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시조 창힐 倉頡은 치우천황의 스승 자부선생의 제자다.

 한자의 시조 창힐 倉은 치우천황의 스승 자부선생의 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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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는 창힐문자가 있었습니다. 중국문자의 시초로 알려지고 있다.

역대 신선통감에는 창힐이 진창 사람으로 태호복희의 신하가 되어 거북 등과 새 발자국을 보고

여섯가지의 글짜체를 만든 인물로 나와 있다.

 

그러나 환단고기에서는 그보다

약 700년 후에 치우천황의 제후로서 배달국 신지문자를 중원에 전파시킨 인물이라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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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치우천황의 스승이 자부선생이었는데 헌원, 창힐, 대요가

모두 자부선생 밑에서 신교의 문화와 철학을 전수받았다.

 

헌원은 삼황내문경을 전수받았고 대요는 간지의 술법을 전수받았고

칭힐은 부도지문을 전수받았다.

 

그 후에 헌원은 탁록에서 군사를 일으켰다가 치우의 공격을 받고

대요와 창힐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대요와 창힐은 치우를 추종하였다.

 

대요와 창힐은 배달의 자부선생으로부터 문물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스승의 나라를 배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10년간 73회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가 헌원은 치우에게 사로잡히고 무릎을 꿇게 된다.


창힐의 고향인 섬서성 백수현에 있는

[창성조적서비創聖鳥跡書碑]에는 배달국 문자가 새겨져 있는데

그와 동일한 문자가 평안북도 용천군 신암리 고분에서 출토된 토기에 새겨져 있음이 확인되었다.

현재 창힐의 무덤은 하남성 남락현에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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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에는 이를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이 곡식을 비처럼 뿌리고 귀신이 밤새도록 울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