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로 캐낸 ‘한국문화의 광맥’

 

경향신문 1999.2.3水

 

「일본문화의 근원은 한국에 있다」는 말은 이제 진부하다.때로 국수주의적 배타성이나

일본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일부침소봉대의 글들 때문에 반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50여년간 일본문화를 연구한 미국인 동양미술사학자가 그런말을 한다면 사정은 좀 달라진다.

 

영어권 국가의 첫 일본미술사 박사이자 16권의 관련저술로 일본문화훈장을 받은 존 코벨(1910~96)여사의

「한국문화의뿌리를 찾아」(학고재)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일본문화의 뿌리는 한국이고, 한국의 일부 고고·미술사학계가 부패된 시신처럼 썩은 냄새를 풍긴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일의 유물에 담긴 미적 성취와 연대기를 비교하는 방식으로 한·일문화의 영향관계를 증명한다. 

역사책은 때때로 왜곡·조작되지만 예술사는 인간이 어떤 생각과 감정을 지녔는지를 속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 책은 신라금관의 나뭇가지 장식이 흔들릴 때 서로 부딪치며 빚어내는 소리를 상상하는 세련된 감수성과

동아시아의 학문적 성과를 넘나드는 박학으로 가야·고구려·백제·신라 유물의 미(美)를 탐구한 에세이집에 육박한다.

 

코벨 여사가 보기에 가야토기는 보잘것없는 일본 하지키(土師器)토기를 밀어내고 그곳 궁중토기로 쓰였다.

가야 기마족이 369년 배를 타고 일본을 정벌한 사실을 알리는 유물이 널려있는 것이다.

또 70년대에 발굴된 나라(奈良) 다카마쓰 고분(高松塚)은 8세기에 사망한 일본 제42대 몬무(文武)왕의 비빈 또는

후궁의 묘이지만 현무·청룡·백호가 그려진 「100% 고구려무덤」이다.

『8세기 일본은 한국인 세력을 완전 흡수하고 당나라 영향권에 있었다』고 주장한 일본의 견해를 뒤집은 셈이다.

 

시베리아 무속도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서 신토(神道)라는 이름으로 오늘에 이르렀다.

고구려·신라 고분벽화에 나오는 신성한 백마 숭배사상이 대표적 사례다. 1945년 8월15일 일왕은 자신이 타고다니던

백마를 맥아더에게 넘기는 것으로 항복을 표현했다. 그 백마는 미 육군에 넘겨져 안락사된 것 같다.

 

저자는 그러나 한국 학자들이 스승의 이론을 뒤집는 유물이 나오면

발표를 하지 않거나 재매장시키는 경우가 있다고 비판한다.

78~86년 한국에 머물며 한국미술사를 연구한 그는

『경북대박물관에 소장된 한 미공개 금관은

가야가 신라보다 앞선 문화를 지녔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유물』이라면서 

『신라가 모든 면에서 가야보다 앞섰다고 주장하는 원로가 죽거나 은퇴해야 사실이 밝혀지리라』고 극언했다.

 

또 호암미술관 소장 가야금관(국보 제138호)은 방사성 탄소나 열형광에 의한 과학적 연대측정의 절차 없이

3~6세기 유물이라는 「안전한 꼬리표」를 단 채 전시된다고 주장한다.

가야금관이 신라금관보다 시대적으로 앞서면 문제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신라보다 뒤늦도록 연대매김을 한다는 설명이다.

 

이 책은 저자가 80년대에 남긴 십수권 분량의 한국 관련 글 중에서

전 경향신문 문화부장대우 김유경씨가 가려뽑은 편역서다. 저자가 『타자기를 삽과 곡괭이 삼아

한국문화의 광맥을 파냈다』면 편역자는 섬세한 편역자주(註) 등을 통해

그 보물들의 완성도와 품위를 높이고 있다.

 

〈김중식기자〉