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문자에서 훈민정음으로 완성된 우리 한글 이야기

 

우리 글 변천과정 38→2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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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E 2181년에 고조선 3세 가륵단군은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38자를 만들게 하였다(단군세기,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이로써 고조선의 새로운 문자 가림토가 탄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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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4대왕 세종은 가림토 글자의 모습을 모방하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였다.

“이달에 임금께서 언문 28자를 지으시니 그 글자는 고전을 모방하였다“라는 세종실록과

최만리 상소문 등을 보아 훈민정음은 고조선 문자 가림토를 응용하여 만들어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자음 17자, 모음 11자로 모두 28자였으며,

그 뒤 창제 당시의 28자 중에서 자음 <ㅿ, ㆆ, ㅇ>과 모음 <>의 4글자가 폐기되어

오늘날의 기본 자모는 24자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가 되었다.

# 가림토는 한글의 원형이며 모태 글자이다. [세종실록] 103권 갑자년 2월 경자일 기록을 보면

 “ 언문은 다 옛 글자에 근본한 것이요 새로운 글자가 아니다” 라고 하였고

 

“언문은 전조부터 있었던 것을 빌어쓴 것이다”라고 하여

이미 전시대에 한글의 모체가 되는 문자가 있었음을 밝히고 잇다.

 

한글의 위대성은 그 창제원리가 신교의 우주 사상인 천지인 삼재원리와

철학의 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는데 있다.

 

천지만물의 구성원리인 음양오행은 인간의 언어에도 내재해 있다.

한민족은 이것을 가장 깊이 깨달은 위대한 민족이다. 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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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경과 동학' 등을 저술한 주역연구가 이찬구 박사는 신간 '돈'에서

"고대 중국의 화폐인 첨수도(尖首刀)에서 한글로 보이는 두 글자 '돈'과 '노'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머리가 뾰족한 도폐(刀幣)를 뜻하는 첨수도는 명도전(明刀錢)보다

이른 시기인 중국 춘추시대 중기 또는 말기에 주조·유통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이 박사는 19세기 중국의 고대 화폐 연구가인 이좌현(李佐賢)의 저서 '속천회'(續泉匯)에

'돈'자가 새겨진 첨수도의 탁본이 실려 있었으며,

 

중국 책 '연하도동주화폐취진'(燕下都東周貨幣聚珍)과

 '중국전폐대사전: 선진편'(中國錢幣大辭典: 先秦篇)에서 '노'자가 새겨진 첨수도의 탁본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좌현과 오량보(吳良寶) 등 중국 학자들은

이 두 글자를 '알 수 없는 글자'로 분류했다"면서 "이들 글자가 한자가 아니라면

분명히 한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연합뉴스 2012년 7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