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를 읽어야 하는가?(환단고기의 특징과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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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단고기>는 강단 사학계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서로 꼽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에서는 전혀 발견할 수 없는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참 모습을 보여주는

신교神敎문화의 정통 사서이다. <환단고기>의 독보적인 특징과 사료적 가치를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환단고기>는 인류의 창세문명과 한민족의 뿌리역사의 진실을 밝혀주는 유일한 사서이다.

 

<삼성기>의 첫 문장은

“오환건국吾桓建國이 최고最古라(우리 환족이 세운 나라가 가장 오래되었다)”이다.

이것은 동서양 4대 문명권의 발원처가 되는 인류 창세문명의 주체를 밝힌 만고의 명언이다.

그 주체란 바로 ‘오환건국’의 桓으로 한민족의 시원조상인 환족이다.

그러므로 오늘의 인류 문명은 환족이 세운 환국에서 비롯되었다.

 

<환단고기>는 한민족의 뿌리역사를 삼성조三聖祖 시대로 묶어 전한다.

삼성조 시대는 환국(BCE 7197~BCE 3897)에서 배달(BCE 3897~BCE 2333)로, 배달에서

고조선(BCE 2333~ BCE 238)으로 전개되었다. 이 7천년 삼성조 동안 역대 임금의 이름, 재위연수,

치적 등을 기록하여 한민족 시원역사의 진실을 밝혀주는 책이 바로 <환단고기>이다.

 

둘째, <환단고기>는 한민족사의 국통國統 맥을 최초로 명확하고 바르게 잡아준다.

 

한 나라의 계보와 그 정통 맥을 국통이라 한다.

지금 강단사학에서 말하는 국통은 근본적으로 잘못 된 것으로, 한민족사의 정통이 계승되어온 맥을

제대로 밝혀주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 덕분에 한민족은 이제 역사의 미망迷妄에서 벗어나

나라의 족보를 바로 세울 수 있게 되었다.

 

<환단고기>의 5대 사서 가운데 <북부여기>는 특히 삼성조로부터

고려, 조선에 이르는 우리 국통 맥을 바로 세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역사서이다.

국통 맥의 잃어버린 고리인 부여사(북부여, 동부여를 비롯한 여러 부여의 역사)의 전모를 밝혀,

고조선 이후의 단절된 역사를 이어주기 때문이다.

   

셋째, <환단고기>는 천지와 인간의 광명정신인 환桓, 단檀, 한韓의 원뜻을 밝혀줄 뿐만 아니라,

환, 단, 한 사상이 실현된 역사의 전체 과정을 기록하고 있다.

 

‘환’은 하늘의 광명, 즉 천광명天光明을 뜻한다.

이 우주를 가득 채우고 있는 하늘의 광명이 환이다. ‘단’은 박달나무 단 자이고,

박달은 밝은 땅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단은 땅의 광명, 지광명地光明을 뜻한다.

 

그래서 ‘환단’은 천지의 광명이다. 그리고 ‘한’은 인간의 광명, 인광명人光明이다.

그런데 이 한 속에는 환단, 즉 천지의 광명이 함께 내재되어 있다.

천지가 낳은 자식인 인간 속에 천지부모의 광명이 그대로 다 들어있다.

 

환, 단, 한의 광명 정신은 동방 한민족의 9천 년 역사에 그대로 실현되어 왔다.

그래서 환국에서 근세조선에 이르기까지 나라 이름과 창업자의 호칭들이 모두 광명 사상을 담고 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잠시 후 시대별 역사를 짚어볼 때 이야기하기로 한다.

 

강화도 마리산의 참성단

<고조선의 초대 단군 때 지어진 제천단으로, 이곳에서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

위는 네모 모양으로, 아래는 둥글게 돌을 쌓은 구조로 천원지방 사상의 표현이다.

배달시대의 제천단 유적으로 보이는 중국 요령성의 우하량 유적지 적석총도 천원지방 구조를 갖추고 있다>

 

넷째, <환단고기>에는 한민족 고유의 신앙이요

인류의 시원종교이며 원형문화인 신교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신교神敎의 문자적 뜻은 ‘신으로써 가르침을 베푼다’, 즉 ‘신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이다.

<단군세기>의 “이신시교以神施敎”, <규원사화>의 “이신설교以神說敎”가 뜻하는 바가 곧 신교다.

 

신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인간과 천지만물을 모두 다스리는 통치자 하나님인 삼신상제님②을 말한다.

그러므로 신교는 삼신상제님을 모시는 신앙이다.

환국, 배달, 고조선 시대 이래로 우리 조상들은 삼신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려

그 은혜와 덕을 칭송하고 상제님의 가르침 속에 살아왔다.

 

‘환인이 천신, 즉 삼신상제님께 지내는 제사를 주관하였다(主祭天神)’는 <태백일사>의 기록으로 볼 때,

동방 한민족의 천제 문화는 9천 년 전 환국 때부터 시작되었다.

약 6천 년 전에 배달을 개척한 환웅도 나라를 세운 후 천제를 행하였고,

단군왕검도 상제님께 천제를 올리고 아사달에 도읍하였다. 강화도 마리산에는

지금도 초대 단군이 개국 50주년(BCE 2283)을 맞아 쌓은 제천단이 남아 있다.

 

다섯째, <환단고기>는 하늘, 땅, 인간 즉

천지인 삼재三才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 사람이 이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밝혀 준다.

 

이 우주에는 조물주 삼신의 말할 수 없이 신령한 손길이 살아 있다.

그 손길로부터 천지인 삼재가 나왔다.

이것이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신과 천지인의 관계이다.

 

삼신이라는 하나의 근원에서 나온

천지인을 <환단고기>는 천일天一, 지일地一, 태일太一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천지의 손발이 되어 천지의 뜻과 소망을 이루기 때문에

늘땅보다 더 큰 존재, 태일이 된다. 이는 인간에 대한 극치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사람은 세상을 살면서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는가?’ 등의 의문을 가질 때가 있다.

 

그에 대한 답을 <환단고기>는 신교의 신관, 인간관, 우주관, 역사관에 바탕하여 종합적으로 정리해 주고 있다.

따라서 <환단고기>는 신과 기, 신과 천지인, 천지와 인간 사이의 관계, 인간의 탄생 원리 등의

심오한 진리 주제를 총망라하여 싣고 있는 철학 경전이요 문화 경전이라 하겠다.

 

 

여섯째, <환단고기>는 동방의 한민족이

천자天子 문화의 주인공으로 책력冊曆 문화의 시조이며 수數를 최초로 발명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천자는 ‘천제지자天帝之子’의 준말이다. 천제天帝는 상제의 다른 말이므로,

천자는 곧 상제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천자는 상제님을 대신하여 땅 위의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자요,

하늘에 계신 상제님께 천제天祭를 올리는 제사장이다.

한마디로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환국, 배달, 고조선 이래로 이 땅은 원래 제의 아들이 다스리는 천자국天子國③이었다.

<단군세기>에서 행촌 이암이 단군을 줄곧 ‘제帝’라고 부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자의 가장 근본적인 소명은 자연의 법칙을 드러내어

백성들이 춘하추동 제때에 맞춰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책력을 만드는 것이었다.

배달시대에 지어진 한민족 최초의 책력인 칠회제신력七回祭神曆([태백일사]<신시본기>) 또는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는 인류 최고最古의 달력이다.

 

그런데 역법에는 숫자가 사용된다.

1에서 10까지의 자연수는

9천 년 전 환국 시절의 우주론 경전인 <천부경天符經>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5,500여 년 전의 성황인 태호복희씨는 동서남북 사방과 춘하추동 사시의 시공간 법칙 속에서 수의 원리를

찾아내어 하도河圖를 그렸다. 인류의 책력과 수는 동북아에서 가장 먼저 발명된 것이다.

   

일곱째, <환단고기>는

삼성조 시대의 국가 경영 제도를 전하는 사서로서 만고불변의 나라 다스림의 지침을 담고 있다.

 

배달의 환웅천황은 신교의 삼신오제三神五帝 사상⑤을 통치원리로 삼아

삼백三伯(풍백, 우사, 운사) 제도와 오사五事(주곡, 주명, 주형, 주병, 주선악) 제도를 만들어 국가를 경영하였다.

⑥ 삼백은 조선시대의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근현대의 삼권분립(입법부, 행정부, 사법부) 제도와

완전히 정합된다. 풍백, 우사, 운사는 흔히 말하듯 바람신, 비신, 구름신이라는 신화 속 주인공이 아니라

오늘날 민주주의 문화의 원형인 것이다. 배달의 오사는 고조선과 북부여, 고구려, 백제 등에 그대로 계승되었다⑦

 

신교의 삼신 문화가 국가 경영 원리로 정착된

가장 결정적인 제도는 다름 아닌 고조선의 삼한관경제三韓管境制이다.

대단군이 중앙의 진한을 다스리면서, 두 명의 부단군을 두어 번한과 마한을 다스리게 한 이 제도는

고조선 국정 운영의 핵심 제도였다. 고조선은 삼한관경제의 성쇠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요컨대 신교의 삼신오제 사상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움직여온 사상적 기반이다.

신교가 밝히는 우주관의 핵심인 삼신오제에 대한 인식이 결여되면

한민족의 국통 맥은 전혀 바로 잡힐 수 없다. 상고시대 한민족의 국가 통치제도의 구성 원리를

기록한 <환단고기>는 오늘날 국가 경영을 연구하는 데에도 훌륭한 지침서가 될 것이다.

   

여덟째, <환단고기>는

배달과 고조선의 문자 창제를 기록하여 한국이 문자 문명의 발원처임을 밝혀준다.

 

문자는 문명 발상의 필수 요소로서, 한민족은 배달시대부터 이미 문자생활을 영위하였다.

초대 환웅천황(BCE 3897~3784)이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을 창제케 하신 것이다.

이것은 가장 오래된 문자로 평가받는 3000년경의 쐬기문자(수메르)와

상형문자(이집트)보다 더 오래된, 세계 최초의 문자이다. 

 

고조선 3세 가륵단군은 이 문자를 수정 보완하여 가림토加臨土 문자를 만들었다.

가림토의 모습은 조선 세종 때 창제된 한글과 매우 흡사하다.

가림토는 일본으로 전해져 아히루阿比留 문자를 낳았다. 일본 신사의 고대 비석에서 자주 발견되는

이 문자를 일본은 신대神代 문자라 하여 신성시한다.

 

가림토의 첫 세 글자(., l, ㅡ)는 삼신 사상에서 나온 천지인, 삼재三才를 나타낸다.

흔히 음양오행론으로 한글의 소리 체계를 설명하지만,

한글은 사실 음양사상의 출원처인 신교의 삼신문화에서 나온 것이다. 

 

아홉째, <환단고기>에는

상고시대 한민족의 대외 교섭사와 함께 중국과 일본의 왕조 개척사가 밝혀져 있다.

 

<단군세기>에는 고조선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적지 않은 기록들이 나온다.

고조선은 무려 1500년(BCE 2205 하나라 건국~ BCE 771 동주와 서주 분리) 동안

중국의 고대왕조인 하, 상, 주의 출현과 성립에 깊이 관여하였다.

 

예컨대, 중국 5천 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맞은 국가존망의 위기 사건이었던 9년 홍수 때,

단군왕검이 치수법治水법을 우禹에게 가르쳐주어 홍수를 무사히 해결하고 후에 그 공덕으로

하나라를 열게 한 일이다.

 

그리고 <태백일사>에는 아직도 미스터리에 싸여 있는,

일본의 개국 과정을 밝힐 수 있는 단서들이 실려 있다.

한마디로 <환단고기>는 곡된 한, 중, 일의 고대사를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나침반이다.

 

이상에서 알아 본 <환단고기>의 특징과 사료적 가치는 ‘애 <환단고기>를 읽어야 하는가?’,

‘<환단고기>에는 무엇이 담겨 있는가?’ 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한민족의 옛 역사와 문화를 밝히고 인류의 뿌리 역사를 드러내는 <환단고기>는

대한의 아들딸은 물론 70억 전 인류가 읽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역사 교과서이다.

 

환단고기 완역본 (상생출판 2012년 출간 ) 중 일부

 

환단고기를 인정하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은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럴까요?

단순히 환단고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배경이 있습니다. 

환단고기 속에는 지금 역사학계가 말하지 못하던 엄청난 역사가 있습니다.

 

그걸 결코 현재 강단 사학자들은 이야기 할 수 없는 역사의 진실들이거든요.

단군조선도 신화니 실재니 하는 것이 현재 강단사학인데,

환단고기에는 단군조선 이전에 5천년의 역사가 더 있다는걸 말해주고 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서 운운하며, 그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고려 이후로 우리나라 주류 정치집단의 주체성 없는 사상이 문제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모두 황제라고 칭했고, 백제를 제외한 고구려와 신라도 별도의 연호를 썼었습니다.

그런데 고려 초기만 하더라도 독자적인 연호를 쓰며 황제라 칭했던 우리나라가 외세의 잦은 침략과 더불어

스스로 독립 자존의 주체성을 비하하며, 스스로 중국의 연호를 쓰고,

 

황제 칭호를 왕으로 바꾸는등 비굴한 모습을 역사서에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그것도 모자라 대놓고 중국 황제를 모시며, 임금을 좌지 우지 하던 사람들이

당시 노론등 주류 정치세력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 및,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런 일이 어떻게 우리 역사를 곡되게 할 수 있느냐 물을 수 있지만,

고려때 쓰여진 우리나라 최초 정사라고 하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는 우리 민족의 독립 자존을

이야기하는 부분이 대부분 사라졌어요. 바로 주체성을 상실한 역사관으로 쓰여졌다는것이죠.

이를테면, 삼국사기에는 삼국시대 이후를 주로 다루고 그 이전은 거의 다루지 않고 있고,

중국을 높이고 우리나라는 낮추는 기록이 많습니다.

 

삼국유사는 불교 일색으로 불교가 들어오기전의 우리나라 지명들을 불교식 지명으로 바꾸고,

고대사가 불교식 신화요소로 장식이 되어 버렸어요. 우리 민족을 외래 종교인 불교 나라로 만들고,

중국을 우리나라보다 더 우선시 하고, 우리민족의 시작이 어떻게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면

어떻게 자존감을 세울 수 있겠어요?

 

고려말 공민왕때 재상이었던 행촌이암은

당시 이러한 사정에 분개하는 내용을 단군세기 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삼신 상제님을 모시며, 환인으로부터 비롯된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인데,

이러한 역사를 잃어 버려, 국가의 근본이 흔들리고, 정치의 법도는 갈라져서,

부여시대에는 한漢의 침략을 받았고, 고려때는 몽고의 침입을 받았다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세조부터 예종 성종까지 3대에 걸쳐 유교적 사상에 맞지 않는 사서를 조정에서 수거하게 됩니다.

수거하지 않고, 보유할 경우에는 참수까지 처한다 할 정도로 강경한 정책이었죠.

이런 분위기에서 유교적 사상에서 벗어나는 서적은 살아남기 어려웠고,

그 당시 수거령에 포함된 책을 인용해서 글을 쓴다는것은 상식밖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수거된 책들에 우리 고유의 정신 문화가 담겨 있는 사서들이 포함되었었습니다.

우리가 천자의 나라였으며, 삼신 상제님을 모시는 천자의 나라라는 것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용납될 수 없는 무서운 내용이었거든요.

 

잘못해서 명나라등 중국이 그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화를 감당하기 어려웠던것이 국내 사정이었으니까요. 당시 동아시아에서는

천자는 오직 한명만이 존재하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그런 사서 수거를 일정한 장소에 모아 놓아서, 그런 사서들이 훗날

외세의 침략으로 화를 당하면서 지금은 거의 자취를 찾아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된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환단고기를 언급하는 교차 검증 사료가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 된것입니다.

이걸 두고, 위서론자들은 환단고기를 지어낸 책이라 하지만,

아무 근거 없이 그렇게 방대한 내용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만약 신채호의 조선 상고사를 베끼고,

당시 대종교 김교헌이 쓴 신단실기등이나 규원사화등을 보고 베낀거라면,

일제시대이후에 나온 조선 상고사, 신단실기등의 내용은 무얼 보고 베꼈을까요?

이 책들을 보면, 당시에는 단군조선 이전의 유구한 역사를 나타내는 사료들이 존재했다는걸 알게 해주죠.

결코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유구한 한민족의 역사는 환단고기에서만 말하는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일제 식민통치를 맞이하면서, 이러한 국내 사정은 아주 좋은 먹잇감이 되어서,

남아 있던 사서마저 모두 강탈당해 소각되는 사태를 맞이 하게 됩니다.

 

일제는 강제병합 즉시 우리 역사를 기술한 모든 서적을 대대적으로 수색 압수 분훼하였고,

한국의 역사책을 지니고 있거나 읽는 한국인은 엄벌에 처해졌습니다.

 

이런 정황은 당시 취재차 국내에 들어와 있던 상해에서 발행되던 영자신문 『대륙보大陸報』기자인

내다니엘 페퍼의 생생한 목격담으로 보도 되었습니다.

[내다니엘 페퍼,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1920, 11쪽(국가 보훈처 1994)]

그의 보도 내용은 10일간 연재 되었고, 독립신문에도 번역되어 개재되었습니다.

 

그러니 유일하게 고대역사를 다룬 사서는 삼국사기,삼국유사만이 살아 남을 수 있었던거죠.

이 두 책은 굳이 수거하지 않아도 될만한 주체성을 상실한 책이었고,

우리나라를 침략했던 중국이나 일본도 이 두 책은 건드릴 필요가 없었기에 살아 남은것이죠.

덕분에 우리나라에 고대역사를 다루고 있는 사서는 이 두 권외에는 찾기 힘든 상황이 된 것입니다.

 

물론 환단고기가 그 역사속에서 간신히 맥을 이어오며, 전해오다가 이제야 세상에 드러나긴 했지만요.

그래서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게된 과정은 눈물이 없이는 볼 수 없는 힘겨운 과정이었습니다.

일제는 철저히 우리 역사를 숨기고,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를 심어 놓기 위해 애를 썼거든요.

 

당시 일본은 우리나라를 자기 나라와 병합할 목적으로 역사 연구를 하게 되는데,

조선사학회등이 조선총독부 주관하에 전문적이고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1923년 조직된 조선사 편수회가 사료의 수집 및 사료집 발간을 담당하였다면,

조선사학회는 강좌와 저술을 통해 일반에게 식민사학의 전파를 담당한 실행기구로 볼 수 있습니다.

 

 식민시대 당시 역사관련 학술 단체로는 그밖에 청구학회, 조선사학동고회등이 있는데,

이들 학술지 발간의 취지는 “...우리 일본인들이 조선사를 연구하는 것은

첫째, 국사(일본사)를 위한 것이요, 이미 국사의 일부가 된 조선사를 위함이다.”[조선사학,창간사,1926]

 

, “...반도의 문화적 연구는 결코 반도 자체만을 위함이 아니고,

아국 전반의 문화사적 발전을 살핌에 중대한 의의와 역할을 지닌 것이며,

대륙 발전기지로서의 새로운 사명 앞에 선 반도로서는...”[청구학회,종간사,청구학총, 1939,1쪽]

등의 표현에서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가 그 학술 단체를 만든 것은 우리나라가 반도안의 협소한 지역을 살았던 민족이었으며,

고대사를 부정하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그리하여 일본이 조선보다

위대한 민족임을 드러내어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조선사학회에서 1920년대까지 그들의 연구 결과를

종합한 『일반사』는 1927년 『조선사대계朝鮮史大系』로 개칭했습니다.

조선사대계 연표의 범례를 보면

 

1항(단군조선의 부정),

2항(기자,위만조선으로부터 한국사가 출발한다는것),

3항(일본기년에 의혹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냥 역사서술의 자료로 인용한다는 것),

4항(삼국사기가 ‘신라왕의 후예’,‘신라당’에 의해 정리된 것이라 신라의 건국 기년을 믿을 수 없다는 것),

 

5항(조선반도에서 건국된 제국의 국호 계통은 물론 가장 관계가 깊은 중국 본토와 만주,

몽고에서 건국된 제 국조의 계통을 기술하고 이와 동시에 조선의 것을 병기하여 대조표를 만든다는 것),

 

6항(연호도 조선과 만주제국의 것을 기록하과 색인표를 만들어 조선과 만주는 물론

일본,중국본토,몽고,신강,안남,운남등에 건국된 제국의 것을 모두 모아 세계 연호를 망라한다는것),

 

7항(이외에 왕가 계보와 역대표를 만든다는 것)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발해 건국기사에서도 ‘말갈추장 대조영’이라 하여 말갈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일제시대 주요 연구 활동을 했던,

이병도와 같은 식민사학자들이 해방과 더불어 추방은 커녕 서울대 사학과 교수가 되면서

우리나라 주류 학계를 장악하게 됩니다.

결국 그 이후 우리나라는 60년간 역사 교육을 그들의 손에 맡겨 왔던겁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병도가 진단학회등을 만들어

일제시대 우리 민족의 주체적인 역사 연구를 주도했다며, 민족 사학자로 둔갑시켜 소개하기도 합니다.

 

진단학회는 1934년에 창립되어 실증사학을 주도한 학술 단체였습니다.

또한 식민사학회인 청구학회는 진단학회 설립에 대해서 ‘...우리는 그 장래를 축복하는 동시에

반도학도의 더욱 분진할 것을 기망해 마지 않는다.’[청구학회,「진단학회의 창립」『청구학총』

18,1934,185~186쪽]며 축사를 해준 사례가 있습니다.

 

실제로 진단학회 회원들은 식민사학회인『사학잡지』와『청구학총』과도 관련을 가졌으며,

일제 관학자들과 밀접한 관계 하에서 역사를 전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후 그들이 저술한 저서들을 비롯하여,

그 제자들이 쓴 논문들은 일본의 식민 사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커녕 부합되는 이야기들이었으니,

과연 진단학회가 식민사학을 벗어난 학술단체였는지 의심이 되겠죠?

 

일제식민사학자들이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은것은

친일 정치인들이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는것과 별반 차이는 없어 보이지만,

역사라는 분야는 더욱 그래서는 안되는 분야입니다. 지금까지 그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홍산문화와 같은 단군조선시대 이전의 배달국등의 유물이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학계에서는 한반도를 넘어선 강역이라는 이유로

우리 민족과 관계 없다는 학설을 내놓고 있는게 현실입니다.

 

이밖에도 역사 인식이 곡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주변 국가에도 있는데,

우리 사료는 이렇듯 찾기 힘들 정도로 소멸되고, 그러면 주변국가의 사료를 찾아 봐야 하는데

중국은 중국 중심으로 역사를 기록을 하고, 일본은 일본 중심으로 기록을 했습니다.

 

사마천 사기에 나오는 대표적인 곡은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곡의 핵심은 전쟁의 승자를 패배자로 둔갑 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자세한것은 환단고기에 나와 있으니 책을 통해 알아 보기를 바라구요.

 

일본은 일본서기에서 일본 천황이 모두 명을 내려

고구려 백제 신라까지 전쟁없이 복속시킨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거의 믿는 사람이 없지만,

일제시대에는 골수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실제 사건으로 둔갑되었었습니다.

 

이를테면, 철기만 하더라도, 일본은 6세기에 와서야 생산이 되었다는게 정설인데,

우리나라는 한반도 남부에서도 철을 자유롭게 생산했던 시기가 3세기입니다.

그런 일본이 3~4세기경에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전쟁 없이 속국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일본서기에 나옵니다.

 

어처구니 없는 내용들이지만, 그렇다고, 일본 서기 전부를 위서로 내모는 사람은 없습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있는 역사마저도 애써 감추며,

그 진실을 밝히는 환단고기를 위서로 몰아가고 있는 대부분 사람들이 주류 역사학계이죠.

 

중요한것은 이런 주위 나라들의 역사서에 대한 이런 노력들이 과연 무엇 때문에 그랬을까요?

그것은 바로 독립 자존을 찾기 위해서 자신들만이 유일한 천자 나라였다고 하기 위해 조작한 것입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중국의 역사도, 일본의 역사도, 모두 우리 민족이 문물을 전수해줬으며,

우리나라를 천자국으로 섬겨왔었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나라도 곡한 것이 아니겠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한중일 나라가 각국의 역사서 속에서 모두 자신들이 천자의 나라라고 외칠때 우리나라 역사학자라면,

우리나라 역사서를 중심에 놓고, 독립 자존의 주체성을 가진 학설을 연구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자들은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원래 천자(황제)국이라 하는 환단고기는 위서로 몰아 붙이며,

일본에서 만들어주고, 중국에서 만들어준 역사관을 바탕으로 학설을 정하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홍산문명이나, 환단고기가 증명하는 역사를 살펴 볼때,

우리나라가 최초의 천자국이었다는것은 자명하게 밝혀지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병도같은 식민 사학자가 우리나라 학계의 주류가 되었을까요?

 

일제 식민지 통치하에 독립운동을 하던 대부분 의식있는 사람들은 정식적인 제도권교육을 받지 못했고,

일제에 편승한 친일파는 제도권안에서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해방과 동시에 2년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미국은 미국의 입장을 대변할 한국인 정치가를 물색했고,

그 적임자는 이승만이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았던 김구 선생이나,

여운형 선생 등은 강력한 민족주의자로 미국입장에서는 탐탁지 않았던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이승만은 친미주의자로, 미국에 살면서 독립운동을 하고

미국에서 박사학위 다섯개를 받을 정도의 지식인이었습니다. 게다가 부인도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지지세력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친일파를 대거 등용하게 됩니다.

 

해방직후 친일파 숙청의 건의가 거세게 들어오고

반민족 행위자 특별처벌법을 만들어 반민특위를 만들었지만,

이승만 대통령 직권으로 테러를 하며 1년만에 유야무야 없던 일로 해버립니다.

 

관용의 나라 프랑스의 경우

4년간 나치에 협력한 반민족자 100만명을 체포하여 1만명의 넘는 사람을 즉결처형합니다.

 

에 있어서는 관용을 베풀지 않았습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단한명의 친일파도 처형당하지 않았습니다.

해방 후 독립운동에 대한 훈장을 받은 사람은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시영뿐이었습니다.

 

친일파가 그대로 기득권을 유지하며 친미파가 되었고,

그들은 반공을 외치며 민족주의자들을 빨갱이로 몰았습니다.

때문에 어떤 사학자는‘우리나라는 친일청산이 된 것이 아니라,

친일파에 의해 민족주의자들이 청산당했다’라고 합니다.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변변한 직업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이미 기득권을 차지한 친일파에 눌려 공로가 인정되지 않아 표창을 받지 못했고,

때문에 나라에서 지원하는 연금도 받지 못했습니다.

 

진정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독립운동가 중 대다수는 현재도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을 살고 있으며,

창씨개명을 거부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은 무국적자로 국적도 되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역사가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가 사라졌습니다.

 

일제가 우리 역사를 말살하고 곡하기 위해설치한 ‘조선사편수회’에서

이마니시류의 수사관보로 일을했던 친일파 역사학자 이병도 역시 중요한 자리에 등용이 됩니다.

서울대 사학과 초대교수가되고 60년도에는 문교부장관까지 합니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백남운 같은 사회경제학자 계열의 사학자들이 월북하고,

안재홍, 정인보 등 민족사학의 거목들이 납북되자,

 

이병도와 그 제자들은 식민사학을 실증사학으로 위장시켜 한국 역사학계를 독차지합니다.

그러한 이병도도 죽기 직전인 1989년에는 조선일보에 단군은 신화가 아닌 실존했던 조상이라고

기고를 하게 됩니다. 환단고기는 잃어버린 조선 고대 역사를 밝히는 몇 안되는 소중한 책입니다.

 

그리고 지금 위서론자들이 말하는 환단고기에 대한 위서논쟁은 이미 끝나가고 있습니다.

근대어라던 평등,문화등도 이미 고대부터 쓰이던 언어라는걸 모르고 위서론자들이 그런 얘기를 한거였으며,

일제시대 독립운동사를 조금만 알게 되더라도, 환단고기 출간과정의 의문점들이 대부분 해결됩니다.

 

환단고기 역주본 발췌 

 

 

 

환단고기 위서론을 반박한다

환단고기 위서론에 대한 답변 요약 http://goo.gl/HJfrC  

▷ 1911년 발간된 환단고기 초간본을 이유립이 가지고 있다가 분실했다.

그리고 그 이후 배달의숙본을 발행하는 과정에서 기억력에 의존했다고 하는데 가능한 일인가. 1)  http://goo.gl/T4A1U  2) 환단고기 이유립 선생 창작 변개설을 반박한다 http://goo.gl/IMwv8 

▷ 1911년에 출간된 환단고기를 1909년에 죽은 해학 이기가 감수를 할 수 있나? http://goo.gl/TCKpg

환단고기 출간에 자금을 지원한 오동진 장군의 저서에 환단고기가 언급되지 않고 있다?  http://goo.gl/6CWWa 

▷ 조선상고사의 삼한관경제 내용을 이유립 선생이 베낀거 아닌가요? http://goo.gl/Pwo9X

▷ 이유립은 친일단체인 조선유교회 회원으로 친일행각을 했다? http://goo.gl/TXbaP 

▷ 이유립은 커발한 개천각교 교주였고 환단고기는 그 종교의 경전이다.  http://goo.gl/KsKe6 

환단고기는 기독교 교리와 유사하다?  http://goo.gl/EWreX

▷『환단고기』는 일제시대 민족말살정책 일부인 일선동조론이 포함된 책이다 http://goo.gl/sBlcv

▷ 계연수는 실존 인물이 아닌 이유립이 지어낸 허구의 인물이다?  http://goo.gl/Am9eR 

▷ 계연수는 환단고기를 1980(경신)년에 책을 공개하라고 하였는가 http://goo.gl/AGqKI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안함, 원로, 동중 세명이 황해도 해주 수양산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삼성기』의 저자를 안함로, 원동중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http://goo.gl/JMVSM 

▷ 일제시대 일본이 우리나라 상고사를 비롯한 고유사서 20만권을 분서하였다는 사실은

문정창이 조작해낸 가짜다?http://goo.gl/uSmrp 

▷국가, 자유, 문화, 평등 등 근대어가 사용되었으므로 후대에 조작된 책이다?  http://goo.gl/G1AHe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에 나오는 지명‘상춘常春’은 청나라때 생긴

지명이므로 『태백일사』의 저자 이맥(1455~1528) 생존 시에는 없었던 말이다.  http://goo.gl/IGDGQ 

▷『환단고기』가 말하는 장수왕의 연호는 1915년 충주에서 발견된 불상佛像 광배에 새겨져 있다.

그러므로 『환단고기』는 1915년 이후에 쓰여진 책이다.  http://goo.gl/LpdZ3

▷ 1923년 발견된 연개소문의아들 천남생 묘지의 묘비에 연개소문의 할아버지 이름 ‘자유子遊’가

기록되어 있다.따라서 『환단고기』는 1923년 이후에 쓰인 기록이다?  http://goo.gl/Vs8T3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에서 환웅이 책력을 지어 365일 5시간 48분 46초를 1년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는 당시 천문학 수준으로는 불가능한 수치다? http://goo.gl/mvJkr 

▷ 대흥大興대진국 문왕의 연호는 『신당서』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환단고기』가

그 연호를 밝힌다 해서,『환단고기』가 진서는 아니다?
http://goo.gl/Y2N7V 

▷『단군세기』21대 소태단군 조에서 말하는 ‘은나라 왕 무정이 전쟁을 일으켜 귀방을 물리쳤다’는

내용의 ‘귀방鬼方’은 『주역』 63번째 기제旣濟괘에 이미 나오는 말이다?  http://goo.gl/9u0QY 

▷ 단군세기』16세 위나단군조에 나오는 영고탑寧古塔은 청나라(1644~1911)때 생긴 지명이다?
http://goo.gl/qmH4f 

▷ 계연수가 1916년에 묘향산 석벽에서「천부경」석각을 발견하고 탁본하였다는

사실은 「천부경」이 실린 『환단고기』가 1911년에 간행되었다는 것과 모순된다?  http://goo.gl/4zRxS

▷『환단고기』의 내용은 『환단고기』말고는 증명할 수 없다. 교차검증할 수 있는 사료가 없다 http://goo.gl/8Y1X0

▷『환단고기』진서의 근거가 되는 오성취루는 손으로도 충분히 계산할 수 있다.

중국기록에도 오성취루가 남아있다.
http://goo.gl/8X7RA 

환단고기에는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믿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어떻게 3301년동안 7명의 환인이 통치를 할 수 있었는가?
http://goo.gl/YfW7U 

▷ 이마니시류는『삼국유사』석유환국 부분을 석유환인으로 날조하지 않았다? http://goo.gl/1NiWT 

▷ 석유환인의 환인은 『삼국유사』에는 제석확인이라고 나온다?

불교용어이기 때문에 불교의 신화를 가져다 쓴거다.?http://goo.gl/JyHd0 

▷ 청동기시대가 지나야 국가가 형성되는 것은 역사의 기본 상식이다.?  http://goo.gl/3qoXu

▷ 신시 배달국이 중국 사서에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 http://goo.gl/ZyLw9 

▷ 배달국의 유물로서 현재 출토된 것이 없다?  http://goo.gl/ifmUb 

▷ 배달국 14대 자오지환웅 치우천왕은 우리민족과 관련 없는 사람이다.

묘족의 조상일뿐.? http://goo.gl/bymyF 

▷ 동이(東夷)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夷)가 동이를 뜻하게 된 것은 전국시대 중기 이후이다 ?  

 http://goo.gl/Hbtd7

▷ 배달국 14대 자오지환웅 치우천황은 우리민족과 관련 없는 사람이다.

묘족의 조상으로 모셔지고 있는 분이다?
http://goo.gl/Lf8e6 

▷ 가림토는 존재하지 않는 문자다?  http://goo.gl/cW0n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