다.

 

계연수의 이름은 延壽요 자는 仁卿 호는 雲樵, 一始堂主人이라 하니 그 조상은 선천 사람이다.
고종태황제 원년[1864]  갑자 5월 28일에 태어나 선천에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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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 부모를 여의었는데 남과 다른 자질이 있어 백가서를 섭렵하였고
한번 읽으면 곧바로 외우니 늦게나마 크게 깨달은 바 있었다. 어려서부터 명산승지를 유람하며
선비와 승려를 방문하여 수련에 정진하였고 환단 이래의 고유 철학사상을 찾아 연구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태천 백관묵 진사를 찾아 뵙고 원동중의 <삼성기>와 홍행촌수의 <단군세기>를 얻었고,
삭주의 이형식 진사 댁을 방문하여 휴애거사 범장이 찬한 <천리경> 등 귀한 책을 구했다.

해학 이기 선생을 사사하고 태백진훈과 태백일사를 얻었고 정주의 소호 이탁 선생에게서
을파소의 참전계경을 얻으니 이 모두 고서보전인 것이다.

광무 2년(1898)에 태백진훈과 단군세기를 간행하고,
이듬해 광무 2년 (1899) 기해년에 참전계경,태백일사, 천부경요해를 간행하였다.

광무 13년(1909) 정월 초하루 해학 이기 선생이 단학회 강령 3장을 작성하고
3월 16일 마리산 참성단에서 단학회 창립을 고유하였다.
그러나 해학 선생이 그 해 7월 13일 경성에서 절식 끝에 자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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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를 맡은 해학 이기선생과 계연수 선생 초상화>

광무 15년(1911) 신해 5월에 관전현에서 환단고기를 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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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단고기는  대한독립단 부총재였던 청산리 대첩의 영웅 홍범도와
정의부 총사령관이었던 오동진의 합자 출금으로 간행되었고,
이 책의 간행에 대하여 홍범도와 오동진은 “우리 한민족 각자의 자아발견과 민족문화의 표출이며,
세계 인류의 공존이념을 위한 큰 축복의 성사”라고 평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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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 16년(1912) 임자 5월에 광개토대왕성릉비 징실고를 발표하였다.

광무 18년(1914) 갑인 3월 16일에
단해 이관집 석천 최시흥 송암 오동진 백하 전효운 벽산 이덕수 일봉 박응백 창춘당 양승우 직송헌
이용담 국은 이태집 녹수 서청산 백주 백형규 등 12 선인과 더불어 삭주 천마산에서 제천 혈맹을 거행하였다.

이듬해 1915년 백암 홍범도 석주 이상룡의 동의를 얻고
같은 해 10월 박응룡 정창화 박용담 김병주 이용준 이봉우 허기호 신찬정 이양보 주상옥
이동규 김석규 손인영 이진무 등 14핵랑이 추가로 서명하였다.

10월에 만주 관전현 홍석랍자구 홍석령 산하에

단학회를 이설하고 배달의숙을 열었으며 단학회보를 발간하였다.

광무 23년(1919) 기미년 3월 대호산 만세에 참가,
같은 해 3월 16일 이상룡 홍범도 여운형 신채호 이탁 최시흥 오동진 이관집 이덕수
전효운 편강열 양승우 최석순 허기호 박용담 이봉우 이태집 주상옥 나창헌 박응백 최지풍
이용담 김병주 서청산 백형규 김활석 이동규 등 24인 서명으로 [朝鮮人 十寶章]을 발표하고
4월에 이상룡 막하에서 군정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대한민국 2년 경신(1920) 8월 15일 韓奸(왜 가총독부 밀정) 감영극에게 살해 당하여
시신은 압록강에 던져지고 배달의숙과 서적 3000여권 원고들은 불에 타 없어졌다.

계연수는 허구의 인물이다?

 

계연수 선생은 이기 선생이 일제에 항거하여
단식 끝에 운명하시자 이기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2대 단학회 회장이 되었다.
그리고 곧바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에게 자금지원을 받아
1911년에 환단고기 30권을 발행하였다.

또한 만주에서 독립운동단체인 천마대, 서로군정서, 의민사, 벽파대,
기원독립단 등의 무장독립운동에 대하여 정신적, 사상적 계몽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대부분 일제의 눈을 피해 가명을 사용하였으므로 구체적 업적을 드러나지 않고 있다.
만주와 한반도를 오가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1920년 일본 밀정에 걸려 사지가 토막나서 압록강에 버려졌다.
시체를 건져올리는 현장에서 당시 12살의 어린 소년 이유립 선생이 눈물을 흘리며 이 광경을 목도했다고 한다.

 

수안계씨 종친회에 확인한 바에 의하면, 북한 출신 종친들 중 족보에서 누락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하느라 후손이 끊긴데다가
증언자도 없어 족보에 오르지 못한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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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연수를 유령 인물로 매도하는 것은 역사적 상황을 두루 고려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 하나를 내세워 진실을 왜곡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계연수가 실존인물임을 증명하는 문헌으로는, 『해동인물지』(1969)와
계연수 선생이 천부경을 입수하여 세상에 널리 알린 경위가
기록되어있는『정신철학통편』(1920) 등이 있다.

생사를 건 무력 독립투쟁을 벌였던 인물을 증언자가 있음에도
기록에 제대로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이처럼 부정하는 것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력의 야비한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출처: 환단고기(http://www.hwandangogi.or.kr)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 무궁화를 '태양의 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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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의 상고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는 단기고사에는
무궁화를 근수라 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환화''천지화'로 표현하고 있다.

 

환단고기』-「단군세기(檀君世紀)」,

13세 단군 흘달(檀君 屹達)의 치적, 하(夏)나라를 정벌하고, 소도(蘇塗)를 세워 인재(천지화랑)를 양성하였다.

- 신지, 검측, 읍차는 삼한 군장의 칭호다. 천지화는 무궁화의 또 다른 이름이다.

 

무궁화는 어떤 신성이 깃들어 있을까.

 

한국 상고사를 기술한

<환단고기(桓檀古記)>에는 ‘환화(桓花)’ ‘천지화(天指花, 하늘을 가리키는 꽃)’로 표현됐으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신단 둘레에 많이 심어져 신성시되기도 했다고 전한다.

실제로 무궁화는 다른 꽃에 비해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무궁화는 씨로도 번식되고 포기를 나누거나 꺾꽂이로도 번식이 가능하다.

또한 고온다습한 곳도 불사하고 어디서나 자생력이 뛰어나며 소금기가 있는 땅이나 공해지역조차

극복하는 굉장한 생명력을 자랑한다.

아울러 100일이라는 긴 기간 동안 꽃이 피기에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이란 뜻을 지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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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화(天指花) - 무궁화(無窮花)

천지화(天指花)란 하늘을 향해 피는 꽃이라는 뜻으로 군자의 상징이며,

100일간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핀다고 하여 무궁화(無窮花)다.

 

무궁화는 해가 뜨면 꽃잎을 열고, 해가 지면 꽃잎을 접는다.

그래서 무궁화를 '태양의 꽃'이라 한다. 

 

중국의 한나라 시대 '장화(張華)'가 쓴 '박물지(博物志)'에

군자국(君子國)에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꽃이 있는데,

이 꽃의 향기가 천리를 덮고 있다고 하였으며,

 

군자국 사람들은 이 꽃의 향기로 만병(萬病)을 고친다고 하였다.

그래서 그 이름을 훈화초(草)라 하였다.

 

훈화초(草)란 '향기 훈(薰), 빛날 화(華),

새로운 초(草), 무성할 초(草)'로 '향기를 내뿜어 새롭게 하다, 또는 무성하게하다.' 라는 뜻이다. 

 

이와 같은 기록은  산해경(山海經)에는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라는 기록이 있고,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라는

기록이 있으며, 예문유취(藝文類聚) 권(卷)89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백성들이 그것을 먹는다."라는 기록들이 있다.

 

겨레의 꽃 무궁화는 샤론의 장미

 
나라마다 국가를 상징하는 꽃이 있다. 그것을 국화(國花)라 한다.
따라서 나라꽃은 그 나라, 그 민족의 표상이다.

저마다 그 꽃을 기리고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다.
코리아의 나라꽃은 무궁화이다. 무궁(無窮)은 공간 또는 시간의 다함이 없다는 뜻이다.


무궁화는 추위에 강하며

꽃이 피는 기간이 길어 관상용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는 낙엽 활엽 관목이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분홍, 다홍, 보라, 자주, 순백 등 여러 가지 빛깔로 종(鐘) 모양의 꽃이 아름답게 핀다.
무궁화는 대개 100여 일 동안 피고 진다고 한다.

여느 꽃에 비하여 계절에 구애됨이 없이 계속 피는 꽃이다.

 

배달의 꽃 무궁화는 단군조선 때부터 나라꽃으로 인연을 맺어 환화(桓花),
훈화(薰花), 천지화(天地花), 천지화(天指花), 근수(槿樹) 등의 명칭으로 다양하게 불리었던
동이(東荑)의 꽃이다.


무궁화는 상제님께 제사 지내는 신단 둘레에 많이 심어져 신성시되었고,
15대 단군은 ‘훈화’를 뜰 아래 심어 정자를 만들었으며,
국자랑(國子郞)들은 ‘천지화’를 머리에 꽂고 다녔다고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지나 고대 지리서인 『산해경』<훈화초薰花草>에 기록되어 있고
우리 문헌인 『조대기』, 『단군세기』, 『규원사화』 등에도 기록되어 있다. 
제5대 단군은 구을(丘Z)이며, 16년간 재위하였는데《단기고사》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十六年帝行幸古歷山築祭天壇多樹周邊以槿樹
십육년제행행고력산축제천단다수주변이근수

 

16년에 임금께서 고력산(古歷山)에 행차하여
제천단(祭天壇)을 쌓고 주변에 근수(槿樹)를 많이 심었다.

또, 《단군세기(檀君世紀)》에 5대 단군 구을(丘Z) 에 대한 사실(史實)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丁丑十六年親幸藏唐京封築三神壇多植桓花
정축십육년친행장당경봉축삼신단다식환화

 

16년 정축(丁丑)에 친히 장당경(藏唐京)에 행차하여
삼신단(三神壇)을 쌓고 환화(桓化)를 많이 심었다.

 

제5대 단군 16년은 기원전 2,090년 즉, 지금으로부터 4,082년 전의 일이 된다.
또한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때에는 시인이나 묵객(墨客)들이 무궁화를 예찬한 시가 많이 보이며,
환화를 노래한 애환가(愛桓歌)가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신라에서 젊은 엘리트의 머리에 이 꽃은 꽂아 주어 ‘화랑’(花郞)이라 했으며,
설총은 이를 화왕(花王), 즉 ‘꽃중의 왕’이라고 했다.
조선 왕조 시대에는 장원급제한 인재에게 내리던 어사화(御賜花)가 무궁화였다.

 

일제의 무궁화 말살책동

예로부터 우리 겨레가 사는 땅은 어디나 무궁화가 만발했다.
그러나 지금은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애국가의 가사가 무색할 정도로
그렇게 만발한 무궁화의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가 뿌리째 뽑히는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1910년 나라가 망하자 일제는 무궁화 말살 정책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무궁화를 눈병 나는 꽃이라 비방하여 학생들이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게 하였다.

일제는 무궁화를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위험한 꽃으로 보고 모든 무궁화 나무를 뽑고 베기 시작하였다.
『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사전』에 보면 무궁화를 다음과 같이 위험시 하고 있다.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인 꽃이며 2천 년 전의 문헌에 나오는 꽃이다.
고려시대에는 온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는데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國花)가 되었다가 조선시대에 이화(梨花)가 왕실화가 되면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중으로부터 소원해졌다.

 

20세기의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면서부터 조선의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통일과 국민정신의 진작을 위하여 글과 말로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나
무궁화만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3개월 내지 4개월이나 연속으로 필뿐 아니라
그 고결함은 위인의 풍모라 찬미하고 있다.

 

따라서‘무궁화 강산’운운하는 것은 조선의 별칭이며 불온한 뜻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근화, 무궁화, 근역, 등은 모두 불온한 문구로 쓰이니 조심하여야 한다.”

 

그들은 무궁화를 이처럼 위험시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궁화를 경멸하여 함부로 심지 못하게 하고 캐내어 없애라고까지 명령하였으며,
그 자리에 그들의 국화인 벚꽃나무를 심게 하였다.

 
그러나 일제하에서 우리는 무궁화를 더욱 사랑했다.
동아일보가 창간호 제호 도안을 무궁화로 장식하였는가 하면,
중앙학교의 모표도 ‘중’(中)자를 무궁화 화환으로 둘렀고,


오산학교와 대구사범학교에서는 무궁화동산을 만들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남궁억의 무궁화 사건이다.


1918년 남궁억(1863~1939, 사진)은 그의 고향인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모곡학교를 세우고 몰래 무궁화 묘목을 가꾸었다.

 

그는 해마다 수십만 그루의 무궁화 묘목을 길러서 지방의 여러 학교와 교회에 팔거나 기증했다.
1931년에는 ‘무궁화동산’이란 노래를 지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하였다.

 

우리의 웃음은 따뜻한 봄바람
춘풍을 만난 무궁화동산

 

우리의 눈물이 떨어질 때마다
또 다시 소생하는 이천만

 

빛나리라 삼천리 무궁화동산
잘 살아라 이천만의 고려족

 

일제는 1933년 남궁억을 체포하여 심한 고문을 가해 옥사케 만들었고,
그가 애지중지하던 7만 그루의 무궁화 묘목을 불에 태워 버렸다.
(박성수, PP.327~329).

 

이처럼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기원과 더불어
우리의 국토와 민족의 마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 온 꽃이기에
일제가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그토록 극악한 탄압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까지 무궁화는 꿋꿋이 살아남아 이 땅, 이 민족과 함께 하고 있다.

 

무궁화는 ‘샤론의 꽃’

샤론의 장미(the Rose of Sharon)”는

놀라운 것이 ‘샤론의 꽃’이란 바로 우리나라 꽃 ‘무궁화’라는 사실이다.

 
세계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무궁화의 국제적 이름은
한영사전에도 나와 있듯이 “the Rose of Sharon”, 즉 “샤론의 꽃(장미)”이다.
그것이 왜 놀라운 것인가?

 

샤론’은 갈멜산 복부에서부터 지중해 연안을 따라 욥바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평원으로 철따라 피는 꽃과 목초지로 유명하다(대상 27:29).
그 샤론의 꽃에 비유한 이 노래들은 구약성경 아가 2장 1절 말씀을 배경으로 작시된 것이다.

 

“나는 샤론의 장미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아가 2:1 ? KJV).
“I am the rose of Sharon, and the Lily of the valleys”(Song of Solomon 2:1 ? KJV).

 
더욱이 무궁화는 그 꽃잎이 대광명을 상징하는 순결한 백색이고
화심은 (남방3離火와 午火)를 상징하는 색으로 피처럼 붉으며

꽃대는 천자국과 황제를 상징하는 노란 황금빛이다.

그러므로 샤론의 꽃’(무궁화)인 국가는 오직 동방의 코리아뿐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천부경에서 전하는 바와 같이 삼신(三神)즉 일상제(一上帝)섭리 안에서 정해진 것이다.
한국인은 환족의 직계후손으로서 이 땅위에 존재하는 또하나의 광명민족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무궁화 모양으로 장식된
고대 시리아 제국의 건축물과 성벽에서 우리는 무궁화를 찾아 볼 수가 있다.
 
배달겨레의 꽃 무궁화

빛의 근원이신 상제님을 공경하던

우리 한민족의 선조인 환국의 환족은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광명의 본원지인 동쪽의 해 뜨는 땅을 찾아 가는 것은 끝없이 광명(상제님)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해가 떠오르는 곳인 밝은 땅을 찾아서
아침에 뜨는 태양을 따라 쉼 없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그렇게 수만리를 이동한 끝에 마침내 아시아 대륙의 동쪽 땅 끝에 도달하여,
아침에 해 떠오르는 밝은 땅에 정착해 살게 된 민족이 환국의 환족이며 우리 한국인인 것이다.  

  

밝고 환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백성이 밝고 환한 흰옷을 입고 빛의 근원이신 상제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며
삶을 영위하는 거룩한 제사장 나라를 건국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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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데로 가자

정미년에 하루는 상제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앉아 계시다가 “빛이 나는 데로 가자. 빛나는 데로 가자!” 하시거늘

호연이 “빛나는 데가 어디예요?” 하고 여쭈니........................ ,

(증산도 道典 2:108)

 

동방 한민족의 신교와 삼신상제님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성신(造化聖神)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천상의 호천금궐(昊天金闕)에서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왔나니
상제는 온 우주의 주재자요 통치자 하느님이니라.

 

동방의 조선은 본래 신교(神敎)의 종주국으로
상제님과 천지신명을 함께 받들어 온, 인류 제사 문화의 본고향이니라.

 

한민족은 환국-배달-조선의 삼성조시대가 지난 후
열국시대 이래 중국 한족(漢族)과 일본에 의한 상고(上古) 역사의 왜곡으로
민족사의 뿌리가 단절되어 그 상처가 심히 깊더니

 

상제님께서 원시반본(原始返本)의 도(道)로써
인류 역사의 뿌리를 바로잡고 병든 천지를 개벽(開闢)하여
인간과 신명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인간으로 강세하시니라.

 

상제님께서 세상에 내보내신
석가, 예수, 공자를 비롯한 성자와 철인들이 상제님의 강세를
미리 알렸으니 이러하니라.

(증산도 道典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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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가 ‘배달의 꽃’이 된 까닭은 그 꽃이 빛을 사랑하는
우리 배달겨레의 얼을 상징하듯 유난히 밝고 환한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무궁화는 태양과 함께 피고 태양과 함께 진다.

 

무궁화는 그 꽃봉오리가 날마다 이른 새벽 태양과 함께 새로 피고,
오후가 되면 오므라들기 시작하여, 해질 무렵 태양과 함께 완전히 진다.


그리하여 무궁화를 일명 ‘조개모락화’(朝開暮落花)라고 말한다.

즉 해 뜨는 아침에 피고 해 지는 저녁에 지는 꽃이라는 것이다. 
 

환.단.한의 광명 사상이 실현된 상고시대 인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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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는 환桓,단檀,한韓의 원뜻을 밝혀 줄 뿐만 아니라.
환.단.한의 광명 사상이 실현된 상고시대 인류와 동북아 역사의 전체과정을 기록하였다.

 

환은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하늘의 광명, 즉 천광명(天光明)을 뜻한다.
"달빛이 환하다" , "대낮같이 환하다" 라고 할 때의 '환'이 바로 이 '천광명'의 환이다.

 

그리고 단은 박달나무 단 자인데, 박달은 "밝은 땅" 이라는 뜻이다.
즉 단은 땅의 광명, 지광명(地光明)을 뜻한다.

 

그래서 환단은 "천지의 광명이요,
환단고기는 천지의 광명을 체험하며 살았던
태곳적 인류의 삶을 기록한 옛역사의 이야기'라는 뜻이다.

 

또한 한은 인간의 광명, 인광명(人光明)이다.
그런데 이 한 속에는 환단, 즉 천지의 광명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인간은 천지가 낳은 자식이므로 천지부모의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 있다.

한은 그 뜻이 수십가지가 넘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천지 광명의 주인으로서의 인간'을 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지의 광명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이르기를 "대시大始"에 상하와 동서남북 사방에는 일찍
암흑이 보이지않고, 언제나 오직 한 광명이 있었다"라고 하였다.


이 말 속에는 오직 한 광명(一光明)이 그 해답이다.

천지가 열리기 전, 그때는 오직 광명만 존재하였다. 이 우주는 원래부터 광명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이다.

환단고기는 '어둠에서 광명이 열렸다'고 한 구약전서의 창제 이야기와 전혀 다르게 말한다.

 

우주는 영원토록 오직 한 광명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우주에서 나온 하늘과 땅과 인간은 서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하늘의 광명은 환, 땅의 광명은 단, 인간의 광명은 한으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환.단.한의 광명 정신은 동방 한민족의 9천 년 역사에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래서 환국에서 근세조선과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나라 이름들이 모두 광명 사상을 담고 있다.

 

환국은 '환' 그 자체이고,
배달은 '밝다' 를 뜻하는 배와 땅을 뜻하는 '달'이 모여 동방의 밝은 땅'을 뜻한다.
배달을 달리 '단국'이라 부르는 것도 환단 사상에서 유래한 것이다.

 

후대의 한양조선과 구분하기 위해 옛  '고古' 자를 덧붙인 고조선도 광명 사상을 담고 있다.

조선은 '아침 햇살을 먼저 받는 곳(朝光先受地)' 을 뜻한다.


고조선의 국통을 이른 북부여의 부여도 '불'이라는 말로 광명을 나타낸다.
부여 중에서도 구국 영웅 고두막한이 세운 동명부여는 '동녘 동東'과 '밝을 명明' 자에
광명 사상이 들어있다.

 

또한 고구려 유민이 세운 대진국도 '동방의 광명의 큰나라' 라는 뜻이다.
대진이란 말보다 더 잘 알려진 발해도 '밝은 바다'라는 말로서 광명 사상을 포함한다.

 

고종 황제가 선포한 대한제국의 '대한'이란 말에도 역시 '한'의 광명 정신이 담겨 있으며,
이 대한제국에서 오늘의 국호 대한민국이 나왔다.

 

환.단.한의 광명 정신은 국호뿐 아니라 각 시대 창업자의 호칭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환인,환웅,단군, 이 세 호칭은 모두 '광명의 지도자'를 뜻한다.

 

환인은 천광명의 '환桓'과 책임자는
사람을 뜻하는 '인仁' 자로 이루어져,'광명의 아버지'를 뜻한다.


환인은 스스로 광명을 밝혀서 백성을 광명세계로 인도하는 지도자였다.
환웅과 단군 역시 그 호칭에 환과 단의 광명 사상을 담고 있다.

 

북부여를 세운 해모수의 성씨인 '해' 자 역시 우리말에서  '태양'을 뜻하므로,
해모수란 이름에도 광명 정신이 담겨 있다.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도 '밝다'는 뜻의 박朴 자로서 성을 삼았고,
이름에 '빛날 혁赫'자를 써서 광명 사상을 표출하였다.

 

그리고 한양조선의 이성계가 즉위 후 이름을 '새벽 단旦' 자로 바꾸었는데,
이 또한 광명을 뜻한다. 이성계는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를 회복하여 과거 한민족의

영광을 되 찾으려는 웅지에서, 국호를 조선으로 정하고 자신의 이름을 '새벽 단' 자로 바꾼것이다.

 

한마디로 환국 이래 동북아 한민족의 모든 역사 과정은 실로 환단(천지광명) 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를 기록한 (환단고기)는 천지광명의 역사서이다.

 

그리하여 덧붙여 말하면 우리민족은 그래서
광명을 뜻하는 백의(白衣) '흰옷'을 즐겨 입게되는 배경이며
또한 광명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환단고기 역주본 81 ㅡ 83p 중에서..


한국인도 상제님의 백성답게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선호한다.
그렇기에 동방 땅 끝 ‘밝의 땅’에 정착하여 ‘밝달겨레’, 곧 ‘배달겨레’가 된 것이다.


무궁화가 ‘배달의 꽃’이 된 이유는
그 꽃이 우리의 민족성을 여러 면에서 상징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 현저한 한 가지 요소는 무궁화가 우리 배달겨레처럼 밝고 환한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궁화는 ‘배달의 꽃’이다. 빛의 근원이신 상제님을 공경하는 광명민족의 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30년 이상이 된 무궁화 나무는 120여 그루에 불과하다.
일제(日帝)가 이 땅을 강점하여 다스리던 때에 무궁화를 말살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이다.

 

특히 1919년의 3?1 만세 운동 이후부터는
전국의 학교와 관공서에서 무궁화를 뿌리째 뽑아 버렸다.
나라꽃인 무궁화를 통해 민족정신이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무궁화는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겨레와 함께 숨 쉬어 왔던 민족의 혼이 담긴 나라꽃이다.
나라꽃 무궁화를 가꾸고 지키는 일은 우리 민족의 얼을 가꾸는 일인 것이다.

우리 나라 기록에는 <환단고기>에 무궁화를

환화(桓花), 천지화(天指花)로 표현하고 있고, <규원사화>에 훈화(薰花)로 표현하고 있다.


그외의 기록으로 신라의 혜공왕 때와 고려 예종 때에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香)의 나라라고 표현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 3권 2호에 게재된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아니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려 내고 있다."고 하였다.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한국>에는

"프랑스, 영국, 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졌으나 조선의 무궁화는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배꽃)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족 전통의 꽃이다."라고 쓰고 있다.

나라꽃 무궁화를 잊으셨습니까?
무궁화의 꽃말은 '섬세함, 일편단심'입니다.

 

어린 시절 어스름 저녁때까지 친구들과 숨박꼭질 놀이 할 때 말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그 무궁화가 이쁘게 피었습니다.

 

아 이 노래도 있지요!

 

무궁화꽃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피었네 피었네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무궁화 무궁화 우리나라꽃
삼천리 강산에 우리나라꽃

 

우리나라의 무궁화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동진(東晉)의 지리서(地理書) 《산해경(山海經)》에

군자의 나라에 무궁화가 많은데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지더라(君子之國有薰華草朝生暮死)라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의 고전인 《고금기(古今記)》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지방이 천리인데
무궁화가 많이 피었더라(君子之國地方千里 多木槿花)’라는 기록이 있고,

 

《예문유취(藝文類聚)》 권(卷)89에는 군자의 나라에는 무궁화가 많은데
백성들이 그것을 먹는다(君子之國多木菫之華人民食)' 라는 기록이 있다.

이상에서 보더라도 최소한 4세기 중엽의 한국에는 가는 곳마다 무궁화가 만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무궁화가 한국 자생(自生)인 것으로 믿을 만도 하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신라를'근화향'(槿花鄕: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뜻함)
이라 하였고, 《구당서》에도 같은 기록이 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에 중국에서 한국을 '근역(槿域)'이라 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려 예종(睿宗)은 고려를 ‘근화향(槿花鄕)’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기록들을 보면 무궁화는 근대 이후부터 민족의 꽃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환단고기(桓檀古記)》의 기록에서 처럼 단군임검께서 이 나라를 세울 때

겨레의 영원한 표상으로 점지하신 꽃이며 오랜 역사를 두고 우리 민족의 구심점의
위치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끊임없이 피워 온 꽃이다.

 

애국가 가사에 무궁화 삼천리'라는 구절이 아무런 저항없이
표현된 것도 무궁화가 오랜 세월을 통해 우리나라, 우리 민족과 인연을 맺어 온 때문이다.

 

다만 오얏나무를 중시한 이조 때에 와서 소외를 당하게 되었고,
일제강점기에 무궁화가 한국 민족의 상징적인 꽃이라는 것을 알고
전국적으로 뽑아 없애버림으로써 큰 수난을 겪었다.

 

꽃나무가 한 민족의 이름으로 이처럼 가혹한 시련을 겪은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애국지사 남궁억은 무궁화 묘목을 전국적으로 보급해오다가 형무소에 투옥되었고,
동아일보 제호의 무궁화 도안도 삭제되었다.

 

무궁화가 태극기와 함께 한민족에게 조국을 상징하고 결속력을 키우는
강력한 존재임을 간파한 일제는 무궁화를 우리 민족과 멀리 떼어놓기 위해
무궁화를 볼품없는 지저분한 꽃이라고 경멸하여 격하시키고 일본 꽃인 벚꽃을 심게 했다.

 

해방이 된지 50년이 넘었지만
매년 진해에서 일본 꽃인 벚꽃 대축제는 하면서 우리나라 꽃 무궁화 잔치는 하지 않는 것은

 

일제에 의해 날조된 환국, 배달국, 단군의 역사를 아직 모르고 있는것과 마찬가지로,
일제 때 빼앗긴 민족혼을 오늘날까지 제대로 찾지 못하고
남의 정신에서 살고 있다는 또 다른 증거다.

 

정부 규정상 무궁화가 나라꽃이 된 것은 1949년이지만,  실제로 무궁화가
우리 민족의 마음 속에 나라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꽃이 된 것은 이미 수천년 전의 일이다.

 

매, 난, 국, 죽 등 사군자가 있고 전국 각지에 진달래꽃도 피는데
왜 하필이면 무궁화가 우리 민족에게 선택된 것일까?

 

① 무궁화는 우리나라 토양에 맞는 꽃으로서 원산지가 우리나라이며
우리나라 전국에 긴 역사를 가지고 자생해 온 꽃이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와 사상과 이념이 다르지만 오늘날의 북한에서도 무궁화는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북한이 무궁화를 대한민국의 국화로 보기보다는 분단 이전의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라는 분단되었지만 무궁화는 갈라놓지 못했던 것을.

 

② 무궁화는 우리 한민족의 태극철학과 완전히 일치하는 꽃이기 때문이다.
무궁화는 천지인 삼재와 음양오행의 형상을 두루 갖춘 꽃이다.

 

 무궁화_00007.jpg

원줄기에서부터 끝까지 계속 한 마디에 세 갈래씩 갈라져 나가는 가지는
일신(一神)즉 삼신(三神)인 3.1철학의 정수인 천지인 삼재(三才)를,

가운데 꽃술은 황색으로 천자를 상징하고 천자지국(天子之國)인 동황태일(東皇太一)을 나타내며

다섯 갈래로 갈라진 잎사귀와 다섯 장인 꽃잎은 황극과 목화토금수의 오행(五行)을 뜻한다.

 

그리고 품종에 따라 여러 색깔이 있지만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지닌 무궁화로는 흰 색의 꽃잎에 화심 깊숙이
붉은 색이 자리잡은 (丹心)단심   무궁화가 손꼽히고 있다.

 

가운데는 붉고 가장자리가 흰 것은 빛의 음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늘과 신(神)을 뜻하는 색깔이다.

 

③ 무궁화는 빛의 광명민족인 한민족의 정신을 상징하듯 태양과 함께 피어나
태양과 함께 지며, 태양처럼 매일 새롭게 가장 오랫동안 피우는 꽃이기 때문이다.

 

무궁화꽃은 날마다 이른 새벽 태양의 광명과 함께 피어나 새로 피고,
오후가 되면서 오므라들기 시작하여 해질 무렵 태양 빛과 함께 반드시 그 날로 꽃이 떨어진다.

 

무궁화는 태양과 일맥상통하는, 태양과 운명을 같이하는 꽃이라 할 수 있다.
태양처럼 매일 새로운 꽃이 연속적으로 피어, 초여름에서 가을까지 백여일 동안 끊임없이
가장 오랫동안 꽃을 피우는 것이 무궁화다.

 

그야말로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무색할 만큼 -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노래가사 그대로 - 무궁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

 

하루에 보통 작은 나무는 20여 송이, 큰 나무는 50여 송이의 꽃이 피므로
100여일 동안이면 한 해에 2천~5천여 송이의 무궁한 꽃을 피운다.

 

또한 무궁화는 질 때에 꼭지가 송이채 빠지면서 떨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뒤가 어지럽지 않고 깨끗한 끝맺음을 한다.

 

또한 무궁화는 화려하거나 요염하지 않고 짙은 향기도 없는,
그러나 순결한 영혼을 연상케 하는 꽃이다.

 

이상으로 무궁화가 그 이름처럼 무궁한 태극혼의 정신을 이어받아
영원무궁토록 이 땅에 누리어 갈 하늘백성인 한민족의 꽃임을 알 수 있다.

 

나라꽃의 의의는 보기에만 좋고 향기만 좋다고 훌륭한 꽃이 아니라

꽃이 지니고 있는 진리의 뜻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 꽃의 가치를 가지게 된다.
무궁화는 단순한 꽃으로서가 아니라 그 이면에 간직된 깊은 뜻과 정신을 함께 보아야 한다.

 

무궁화는 그 속에 담겨져 내려온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정신,
그리고 도도히 흐르는 배달겨레의 맥락과 함께 보아야 한다.

 

서양에서는 무궁화를 이상향인 '샤론의 장미(Rose of Sharon)'라 하여
꽃 중의 꽃'이라 칭송하고 있는 무궁화는 봄에 잎이 나오면 곧이어 꽃이 피기 시작하여
무궁하게 피어나다가 가을에 잎이 지고 겨울에 쉬는 끈기와 지구력과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꽃이다.

 

활짝 피어났다가 빨리 시들어버리는 벚꽃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무궁화는 천지인의 이치에 부합하는 꽃이다.

 

무궁화는 무궁히 뻗어나갈 우리나라처럼 우리 곁에서 오늘도 내일도 그렇게
묵묵히 꽃을 피울 것이다.


<무궁화 이름의 유래>
 
무궁화의 명칭은 중국에서는
목근(木槿)·순영(舜英)·순화(舜華) ·훈화초(薰花草)·단(쓩)·친(漱)·일급(日及)·
조개모낙화(朝開暮落花) ·화노옥증(花奴玉蒸)·번리초(藩籬草) 등 여러 가지로 쓰였고,
무궁화로는 쓰여지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한자로 무궁화(無窮花·無宮花·舞宮花)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無窮花로만 쓰고 있다.

옛날부터 쓰여 오던 무궁화라는 한글명은 16세기부터 나타나는데
한자로는 목근화(木槿花)로 표기하고 있었다.

 

이로써 볼 때, 목근화 → 무긴화 → 무깅화 → 무궁화의 형태로 변했으며
여기에 뜻이 좋은 무궁화(無窮花)로 차음(借音)하여 표기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정상(金正祥)은 그의 논문 《무궁화보(無窮花譜)》에서
1923년에 전남 완도군 소안면(所安面) 비자리(榧子里)에서는 노인들이 무궁화를
‘무우게’로 부른다고 보고하였고 ‘무궁화’라는 꽃이름은 ‘무우게’에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런 사실을 보면 무궁화는 오래 전부터 한국 고유의 다른 이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무쿠게[牟久計] ·모쿠게아사가오[牟久計朝顔] ·하치스 ·기하치스 등으로 쓰고 있는데
‘무쿠게’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무궁화가 도입될 때에 전해진 이름이다.


‘무쿠게’라는 한자가 오직 음만을 표시하고 별로 뜻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더욱 그렇게 믿어진다.

속명 Hibiscus는 이집트의 히비스신(Hibis神)을 닮았다는 뜻으로, 곧 히비스신처럼 아름답다는 뜻이다.


또 속명이 Althaea라고도 쓰였는데 그리스어로 ‘치료한다’라는 뜻이다.

영명(英名)으로 rose of sharon이라고 한 것은
가나안 복지 중에서 제일 좋은 곳 샤론에 피는 장미라고 하여
무궁화의 아름다움을 크게 찬미한 것이다. 무궁화가 유럽에 도입된 것은 1596년이다.
 
예로부터 상당히 광범한 지역에 관상수로 재배되어 온 무궁화는
우리 나라에 자생하고 있었으며 우리 겨레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되면서
은연중 나라꽃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무궁화가 나라꽃임을 알고 있으나,
그 근거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여러 문헌에는 무궁화가 우리의 꽃임을 명시하고 있으나
국화로 제정된 정확한 근거에 관해서는 서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역사적으로 그 연윈이
고조선까지 거슬러 반만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우리 나라의 상고시대를 재조명하고 있는 단기고사에는
무궁화를 근수라 하고 있으며, 환단고기에는 '환화''천지화'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규원사화에 '훈화'로 표현하여 단군시대에 무궁화가 자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해 준다.

또한, 고대 중국의 지리서인 산해경에는
물론 금주 등에도 우리 한반도가 무궁화가 많은 나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혜공왕 때와 고려 예종 때에는 외국에 보내는 국서에서
우리 나라를 '근화향'이라 표현할 만큼 무궁화가 많이 피어 있었다.

 

이홍직의국어대사전에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 나라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 나라를 옛부터 '근역' 또는 '무궁화 삼천리'라 한 것으로 보아
선인들도 무궁화를 몹시 사랑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되어 있다.
 
1928년 발행된 별건곤 3권 2호에 게재된 조선산 화초와 동물편에는
"조선민족을 대표하는 무궁화는 꽃으로 개화기가 무궁하다 안이할 수 없을 만치 참으로 장구하며

그 꽃의 형상이 엄연하고 미려하고 정조있고 결백함은 실로 민족성을 그리여 내었다.


한국을 막론하고 각 민족을 대표하는 꽃이 있지만

우리를 대표하는 무궁화 같이 형으로나 질으로나 적합한 것은 볼 수 없다"고 실려 있다.

이는 우리 민족이 많이 심고 가꾸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내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인 신부 리처드 러트가 쓴 풍류한국에 보면
프랑스.영국.중국 등 세계의 모든 나라꽃이 그들의 황실이나 귀족의 상징이
전체 국민의 꽃으로 만들어졌으나 우리의 무궁화만은 유일하게도


황실의 이화가 아닌 백성의 꽃 무궁화가 국화로 정해졌고 무궁화는 평민의 꽃이며
민주전통의 부분이라 쓰고 있다.

 

우리 민족과 무궁화를 결부시켜서 이야기한 것은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고,
1896년 독립협회가 추진한 독립문 주춧돌을 놓는 의식 때 부른 애국가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내용이 담겨질 만큼
은연중 무궁화를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무궁화가

우리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며 겨레의 얼로

민족정신을 상징하는 꽃으로 확고히 부각되었고,

고통 속의 민족에게 꿈과 희망을 주며 역사와 더불어 자연스레 겨레의 꽃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나라꽃 무궁화를 잊으셨습니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시/등산객
 
 
나라꽃 무궁화야!
온 몸을 불사르듯 아직도 널 사랑하고
애국하는 이 많이 있음이야

불꽃으로 타오르다 만 검은 숯덩이가 되었어도
솟는 연민의 정만큼 겨레의 얼은 바로 섰었어
 
사방팔방 방방곡곡
꽃동산 이룬 수입산 장미 설 자리 앗긴 나라꽃 무궁화
지하에서 통곡하실 순국선열
 
산과 들엔 이름 없는 야생초도 훈훈히 불어오는
춘풍 머금고 저마다 요염한  자태 뽑내며
찬란하게 피었다가 지는데
 
나라꽃 무궁화 얼싸 안고
청산갈땐 동행할 수는 있을까
그리웁고 그리워하다 애처러히 사라질까 두렵구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가슴으로만 쓰다가 멈춰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아 타면 어느 뉘가 다시 받아 쓰려는지
 
후회도 미련도 없을 만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야속하고 미운 이념의 세월 널 사랑하는 맘은 변함이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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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기독교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되는것은 기독교 즉 유태인의 이스라엘민족의 역사는

우리민족의 역사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는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쉽게 말해서 역사적으로 논하면 게임 끝이라는 말이다.

시비걸지 말고................

 

지금의 역사는 서구 강대국의 독선적인 안목에 의한 변질,왜곡, 조작된 인류사이다.

 

시원적 유구한 뿌리역사를 가진민족이 정통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것을 모르고 자가당착적인 종교적 쇄뇌에 빠져 있는것이다.

 

이스라엘민족의 유대인 역사는 줄줄 외우면서도 정작 자신의 뿌리 역사는

외면하고  뭘 모르면서 남의 나라 역사는 시원 역사로 인정하는 얼빠진 정신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적 쇄뇌에 빠져 정작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외면하고, 우리 조상의 얼을 외면하고

이스라엘과 예수와 여호와를 찬양한다면 진실로 바보중의 바보이며 어떠한것도 논할 수 없는

변태적 정신구조라는 것이다. 이것을 명명백백 알아야 한다.

 

역사와 언어학적인 측면에서도 우리 민족이 기독교가 이 나라에 들어오기 이전에

최고 먼저 받들어 섬기고 하느님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지 이스라엘민족이 먼저 사용하지 아니하였다.

 

하느님의 용어는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하느님(이스라엘의 민족신 여호와)

이라는 용어로 변질된것이다.

 

"할렐루야"의 뜻이 여호와를 찬양한다는 뜻이다. 좀 알고 외쳐야 될것이 아닌가?

 

태초로 부터 우리민족이 사용했던 우리민족의 용어(하느님)를 차용, 도용해서 번역하여

역사를 왜곡, 조작하여 쇄뇌 시키고 있다는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구차한 다른 설명은  필요없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여호와와 예수를

자기 마음대로 하느님으로  이야기 하면 안되는것이다.

 

예수가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왔다고 했지

어디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라고 한 대목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주객이 전도되어 얼이빠져 미치지 말아야 되는것이다.

 

왜곡되고 변질되고 조작된 하느님이란 용어의 변질, 조작되는 변역과정 참고하세요^^

http://magic.ne.kr/zbxe/?mid=z11&document_srl=16980

 

 무궁화_00004.jpg

 

 

萬國活計南朝鮮이요 淸風明月金山寺라
만국활계남조선 청풍명월금산사


文明開化三千國이요 道術運通九萬里라
문명개화삼천국 도술운통구만리

 

만국을 살려낼 활방은 오직 남쪽 조선에 있고
맑은 바람 밝은 달의 금산사로다.


가을의 새 문명은 삼천 나라로 열려 꽃피고
도술 문명의 대운은 우주 저 끝까지 통하리라.

甑山道 道典 5편 306장 6절

 

  불사조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