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의 아들 부루태자가 오행치수법을 전한 사건의 실체를 보여준다.

단군의 아들 부루태자가 오행치수법을 전한 사건의 실체를 보여준다

 


시조 단군왕검께서 재위 67년에 태자 부루를 보내어

9년 대홍수를 겪으며 국가 존망의 위기에 처한 중국에 ‘오행의 원리로 물을 다스리는 법’을 전하며

요순 정권을 구해주엇다.

 

동방 회맹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부루태자가 우순이 보낸 사공을 도산에서

만난 오행치수법을 전한 이 사건 이후 고조선은 중국과의 국경을 살펴 오늘날의 하북성과

산동성 일대인 유주와 영주를 강력으로 편입하였다. 284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f60000e.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32pixel, 세로 648pixel

 

우가 세운 하나라도 역시 고조선에 예속되었다.

우는 아버지 곤이 치수에 실패하여 순임금에게 처형당한후 그 뒤를 이어

나라의 치수사업을 맡아보던 사공신분이었다.

 

우는 순을 대신하여 도산회의에 참석하여

고조선의 태자 부루에게서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았고 이 비법으로 홍수를 해결하고 인심을 얻어

나중에 하나라를 열게 되었다.

 

송미자세가 홍범구주편에는,

우가 치수를 맡으니 하늘(天)이 우에게 홍범구주등을 내리어 치수에 성공하게 되었다라고 적고 있고

 

오월춘추 월왕 무여 외전에는, 우(禹)가 꿈에 붉게 수놓은 옷을 입은 남자를 보았는데,

그 남자가 "나는 현이의 창수사자이니라"하였으며,

 

이후 우는 3달동안 목욕재계를 한 후 산에 올라 금간옥서를 얻었으니

이 책은 치수법을 적은 요결이라 기록하고 있다. /

 

사공 우가 금간옥첩을 받아간 것과 관련된 기록은 [오월춘추],

[역대신선통감],[응제시주],[세종실록],[동국여지승람],[동사강목],[묵자] 등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중국이 중화주의 사관으로 쓴 오월춘추는 부루태자를 창수사자라 말하며

은인의 실체를 감추었고 또한 창수사자가 우의 꿈에 나타나 비법을 알려준 것으로 기록하여

우가 순전히 자신의 현몽으로 국낭을 해결한 것으로 왜곡하였다.

 

조선시대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지리지]는

‘우가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동할 때 태자 부르를 보내 조회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고조선이 오히려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주객이 전도되게 기록하였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f080010.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47pixel, 세로 376pixel

그림 1 남악 형산 구루비

 

황제릉과 염제릉과 함께 중국의 3대 보배라 하는 소위 우왕비가 있다.

우왕비는 원래 남악 형산의 구루봉에서 발견되어 구루비라고 하며,

이 구루비는 송나라 때 실종되었다가 약1,000년이 지나 깨진 채로 사찰의 담장으로 쓰였던 것을

2007년 6월에 발견한 것이라 한다.

 

남악 형산 72봉의 하나인 악록산의 산정에 있는 우왕비는

송나라 시대 하치(何致)가 탁본하여 만든 복제품이 되며,

이 비의 머리부분은 1935년 6월에 비를 보호하기 위하여 정자를 세우면서 새긴 것이 된다.

비문의 글자체는 올챙이 모양과 비슷하며 해독하기 어렵다 하는데,

글자수는 9행으로 나뉘어 모두 77자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우의 치수 공적을 적은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