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는 고구려가 북부여에서 나왔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사서다.

환단고기는 고구려가 북부여에서 나왔음을 알려주는 소중한 사서다.

 

광개토 대왕비와 모두루비는 고구려는 북부여에서 나왔음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다.
환단고기는 이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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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루 역의 임대호

 

모두루묘지와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사 연구에 있어서 가장 귀중한 자료들이다.


모두루 묘지는 광개토왕(廣開土王) 때의 북부여 수사(守事)인 모두루의 묘지(墓誌)다. 

1935년 10월 중국 길림성(吉林省) 집안현(集安縣)에서 발견되었다.

광개토대왕비와 모두루 비에 모두 고구려는 북부여에서 왔음(出自)을 밝히고 있다.

 

 “옛적 시조 추모왕이 나라를 세웠는데 북부여에서 태어났으며,
천제의 아들이며.. (광개토대왕비) “하박(河泊)의 손자(孫子)이며 일월(日月)의 아들인
추모(鄒牟) 성왕(聖王)이 북부여에서 나셨으니,
이 나라 이 고을이 가장 성스러움을 천하사방(天下四方)이 알지니...”(모두루 묘비)


해모수의 북부여 건국

 대단군의 통치권이 약화되고 부단군과 지방 군장들의 목소리가 커지던
고조선 말기에 한민족의 새 역사가 개창되었다.

해모수는 요하 상류에 위치한 고조선의 제후국인 고리국 출신으로
단기 2095년에 웅심산에서 기두하였다(삼성기 상, 북부여기)

그 후 백악산 아사달을 점거하고 당시 47세 고열가 단군의 빈자리를대신하여
오가 부족장의 6년 공화정을 철폐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해모수를 단순으로 추대함으로써 북부여 역사가 시작되었다 (BCE 232)

북부여는 (원)고구려라고도 불렸다. 

 

고구려는 해모수께서 태어난 고향이므로 북부여를 또한 고구려라고도 불렀다
(단군세기)

 

고구려의 본래 이름은 ‘고리’,‘구려’이다 [삼성기]에는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해모수를 시조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고 하였다
해모수가 태어난 곳이 서압록의 고리이므로 후에 북부여를 고구려라고도 불렀는데
주몽이 그 이름을 계승하여 고구려라 한 것이다.

고구려는 해모수의 북부여(원고구려)와 주몽의 고구려(본 고구려),
대중상의 대진국까지 합쳐서 1165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후에 왕건이 고구려의 맥을 계승하여 고려라 하였으니
고구려(고리,구려,고려)의 정신은 1631년(BCE 239~ CE 1392)을 이어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