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신상제와 태일太一의 균형 관계

 

 

 삼신상제와 태일太一의 관계

 

2012년 8월 12일 ‘103주

증산상제님 어천치성’을 봉행한 뒤 종도사님의 도훈

 

삼신상제님과 태일, 아니면 태일과 삼신상제님 이렇게 되어야 돼.

원 우주 주권자니까 상제님과 일, 상제님과 태일은 항상 따라다녀야 돼.

이 태일의 천상 신명세계가 태을이라 말이야 태을, 태을천.

  

<환단고기>는 강단사학자들이 못 읽어요.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우주가 하늘과 땅과 인간, 살아있는 삼신으로, 삼계 우주, 하늘과 땅과 인간으로 구성되고,

하늘도 삼신, 땅도 삼신, 인간도 삼신이다.

 

인간도 신적 존재야.

이 대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숭고한 그런 신적 존재다 이거야.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못 배웠어도, 아무리 인간 악종이라 할지라도

바로 인간의 본질은 우주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는 거여.

대우주 광명을 다 가지고 있는 거여....

 

종도사님께서 ‘상제님과 태일太一은 항상 따라다녀야 된다’ 라고 말씀하시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삼신상제님’은 우주의 절대자를 지칭하며, ‘태일太一’은 환단桓檀,

즉 천지의 광명의 도를 체험한 신성한 인간을 말합니다.

 

 

 

 

 하나님에 경도한 기독교 신앙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이 인간과 만물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인간은 피조물인 거죠.

인간은 신의 종속적인 존재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완전한 자유와 자주성은 획득되지 않습니다.

신의 의지에 종속할 수밖에 없는 굴종적 인간상은

구약성서의 ‘종Slave’이라는 개념에서도 찾아집니다.

 

   “그들은 내가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레25,42)

 

구약성서에 ‘종’이란 단어가 약 800번 나온다고 합니다.

구약성서에서 창조주와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입니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에서 이데아와 동굴 속 그림자라는 이분법과 같은 구조입니다.

 

신에 대하여 인간은 피조물이고, 타락한 존재이고,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이처럼 ‘종’이라는 굴레가 덧씌어진 기독교적 문화 속에서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기독교가 인간을 종의 굴레 속에 가둔 것은, 유일신 신앙에 기인합니다.

신이 창조주이니, 신이 모든 것이겠죠.

인간은 그림자이고 종이고, 오직 신을 위해 바쳐지는 희생물에 불과합니다.

‘하느님과 나’라는 양대 축의 관계에서, ‘나’라는 축이 붕괴돼 버린 셈입니다.

 

기독교인들과 대화해보면, 신만 중요하지, 나 또는 현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실은 상관없어.

우리는 하나나라에만 가면 돼!’ 그들은 현실 삶보다는 오직 천국에 태어나기를 갈망합니다.

 

전과 20범의 흉악범도 사형 직전 하나님을 영접하면 천국에 간다는 말도 합니다.

전과 20범이 그런 식으로 천국에 간다면 현실의 절차와 도덕은 무슨 쓸모가 있을까요?

전부 제 욕심대로 살고 말지.

 

미 대륙 기독교인들이 수 백명 인디언을 학살하여 시체를 모아놓고 무릎 꿇고 기도를 합니다.

 ‘주여! 오늘도 사탄을 사냥하게 해주시어 감사합니다’ 라고.

 

기독교인들은 이렇듯 신의 뜻에만 종사했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서는

공존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교리가 이러 하니 기독교가 마녀사냥, 십자군 전쟁,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1억명 이상 도륙하는 등의

대학살을 기탄없이 자행했겠죠.

 

‘신의 뜻’에만 종사하는 문화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참혹한 죄상을 범행할 수 있는 지

우리는 역사적으로 봐왔습니다. 이를 보면, ‘하느님과 나의 균형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신의 뜻을 높이느라 나의 축의 붕괴, 즉

'인존人尊의 가치' 가 붕괴되는 일이 있어선 절대 안 되겠습니다.

 

 

 

 ‘나’에 경도한 불교 교리

 

불교는 기독교와 정반대의 길로 갔습니다. 불교에서는 절대자의 개념이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오랫동안 ‘나’에 대한 관점의 연구를 축적시켜 왔을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중생이 스스로 불성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곧 부처(心卽佛)이고, 자성이 부처(自性是佛)이므로

견성을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인간 존재에 희망을 불어 넣어주는 진리인가요.

 

그런데 불교에서 자력 구원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임제록> 같은 곳에서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용어를 만납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서,

세속의 관념에 얽매이지 말라는 뜻이겠지요.

 

그러나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용어는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우주의 근간을 해치는 개념입니다.

 

황벽 같은 선승은 생사초탈한답시고 자신을 찾아다니던 어머니가

인근에 물에 빠져죽는 걸 목도하면서도 외면하고 갈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불교 교리가 ‘나’의 생사초탈만 중요시하고,

우주의 절대자에 대한 개념이 가지고 있지 않아 이런 짓을 저지릅니다.

 

우주 절대자의 이치와 법도에 의한 통치 세계를 몰라서 말이죠.

살불살조니 어머니가 죽도록 방치한다든지 하는 이런 행위는

하느님 통치의 근본을 어지럽히는 행위로서, ‘배은망덕만사신背恩忘德萬死身’이 될 수 있습니다.

 

자력 구원도 있지만, 타력 구원도 엄존합니다.

‘나’의 축 대칭점에 하느님의 축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진리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느님과 나의 균형’ 진리

신의 뜻을 높이려다 보니 인간을 ‘종’의 굴레에 추락시킨 기독교.

인간의 대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신을 버린 불교. 인간 내면의 원리에 주목하느라 ‘상제’를 버린 주자학.

유불선의 기성종교들은 어느 하나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알맞게 조화하지 못했습니다.

 

증산도의 제 1명제는 ‘시천주侍天主’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증산도는 우주의 절대자 하느님이신 증산상제님을 신봉하는 진리입니다.

증산도는 우주 절대자 신앙이라는 제1축과 함께 인간의 존엄함이라는 제2축에 대해서도

무궁한 원리를 부여하는 진리입니다.

 

하늘도 삼신, 땅도 삼신, 인간도 삼신이다.

인간도 신적 존재야. 이 대우주에서 가장 존귀한, 숭고한 그런 신적 존재다 이거야.

아무리 어려도, 아무리 못 배웠어도, 아무리 인간 악종이라 할지라도

바로 인간의 본질은 우주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는 거여.

대우주 광명을 다 가지고 있는 거여....

 

인간은 얼마나 존엄한 존재인가? 인간은 하늘과 땅과 같은 삼신三神입니다. 왜냐?

<환단고기>에는 보면 ‘삼신三神이 인간의 내면에 깃들어 성명정性命精이 되었다’라고 나옵니다.

 

따라서 인간은 우주 조물주의 신성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으며,

대우주의 광명을 본래 가지고 있는 그런 숭고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피조물이거나 종인 것이 아니라, 삼신의 신성이 깃든 신적 존재인 것입니다.

 

인간은 본래 신적인 존재이므로

누구나 갈고 닦으면 천지와 같은 신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또는 천지와 같광명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천지와 같은 환단의 광명을 체험하는 자리를 태일太一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천지와 같이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는 존재입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人尊時代니라.(도전2:22)

 

증산상제님께서는 ‘하늘과 땅보다 인존이 더 크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증산도의 인존人尊 사상,

증산상제님께서는 천지공사를 통해 인간의 가능성을 천지보다 더 크게 열어주셨습니다.

 

 

 

2012년 8월 12일 ‘103주

증산상제님 어천치성’을 봉행한 뒤 종도사님의 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