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역사 교과서가 위서다.

 

서양 학문을 빙자하여 일제가 조작해 만든 역사를 비판 없이

그대로 계승한 지금의 교과서가 위서이다.
<나의 인생을 바꾼 책 : 1985년 10월 20일자 주간조선>

 

고등학교 2학년 때 서점에서 만난 주간조선 서희건 문화부 차장이

쓴 글 “단군조선 이렇게 말살되었다.”

 

일제시대 때 일본이 우리나라 9천년 역사 말살을 위해 우리나라 역사서

20만권을 불태웠음을 고발한 연재 기사 였다.

 

비분강개 하는 마음에 근 1달을 잠을 못자고

학교 공부에 전념하기 힘들어 했고 진로 문제로 고민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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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분서갱유 20만권>

1910년 강제 한일합방 후

일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이

 

식민통치에

가장 저해요소가 되는

“민족 정체성의 근원”인

조선 역사책 20만권을

불태운 것이다.

대학교 도서관에 있는 책 수가

2만권이라면 도서관 10개를

불태운 거와 같은 수.

 

책이 귀하던 시대를 감안하면

전국 역사책을 다 태운 것과 같다.

 

 

 

남은 사료를 보존하라.

환단고기

 

 

 

이에 1911년 대한독립군에서

한반도 밖에 남아있던 역사서 5권을 청나라 “사고전서” 식으로

한권으로 묶어서 “환단고기”란 이름으로 편찬하게 된 것이다.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과 광복군 총영장 오동진 장군이 자금을 대어 “목판”에 새겨 출판했다.

 

여담이지만 주간조선의 이 기사를 통해서 1911년 광복군과 독립군에서 자금을 대고

계연수 선생이 수소문을 해서 수집한 역사책 5권을 하나로 묶어 목판 인회하여

출간한 환단고기를 비롯해서 규원사화, 단기고사와 같은 역사책이 살아남아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일제 희대의 조작 환국 환인>

일제는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9천년 역사를 2천년 일본역사 보다 짧은 역사로 조작하기 시작했다.

 

하자가 많아서 남겨놓은 삼국유사 문장에 “환국”을 붓으로 칠해서 “환인”으로 만들어 버렸다.

삼국유사 마저 실존 역사로 적힌 부분을 신화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마지막 양심 최남선>

이 사실을 밝혀낸 분이 놀랍게도 육당 “최남선” 선생이다.

조선사편수회에서 일제의 역사 왜곡에 홀로 맞서 싸우시다 비분강개하여 탈퇴하고 난 뒤에야

본격적으로 역사 왜곡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역사 왜곡

 

진짜 "위서"의 등장

 

<위서의 시작 이병도>

조선사편수회는 16년 동안 무려 100만엔에 이르는 거액의 사업비를 투자 하여

1932년 부터 1938년 까지 식민주의 사관 역사책을 편찬한다.

 

일본인의 손에 의해 일본어로 정리된 조선의 역사서 "조선사 37권"이 그것이다.

 

이 때 일본 조선사 편수회에서 내 세운 조선인 사학자가

을사오적 “이완용”의 조카로 일본 교수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앞잡이로

한국 역사 왜곡의 선두에 섰던 “이병도” 이다.

 

일제시대에 조선인 순사 처럼 앞장서서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선봉장을 섰다.

그는 광복 후 서울대 교수가 되어서 현 사학계의 거두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제자 김원룡, 이기백 교수가 그 뒤를 이었다.

<"환단고기"에 위서론 누명 씌운 이기백 교수>

이기백 교수는 뒤에 춘천 한림대학교 사학과 교수가 되었다.

이 사람이 정통사서인 "환단고기"를 위서론이란 누명을 씌운 사람이다.

적반하장도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시 사학과 학생들 말이

“이기백 교수께서 환단고기 책을 3일동안 정독을 하시고 위서임을 아셨다.”는 거였다.

 <3일 만에 읽었다 = 한자 원전 읽을 실력 없는 사람>

만일 이기백 교수가 “중용”을 3일 동안 정독하고 “위서”라고 말했다 해 보자.

당장 도올 김용옥 교수가 “한자도 읽을 줄 모르는 무식한 son of a dog.” 라고 욕을 했을 것이다.

 

한문 고대 경전의 문장은

1) 어디서 띄어 읽고 어디서 끊어 읽을 지,

2) 명사인지 동사인지 형용사인지

3) 단어인지 이름인지 지명인지

4) 단어 뜻은 어느 시대 뜻으로 할 것인지 알아내는데 “몇년”이 걸린다.

문헌 속 뜻 이해하는데 십년에서 일평생 걸린다.

 <원전을 직접 읽지 않은 이기백>

 

3일만에 읽었다면

 

1) 임승국 선생의 환단고기 한글 한역본을 읽었던지

2) 삼성기 상 하 정도 까지 읽었던지 일 것이다.

직접 읽어 보면 알겠지만 단군세기부터는 방대한 역사 내용이 나오기에 진도 못나간다.

더군다나 “넘사벽 - 단군세기 서문”을 봤다면 3일설을 운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기백 교수는 “한자 원전”을 읽지 안았다는 소리다.

학문하는 자세도 안되있었다는 말이다.

1980~90년대 초

시대 비극론

 

 <1980년~90년대 초 당시 학풍>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1) 1980~90년대 초 까지만 해도 논문심사에 “표절”이란 단어가 없었다.

2) 일본 논문을 한글로 베껴서 제출하고 박사학위 받던 시절이다.

3) 실력이 안되면 교수님께 돈 드리면 박사학위 논문도 대필해 주던 시대다.

 <일본어 번역본이 있는데 왜?>

당시 교수들이 자랑스럽게 하던 말.

"일본이 학문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번역 사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제대로 번역한 것이 없어서 참고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이다.

일본어로 번역 되 있는 것을 한글로 번역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왜 직접 한자를 읽고 한글로 번역하지 않아요?” 하고 물어보면

“일본어로 번역이 다 되어 있는데 왜 번거롭게 한자를 읽고 다시 한글로 번역해야 하는데?”

 <한자 실력 없는 교수들의 고민>

 

1) 일본어로 역사 논문을 분석해서 자신의 가설을 세우는 것과

2) 한자로 된 원전을 직접 읽고 직접 해석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사학계에서는 후자를 “원전학”이라 하여 “한학자”들이 할 일이라고 넘겨버렸다.

 

문제는 일본 사람들이 번역하지 않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우리나라 고서들이었다.

동의보감 마저도 재대로 된 번역본이 없었다.

 

일본어에는 능통해도 정작 한자 고전을 재대로 읽어 내서 번역할 수 있는 실력의 교수들이 없었다.

따라서 제대로 된 학문적 연구가 진척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980년대 당시 한국 인문계 교수들 사이에 하던 말이 있다.

“한학을 하시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나라 고서들을 한글로 번역을 하셔야 하는데.....”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불편한 현실

 

 <왜 한자 실력이 있는 교수가 없는 것일까?>

1980년대 까지만 해도 순수 한글 쓰기를 주장하여서

한자를 학생들에게 아예 안 가르치던 시대도 있다.

내가 고등학교 들어 갈 때 한자 시간이 생겼다.

 

하지만 그 전 세대 까지는 그런 것도 없었다.

사실 지금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수학”과 “영어”만 공부 시키는 현실에서

“한자”를 잘 읽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 하는가?

 

현재 21세기 “한의대”가 겪는 가장 큰 문제는 한의대에 시험 쳐서 들어오는 애들이

수학, 영어는 잘하는데 정작 “한자” 읽을 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아직까지도 등한시 되는 고전 번역>

 

논문은 지도해줄 실력이 있는

지도 교수와 논문을 심사 해 줄 실력의 교수진이 없으면 논문이 나올 수 없다.

그래서인가?

 

21세기인 지금에도 인문학계에서는 “원문 번역”을 논문으로 인정 하지 않고

“원문 번역의 오류에 대한 고찰” 과 같은 내용도 논문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유럽 EU가 자신들의 고전을 번역하는데 투입하는 돈이 1년에 100억 유로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시대의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언어로의 번역 작업이 모든 학문의 근본이요 기초인데

우리 나라는 아직도 근본과 기초를 무시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고전을 읽어 낼 수 있는 한자 실력을 가진 교수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현실>

그러면 고전을 읽을 수 있는 한자 실력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없단 말인가? 아니다.

고수들이 전국 팔도 지천에 깔려 있다.

 

다만 서양학문의 정규 과정인

대학교 입시와 대학원을 거쳐 교수가 된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일 뿐이다.

 

대학교 정규 과정을 못 거쳤지만 “향교”에서 어려서부터

천자문, 소학, 대학, 중용, 서경, 시경 읽고 자란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직접 한자 고대 원문을 읽으신 분들은 안다.

고대 중국의 역사는 동이족 역사 문화라는 것을. 경전의 원문에 그렇게 적혀 있으니까.

 

고증학의 나라 청나라 시대의 “사고전서”에 이미 모든 것을 다 규명을 해 놓았다.

그리고 “환단고기”가 이런 고대 경전과 소통, 호완이 너무나도 잘 된 다는 것도 직접 읽어서 아는 것이다.

 

 그래서 고증없는 고고학을 빙자한 일본인들에 의한

상상속의 소설 역사를 역사책에 떡 하니 써 놓고 있는 강단사학자들의 역사책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1) “일본어” 하는 사람이 “강단”사학자

2) 원전 읽을 수 있는 “한학자”가 “재야” 학자 구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소신의 문제가 아닌 실력의 문제>

결국 일본어 번역본 논문에 구속되지 않고

스스로 한자 원전을 읽고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의 “한학자 교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 역사 교과서는 일제가 만들어 놓은 위서의 틀을 벗어 날 수 없는 것이다.

21세기의 미래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

<한국 역사에는 미래가 없는가?>

아니다. 있다.

결론은 세상이 변했다는 점이다.

21세기에 새로운 시대 환경에서 완전히 다른 한자 세대가 나오고 있기에 새로운 미래를 꿈 꿀수 있는 것이다.

-다음 시간에 계속-

 

(PS. 위서론의 역사에 대한 더 정확하고 자세한 자료를 원하시는 분들은

"안경전 역주본 환단고기 해제 525~539p"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자료출처 : http://www.hwandangogi.or.kr/hwan/community.php?mid=103&p=2&r=view&uid=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