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동역사’ 필사본 발견… 신채호 초기 역사학 ‘베일’ 벗다
        

김종복·박준형 박사 분석 논문
1907년 집필·7년 후 필사
“단군 32세에 고조선 건국”
흥미로운 주장 등 실려 눈길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
우리 민족의 고대사를 서술한 ‘大東歷史(대동역사)’ 필사본(사진)이 발견됐다.
단재가 역사 저술을 발표하기 시작하던 무렵 ‘독사신론(讀史新論)’ 등에 표현한 역사관을 기반으로 지은 책이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민족사학자인 단재의 초기 역사학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큰 자료이나 그동안 원본은 물론 필사본도 전하지 않았다.
책에는 고조선 건국 당시 단군의 나이가 32세였다는 등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던 인식이 다수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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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박물관 김종복 박사와
연세대 동은의학박물관 박준형 박사는 연세대학술정보원
국학자료실의 ‘한결 김윤경 문고’에서 찾아낸
‘대동역사’ 필사본을 분석한 논문 ‘대동역사(고대사)를 통해 본
신채호의 초기 역사학’을 17일 세계일보에 단독으로 공개했다.
논문은 6월 발행되는 ‘동방학지’에 게재될 예정이다.

‘대동역사’는 연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했던 김윤경 선생이
1973년 이 학교 도서관기증한 장서에 포함되어 있었다.
집필은 1907년쯤에 됐고, 필사는 1914년 무렵에 한 것으로 추정된다.
 
책은 표지·목차·본문·기원연표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본문 내용은 200자 원고지 약 230매 분량이다.

단재는 ‘시대구별’에서 민족의 역사를 단군의 고조선 건국 이후 삼국 분쟁·발해 멸망·병자호란·병인양요를 기점으로 당대까지
 
‘태고사-상세사(上世史)-중세사-근세사-최근세사’로 나눴다. 이전 역사서에서 흔히 보던 왕조별 시대구분과는 판이하다. 하지만 ‘대동역사’는 태고사와 상세사 일부만 담고 있어 애초 구상한 대로 완성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대동역사’는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은 초기 단재 역사학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특히 주목된다.
우선 실존인물로 현실화한 단군왕검이 32세에 고조선을 세웠다고 나이를 특정한 것이 흥미롭다.
 
다른 사서는 물론 단재의 어떤 책에서도 보이지 않던 독특한 인식이다. 또 단군이 신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오계(五戒)’를 세웠다고 했는데, 이는 원광이 신라 화랑에게 내린 ‘세속오계’와 같은 내용이다.

논문 공동저자인 김종복·박준형 박사는 “단재는 원광이 세속오계를 만든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신앙조건 중 하나였던 것을 언급했을 뿐이라고 본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동역사’는 또한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신화에서 묘사된 고구려 시조 주몽은 어머니 유화가 직접
낳은 것으로 서술해 단군처럼 좀 더 현실적인 인물로 기술했다.

‘대동역사’의 서술방식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허구적 성격이 강한 소설도 역사를 구현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사료로 인용했다는 점이다. ‘연의(演義)’라는 단어를 언급한 단재는
 
중국의 ‘삼국지연의’처럼 완전한 허구도 사실도 아닌 중간적 성격을 지닌 양식을 ‘대동역사’에 적용한 셈이다.
연의적 서술방식이 가장 분명한 부분이 ‘발해기’의 서두에 쓴 건국 전의 일이다.
단재는 여기서 고구려 멸망 이후 대조영이 벌인 당나라·신라와의 항쟁 등을 연대까지 적시하며 서술했다.

역사서술은 사실을 기초로 하는 것이고, 이런 내용이 사료적 근거가 없거나
연대 착오라는 것을 몰랐을 리 없음에도 단재가 연의적 서술방식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적 역사관을 올곧게 견지한 그가 북방을 호령하며
 중국 왕조에 맞섰던 ‘단군-부여-고구려-발해’로 이어지는 한국사 체계를 세우기 위해
도입한 방식이었다는 게 두 박사의 설명이다.

이들은 “고구려-발해의 계승관계는 사료 부족으로 명확하게 드러낼 수 없다는 점에서
사실(史實)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연의적 서술방식을 취했다”며 “하지만 이런 방식에 대해
후일 ‘조선상고사’에서 ‘행동의 대담’인 점을 자괴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역사서술이 전통적인 방식에서 근대적인 방식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나온 과도기적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또 “앞서 서언이 알려진 ‘대동제국사’, 조선상고사에서
언급한 ‘대동사천년사(大東四千年史)’가 바로 ‘대동역사’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강구열 기자, 사진 연세대학술정보원 국학자료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