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대통령 가옥 중앙액자(증산상제하감지위)

 

박정희%20가옥.jpg

 

유교의 나들이

유교가 성립된 배경에서 우리는 신교의 핵심인 삼신상제 문화의
면모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본래 공자는 자신의 학문에 대해 나는 전해전 것을 기술하였을 뿐
창작하지 않았다(述而不作)했다.

 

인문의 큰 틀은 하늘의 질서에 근본을 둔 것으로
공자는 가까운 시대의 문화를 통해 아주 오랜 옛 문화를 상고 할 수있으며
그 큰 줄거리를 알면 미래도 알 수 있으리라 여겼다.

 

그는 그 출발점을 당시까지 사료가 남아 있던 요순시대로 잡고
요순문화의 실체를 최대한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요임금과 순임금은 동방의 배달족 출신으로
신교문화를 계승한 주인공들이다.

 

때문에 그 문화의 골간에는 상제의식이 무르녹아 있었다.
훗날 공자는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차라리 뗏목을 타고 바다 건너 구이(九夷)에 살련다고 하며
동방의 군자문화 상제문화를 그리워하기도 했다.

 

공자가 그 시대까지의 민요와 역사 기록을 모아 엮은 유교의 주요 경전인
시경이나 서경등에서는 두렵고도 공경스러운 상제님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특히 서경은 '항상 덕을 잘 닦아 상제님의 천명을 보존해야한다고' 가르쳤다.

 

본래 원시유교에서 섬긴 '하늘' 은 인간과 만물에게 직접 천명을 내리는
인격적인 하늘(상제천)로서 만물을 주재하는 '주재천' '인격천' 이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상제님은 온 우주를 다스리시고 천명을 내리며
인간과 신들의 상벌을 주관하시면서 감정과 의지를 드러내시는 인격신 하나님 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신교의 영향으로 그 때까지 널리 퍼져 있던 보편 사상이었다.

그런데 공자는 이후 논어에서 하늘을 인격적 상제천보다는 자연천과 도덕천
그리고 운명천의 개념으로 더 많이 언급하고 사후(死後)와 귀신의 문제는 언급을 꺼렸다.

 

또한 한 무제 때에 이르러 유학자 동중서가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에 나오는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삼신(出於三神)'이라는
신교의 가르침을 '도지대원(道之大原)이 출어천(出於天)'이라고 바꾸어 버림으로써
유교의 천이 본래의 인격적인 상제천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더욱 멀어졌다.

 

그리하여 인격주신인 상제님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지기 시작하였으며
후대로 내려오면서 점차 삼신상제님에 대한 신앙은 사라져갔다.

 

제2의 공자로 불리는 주자는 당시 성행하는 도교와 불교에 대항하여
윈시유학의 부족한 이론체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유교의 주요 경전들을 정리
주석을 달고 우주의 시원이자 주재는 곧 태극이라는 등의 형이상학적인 논리를 세웠다.

 

그는 우주 이법의 주재자로서 상제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학자가 다 말할수 있는 경계가 아니며 언어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세계라 하며
상세한 언급을 회피했다.

 

주자의 이러한 태도는 유교의 천을 상제천(인격천)에서 의리천(義理天)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후 성리학은 사변적 이론에만 치우져
유교의 인간적이고 정감적인 상제의식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조선의 학자들에게 상제신앙의 문제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을 천거했던 서애 유성룡은 이순신 장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주었다.

 

깊은 밤 어둠 속에 상제님께서 내게 임하시네
방안 깊숙이 홀로 있는 곳에도 신명이 살피고 계신다....
삼가하고 두려워하여 상제님의 법칙대로 따를지어다.

 

또 박세당은 도덕적 의지가 있는 인격적인 하늘을 참되게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예송전쟁을 이끌었던 윤휴는 경전 속에서 고대의 상제신앙을 찾아내어
하늘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수양 방법을 제시했다.


이러한 윤휴의 사상은 훗날 다산사상의 초석이 되었다.

다산은 젊어서 한때 서적을 읽고 천주교에 심취하여 전도까지 한 일이 있었으나.
조상을 우상이라 여기고 신주를 불태우는 형태에 분노하여 신앙을 버렸다.

 

그 후 그는 유교의 본질이 상제신앙에 있음을 깨닫고 주요 경전 속에 드러난
상제사상을 정리하여 방대한 주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성리학의 관념적인 천 개념을 비판하면서 상제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말하였다.

다산 철학의 출발점이자 근간은 한마디로 동방의 인격 주신의 상제천
즉 상제님의 천명을 세우는 일이었다.

 

상제님이란 누구신가?
이는 天地神人 밖에서 그것들을 조화하고 宰制安養 하시는 분이다.
상제를 하늘이라 이르는 것은 마치 국왕을 '나라'라 하는 것과 같다.


저 푸르고 형체를 갖춘 하늘을 가리켜 상제라 하는것은 아니다.
일음일양으로 운동하는 위에 분명히 이를 주재하는 조화의 근본(상제님)이 있다.

 

껍질뿐인 태극과 리로써 천지만물의 주재근본을 삼는다면
천지간의 일들이 다스려질 수 있겠는가.

 

다산은 성리학자들이 하늘을 감정도 형체도없는 '도' '태극' '리' 등
극히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을 비판하고
그러한 태도는 날마다 온 인류의 곁에 계시며 굽어보시는 상제님에 대해
삼가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사라지게 한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다산의 견해는 조선후기 주자학 일변도의 학풍 속에서 이단시되었으며
이후 상제문화는 안타깝게도 또다시 어둠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유교의 상제(하나님) 기록1 [심경,시경]
유교의 상제(하나님) 기록1 [심경,시경]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떠올리면,
기독교의 하나님만을 떠올린다.
하지만 동양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분명한 하나님이 존재하니,
이는 바로 상제요,
기독교의 하나님과 다른 둘이 아니다.
이번에는 유교의 하나님을 3부에 걸쳐서 알아보고자 한다.

 『心經府註』

詩曰. 上帝臨女하시니 無貳爾心이라 하고 又曰 無貳無虞하라 上帝臨女라 하니라.
『시경』에 이르길, "상제께서 너를 굽어보시니 네 마음을 두 가지로 하지 말라.“하였고,
또 이르길 ”두 마음을 품지 말고 근심하지 말라. 상제께서 너를 굽어보신다.“하였다.

程子曰, 毋不敬이면 可以對越上帝니라


정자가 말씀하였다. “공경스럽지 아니함이 없으면 상제님을 마주할 수 있느니라.”

저 숲속을 보건대 굵은 나무섶과 잔 나무섶이 있도다.


백성들이 이제 막 위태롭거늘 하늘을 보건대 막막하여 밝지 못하도다.
하늘이 이미 정해짐이 있으면 사람을 이기지 못함이 없을 것이니

위대하신 상제께서 누구를 미워하시리오
(小雅, 正月)

 

주자주: 저 숲속을 보면 굵고 잔 나무섶을 분명히 볼 수 있거늘 백성들이 지금 막 위태로워
괴로움을 하늘에 호소하되, 하늘을 보니 도리어 막막하여 선악을 구별하는데 뜻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다만 하늘이 정해지지 않았을 때를 만나서일 뿐이다.
하늘이 이미 정해지면 하늘에게 이길 수 있는 자가 없다.

 

하늘이 어찌 미워하여 화를 내리시는 것이겠는가.
선한 자에게 복을 내리고 음탕한 자에게 화를 내림이 또한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申包胥가 ‘사람이 많으면 하늘을 이기고, 하늘이 정해지면 또한 사람을 이긴다’고 하였으니
여기서 나온 말인 듯 하다.

 

상제께서 그대에게 임하셨으니 그대의 마음에 의심을 두지 말지어다 (大雅, 大明)

위대하신 상제께서 아래 세상 굽어봄이 밝으사 사방을 관찰하시어 백성의 안정된 삶을 구하시니
하나라, 은나라 이 두 나라가 그 정사가 도리에 맞지 않기에 저 사방 나라에서 이에 찾고 이에 헤아리시니 상제께서 이루고자 하시면 그 국경의 규모를 증대시키시는지라. (大雅, 皇矣)


상제께서 문왕에게 이르시되 나는 明德을 드러내는 소리와 색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며
잘난 체하고 변혁함을 훌륭하게 여기지 않고 사사로운 지식을 쓰지 아니하여
상제의 법에 순응하는 자를 사랑한다 하시다.

상제께서 문왕에게 이르시되 너의 원수 나라에게 물으며
너의 형제국과 함께 하여 너의 무기와 너의 성을 공격하는 병기들로 숭나라의 성을 치라 하시다.

(大雅, 皇矣)


내 제기에 제물을 담으니 나무그릇에도 담고 질그릇에도 담도다.
그 향내음이 비로소 하늘로 올라가니 상제께서 편안히 흠향하시도다. (大雅, 生民)



개벽실제상황 256p~2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