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그머니 우리 역사로 자리잡은) 위만조선의 실체를 밝힌 환단고기

 

국사 교과서 속의 위만조선에 대한 평가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e78002c.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16pixel, 세로 140pixel 

 

위만은 고조선으로 들어올 때에 상투를 틀고 조선인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고 왕이 된 뒤에도 나라 이름을 그대로 조선이라 하였고 .

그의 정권에는 토착민 출신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자가 많았다.

따라서 위만의 고조선은 단군의 고조선을 계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2002년 3월 1일 발행) 두산 50p >

 


위만정권에 대한 이런 평가를 왜 무시하나

 

[사기]에서도 분명히 위만을 연나라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안정복(1712~ 1791) 동사강목에서 '위만은 나라를 찬탈한 도적이다'

-  임시정부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용(1858~1932)은  '한명의 강도에 불과하다'

- 단재 신채호 선생 '(위만조선은) 우리의 변강 침략사로 다루어야

 

위만의 실체 위만은 연왕 노관의 부하입니다.

북부여 해모수 단군 45(BCE 195)년에 '번조선'의 75세

마지막 왕 기준(BCE221-BCE194)에게 망명을 하였다가

이듬해 간교한 술책으로 번조선의 왕위를 찬탈하였습니다'

 위만 정권은 손자 우거에 이르기까지 86년간 고조선의 서쪽 변방 한 모퉁이를 빼앗아 지배하였습니다.

(BCE 194- BCE 108)

위만의 번조선 찬탈과 위만 정권의 성격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e78002d.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11pixel, 세로 302pixel

 

위만은 한나라의 제후국인 연나라 왕 노관의 부하였습니다.

노관이 한마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도망하자 위만은 번조선의 75세 마지막 왕 기준에게 망명하였습니다.

준왕이 위만을 박사로 임명하고 100리 땅을 주어 서쪽의 변방을 수비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위만은 몰래 일당을 규합하여 전투태세를 갖춘 다음

준왕에게 한나라 군사가 열길을 나누어 쳐들어온다고 거짓으로 고하였습니다.

 

그런후 왕검성(지금의 하북성 창려)을 방비한다는 핑계로 대군을 이끌고

물밀듯이 왕검성으로 들이닥치니  준왕이 감당하지 못하고 도망하였습니다.

 

위만은 이러한 간교한 술책으로 북부여의 제후국인 번조선을 멸망시키고

마침내 난하 요하 사이의 지역에 소위 '위만조선'을 건설하였습니다.

종래 우리 국사학계에서는 고조선 위만조선 한사군이 동일한 지역(한반도 북부)에서

차례로 교체된것으로 가르쳐왔으나 위만조선은 한낱 '변방침략'에 지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국사의 주류에서 하루속히 완전 추방당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의식속에서 왜곡의 전재를 깔끔히 씻어내야 합니다.

 

이제는 사대 식민주의 사학에 의해 굴절되고 왜곡 말살된 한국사의 정통맥과

민족사의 본래 뿌리를 하루속히 복원 재정립하여

대한사관에 입각하여 새 시대의 새역사를 가르쳐야 할때입니다.

 

아울러 위만조선이란 단어를 역사학계에서 추방하고

위만왕국,위만정권등으로 고쳐불러야 합니다. 

 

출처 : 환단고기 완역본 (상생출판 2012년 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